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6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61화(161/193)
| 161화. 사내 어린이집 (1)
“오늘 여러분은 꽃님반 일일 선생님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저희가요?”
얼떨떨한 우리에게 샛노란 앞치마와 튤립 모양 이름표 배지가 하나씩 주어졌다. 큰일이다. 우리 애들은 쿨톤인데.
게다가 꽃님반이라니.
평균 연령 19.3세, 평균 신장 180cm 초반 대의 남자들이 속해 있기엔 위화감이 느껴지는 학급이었다.
“어린이집 다니던 때 기억나는 사람 있어?”
“보통 그게 기억나나?”
“안 나? 우리는 영어 연극 발표회 했었는데. 난 ‘프로스페로’ 했었어.”
“그게 뭔데?”
“『더 템페스트』에 나오는 귀족.”
이청현이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최제호의 얼굴엔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라고 별반 다르진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대단했네…….’ 싶었을 뿐이다.
“혹시 이 중에 동생 있는 분 계세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간단한 질문을 던지셨다. 최제호와 이청현, 정성빈이 손을 들었다.
“세 분, 동생이랑 나이 차는 어떻게 돼요?”
“네 살 차이요.”
“저희는 두 살!”
“저흰 쌍둥이라 똑같아요.”
세 녀석이 차례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동생이 영유아인 놈은 없었다.
그나마 네 살 차이인 쪽이 좀 더 어린이와 친밀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저놈은 최제호 아닌가.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다.
간단한 주의 사항과 어린이들의 이름, 하루 일정표를 전달받고 나니 등원 시간이 됐다.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현관문 밖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어떡해……. 부모님이랑 헤어지기 싫은가 봐…….”
박주우는 울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참아라. 너까지 울었다간 이 어린이집 누수로 보수 공사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씩씩하며 용감했다. 바쁘게 출근하는 어머님을 배웅하고 나서는 겉옷을 벗으며 굳센 걸음으로 복도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우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야, 다 뒤로 세 발자국씩 물러나.”
울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저건 서러움의 표시가 아니었다.
완벽한 거부였다.
“지금이라도 토끼 탈 이런 거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루 종일 쓰고 있게?”
“애들을 하루 종일 울리는 것보단 그게 낫죠.”
강기연이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성빈이 형, 형이 가 봐.”
“내가?!”
“우리 중에 믿을 건 형뿐이야.”
이청현의 무한한 신뢰를 등에 업고 정성빈은 첫 원생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아, 안녕……?”
“와앙! 엄마!”
그리고 장렬히 실패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정성빈도 우리 안에서나 다정한 미남이라는 걸.
냉혹한 현실 사회에서는 아무도 정성빈을 온미남으로 봐 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속속 도착하는 어린이들이 엉엉 울며 선생님들의 품에 안기는 사이, 우리 중 누군가가 성큼성큼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최제호였다.
“야, 뭐 해!”
“형, 빨리 들어와요……!”
나와 박주우의 소곤거림에도 녀석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친구 하나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안경이라도 씌워 놓을걸.’
그랬으면 방어벽이 쌓여서 괜찮았을 텐데.
후회하는 날 두고 최제호가 복도에 꿇어앉았다.
“넌 벌써 혼자 잠바도 벗을 줄 알아?”
생뚱맞은 질문에 우리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울던 어린이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보는데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이 도와주시더라고. 그런데 넌 혼자서 옷 잘 걸더라.”
“난, 형아라 그래…….”
“너 몇 살인데?”
“다섯 살…….”
“다섯 살? 형아 맞네.”
누가 봐도 어깨 형님인 것 같은 최제호에게 인정받은 게 기뻤는지, 다섯 살 형아 어린이가 울음을 그쳤다.
“선생님은 여기 처음이라 잘 모르거든? 너 반이 어디야?”
“선생님은 무슨 반 선생님인데?”
“꽃님반.”
“내가 알려 줄게. 나 따라와.”
