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5화(15/193)
| 15화. 키워드 (1)
이 나이에 밤을 새우는 건 일이 X나 많은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간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뭐든 할 수 있더라. 덕분에 나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기억이 지워진 것도 막막한데 입까지 막혀 버리니 손발이 모두 묶인 느낌이었다.
‘직접적인 정보라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이런 주관적인 표현은 위험했다. 아무 데나 함정을 파 놓고 어디든 걸리라고 기도하는 수준이지 않은가.
나는 희망적이지 못한 미래를 비관하며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보안 서약서에 강제 서명을 했어도 일은 해야 하니까.
그것이 직장인의 숙명이었다.
“이 꼴이 되려고 야근하다 잠들었나…….”
나도 모르게 혼자서 중얼거렸더니 최제호와 이청현이 영 찝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방을 나섰다. 때마침 정성빈이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정성빈이 다가와 물었다.
“어제 잘 못 주무셨어요?”
“조금.”
그러자 정성빈이 조금 머뭇거리더니 내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형.”
“왜?”
“미래를 보느라 못 주무신 거예요?”
“뭐?”
질색하고 돌아본 정성빈의 얼굴엔 장난기가 한 바가지 묻어 있었다.
힘겹게 웃음을 참는 정성빈의 배려가 나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냥 대놓고 웃으라고 하자 정성빈은 참지 않았다.
좋냐?
네가 웃으니 나도 행복하다. 앞으로 연습생 그만둔다고 하기만 해 봐.
* * *
“이월아, 잠깐 보자고 했던가?”
UA에 도착하자 매니저님이 나를 불렀다. 어제 면담 신청을 드려 놓은 덕이었다.
용건은 단 하나. 스마트폰의 사용 문제였다.
2G 폰 보유자인 내가 바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새벽에 몰래 PC방을 갔을 때나 숙소에 있는 공기계를 돌려쓸 때뿐이었다.
공기계를 쓸 땐 시크릿 창을 켜 두었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 폰으로 ‘눈앞에 이상한 게 보여요’ 검색했냐?”라는 소리가 튀어나올지 몰라 심장이 떨렸다.
그래서 내 명의로 알뜰폰이라도 하나 구하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UA는 연습생들의 핸드폰 사용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난 2G 폰이어서 한 달 봐준 거겠지. 하여튼 쓸데없는 데서 잔정이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핸드폰 압수도, 2G 폰 사용도 아닌 스마트폰의 사용이었다.
기억이 지워진 채로 과거에 떨어졌으니 정보 접근성이라도 확보해 두어야 하니까.
예상했던 대로 내 요청을 들은 매니저님의 반응은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건 안 돼. 다른 애들도 데뷔 전까진 개인 폰 소지하지 않기로 했거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UA 너희 데뷔 후에도 1년은 핸드폰 못 쓰게 했잖아.
이 중요한 문제를 그렇게 얼렁뚱땅 넘기기 있냐?
나의 적개심이 들끓거나 말거나 매니저님은 꿋꿋했다.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회사가 너희를 관리해야 해서 이러는 거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선은 잠자코 있었다.
여기서 내가 ‘스파크는 핸드폰으로 문제 일으킨 적은 없던데요.’라고 해 봤자 누가 믿어 주겠는가.
“이월이 너는 아이돌을 준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지만, 너희가 실수로 올린 글 하나가 나중에 큰 문제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서 그래. 회사는 그걸 방지하려고 하는 거야.”
“네. 그래도 매니저님, 핸드폰이 필요한 이유를 한 번만 듣고 고려해 주시면 안 될까요?”
회사의 방침은 존중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따르겠다는 표현을 하되 저자세로 발언권만 요청한다.
결정권이 사측에 있다는 걸 명확히 표시하면 남 부장 같은 인간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얘기나 해 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법이다.
다행히 매니저님은 그보다 더 친절하게 시간을 주었다.
“제가 입사할 때 말씀드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제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독립을 한 상태예요.”
“응, 매니지먼트 팀한테 들었어.”
그렇다면 얘기가 더 빠르지.
양육자가 일언반구도 없이 집을 옮기고 연락이 두절된 내 상황은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열악한 유형에 속했다.
연습생에겐 회사에서 비용 처리를 하는 부분 외에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신발을 사든, 약을 사든 말이다.
“생활비를 관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려면 스마트폰이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여쭤봤습니다. 하루에 한 번 확인하는 정도도 어려울까요?”
카드나 통장 잔고를 확인하려고 매일 ATM에 가기엔 연습 스케줄이 지나치게 빡빡했다. 이에 대해선 매니저님도 동의했다.
“너 알바도 하게?”
“연습 시간 피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있으면요. 아, 물론 기본기 다 잘 익히고 난 후로 생각 중입니다.”
나는 매니저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당분간은 헛짓거리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강력히 표현했다.
그러나 매니저님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너 맨날 제일 늦게 나간다며. 애들이 그러던데? 체력이 되겠어?”
“제가 가진 게 체력밖에 없어서요. 괜찮습니다.”
솔직히 한평산업도 체력 보고 나를 뽑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람을 쉬지 않고 굴렸지.
내가 잡념에 빠진 사이, 매니저님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하루에 한 번 정도면 논의해 볼게.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알바는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상의하고.”
“네, 감사합니다.”
“그래. 연습 열심히 해!”
