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6화(16/193)
| 16화. 키워드 (2)
이청현을 제외한 스파크의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었다.
게다가 데시벨도 높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성격은 전부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방송에 노출되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이청현 혼자 끌어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스파크가 출연한 방송들은 좋게 말해서 대자연 다큐멘터리 같았다.
나쁘게 말하면 어떤진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러니까 입덕 문을 열기가 힘들지.’
이 중에 네 취향이 한 명은 있을 거라며 영업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붕어빵 틀로 찍어 낸 것 같은 애들을 갖다 놓고 ‘자! 똑같은 애들이 이만큼 있으니까 몇 배 더 맛있겠지?’라고 해 봤자 누가 구경하러 오겠느냔 말이다.
영업도 먹을 게 있어야 가능한 법.
팬들이 굴착기로 멤버들의 A to Z를 파헤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맨땅에 약간의 홈 정도는 파 두는 게 좋아 보였다.
‘적어도 본인의 개성을 어느 정도는 드러낼 수 있게 해야 해.’
그래야 하다못해 데뷔 앨범에 소품 하나라도 더 찰떡으로 얹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깊은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검색 기록을 모두 지우고 매니저님에게 핸드폰을 반납했다.
그러고는 단체 연습의 쉬는 시간마다 멤버들을 예의주시했다.
그리고 남 부장의 따님에게서 받았던 메일에 완벽한 캐해는 애정과 집착에서 나오는 거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정제된 언어를 쓰는 것만큼 편리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웹소설에서 본 키워드를 빌려 이 녀석들의 성격을 명문화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쉬는 시간마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박주우에게는 ‘무심 댕댕이’라는 이미지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주었다.
따님의 사랑을 독점했던 자이자 스파크의 빛나는 센터가 될 최제호는…….
“그러니까 너는…… 쿨한 속성의 무심 눈새 천재캐야.”
……특별히 좀 더 화려하게 지어 주었다.
그러나 최제호는 무심하기 짝이 없게 대꾸했다.
“뭔 소리야 갑자기.”
“무심 속성이 주우랑 겹치는데 성격을 좀 바꾸는 건 어떻게 생각해?”
나의 합리적인 제안에도 최제호의 일그러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팀의 과반수가 무심, 무뚝뚝, 무덤덤 3관왕을 달성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데. 유감이다.
“형! 저는요?!”
내가 재밌는 얘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이청현이 강기연을 거울 앞에 버려 두고 튀어 왔다.
“햇살 뭐시기라는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거 해.”
“아니, 왜 저는 타협해요?!”
“더 나은 표현이 나오면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거지.”
그렇게 멤버별로 속성을 세 개째 붙여 주고 있을 때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민주경 님이었다.
“연습 방해해서 미안!”
웃으며 들어온 민주경 님의 손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민주경 님은 연습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화이트보드에 자신이 가져온 종이를 붙였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평가 결과는 이렇게 붙이고 있거든. 특이 사항은 없으니까 다들 시간 날 때 확인해!”
성적표는 받자마자 보게 되는 게 사람 심리라는 걸 모르실 리는 없는데.
아마도 연습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최대한 가볍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주변에 ‘인사 평가 결과 입력 끝났으니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때 아마 저런 얼굴이었을 거다.
그보다 특이 사항이 없다는 걸 보니 내가 잘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장하다, 김이월. 이 악조건에서 기어코 살아남는구나.
최저한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직행했다.
잘리는 건 피했으니 나머지 결과가 어떻든 간에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2월 월말 평가(성적순)
박주우
최제호
이청현
정성빈
강기연
김이월
※ 세부 사항은 수업 때 피드백 예정!
막상 여섯 명 중 6등을 하고 나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복잡하긴 했다.
살면서 꼴등을 해 본 적은 없어서 그런가. 이래서 사람은 뭐든 경험을 해 봐야 하나 보다.
