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7화(147/193)
| 147화. 4차 경연: 최종 발표 (3)
위기는 언제나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리허설 때도 그랬다. 연습 땐 거뜬히 해냈던 절반짜리 무대가 힘에 부쳤다.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스파크 놈들이 알면 생방송 직전에도 나를 내렸을 테니 티를 내지 않았지만, 등장하기 전까지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내내 정신이 혼미했다.
딱 3분, 못 참을 건 뭔가.
그리고 나는 정말로 해냈다. 실수하지 않고, 스파크를 응원하기 위해 팬분들이 챙겨 오셨을 슬로건도 잘 봤고, 마지막 그림까지 훌륭하게 완성했다.
내 한계는 거기까지였나 보다. 머리로는 방송 사고라는 걸 아는데도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
그 후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또 병원이었다.
어려운 이야기가 끝나 갈 때쯤 눈이 떠졌다.
“저기…….”
“이월아, 깼구나!”
침대 머리맡에 앉아 계셨는지, 매니저님이 바로 일어나셨다.
나는 숨을 고르고 질문부터 했다.
“매니저님, 혹시 아왕실 끝났나요?”
“아왕실? 아마 투표 집계 중일 거야.”
“그럼 저 방송 좀 봐도 될까요?”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해 보겠다고 이 지경이 되면서까지 달려왔던 프로그램이다.
짐짓 엄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했지만, 매니저님도 내가 아왕실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계셨다.
몇 번 더 부탁한 끝에 나는 매니저님의 핸드폰으로 생방송을 볼 수 있었다.
순위 발표를 앞두고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와 있는 상황.
조그마한 화면 속에서 스파크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이제 긴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왔습니다. 바로 지금, 아이돌 왕조실록에 오를 순위를 공개합니다!』
귀에는 유르 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한곳을 향했다.
‘인터뷰는 잘했으려나.’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는 걸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들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됐다.
저 멘탈 약한 놈들이 생방송이라는 큰 무대에서 마지막까지 잘 버틸 수 있을까?
프로그램 내내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최종 투표에서 순위가 폭락해도 논란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을까?
다들 머리로는 알고들 있을 것이다. 파르테가 우승할 거라고.
과거 아왕실의 인터넷 투표수는 데뷔 연차 순서를 고스란히 따라갔고, 그중 파르테가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가져갔으니까.
시청자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발을 한 번이라도 걸쳤던 사람이라면 모두 결과를 예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물며 출연진인 당사자들이 그걸 모르겠나. 암암리에 자기들끼리 소속사가 얼마를 지원해 주는지까지 전부 공유했을 건데.
억하심정은 들 거다. 그래도 티는 내지 말아야 하는데.
『6위는, 고생하셨습니다. 베리온입니다.』
스파크 놈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얼마나 순진한 녀석들인지 알아서 속이 시끄러웠다.
5위와 4위, 3위가 차례대로 발표되는 동안 스파크는 정성껏 축하를 보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자신들과 파르테만 남자 당황해했다.
남들은 겸손한 연기가 일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저놈들의 겸손함은 진짜고, 파르테가 1위 하는 건 예상해도 본인들이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것까진 몰랐을 거란 걸.
하지만 아쉬워하진 마라. 사방에서 공격당할 테니까.
너희 차례가 주어지면 그때 감사하다고 하고, 꼭 팬분들 먼저 챙기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1위는…… 축하합니다, 파르테입니다!』
펑 소리와 함께 종이 꽃가루가 흩날렸다. 서로를 얼싸안는 파르테에게 유르가 트로피를 들고 다가갔다. 아무렴, 경연 프로그램의 꽃은 최종 순위 발표이자 1등이니까.
『우승 그룹 파르테,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화면을 뒤덮는 꽃가루 사이에서 나는 보았다.
한가운 씨 근처에 서 있다가, 순위가 발표된 순간 환하게 웃으며 한가운 씨와 살짝 포옹하는 박주우를.
그리고 멤버들을 한데 모으며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정성빈을.
화면 속의 다섯 명은 트집 잡힐 구석 하나 없이 웃으며 파르테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쟤들은 뭐가 그렇게 다 좋을까.
자기들도 알 텐데. 지금까지 모든 무대를 다 잘했다는 걸.
그만큼 쏟아부었으면 아쉬운 게 당연한 건데.
왜 저렇게 후련하다는 듯이.
눈 밑이 뜨거웠다. 아주 조금.
……빨리 음방 1위 하고 싶단 생각에 허겁지겁 아왕실 첫 시즌에 나오지만 않았어도.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졌을 때를 기다렸더라면, 앨범을 몇 개만 더 내고 다른 프로그램에 나갔더라면.
그때는 너희가 받아 마땅한 순위를 안겨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까짓 두통 좀 참을걸. 무대에서 조금만 더 버틸걸.
그러면 그동안 고생했다고, 등이라도 두드려 줄 수 있을 텐데.
더는 화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삿바늘이 꽂히지 않은 쪽의 팔로 눈을 가렸다. 눈두덩이가 무겁게 짓눌렸다.
“미안…….”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심이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다행히 익숙한 나무 천장이 보였다.
