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8화(148/193)
| 148화. 재발 방지책 수립 (1)
정성빈은 다정하다.
누군가에게 벽을 치는 법이 없고 만인에게 사근사근하다.
잔정이 많아서 사람 하나하나를 살필 줄 알고, 더구나 대상이 약자라면 정성빈은 그 주위를 맴돌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정성빈이 아침 식사 땐 명백히 나를 피했다. 자리도 평소 앉는 곳보다 떨어져 있었고, 어머님께서 날 언급할 때 눈에 띄게 움찔했다.
앞에선 그래 놓고 방까지 찾아온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겠거니, 싶어 일단 앉자고 한 건데.
침대에 나란히 앉고도 정성빈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기껏 한다는 말이라고는…….
‘누워 계세요. 피곤하실 텐데.’
……가 전부였다.
얼떨결에 나는 용건이 있어 찾아온 정성빈만 앉혀 놓고 드러눕는 안하무인 맏형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어조가 온화하다 해도 리더가 말하는 걸 무시하긴 힘들었다.
불쌍한 내 베갯잇만 다 젖게 생겼다. 내일 몰래 다시 빨아야지.
수건을 머리와 베개 사이에 끼워 넣으며 슬쩍 정성빈의 표정을 살폈다.
낯빛이 어두웠다. 과대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괴로워 보이기도 했다.
“누가 우리 리더 심기를 불편하게 했어?”
“…….”
“얘기해 봐. 조직장한테 충성하는 멤버의 정석을 보여 줄게.”
농담을 찔러 넣자 녀석의 고개가 내 쪽을 향했다.
머리카락 밑으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보였다.
“형.”
“응.”
정성빈이 고개를 떨궜다.
“죄송해요.”
정성빈의 주먹 아래서 침대 시트가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형이 뭐든 대충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거, 알고 있었는데.”
“성빈아.”
“속상하다는 이유로 억지를 부렸어요.”
정성빈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내가 결승전 생방에서 쓰러진 게 본인 탓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불참 제안을 받아들인 상황에서, 정성빈이 어떻게든 날 참여시키겠다고 역제안을 했으니까.
하지만 수락한 건 어디까지나 나다. 정성빈이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미안해할 거라면 내가 미안해야지. 공모전 나가자고 팀 꾸려 놓고 최종 발표에서 혼자만 조퇴한 꼴이 됐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빈은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내가 결승 무대에 나간 것, 쓰러진 것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꼭 무대에 서야만 형에게 있을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생각이 짧아서…….”
“응, 거기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가려는 정성빈의 말을 끊어 냈다.
내가 남의 말을 끊는 일은 좀처럼 없는 터라,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말 끊어서 미안해. 뭐 하나 물어보고 싶어서.”
정성빈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쪽을 향해 몸을 조금 기울였다.
“성빈아.”
“네.”
“미안함이니 뭐니 다 빼고, 여섯 명이 다 같이 무대 올라갔을 때 어땠어?”
정성빈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여튼 속이 다 보이는 녀석이다. 이쪽도 솔직하게 말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 정도로.
“나는 좋았어.”
“…….”
“우리 진짜 열심히 준비했잖아. 그걸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다시 안 올 기회잖아.”
아왕실을 위해 비단 나만 노력한 건 아니었다.
모두가 죽도록 연습하며 몸을 갈았다. 그 험난하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싸우는 일도, 실수도 없이 2등까지 했다.
녀석들은 성과가 주는 기쁨을 느낄 자격이 충분했다.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을 나쁜 기억으로 덮어 두진 말자. 아깝잖아.”
“…….”
“다시 물어볼게. 결승, 여섯 명이 하니까 어땠어?”
나는 정성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정성빈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편하게 입을 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내, 제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듯 웃으며 말했다.
“최고였어요.”
그 뒤는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나는 한숨 자야겠다며 눈을 감았다.
정성빈은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방문 밖에서, 이청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정성빈에게 이야기는 잘 나눴냐고 묻는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들렸다.
* * *
아왕실이 끝난 기념으로 스파크는 짧은 휴일을 얻었다.
이틀뿐인 휴가였지만 스파크 놈들은 제각각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먼저 정성빈은 회사와 연락하느라 여러모로 바빴다. 아왕실에 나오면서 출연 제안이 들어온 방송이 꽤 되는데, 이젠 스케줄에 여유가 생겼으니 정성빈에게 내용이 전달되는 듯했다.
강기연은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고 싶다며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취미가 만화책 읽기라고 듣긴 했는데 꽤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내내 침대에서 나오질 않더라고.
박주우는 중고 앨범을 사러 갔다. 홍당무 마켓에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매물이 올라왔다나? 사기당할까 싶어서 최제호를 끼워 보냈는데 다행히 정상 거래였다.
그리고 나는…….
“형, 수저 다 골랐어요?”
“아니, 내가 대체 왜 포로로 어린이 수저 세트를 써야 하는데?”
빨간 수저 줄까, 파란 수저 줄까 하는 녀석들의 등쌀에 떠밀리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설거지였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스파크는 내 몫의 가사까지 나눠서 분담했다.
이젠 퇴원도 했겠다, 슬슬 고무장갑을 되찾아 오려는데 몇몇 녀석들이 나를 크게 말렸다.
굳이 놈들을 밀치고 ‘시끄러워! 이 구역의 설거지 담당은 나다!’ 하진 않았다. 놈들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빨래에 손도 못 대게 할 때도 참았다. 집안일 안 하고 쉬면 양심이야 조금 찔리지만 편한 건 사실이니까. 여차하면 내가 다른 일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멀쩡한 숟가락, 젓가락이 있는데 왜 새것을 사려는 거야? 심지어 이런 걸로?”
