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5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51화(151/193)
| 151화. 고충 처리
나의 엄청난 플랭크를 보고서야 정성빈은 내 동행을 허락했다. 팔뚝을 열심히 단련한 보람이 있다.
그리고 어느 평화로운 낮에, 나와 정성빈은 낯선 스튜디오를 찾았다. 장준후가 사전에 알려 준 곳이었다.
입구 앞에서 정성빈이 심호흡을 했다.
긴장될 만도 했다. 여기까지 스스로 오겠다고 결심한 것만도 대단했다.
“돌아가고 싶으면 그래도 돼. 선배님께선 언제나 널 이 자리에서 기다려 주실 테니까.”
“하하…….”
농담 아닌데. 장준후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일걸?
물러나 있을 길을 터 줬음에도 정성빈은 용기를 내는 길을 택했다.
작업실의 현관문 앞까지 가 초인종을 누르자, 아무 말 없이 벌컥 문이 열렸다. 경직된 인상의 장준후가 눈앞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활기찬 내 인사를 정성빈이 작게 따라 했다.
“……그래.”
놀랍게도 장준후는 인사를 받아 주었다. 드문 경험이었는지, 정성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와 정성빈이 긴 소파에 나란히 앉자 장준후가 컴퓨터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여기에 오기 전, 내가 정성빈에게 당부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분위기가 편하진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지?’
‘네…….’
‘그래도 기죽지 마. 눈치 보지 말고, 괜히 분위기 풀려고 애쓰지도 마. 웃기 싫으면 안 웃어도 돼.’
내가 녀석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 피해자가 가해자로 인해 주눅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성빈은 그런 내 말을 잘 지켜 주었다.
괜찮다며 애써 웃거나 장준후의 언짢은 심기를 신경 쓰는 대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장준후의 시선이 내 쪽으로 한 번, 정성빈 쪽으로 한 번씩 향했다.
이 새X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잘못은 정성빈한테 해 놓고 내 눈치를 더 본다, 이거지?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는지 두고 보려는데 장준후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내가 너한테 좀 과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게 끝이었다. 이 뒤로는 어떤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장준후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반응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입 다물고 있는 쪽을 택했다. 그러자 장준후가 바쁘게 말을 쏟아 냈다.
“나는, 널 생각한다고 그런 건데. 이게 또 네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고…….”
지난번, 내가 정성빈에게 장준후가 괴롭힌 증거가 있으면 뭐든 모아서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정성빈은 문자부터 쓰다 만 일기까지 전부 긁어다 내게 줬었다. 그 안에는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까마득한 후배를 어떻게 생각해 주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어렵고, 힘들고, 괴롭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는 일이긴 할까?
젖었다 마른 탓에 가장자리가 운 일기가 몇 장이나 되었는지를 알면, 그때도 이 새X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정성빈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정성빈의 주먹을 천천히 쓸었다.
“선배님.”
“…….”
“사과문 써 본 적 없으신가 봅니다.”
장준후도 정성빈도 흠칫했다. 정성빈의 손을 매만지고 있는 왼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없네.”
조소하자 장준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빈이, 나가 있을래?”
강압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기억을 연상시킬까 싶어 권유했지만 정성빈은 거절했다. 자리를 뜨는 대신, 녀석은 장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얘기만 들어서는 선배님께서 성빈이한테 뭘 잘못하신 게 있어서 이러시나, 싶네요.”
“비꼬지 마라.”
“대충 수습하고 발 빼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래요? 나름 성빈이 보호자로 온 건데.”
내 말에 장준후가 시선을 피했다.
“선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성빈이 착하잖아요. 재능 있으면서 성실하고, 순진하고, 다른 사람 잘 챙기고.”
“…….”
“그런 애한테 잘못을 했으면, 심지어 본인 마음 편하자고 사과하는 자리 만든 거면 용서라도 똑바로 구하셔야죠.”
장준후가 열등감 때문에 무너트린 정성빈의 자존감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책임감 없는 어른 하나 때문에.
그럼에도 정성빈은 장준후에게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다.
그렇다면, 장준후가 정말로 반성이란 걸 하고 있다면…….
“그게 여기까지 와 준 성빈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닙니까?”
장준후가 고개를 떨궜다.
고작 내 말 몇 마디에 수치심을 느낄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저건 ‘고뇌’의 자세일 거다. 어떻게 해야 나를 뚫고 정성빈에게 용서받을지 고민하는.