183cm에 달하는 장정을 숙소로 옮겨 주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숙소에 넘쳐 나는 건강한 인재 중 하나가 활약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베개 옆에 놓인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아왕실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딱 적당할 만큼 잔 듯했다.
‘스케줄은 딱히 없었던 것 같고…… 잠이나 더 잘까.’
어제 감정 소모를 했더니 멘탈이 조금 지쳐 버렸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단체 생활에서 사생활은 사치인 법.
다시 눈을 붙이기 무섭게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형, 자?”
“안 잔다.”
“어우 씨, 깜짝이야.”
이청현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몸은 좀 괜찮아?”
“어. 자니까 한결 낫네.”
“진짜네? 안색이 좀 좋아졌어.”
드물게 이청현이 내 말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내 안색만 조금 살필 뿐이었다.
“……어제는―.”
“엔딩 같이 못 해서 미안하단 말 할 거면 안 해도 돼. 아파서 그런 사람한테 사과받고 싶지 않아.”
“…….”
“다른 멤버들한테도 하지 말고. 형들 미간에 주름 생길라.”
눈치 빠른 자식.
그래도 이청현의 말에서 독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하여간 순해 빠진 녀석이다.
“양 PD님께서 나중에 스파크 다 같이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하셨어.”
“왜?”
“뒤풀이 빠진 대신이래. 우린 뒤풀이 안 갔거든.”
멤버 하나가 실려 갔으니 바로 왔나 보군. 녀석들 딴엔 첫 뒤풀이였을 텐데 미안하게 됐…… 아니다. 회식 같은 거 일찍 배워서 좋을 게 없지.
“일어났으면 나와서 밥 먹어.”
“아냐, 더 잘래. 너희끼리 먹어.”
“그래? 알겠어.”
웬일로 이청현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더니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이월이 형은 더 잔대요!”
……엄마?
“엄마라니, 손님 오셨어?”
“성빈이 형네 어머니 오셨는데? 우리 보양식 먹어야 한다고 삼계탕 끓이셨어.”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어쩐지 어디서 닭백숙 냄새가 난다 했다.
기껏 나와 정성빈의 우당탕탕 아이돌 활동기를 봐주고 계신 분께 ‘이 형은 처 주무시느라 어머님께서 차려 주시는 밥도 안 먹는다고 합니다~!’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허겁지겁 깔끔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붕 뜬 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머님 오셨어요?!”
“이월이 깼니? 아줌마 때문에 시끄러워서 깬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네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세상에, 그새 살 빠진 거 봐. 일어난 김에 밥 먹고 자. 응?”
내가 무어라 더 말할 새도 없이 어머님께선 부엌으로 되돌아가셨다. 나는 그 틈을 타 화장실에서 급하게 세수만 하고 나왔다. 식탁에선 녀석들이 뚝배기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자, 어머님께서 금세 내 앞에도 김이 펄펄 나는 뚝배기 하나를 가져다주셨다.
“이월이 삼계탕은 먹니? 성빈이한테 가리는 거 없다고 듣긴 했는데.”
“그럼요, 엄청 좋아합니다!”
사실은 별로 안 좋아한다. 굳이 말하면 계곡에서 회사 사람들과 먹는 한방백숙을 안 좋아했다. 자리가 하도 불편해서 백숙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삼도 두 개, 다리도 분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두 개.
억지로 눈치 보며 떠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 몫으로 준비된 음식.
“너희도 다 인삼 먹었어?”
나는 삼이 없는 몇몇 그릇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청현이 대답했다.
“우리도 다 하나씩 들어 있었어. 형은 환자라 엄마가 두 개 주신 거 아니야?”
“그래, 많이 먹어야 빨리 낫지. 이월아, 안에 찹쌀밥도 들었거든? 다 먹어. 아줌마가 오늘 솜씨 좀 발휘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서 어머님께서는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일정이 있으시다는 어머님을 배웅하고 왔는데도 뚝배기에선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한 숟가락씩 국물을 떠 마셨다. 고기도 잘 발라 먹었고, 밥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처음으로 백숙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씻고 나오자 웬일로 최제호가 거실에 있었다.
방에서 이어폰 끼고 핸드폰 보는 게 일상인 놈이.
언뜻 보니 장소만 거실 소파로 바뀌었을 뿐, 하고 있는 일은 똑같은 듯해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최제호를 두고 방으로 들어왔더니 이번에는 정성빈이 침대 사이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함부로 남의 방에 들어오지 않는 성향인 정성빈까지 이러고 있으니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정성빈에게 무슨 일이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위층 침대에서 정성빈과 대화 중이었던 듯한 이청현이 삐걱거리는 톤으로 말했다.
“맞다. 나 강견이랑 게임 하기로 했지?”
그러더니 침대에서 후다닥 내려와 방에서 뛰쳐나갔다. 거짓말 하나 지지리도 못하는 녀석이다.
등 뒤에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성빈의 시선이 바닥 어딘가를 배회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 리더께서 형 동생을 다 쫓아내면서까지 나한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작게 털며 물었다.
“앉아서 얘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