“우리 숙소 수저가 오래된 거라 좀 무겁잖아. 낫는 데 전념하려면 불필요한 데 에너지가 드는 걸 막아야지. 플라스틱이 딱 가볍고 좋을 것 같아!”
……이건 좀 경우가 달랐다. 아니, 경우가 다른 걸 넘어 도가 지나쳤다.
나는 이청현이 휙휙 넘기는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5,690원짜리 ‘포로로 어린이 입체 손잡이 수저 세트’가 색깔별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농담이지?”
“나 할인 쿠폰까지 받아 놨는데?”
이청현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가 날 외면했다. 이 숙소에 있는 전원이 내 포로로 수저 사용에 동의했다는 뜻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청현은 정말로─최제호의 힘을 빌려─하늘색 수저 한 세트를 결제했다. 그러고는 배송비도 할인받았다며 즐거워했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지금의 나는 스파크에게 너무나도 약해진 상태였다. 이런 유약한 마음으로는 녀석들을 갈굴 수 없었다.
“후…….”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방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켠 다음,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노트북을 두들겼다간 누가 또 방해할지 모르니 적어도 30분은 여기서 나가지 말아야…….
『spArk의 보물 창고
비밀번호를 입력하십시오.』
…….
누구야.
누가 공용 노트북에 공지도 없이 비밀번호 설정했어!
* * *
“형, 화났어……?”
“아니.”
“화난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너희들의 열정에 놀라는 중이야.”
내 눈치를 보기 바쁜 박주우 옆에서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홍삼을 짜 먹었다. 정성빈네 어머님께서 두고 가신 보양식 2탄이었다.
노트북 이후로도 나는 갖은 고난에 시달렸다. 아주 사방에서 귀찮게 하더라.
나중에는 내가 부상의 여파 때문에 힘든 건지, 저놈들 때문에 열받아서 힘든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솔직히 인정한다. 이놈들, 내가 자는 동안 개수작 부릴 생각만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그래서 더 열받는다. 이렇게 의견 합치가 잘되는 놈들이 왜 옛날에는 그렇게 떨어져 있지 못해서 안달이었는데?
‘형, 저희 연습 다녀올게요.’
‘그럼 나도…….’
‘쉬고 계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시고요!’
‘아니, 가서 앉아만 있을 테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심지어 이놈들은 나만 두고 연습하러 가 버렸다. 정성빈이 어찌나 칼같이 내 말을 무시하고 튀던지.
결국 나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박주우가 공수해 온 하드 락 앨범만 하염없이 들어야 했다.
누가 UA에서 베이스 하나만 훔쳐 와 줬으면 좋겠다. 노는 동안 손이나 풀게.
아, 시스템도 한번 대대적으로 확인했다. 마음 놓고 허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어서 말이다.
체감상 백만 년 만에 이력서도 확인했다.
스탯이 오를 기미가 안 보여서 한동안 방치를 했었는데 나름 변화가 있었다.
+
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11(▲)/20
─ 댄스 숙련도: 9/20
─ 자기 PR: 17(▲)/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5(▲)/20
─ 누적 피로도: 10%
+
보컬 숙련도가 올라간 건 그렇다 치자. 노래 열심히 불렀으니까.
자기 PR이랑 조직 내 적응력은 뭔데 올라간 거냐고.
‘자기 PR은 술 마신 클립 돌아다닌 걸로도 올랐던 걸 보면 유한수 이슈 때문에 올라간 것 같고……. 조직 내 적응력은 뭐지?’
고민하던 참에 시스템이 나타났다.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네 팀 요새 분위기 좋은가 봐? 그 팀워크가 성과로 이어지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내가 스파크 녀석들하고 잘 지내는 정도란 뜻이었나 보다.
그게 참…… 많이도 올랐네…….
그 외에 특별히 변한 건 없었다. 아이돌이 되기 전엔 나를 볶아 먹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이젠 내가 X대로 튈 수 없다는 걸 알고 방치하는 것 같다.
KPI인 음악 방송 1위 달성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그게 끝나면 다음 KPI로는 뭐가 나올까.
팬미팅 열기? 콘서트까지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그 일들을 다 책임질 수 있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관뒀다. 닥치면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대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누나를 만나게 됐을 때 뭘 하면 좋을지를.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할까? 송 주임님이 어디가 좋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워크숍 후보군에 올랐던 원데이 클래스도 떠올랐다. 팔찌 같은 액세서리부터 도자기나 캔들 같은 용품을 만드는 것도 있었지.
누나라면…… 다 불태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캔들 만들러 다녀오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누나 친구 중에 골프 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기억도 있겠다, 골프에 입문해 보라고 한다거나.
‘돈 많이 든다고 듣긴 했는데. 사람들한테 얼마나 드는지 물어볼걸 그랬네.’
누나가 선호하는 것들은 전부 가성비가 좋았다. 겨울에 파는 붕어빵이나 야외 야구 연습장에서 잠깐 하는 내기, 철마다 구경 가는 수목원 따위가 그랬다.
나 역시 작은 부분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삶의 모든 부분이 그런 것들로‘만’ 구성되면 때로는 지겨워지는 법이라.
하나 정도는 정말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시간이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나는 다이어리를 가져와 맨 뒷장에 작게 목표를 적었다.
적어도 누나가 하고 싶은 것 하나는 마음껏 하게 해 주기
고작 목표만 세웠을 뿐인데도 뿌듯했다.
처음이다. 누나를 떠올렸는데 죄책감보다 기대감이 앞서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