+
[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30) 지급
▷ 누적 경험치: 40
▷ 누적 포인트: 0
+
때마침 월말 평가에서 합격점을 획득한 것에 대한 경험치도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SYSTEM] ‘추가 경험치’가 지급되었습니다.▷ 사유: ‘가까운 조직원’에게서 고평가 획득
▷ 보상: 경험치(10) 지급
▷ 누적 경험치: 50
▷ 누적 포인트: 0
+
누군진 몰라도 나를 아주 좋게 봐 준 모양인지 경험치가 10이나 추가로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3대가 복 받으시길.
나는 데뷔 전까지 최소한 ‘졌지만 열심히 싸운 6위’ 정도로는 성장하리라 다짐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던 중, 덤덤하게 종이를 확인하고 돌아서던 정성빈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며칠 전 정성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 연습생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등수가 거의 바뀌지 않았거든요.’
지금의 정성빈은…… 완벽히 개운하다곤 할 수 없지만 전보다는 표정이 좋아 보였다.
착잡함은 있어도 어두움은 없는 얼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어째서인지 그날 느낀 수치심을 약간이나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 * *
초심자의 장점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장족의 발전을 한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었다.
그 한 걸음이 실제로도 초심자 입장에선 엄청난 도약이지만.
초기 공사를 잘 다져 놓은 덕분인지 이어지는 수업들은 까마득할 정도로 막막하진 않았다.
더불어 UA는 이러한 부분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회사였다.
“이월아, 너 진짜 많이 늘었다.”
“정말요?”
보컬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입문자가 성장하기엔 참 좋은 환경이었다.
정작 다리가 터지게 노력하고 있는 댄스 수업에선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으나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적어도 동작을 익혀 놓고 나면 잊어버리진 않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단체 연습 중 음악을 멈추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금까지 자잘하게 모은 경험치가 100을 넘기게 되면서 얻은 복지 포인트도 숙련도에 성실하게 투자했다.
그 결과 지금 내 숙련도는 이렇게 됐다.
+
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5(▲)/20
― 댄스 숙련도: 4(▲)/20
― 자기 PR: 12/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0/20
누적 경험치: 0
+
보컬 숙련도는 포인트를 넣은 적이 없는데도 알아서 올라가 있었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이 사례를 통해 숙련도가 꼭 경험치를 얻는 방법만으로 올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숙련도의 총합이 한 자릿수인 건 마음이 아프지만, 고작 한 달 연습해 놓고 결과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라 점수가 오른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새로운 업무도 생겼다.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3월 월말 평가 전까지 댄스 숙련도 5까지 올리기
▷ 보상: 타 멤버 이력서 열람 체험권, 데뷔 앨범 기획을 위한 기획안 표준 양식 3종 세트
+
아마도 다음 월말 평가가 데뷔조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평가일 것이었다.
내가 데뷔 일정을 1년 앞당겼으니까. 슬슬 그룹은 확정이 나야지.
그보다 2월 평가 기준으로 각 잡고 데뷔조 짠다면서 3월까지 질질 끄는 건가.
이러니까 과거에 데뷔를 2년이나 미루고 그룹이 망하고 사회가 망하고…….
업무와 별개로 보상은 정말 별로였다.
이력서 열람엔 관심이 있었지만 체험권이라는 게 졸렬해서 기분이 상했고, 데뷔 앨범 기획안이라는 건…… 딱 봐도 할 일만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저런 건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간 쓰게 되더라. 그것도 내가.
그래서 더더욱 기획안 3종 세트는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직무가 프로듀싱 멤버로 고정된 이상 미리 받아 두는 게 속 편할 것 같아 얌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차하면 양식만 받아 놨다가 한 3개월 후에 ‘맞다, 내가 그런 걸 갖고 있었지 참!’ 메타로 가지 뭐.
“저희 달력 이제 뜯을까요?”
“응, 부탁할게!”