어린이가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최제호의 손을 덥석 잡고 꽃님반 팻말이 붙은 곳으로 앞장섰다.
애들한텐 이렇게 예쁘게 말할 줄 알면서 우리한텐 왜 그랬냐.
할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애들한테라도 곱게 말하는 게 어디야.
봤냐는 듯, 기세등등한 최제호의 표정이 고까웠다.
* * *
우여곡절 끝에 꽃님반 친구들은 모두 등원에 성공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도 가졌다. ‘기연’이나 ‘제호’ 선생님은 잘 말하면서 ‘이월’ 선생님 이름은 제대로 못 부르더라. 개명을 또 할 수도 없고.
차라리 김 선생님으로 부르게 해야 하나? 그랬다간 일일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니라 일일 교무실 체험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스파크가 원데이 엘리멘트리 스쿨 챌린지를 찍는 일은 없었다.
내 곁에 아무도 안 왔기 때문이다.
어린이 친구들은 내 쪽으로 오다가도 종종걸음으로 도망갔다.
이름을 불리는 건 고사하고 아이 콘택트라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단 좀 앉아 봐. 전봇대처럼 서 있지 말고.”
양쪽 어깨에 어린이를 한 명씩 걸쳐(?) 놓은 최제호가 말했다. 저놈 어깨에선 금맥이 흐르나…….
엉거주춤 앉는 내 뒤에서 강기연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낭랑한’ 목소리였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톤이었지만 진짜였다.
“달달팡이 인형으로도 나왔어? 되게 잘 뽑혔다.”
“선생님도 달달팡 알아?”
“당연하지. 선생님 미니팡 시리즈 좋아해.”
“나는 미니팡 백 개도 넘게 알아!”
강기연은 그간 축적해 온 빅데이터로 아이들과의 대화에 끼어드는 중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머리에 온갖 리본 캐릭터 머리끈을 단 어린이들이 강기연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린이용 손목시계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캐릭터를 가리키며 강기연이 물었다.
“이 친구는 무슨 팡이야? 처음 보는데.”
강기연이 모르는 캐릭터라도 발견하면 현장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짭짤팡이잖아. 선생님 몰라?”
“이런 친구가 있었나? 새로 나왔어?”
“미니팡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처음 나왔어.”
“미니팡이 벌써 다섯 번째 이야기까지 나왔어? 선생님은 세 번째 이야기까지밖에 못 봤는데.”
이런 광경은 무언가를 연상하게 했다.
그러니까, 예전에 본 건데…….
≫ ??? 탐라 왤케 밀렸지 기연이 뭐 떴어요?
└ 기연이 컨포 떴어요~
└ 뭐임 왜 나만 빼고 공개함??
≫ 이거 기연이 언제적 사진이에요??
└ 미니 2집 특별 무대 때예요~ 음향은 X구려서 노래 끄고 무대만 보시는 걸 추천해요~
└ 이런 착장 좋아하시는 거면 음악대제전 기연이도 찍먹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버건디 섀도우의 혁명이랍니다
└ 기연이 홈마분께서 만들어 주신 화랑 기연이 링크 두고 갑니다…… 총총
기억났다. 흡사 뉴비를 영업하려는 고인물들의 떠먹여 줌이었다.
박주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하늘색 머리카락이 변신 만화의 캐릭터들을 연상케 한 모양이다.
‘선생님은 씁쓸팡 색으로 염색한 거야?’라는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힘겹게 대답하는 모습이 애잔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박주우의 머리에는 하나둘씩 리본 머리핀이 꽂히기 시작했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아이 예쁘다!”
“이것만 있으면 선생님도 요정 왕이 될 수 있어. 내가 특별히 빌려주는 거야!”
양 갈래를 넘어 13 꽁지머리가 된 박주우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박주우는 평온해 보였다.
“누나가 이런 거 자주 해서…….”
사촌 누님의 조기 교육 덕분이라나. 어쩐지 모의 팬싸에서 고르는 아이템들이 다 수준 높더라.