매니저님은 내 등을 두어 번 쳐 주고 자리를 떴다. 이로써 내가 당장 해야 할 일들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혹시나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바로 못 받는 건 아닐까 걱정은 됐지만…….
누나 입장에서 아직 제 밥벌이 하나 못 하는 동생과 연결되는 게 달갑지만은 않을 듯했다.
이쪽에서 누나의 근황을 알아보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여기 있다며 광고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 잠자코 있기로 했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연습실에 가는데 맞은편에서 박주우가 오고 있었다.
박주우는 내가 없는 동안 신명 나게 댄스 연습을 한 것인지, 땀에 흠뻑 찌든 채로 물을 뜨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세요?”
“매니저님이랑 면담하고 왔어.”
“……?”
“내가 너무 충격적인 몸치여서 특별 대책이 필요하대.”
내 말을 들은 박주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진짜요……?”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야. 어디까지가 진담이게?”
“……형이 몸치라는 거?”
“맞긴 한데 마음이 좀 아프네.”
내가 잘리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안 박주우가 미세하게 안도했다.
설마 내가 안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잔정 안 주는 연습이나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회에 나가면 얘넬 벗겨 먹으려는 사기꾼 같은 어른이 득실거릴 테니까 말이다.
농담만 하고 먼저 돌아가기엔 조금 정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박주우가 물병에 물을 다 담을 때까지 기다렸다.
병에 물이 반쯤 찼을 때 묵묵히 물을 받던 박주우가 물었다.
“형은 다음 평가 곡…… 정하셨어요?”
월말 평가를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음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이 몰아치는 모양새가 꼭 고등학생 때의 쪽지 시험을 떠올리게 했다.
“리스트만 추려 놨어. 이번 주 안엔 골라야지.”
그러다 문득 박주우가 선곡과 관련해 약간의 지적을 받은 게 떠올랐다. 이쪽도 이쪽대로 고민이겠군.
“너는 언제부터 준비 시작하려고?”
“……고민 중이에요.”
물병의 뚜껑을 닫는 박주우는 퍽 근심이 많아 보였다.
아무리 얘들이 껄끄럽다고는 해도 열 살은 어린 애의 기가 팍 죽어 있는 건 보기 조금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한평산업에서 내 피를 먹여 기른 사회성을 아주 조금 꺼내 들었다.
“나 취미로 베이스 배웠거든. 나중에 밴드 노래 부르고 싶어지면 얘기해. 반주해 줄게.”
“진짜요……?”
응. 이제는 못 가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배웠어.
씁쓸해하는 내 앞에서 박주우의 눈동자가 빛났다. 어지간히 들뜬 모양이었다.
“……청현이도 키보드 칠 줄 알아요.”
“그럼 걔는 네가 데려와.”
내가 데뷔하고 바로 탈퇴를 한다고 해도 뭐, 반주 정도야 해 줄 기회가 있겠지.
그 뒤로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 시대를 망라한 밴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조만간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않겠냐고 하자 박주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박주우의 뒷모습은 어쩐지 조금 기뻐 보였다.
* * *
핸드폰의 사용 허가는 며칠 뒤 떨어졌다.
필요한 날 매니저님에게 부탁해 핸드폰을 받은 뒤 1시간 후 반납하는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알뜰폰이 오자마자 주식 앱을 깔고 내 피 같은 자식들이 잘 있는지를 확인한 뒤 재택 알바 구인 글 몇 개에 북마크를 했다.
그러고도 약간의 시간이 남자, 나는 검색 포털에 차마 한 공기계를 돌려쓰는 하우스 메이트들에겐 보여 줄 수 없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갑자기 아이돌’.
‘자다가 일어났는데 과거로 돌아옴’.
‘눈앞에 글씨가 보여요’.
동시에 지금 상황이 한국판 트루먼 쇼만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 모습이 전국에 송출된다면 아마도 나는 집 밖에 나갈 용기를 잃고 말 테니까.
평범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인생 재활용러가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서, 분명 어딘가에 내가 몰랐던 유사한 사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검색을 돌렸던 건데.
“어?”
정말로 검색 결과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웹소설이란 걸로 연결되는 링크였다.
접속한 플랫폼엔 과거로 돌아온 아이돌부터 어쩌다 데뷔한 아이돌, 게임 속에 들어가 버린 아이돌 등 계약서에 강제로 지장을 찍은 슬픈 사연들이 무수히 많았다.
여러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회빙환이 회귀, 빙의, 환생을 줄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엔 내 상황이 회귀에 속한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보통은 회빙환을 겪기 전 원래 세계에서 트럭 아저씨란 사람에게 치이거나 콘텐츠를 열렬히 즐기던 중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야근하다 회귀한 나에 비하면 다들 전개가 극적이었다. 역시 인생은 드라마 같진 않은 법인가 보다.
그보다 회귀 트럭 한 대도 안 보내고 사람을 9년이나 롤백시키다니.
나만 너무 가성비 운영 아닌가?
핸드폰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탓에 소설들의 무료 공개분인 25화까지밖에 읽지 못했다.
때문에 회귀의 굴레에 빠진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아이돌을 해야 한다는 슬픈 법칙만 알게 되었다.
물론 도움을 얻은 부분도 있었다.
정제된 언어로 멤버들의 성격을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처연, #계략, #흑막, #힐링…….’
바로, 키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