정성빈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청현이 연습실 벽면에 걸려 있던 벽걸이형 달력의 페이지를 뜯었다.
3월의 시작이었다.
* * *
직장인의 시간 개념은 직장인이 아닐 때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대학생 때 내 시간 개념은 이랬다.
3월~6월 / 9월~11월: 학기 중+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
7월~8월 / 12월~2월: 개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
그러다 한평산업에 입사하면서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3월~11월: 바쁜 달
12월: 숨만 간신히 쉬는 달
1월: 숨도 못 쉬는 달
2월: 집에 못 가는 달
이러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3월은 한 학기가 시작하는 달이라는 것을.
우리 숙소의 고등학생들도 새 학기를 맞아 등교를 한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이청현의 알람이 평소보다 빨리 울린 시점에서였다.
어쩐지 평소보다 알람이 빨리 울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일어났는데, 건너편의 최제호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는 녀석이 웬일인가 싶던 찰나 이청현이 죽상을 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래.”
“피곤해서요……. 형 알람 맞춰 놓고 더 자요. 지금 7시거든요.”
“7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말 7시였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빠른 기상 시간이었다.
“어제 일찍 잤어야 하는데……. 괜히 늦게 잤나 봐요.”
그러더니 이청현이 옷장을 열고 낯익은 회색빛의 교복을 꺼냈다.
이청현의 과사를 긁어모아 지하철 생일 광고를 만들 때 본 교복이었다.
‘맞다. 얘 지금 열일곱 살이지.’
그러니까 이청현은 이제 고작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거였다.
난 대학교 입학했을 때가 몇 년 전인지도 까마득해졌는데 말이다.
얘들이랑 한 팀으로 데뷔하는 게 도의적으로 맞는 일인지 다시금 걱정이 된다.
“오늘 개강인 거야?”
“형님, 개강 아니고 개학이요! 그리고 전 개학이 아니라 입학이에요!”
말실수 한번 하기 무섭게 이청현이 물고 넘어졌다. 눈뜬 지 3분 만에 기운이 팔팔해진 걸 보니 체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씻으러 나가려는 듯한 이청현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거실에는 교복 차림의 정성빈과 강기연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예고 교복이라 그런지 이쪽 교복의 색이나 디자인은 이청현의 것과 크게 달랐다.
≫ 블루베리 요거트 시절 동문즈 과사 귀하다 귀해…… X발 우리 애들은 대체 왜 저 얼굴을 가지고 셀카를 안 찍은 거임? 저 얼굴로 하루에 셀카 100장씩 안 찍는 건 직무유기지 개빡치네 X발
└ 이건 뭐 그라데이션 분노도 아니고 그냥 냅다 분노네
연보라색 교복을 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스치듯 봤던 SNS의 글이 떠올랐다.
시간 날 때 세 놈들 숙소 소파에 앉혀 놓고 셀카 좀 찍어 두라고 일러 둬야겠다.
“너희 아침은 먹고 나가?”
“성빈이 형이 토스트 구워 준대요.”
그러고 보니 프라이팬에 식빵 세 쪽이 올라가 있었다.
잼도 계란도 없이 식빵을 불로 익히기만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돌의 세계는 이렇게나 입도 가슴도 퍽퍽하다.
“굽기만 하는 거면 내가 해 줄게. 너흰 나갈 준비 해.”
“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나 어차피 더 못 자. 한 번 깨면 잠이 안 와서.”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빵 하나 정도는 구울 수 있었다.
뒤집개를 빼앗아 오자, 정성빈은 안절부절못하고 내 주위를 맴돌다 물러났다.
“냉장고에 계란 있던 것 같은데. 부쳐 줘?”
“아뇨 형! 진짜 괜찮아요!”
“저도 괜찮…….”
“저는 계란 올려 주세요!”
강기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에 가 있던 이청현이 외쳤다. 도대체가 어떻게 되어 먹은 청력인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