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5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57화(157/193)
| 157화. 타 부서 직무 분석 (3)
아이돌의 배우 진출을 두고 세간에서 말이 많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제작사에게 그러한 반응은 하등 중요치 않았다.
제작사 측에서 고려할 건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제작비, 인지도, 평균 비주얼이 그랬다.
대단히 유명한 작가 작품도 아닌 이상 제작사는 주연급 외의 캐스팅엔 큰 공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런 때를 기가 막히게 찾아 들어오는, 소위 ‘운 좋은’ 인물이 몇몇 있었다.
연기는 못해도 얼굴이 반반해서 대사가 별로 없어도 매회 나오긴 하는 조연의 자리를 꿰차게 되는 사람들이.
이번에 들어온 아이돌만 봐도 훤칠한 인물이 전부일 게 뻔했다.
회식 장면에서 춤추는 씬 찍을 때 말고는 이 친구를 써서 얻을 메리트가 뭐란 말인가?
옷은 제법 도영환스럽게 입었다만 그게 다겠지.
“캐릭터 분석부터 들어 볼까?”
차 감독이 질문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인 거, 형식적인 오디션은 빨리 마치고 그나마 제일 작가 마음에 드는 배우를 뽑아 주면 될 일이었다.
눈앞의 청년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조곤조곤 자신이 분석한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반에는 여느 배우들과 다를 게 없었다. 도영환이라는 캐릭터의 나이나 성격 등, 프로필에 있는 내용의 근거를 대본에서 찾아 대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돌의 캐릭터 분석 발표는 5분이 넘어가도록 쉬지 않고 이어졌다.
“많은 금융 회사가 여의도에 몰려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매우 혼잡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더위로 옷차림이나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가벼운 차림을 선호하고, 서류나 노트북을 망가짐 없이 넣을 수 있는 각진 백팩을 주로 사용할 듯합니다.”
“시계는요? 혹시 그것도 생각해 봤어요?”
“20대 후반의 남성 직장인이라면 스마트 워치를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최대한 이미지에 맞게 입고 오려 했는데, 스마트 워치는 쓰질 않아 착용하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작가의 돌발 질문에 멋쩍다는 듯이, 그러나 밉지만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와 가벼움이 느껴지는 옅은 회색의 정장이 다시금 차 감독의 눈에 띄었다.
“이월 씨가 보기에 도영환은 언제 ‘마이 자산 운용’에 입사했을 것 같아요?”
“스물여섯 살쯤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영환이 스물여덟 살이니까 이월 씨 말대로라면 3년 차는 됐을 텐데, 그쯤이면 대리는 달지 않았을까요?”
“대본에서 ‘마이 자산 운용’을 내로라하는 자산 운용사로 묘사하고 있어서, 메이저 자산 운용사처럼 공채 없이 채용 전환형 인턴을 모집하는 식으로 인력을 채용했을 거라고 보았습니다.”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를 쓸 때면 어느 작가든 자료 수집은 하는 법. 방금 풋내기 아이돌의 답변은 작가가 조사했던 내용에 부합한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면접 보는 느낌이지?’
처음의 잘생긴 청년은 어디 가고 수년간 면접만 보러 다닌 베테랑이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신난 작가와 연출가가 별의별 질문을 다 던졌지만 눈앞의 남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모든 질문을 훌륭히 받아넘겼다.
“예 뭐…… 캐릭터 분석은 충분히 잘한 것 같고. 대본 연기 봅시다.”
차 감독이 부랴부랴 대본을 펼쳤다. 감독 짬이 몇 년인데. 신인 배우도 아닌 아이돌에게 말려들기는 싫었다.
그러나 차 감독이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일은 없었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도영환은 대사가 별로 없는 조연 중의 조연이었을뿐더러…….
“대리님, 여기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부정 탑니다.”
“관두고 싶을 때쯤 월급을 줘서요.”
……김이월이라는 신인 아이돌이 기묘하리만치 회사원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콩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오디션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나 왔어.”
“생애 첫 오디션 어땠어? 잘 봤어?”
“야, 형 숨 돌릴 시간은 좀 줘라.”
버선발로 마중 나온 막내들 뒤로 정성빈과 박주우도 쪼르르 튀어 왔다.
최제호도 방에서 나와 눈인사까지 해 주고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갔다.
관심도 없는 연기 일은 뭐 하러 하냐고 한 소리 하더니. 인사도 해 주고 고맙다, 자식아.
“재밌었어. 잘 보진 못했지만.”
“왜? 많이 어려웠어……?”
박주우가 내 눈치를 봤다.
“내가 거기서 엄청난 실력을 뽐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니?”
“그건……. 그런가?”
박주우는 고심하더니 쉽게 납득해 주었다. 하지만 내 말이 맞잖아. 나는 지금 아이돌만 하기도 벅차다고.
‘특히 감독님이 영 날 탐탁지 않아 하셨지.’
아무리 봐도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그래서 면접…… 아니 인터뷰…… 아니다. 오디션이 끝난 후에 내가 대본에서 찾아낸 설정 오류 정리본만 넘겨 드리고 후다닥 나왔다.
오는 길엔 시스템한테서 보상도 받았다. 이따 밤에 뜯어보려고 아직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은 상태였다.
“아쉽다. 우리 팀에서 천재 배우 나오나 했는데.”