그때, 정성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내 팔뚝을 살짝 잡았다.
“형, 저희 그만 가요.”
이 분위기를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걱정하며 올려다본 정성빈의 표정은 소극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굳건해 보인다면 모를까.
“저는 이 자리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야, 정성빈.”
장준후가 다급하게 정성빈을 불렀다.
하지만 정성빈은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아니었나 봐요.”
“…….”
“제가 생각했던 이야기가 아니라면, 더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성빈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그 순간 장준후가 있던 곳에서 큰 소리가 났다.
내팽개쳐진 의자가 벽까지 밀려나고, 장준후는 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하다.”
“선배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코피 쏟으며 연습하다 걸린 뒤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빌었을 때, 정성빈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지금의 정성빈은 달랐다. 제 앞에 엎드린 장준후를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기만 할 뿐,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네가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장준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정성빈이 달라졌다는 걸 아마도 제대로 체감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걸론 부족하다.
어른이라면, 잘못을 한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올바른 사과’로.
“성빈이가 뭘 용서해야 할까요?”
내 질문에 장준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뭘’ 용서해야 하냐고요.”
나는 천천히 강조점을 찍어 말했다.
장준후는 정성빈을 올려다보았다. 정성빈의 그늘진 얼굴이 장준후를 보고 있었다.
“너한테…… 욕하고, 물건 던진 것. 지나다니면서 머리 친 것도. 네가 한 녹음에 문제없었는데 괜히 트집도 잡았지. 사람들 앞에서 창피 준 것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장준후가 더듬더듬 말했다.
“왜 그러셨는데요?”
나는 다시 물었다.
장준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닥을 짚은 장준후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했다.
정성빈은 그런 장준후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도 장준후가 입을 열지 않자, 정성빈이 발을 돌리려던 순간.
“질투가 나서.”
장준후의 말이 정성빈의 발목을 잡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놈, 아니 네가 잘하는 게 열받아서. 이제 막 중학생이라는 애가 나보다 잘한다고 인정하면, 얘는 속으로 날 얼마나 깔볼까 싶어서.”
“…….”
“분풀이했다. 일이 안 풀리면 너한테 화 푸는 게 제일 빠르고 편하니까. 그러면 안 됐는데,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추한 열등감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정성빈의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엔 묘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
“약속한다. 이렇게 빌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장준후가 덧붙였다. 장준후의 이마가 바닥에 닿았다.
정성빈은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말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에 탈 때까지도 정성빈은 조용했다. 나도 구태여 녀석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정성빈이 입을 연 건 숙소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정말 제 잘못이 아니었네요.”
목소리가 건조했다. 나는 눈치채지 못한 척, 반대편 거울을 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어디 가서 남한테 피해 주고 다닐 애야?”
내 말에도 정성빈은 평소처럼 피식 웃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숙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녀석을 데리고 숙소로 들어가는 대신 비상구로 향했다.
철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정성빈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애썼다.”
나는 정성빈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녹슨 경첩에서 나는 쇠 냄새가 티셔츠에 밸 때까지, 정성빈은 한참을 울었다.
* * *
“성빈이 형, 요새 엄청 바쁘네.”
이청현이 매니저님과 대화 중인 정성빈을 보며 중얼거렸다.
“방에서도 계속 뭐 정리하던데.”
강기연도 거들었다. 박주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준후의 사과 이후 정성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밝아졌다. 그리고 모든 일에 훨씬 적극적으로 변했다.
“……기운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이야.”
박주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친구의 일이 퍽 걱정이었나 보다.
그런 박주우의 근심을 눈 녹듯 녹일 환한 표정으로 정성빈이 달려왔다.
“여러분! 저희 이번 달 스케줄이 잡혔어요!”
“오! 몇 개나?”
이청현이 정성빈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기 위해 기웃거렸다.
“그게, 이제부터 정해야 해.”
“음?”
정성빈이 매니저님께 받아 온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깜지처럼 빼곡한 표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겹치는 스케줄이 몇 개 있어서 행사나 인터뷰 몇 개는 제외를 해야 하거든. 일부 인원만 나갈 프로그램 같은 건 출연할 사람도 정해야 하고.”
스파크가 떡상을 했다는 걸.
그리고 이젠…… 개처럼 뛰며 일할 일만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