박주우의 양쪽 귀에서 하트 보석 귀걸이가 달랑거렸다. 아이돌의 귀감이 되는 모습이었다.
이러다 보니 겉도는 건 E들뿐이었다.
정성빈은 어린이들에게 손부터 씻어야 한다며 애들을 양 떼처럼 몰고 가다가 두 명을 울렸고, 내 주위엔 여전히 누구도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나마 이청현이 E들의 희망이었지만 쉽진 않았다.
“선생님 피아노 칠 줄 알아?”
“나 다 잘 쳐. 뭐 쳐 줄까?”
“『꽃 한 송이』 쳐 줘!”
“그건 처음 들어 보는데…… 혹시 『송어』는 안 될까?”
꽃님반에 슈베르트의 송어가 흘렀다. 그러나 어린이 관람객을 만족시킬 순 없었다.
“듣고 치면 안 돼? 청현이 너도 청음 되잖아.”
“각자 부르는 음이 다 달라서 조합이 안 돼…….”
그렇게 이청현은 『꽃 한 송이』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
아무래도 MBTI 그거 잘못된 것 같다. 적어도 여기서 나와 정성빈, 이청현은 극강의 아웃사이더가 되어 버렸으니까.
* * *
점심시간에는 다 함께 샌드위치를 만드는 고도의 단체 활동을 했다.
최제호와 박주우, 강기연이 아이들을 보는 동안 나와 정성빈, 이청현이 부엌에서 박 터지게 재료 손질하고 왔다. 시간 못 맞출까 봐 심장이 터질 뻔했다.
“아이들 보는 건 정말 쉽지 않구나.”
이청현이 존경스럽다는 듯 말했다. 숍에서 곱게 세팅하고 온 머리가 쑥대밭이었다.
“그래도 주우에 비하면 네 머리는 양반이야.”
“그건 그래.”
우리는 고개를 돌려 놀이방 안의 박주우를 보았다.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함이 우리를 압도했다. 박주우는 조만간 요정 나라로 초청이라도 받을 듯했다.
“강견은 대화 수준이 맞겠다 싶긴 했는데, 제호 형은 웬일이래?”
“쟤는 애들이랑 눈높이가 맞잖아.”
“아하.”
중간중간 동료 욕도 좀 했다. 안 그랬다간 재료 만들기 조는 방송에 쓸 분량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청현이 너도 동생이랑 자주 놀았다지 않았어?”
정성빈이 물었다. 식빵 봉지를 닫던 이청현이 멈칫했다.
“‘자주’까지는 아니고, 여느 형제랑 비슷했지.”
“네 동생도 너랑 성격 비슷하냐?”
내 질문에 이청현이 고개를 저었다.
“걘 완전 까칠해. 나랑 정반대야. 걔 보면 형도 ‘아, 청현이는 정말 착한 애였구나!’ 싶을걸?”
“그 정도라고?”
상상이 잘 안 간다. 내 머릿속의 이청현이 너무 ‘사람 좋아 대형견’이라 그런가 보다.
“그럼 형님은?”
멤버들의 가족 관계를 익히 알고 있는 정성빈이 다시 질문했으나, 이번에도 이청현은 질색했다.
“형은 더 해. 성빈이 형, 세상 모든 형들이 형 같진 않아.”
“나도 정성준한테 좋은 형은 아닐 것 같긴 한데…….”
“그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그러더니 두 놈은 계란을 부치고 슬라이스 햄을 데치며 ‘누구 동생이 어떻게 싸가지가 없네’, ‘누구 형은 도끼눈을 뜨네’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월이 형 형제 관계는 들은 적이 없네.”
이청현이 툭 말을 뱉었다. 딸기잼을 따던 손이 헛돌았다.
가족 관계라는 말을 쓰지 않은 걸 봐선 나름 양친 쪽은 배려해 준 듯한데.
“형은? 외동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뚜껑을 따려던 손에 땀방울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