“그러다 내가 연기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며 탈퇴하면 어떻게 할 거야?”
“어디 한번 해 보시든가.”
이청현이 당당하게 ‘쫄?’을 시전했다. 정말 쫄렸기 때문에 더 반항하진 않았다.
기념으로다가 오디션장에서 피로했던 도영환 시리즈를 멤버들에게 선보이는 와중 숙소 전화가 울렸다.
근처에 있던 정성빈이 전화를 받는 동안, 우리는 입 모양으로 바쁘게 물었다.
‘회사야?’
‘매니저 형?’
정성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통화에 집중했다.
정성빈의 낯빛이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녀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선 수화기를 떼고 입만 간신히 달싹였다. ‘제호 형’이라고.
“최제호, 누가 너 찾나 본데?”
“누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부르자 놈이 침대에서 미적미적 일어났다.
“동생분이래. 급하게 찾는다던…….”
굼벵이처럼 움직이던 녀석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러곤 정성빈의 손에서 낚아채듯 수화기를 빼앗아 갔다.
“뭔 일이야.”
상대에게 묻는 최제호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정성빈이 조심스럽게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동생분, 울고 계시더라고요…….”
“헉…….”
이청현이 입을 틀어막고 최제호의 눈치를 봤다. 정작 최제호는 온 신경을 수화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통화 내내 최제호는 ‘어’밖에 말하지 않았다.
전화를 길게 하지도 않았다. 1시간 같은 3분이 지난 후에 녀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 있대?”
“나 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다.”
“지금? 어딜?”
최제호는 대답 없이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운동화 뒤축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붙잡을 새도 없이 나가는 최제호의 등 뒤를 쳐다보다가 급히 정성빈을 불렀다.
“성빈아, 혹시 매니저님이 우리 찾으시면 잠깐 편의점 갔다고 해. 알았지?”
“형도 가시려고요?”
“쟤 혼자 보낼 순 없잖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지갑과 겉옷을 챙겨 나갔더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있었다.
열림 버튼을 눌러 억지로 문을 열고 타자 최제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왜 따라 나와?”
“스파크는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거 몰라?”
“그런 건 네가 제일 안 지키지 않았냐?”
쏘아붙이면서도 녀석은 내게 돌아가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택시를 잡을 뿐이었다. 나와 실랑이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거겠지.
다행히 택시는 금방 와 줬다. 적당히 술자리가 파할 시간인 덕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최제호가 주소를 부르는 동안 얌전히 옆자리에서 벨트를 맸다.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도 최제호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했다.
“괜찮아?”
안 괜찮을 걸 알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놈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누나네 집에 찾아갔대.”
“따로 사신 지 오래됐다고 하지 않았어?”
최제호의 가정사는 간략하게나마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 쪽에 문제가 많아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그 뒤로는 쭉 남남으로 살고 있다고.
그런데 가족 문제라는 게, 무 썰 듯 뚝 잘라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말이다.
“등본 떼어 봤겠지. 시X, 술 처먹고 도박하는 새끼를 왜 가정 폭력범으로 안 잡아가서…….”
최제호가 머리를 싸맸다.
양친과 연을 끊는 일은 쉽지 않다.
나만 해도 독립한 후 서류 열람 제한을 거느라 며칠을 고생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어떤 욕설을 들었는지를 일일이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더욱 조치를 취하기 힘들었으리라.
“경찰 안 불러도 되겠어?”
“소용없어.”
최제호의 목소리가 부서지듯 떨어졌다.
“그 인간, 사람은 안 때려. 때리면 진짜 빵 가니까.”
“…….”
“그런데 사람을 안 때리잖아? 그러면 그냥 잘 달래서 재우라고 해. 가족끼리 말다툼하고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아버지도 아침 되면 정신 차리실 거다 이러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가족이 없는 것처럼 잊고 살려 해도 어느 날 문득,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 상상이 들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에.
남이 되고 싶은 사람과 앞으로 몇 년을, 몇 번을 더 보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인지를 알고 있어서.
“개 같아.”
최제호가 중얼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눈을 감았다.
* * *
누나분이 사시는 동네는 조용했다. 다르게 말하면 인적이 드물었다.
택시 요금을 결제하고 차에서 내리자, 나 다음으로 내린 최제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듯했다.
나는 당장에라도 어디론가 뛰어갈 것 같은 녀석을 붙잡았다.
“가기 전에, 잠시만.”
“왜?”
최제호의 반응은 전에 없이 날카로웠다. 녀석의 눈에선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 만나서 어쩔 건데. 너 이제 아이돌인데 아버지랑 대판 싸우고 경찰서 갈 거야?”
“…….”
“네가 폭력은 안 쓴다고 치자. 너희 아버지께서 너 협박죄로 몰아가시지 않으리란 보장 있어? 직계 존속을 향한 패륜 범죄는 중죄야.”
내 말에 최제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놈은 반박하거나 내게 입조심하라는 말 따위를 하지 않았다. 본인도 아는 것이다.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최제호가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자 두 손에 빨갛게 피가 몰렸다. 퍼렇게 돋아난 힘줄이 꿈틀거렸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최제호가 짙은 눈동자로 시선을 맞춰 왔다. 흉흉한 기운을 숨길 기색도 없어 보였다.
“나한테 맡기고 넌 물러나 있어.”
“뭐?”
“기다리라고. 내가 부를 때까지.”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비장의 준비물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