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5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53화(153/193)
| 153화. 성과자 확인 (2)
내가 장준후를 들이받고 온 후로 정성빈은 미친 듯이 연습에만 매진했다.
아왕실이 끝나면서 개학을 했는데도 녀석은 오히려 생기가 넘쳤다.
‘안 힘들어?’
‘전혀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손전등이라도 켠 것처럼 놈의 미소에선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도와줄 게 없을지도 물어봤지만 거절당했다. 지금까지 모두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마무리는 혼자의 힘으로 하고 싶다나.
그렇게 말하는 정성빈은 마냥 기뻐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저런 얼굴이구나 싶었다.
신나서 보컬 연습실로 들어가는 정성빈을 보며 이청현이 투덜거렸다.
“나도 ‘내.가.장’ 방청 가고 싶다.”
“방청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줄 알아?”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 내가 내 멤버 무대도 못 봐?”
이청현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누가 보면 방청석 맡겨 놓은 줄 알겠다.
“우리가 가면 공정성에 어긋나잖아. 정성빈만 공으로 다섯 표를 얻게 된다고.”
“형 그렇게 팔을 안쪽으로 굽히는 사람이었어?”
“당연하지. 나 완전 고슴도치 멤버야.”
나랑 이청현이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박주우는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우, 뭐 해?”
박주우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화면을 내려다보자 익숙한 쇼핑몰이 보였다.
라디오 출연 때 쓴 머리띠 재료를 샀던 곳이었다. 이번 카테고리에는 머리띠 대신 형광 색지가 가득했다.
“현장엔 못 가도 방송 볼 땐 같이 응원할 수 있으니까…… 응원 도구 만들어 볼까 하고.”
“직접? 네가 성빈이 응원하게?”
“응……. 안방 1열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런 고급 단어는 어디서 배웠니? 아무래도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애들이 모니터링에 손을 너무 많이 댄 것 같다.
셋이서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강기연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러고는 박주우가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을 일일이 검토했다.
“폼보드는 남은 거 있을걸요. 베란다 창고에 넣어 놨을 건데.”
“그거 저번 자컨 때 쓰지 않았나……?”
“그땐 흰색 면 써서 검은 면은 깨끗해요. 슬로건 두 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회사가 일을 가져가서 시간이 남으니 애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여서 뭐 하냐?”
때마침 액션 스쿨에 다녀온 최제호가 우릴 보고 물었다.
“성빈이 응원 도구 만든대.”
“아, 장르 이탈 그거?”
최제호가 터벅터벅 거실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노트북 앞에서 ‘정성빈 이름, 형광 연두 색지로 만들 것이냐 핫핑크 색지로 만들 것이냐’로 토론 중인 녀석들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최제호가 물었다.
“애들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열정적인 거지.”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내가 최제호를 갈구는 동안 놈들은 폼보드에 정성빈의 사진을 붙여야겠다며 숙소에 있던 앨범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청현은 『With List』 앨범을 집었다. 차마 데뷔 앨범은 못 건드릴 것 같았나 보다.
“큰맘 먹고 이거 하나 오리자. 첫 단독 무대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뒷면이 청현이 네 얼굴인데……? 얼굴 잘려도 괜찮겠어?”
“리더를 위해서라면 감당할 수 있어.”
“그래. 네 건 내가 나중에 따로 사 줄게.”
“『With List』 말고 그때 새로 나오는 앨범으로 사 줘. 초동 판매량에 기여하자.”
이청현은 강기연에게 초동 집계 기간 안에 새 앨범까지 받기로 하고 가위를 들었다.
멤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도 잠시, 나는 한 박자 늦게 황급히 녀석들을 말렸다.
“다들 동작 그만.”
“왜?”
“이런 건 자식들아, 자컨으로 찍을 생각도 해야지!”
“맞다……!”
박주우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주섬주섬 앨범들을 다시 정리했다. 의기투합하는 우리를 보던 최제호는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 * *
‘내.가.장’ 녹화일까지 정성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대입 실기 준비도 겹친 탓이었다.
‘실기가 언젠데?’
‘내년 1월이요. 보통 연말에는 스케줄이 많아지니까,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렇다더라. 실기와 관련된 부분은 박주우가 다방면으로 도와주고 있어서, 나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당분간 리더 말이나 잘 듣기로 했다.
정말 대단한 건 빡센 스케줄에도 정성빈이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 형.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요……!’
‘무슨 소리야. 네 목소리가 스파크의 자존심인데. 최제호, 모과차 아직 멀었어?’
‘지금 가.’
물론 우리가 황제 대접을 해 주기도 했다.
내가 또 수발의 프로 아닌가. 극진히 모셔 드렸지.
지극정성으로 돌봐 준 결과 정성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때깔이 고와졌다. 안 보여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성대에서도 빛이 났을 거다.
갈고 닦은 정성빈을 혼자 내보낼 땐 스파크 전원이 숙소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 녀석을 배웅했다.
사실은 차 타고 다 함께 방송국까지 갈 생각도 했다. 매니저님이 몸을 두 개로 쪼갤 수 없는 관계로 실패했지만.
‘가면 인사 잘하고, 너무 건조하면 가습기 꼭 켜. 찬 거 함부로 마시지 말고.’
‘걱정 마세요. 잘하고 올게요!’
