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6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63화(163/193)
| 163화. 사내 어린이집 (3)
그 후로도 우리는 완충된 핸드폰처럼 쌩쌩해진 아이들과 종횡무진 어린이집을 뛰어다녔다.
전국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고강도의 노동을 매일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저렇게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시면서.
난 스파크 다섯 놈만 데리고 있어도 인내심이 오르락내리락하던데. 역시 인격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우리의 안면에 적응해서 다행이었다. 서로서로 장난을 칠 만큼은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몇몇 친구들은 대범하게도 최제호의 어깨에 올라타는 무등 체험까지 했다. 애들 머리가 천장에 닿을까 봐 최제호가 무릎을 꽤 숙여야 했지만, 모두 안전히 187cm짜리 목말을 타는 데 성공했다.
나는 인간 거치대가 된 최제호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최제호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스파크 놈들을 보며 내 옆에 앉아 있는 재윤이에게 물었다.
“재윤이는 목말 안 타고 싶어?”
재윤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내 옆에 딱 붙어 한 페이지에 열 글자도 들어 있지 않은 그림책을 열심히 읽었다. 고양이와 어린아이가 골목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낯을 많이 가리나?’
친구들하고 종종 대화하던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어른들이 들이닥친 상황이니 달갑지는 않겠다 싶어 조용히 있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곳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팔랑팔랑 책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멎었다.
“선생님.”
재윤이가 나를 불렀다. 재윤이의 손끝이 그림책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주인공을 따라 골목 끝까지 함께 모험을 떠나 준 작고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닮았다.”
재윤이가 씩 웃었다.
너무나도 순수한 미소였다.
* * *
처음에는 이 난관이 언제 끝날지 걱정했건만.
이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선생님, 내일 또 와?”
한 손에는 요술봉을, 한 손에는 변신 자동차를 든 친구가 물었다.
“선생님들이랑은 이제 빠이빠이 해야 해.”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의 눈썹이 팔자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 이제 안 와?”
그 말을 신호 삼아 누군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최제호가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 한 명을 안아 올렸다.
“왜 울어? 다음에 TV에서 선생님 보면 춤 따라 추기로 했잖아.”
그런 암약을 맺었단 말이야? 최제호 팬 관리 장난 없네. 센터인 이유가 있었어.
최제호가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주자 품에 안긴 아이가 눈물을 훌쩍이면서도 이내 울음을 그쳤다.
‘이게, 못할 짓이네…….’
어른이야 잠깐의 만남에 익숙하다지만 애들은 나름 정을 주면서 우리를 받아 준 걸 텐데. 마음이 영 안 좋았다. 내 쪽에서도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눈물 바람인 아이들을 차례차례 하원시키려는데 밑에서 바짓단이 당겨졌다.
재윤이가 나를 올려 보고 있었다.
“재윤이도 이제 집에 갈 시간이네. 오늘 재밌었어?”
재윤이가 끄덕였다. 말 없는 게 참, 우리 집 박주우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다.”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재윤이의 겉옷 단추를 채워 주었다. 그러자 재윤이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색종이였다.
“고양이예요.”
재윤이가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러곤 보호자분의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안녕.’이라며 인사하고는 어린이집을 떠났다.
나는 떠나는 재윤이의 등을 한 번, 손바닥에 반듯하게 올려진 색종이를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정체를 듣지 못했다면 차마 형태를 알 수 없었을 검은 고양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 일을 시작한 뒤로는 받기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 애정들을 어떻게 해야 전부 갚을 수 있을지.
* * *
돌아오는 길엔 귀여운 어린이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을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그렇게 다들 신발도 조그맣지? 신발장에 주르륵 줄 맞춰 놓은 거 봤어?”
그 신발보다 이청현 네놈 앞머리 모근이 더 일렬종대일 텐데.
“나 진짜 장난감인 줄 알았잖아. 모양도 다 예뻐. 우린 쓰레빠만 신고 다니는데.”
“너 오늘 설마 슬리퍼 신고 나왔어?”
고개를 홱 돌리자 뒷자리에 있던 이청현이 발을 움츠렸다. 다행히 녀석의 발엔 색감 쨍한 네이비 컨버스가 신겨져 있었다.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 봐!”
“네가 아이돌의 본분을 잊고 슬리퍼 짝짝 끌면서 현장 나오는 만행을 저질렀을까 봐 걱정돼서.”
“어차피 형 숍 나가기 전에 우리 다 전신 거울 앞에 세워 놓고 점검했잖아.”
“언제나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다 백미러 너머의 최제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저놈 얘기도 빼놓을 수 없지.
“최제호, 오늘 선방했더라.”
“뭐?”
“잘했다고. 예상외였어.”
최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저놈은 칭찬을 해 줘도 표정이 펴지질 않는다.
“네가 위아래로 껴 봐라. 안 익숙해지나.”
툭 던진 말에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니, 내 가족사가 이렇게까지 언급 금지 대상이 된 거야?