기운찬 인사와 함께 녀석은 훌쩍 떠났다.
최제호가 뮤비 찍으러 갈 땐 동행이라도 했지, 이건 뭐 초등학교 가는 자식 처음으로 혼자 등교시킨 기분이었다.
우리는 정성빈이 대박을 터트리고 왔을 경우부터 무대를 거하게 망쳤을 경우까지 고려해 하나하나 리액션을 준비하며 놈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녀왔습니다.’
‘뭐야, 아직 치킨 안 왔는데!’
미리 주문한 축하 치킨보다 한발 먼저 정성빈이 숙소로 돌아왔다.
보안 규정 때문이겠지만 정성빈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청현이 슬쩍 옆구리를 찔러도 묵묵히 치킨만 먹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녀석이 첫 개인 스케줄을 마치고 울지 않았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대중 반응이 영 안 좋으면 당분간 공유기 콘센트를 뽑아 놓으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스파크 숙소 공유기가 걸린 ‘내.가.장’ 본방일이 다가왔다.
* * *
“성빈이 형.”
“응, 왜?”
“우리 오늘 저녁에 ‘내.가.장’ 볼 건데 형도 볼래?”
선빵은 이청현이 날렸다. 멀리서 박주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보다 저놈 제정신인가? 멘트는 자기한테 맡기라더니 이런 식으로 말하려는 거였어? 정성빈이 싫다고 하면 ‘내.가.장’ 끝날 때까지 신발장에서 기다리라고 할 셈이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와 달리 정성빈은 평온했다.
“그래.”
심지어 수락까지 했다. 다행히 무대에서 엄청난 음 이탈을 내거나 망신살을 맞진 않은 모양이다.
이청현이 기세를 몰아 다시 한번 정성빈을 들이받았다.
“형 무대 때 슬로건 흔들어도 돼?”
“무슨 슬로건?”
“스파크 수제 응원 슬로건. 다섯 개 만들었거든.”
“그런 게 있어?”
정성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성실한 성향인 데다, 남들을 좋게만 보는 녀석이니 자기가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은 우리가 어련히 연습을 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유감이다. 가만히 앉아서 스파크의 피와 땀이 어린 수공예품이나 확인해라.
이청현이 허공에 대고 박수를 두 번 치자 박주우와 강기연이 분주하게 베란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숨겨 뒀던 쇼핑백에서 슬로건을 꺼내자 정성빈의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다.
‘스파크 1급 보컬’, ‘얼굴만큼 노래도 훌륭한 정성빈’, ‘UA의 새로운 인재’ 따위의 문구를 궁서체로 붙여 놓은 게 이번 슬로건의 포인트였다.
포토 플랫에서 누끼 따던 실력을 발휘해 앨범에서 판박이 스티커인 양 떼어 낸 얼굴 사진이 돋보였다.
“성빈아, 멤버들의 정성이 웃기니?”
“그냥 창피한 거 아닐까요?”
강기연이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렸다.
자기도 신나서 만들어 놓고는. 발 빼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정성빈은 자신의 얼굴이 몇 장씩 붙은 슬로건을 흔드는 걸 너그럽게 허락했다. 덕분에 나도 글자로만 봤던 안방 1열 체험을 할 수 있게 됐다.
방송 시작 시간이 되자 우리는 슬로건을 하나씩 들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주인공인 정성빈은 센터에 앉혀 줬다. 정성빈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와, 이번 화 라인업 무슨 일이야?”
“완전 박 터졌겠는데.”
출연진이 스튜디오에 모두 모이기 무섭게 이청현과 최제호가 한마디씩 던졌다. 유명 프로그램답게 면면이 화려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대선배님들만 계시더라고요.”
“그럴 만하네.”
확실히 대진 운이 좋지는 않았다. 일단 이름을 처음 듣는 가수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장’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는 출연자가 두 명이나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정성빈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꽃 같은 미모를 자랑했다. MC들이 정성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나 성빈 씨랑 눈 마주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잖아. 성빈 씨 너무 잘생겨서.』
『칭찬 감사합니다……!』
출연자들도 다들 맞장구를 쳤다. ‘얼굴만 믿고 나온 아이돌’ 따위의 취급을 하진 않아 보이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출연진들의 공연 순서가 결정된 후에는 명불허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얼마 전에 나름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었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다만…….
“여긴 진짜 프로만 나오시는 느낌이네.”
“그러니까요.”
대단한 효과를 쓰는 것도 아니고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목소리만 가지고 나왔는데도 이렇게까지 무대가 꽉 찰 수 있나.
실수다. ‘실력자들 사이에서도 선배 가수를 상대로 멋지게 네 곡 내 곡을 시전하는 정성빈’을 보여 주는 게 목표였는데 모두가 필살기를 꺼낼 줄이야.
‘정성빈이 장준후보다 낫다는 평가를 듣는 정도에서 만족해야겠네.’
아쉽긴 하지만 정성빈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니까.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정성빈이 클로즈업됐다.
『다음은 K-pop 보컬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 주실 가수분의 차례입니다!』
『화려한 아이돌에서 서정적인 발라드 가수로 변신한 스파크 성빈 씨의 무대를 함께 보시죠!』
간결한 멘트를 반주 삼아, 정성빈이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