졸지에 분위기 파괴범이 된 나와 최제호가 동공을 굴리는 동안 이청현이 좋은 타이밍에 치고 들어왔다.
“형, 나도 둘짼데.”
얼굴도 착하고 머리도 착한 놈.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너를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위에 세워 주마. 인공위성에 네 얼굴만은 남도록.
“제호 형, 동생하고 사이좋아요?”
강기연이 물었다. 좀처럼 상상이 안 갔던 모양이다.
“그냥 평범해.”
“에이, 그런 것치곤 애들 보는 게 익숙하던데. 아주 숙련된 조교였어!”
이청현이 쉼 없이 MSG를 쳤다. 강기연은 따로 말리지 않으면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최미호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생떼 부리는 게 심해서 그래. 그거 듣기 싫어서 오냐오냐하니까…….”
“형 동생분도 그래요? 정성준도…….”
그리고 여기에 갑자기 정성빈이 합류했다. 정성빈은 뭔가에 한이 맺힌 것처럼 정성준 씨에 대한 이야기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게 K-형제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성준이 형이랑 미호는 착하잖아. 우리 집 인간들은…… 어휴.”
“너 최미호 본 적 있던가?”
“있지. 예전에 형이 3주 동안 말을 안 해서 찬영이 형이 통역 좀 해 달라고 불렀잖아.”
그런 일이 있었어? 저 새X 진짜 구제불능이었네.
“말은 왜 안 했는데?”
“왜긴 왜겠어. 강견이랑 뭐가 또 안 맞았던 거지.”
“옛날얘길 뭐 하러 꺼내.”
“맞아. 잘 기억도 안 나는 일로.”
최제호와 강기연이 동시에 투덜거렸다. 이럴 땐 또 저렇게 죽이 잘 맞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 제호 형과 성빈이 형의 마음도 이해가 가. 나한테도 말 안 듣고 생떼 부리는 동생 기연이 있잖아.”
“내가 왜 네 동생이야?”
“우리 생일이 거의 11개월 차이인 거 잊었어? 나는 말이야, 너보다 주우 형이랑 더 또래에 가깝다고.”
이청현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이고, 우리 기연이! 형이라고 해 봐! 자!”
“우리 팀 야자 타임 하는 날 오면 내가 너부터 손본다.”
무시무시한 발언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정성빈이 그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힘겹게 뒷수습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조수석 쪽에 있던 박주우와 눈이 마주쳤다. 뒤쪽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녀석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해맑게 웃었다.
* * *
어린이집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왔어도 연습은 해야 했다.
‘다들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서 아직 체력 남았죠?’라는 정성빈의 모습이 군대에서 봤던 조교를 연상케 했다.
낮잠 안 잔 나랑 이청현만 억울하게 됐지. 덕분에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굴렀다. 빨리 근육이나 다시 붙여야겠다. PT를 더 끊든가 해야지.
그렇게 운동까지 하자 멤버들은 대부분 녹초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긴 하루였다’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씻을 준비가 끝난 사람부터 욕실로 들어갔고, 샤워하고 나오는 족족 머리를 말리고 스킨케어를 끝낸 뒤 침대에 엎어졌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씻고 나왔을 땐 숙소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누군가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피곤할 만도 하지.’
앞으로 뛸 행사도 가득이었다. 스파크의 스케줄엔 향후 3개월간은 빈틈이 없었으니까.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푹 잘 수 있을지 모르니, 나는 불을 끄는 것도 잊은 놈들을 대신해 부엌과 거실의 조명을 끄고 최제호의 무드 등을 켠 다음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머리 위와 옆에서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나까지 금방에라도 잠에 빠질 듯한 평온함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잘 수는 없었다. 내 하루는 아직 안 끝났거든.
나는 한참을 묵혀 뒀던 시스템을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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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기억 데이터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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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쨍했다. 이렇게 주변이 어두우면 알아서 다크 모드로 밝기 조절 좀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시력 떨어지게 말이야.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 같으니.
‘그보다 기억이라…….’
나는 시스템이 도대체 어떤 기억을 줄지를 예상해 보았다. 시스템이 나에게 아주 악의적이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이놈의 신조는 변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일단은 보상이니까 KPI랑 관련된 영역이어야 말이 맞지 않나?’
현재 KPI는 음방 1위였다.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이 KPI 역시 멀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좀 더 거시적인 정보가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누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라면 좋겠지만 그렇게 일이 잘 풀릴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앞으로 KPI가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고.
시스템이 나를 엿 먹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대를 노려 데이터를 까기로 한 것 아닌가.
‘아니면 이청현이 무슨 약을 먹을지라든가, 최제호네 아버지가 과거에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있는지라든가, 정성빈의 목 상태는 어떤지라든가…….’
걸음걸음마다 알아야 할 것투성이었다. 다음부턴 기억 데이터를 패키지로 팔아 달라고 요청해야겠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써?’
나는 선명하게 빛나는 ‘기억 데이터 (1개)’를 보며 속으로 질문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붕 떠 있는 듯, 몸의 감각이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