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6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64화(164/193)
| 164화. 외전. 어느 2월 14일
한평산업의 공식적인 퇴근 시간은 6시다. 김이월의 저녁 약속 시간은 6시 반이었고.
그리고 현재 시간은…… 7시다.
“김 주임님, 퇴근 안 하세요? 오늘 생일이라면서요!”
마찬가지로 집에 못 가고 있는 황 주임이 심각한 표정으로 김이월을 챙겼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생일이라고 정시 퇴근을 시켜 주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김이월은 속으로 생각했다. 티는 내지 않았다.
김이월의 듀얼 모니터 한쪽에서 메시지 알림이 떠올랐다.
미리보기를 잠가 놓아 내용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발신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누나 엄청 화났겠네.’
동생 저녁 한 끼 사 주겠다고 지옥철을 뚫고 강남까지 왔을 텐데 한 시간이나 바람을 맞히고 있다. 대역죄도 이런 죄가 없다.
남 팀장이 전부 검수하고 가라며 떠넘긴 데이터를 모두 훑어보고 나서야 김이월은 누나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나
[뭐냐?] [나 영하 2도에서 40분은 기다린 거 같은데] [설마 신종 사람 개 빡치게 하기 수법임?]나
[미안해, 아직 일이 안 끝났어.] [밖이야?] [기프티콘 보낼 테니까 카페에라도 들어가 있어.]누나
[회사 클래스 X된다] [마인 프렌즈 샵에서 인형 터는 중이니까 신경 ㄴㄴ해]그러면서도 누나는 언제 끝날 것 같냐고 재촉하지 않았다. 김이월에게서 그간 불규칙한 퇴근 시간 이야기를 몇 번씩 들은 탓이었다.
나
[지금 나가]짧게 답장을 보내고 김이월은 겉옷을 챙겼다. 김이월의 걸음이 분주해졌다.
* * *
수요일 밤 강남은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식당과 술집이 있는 거리는 더했다.
주말이면 주말인 대로 사람이 많고 평일이면 평일인 대로 사람이 많은 곳.
김이월은 인파에 떠밀리며 누나가 있다는 매장 앞에 도착했다.
연락을 받고 나온 누나의 손에 흰색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인형 샀어?”
“아니, 이건 다른 거.”
“인형 턴다더니 왜?”
“집구석 좁아서 둘 곳도 없어.”
그러더니 누나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지도 어플을 보는 듯했다.
파스타를 먹자고 했던가. 면 음식을 좋아하는 김이월과 양식을 좋아하는 누나의 절충안이었다.
누나는 김이월을 데리고 10여 분 정도를 더 걸었다. 찬 바람에 얼굴이 얼얼할 때쯤 따뜻한 색감의 노란 전등이 벽면에 줄줄이 매달린 양식집에 도착했다.
어플로 예약했다며, 누나가 인포의 직원분께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이름을 확인한 직원분이 두 사람을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예약까지 했어?”
“강남에서 저녁 먹는 것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안 했지.”
김이월의 누나는 말을 참 특이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 많을 것 같아서 미리 예약했어.’라고 하면 될걸. 그게 누나의 말버릇이라면 버릇이었다.
김이월이 잔에 물을 채우고 나이프와 포크를 세팅하는 동안 누나는 목도리를 풀어 옆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들고 다니던 쇼핑백을 김이월에게 건넸다.
“옛다.”
“뭐야?”
“생일 선물.”
김이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쇼핑백을 열어 보기도 전에, 쇼핑백 한쪽 면에 인쇄되어 있던 연예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
“왜 보지도 않고 정색해? 사람의 성의가 우스워?”
“아니야, 그런 거.”
잘생긴 미남자가 신상 스포츠 티셔츠를 걸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김이월이 아는 얼굴이었다.
“요즘 회사에서 자주 보는 얼굴이어서. 좀 당황했네.”
“너희 회사에서 모델 쓸 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그리고 이 사람 아이돌이야.”
그래도 받은 선물엔 바로 호응하는 것이 예의였다. 김이월은 쇼핑백을 열고 비닐 포장된 옷을 꺼냈다.
쇼핑백에 인쇄된 아이돌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라인의, 색만 다른 제품이었다.
“운동복 샀어?”
“너 뭐…… 홈트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운동할 때 입어.”
누나는 먼저 나온 에이드를 시원하게 빨았다. 자몽 에이드 잔 안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렸다.
“밥 먹는 걸로 퉁치자며.”
“할인하길래 겸사겸사 샀어.”
“홍보 모델이 입고 있는 제품이 할인 행사를 했다고?”
“아, 드럽게 따지네.”
누나가 빨대로 얼음을 쿡쿡 찔렀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의미였다. 이럴 때 동생이 함부로 입을 놀려서 좋을 게 없었다.
“고마워. 잘 입을게.”
“오냐.”
음식이 나오기 전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김이월과 누나는 각자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관뒀다. 대화를 할수록 피곤해지기만 했던 탓이다.
주제는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누나는 연예인에 관심 없어?”
“나? 나야 배우 몇 명만 좀 아는 게 끝이지.”
“그래?”
“네가 나보다 연예인 많이 알 듯. 아까 걔도 안다며.”
그러면서 누나가 쇼핑백을 가리켰다.
“얘는 우리 팀장님 따님께서 좋아하시는 아이돌이라 아는 거야.”
“그걸 네가 왜 아는데?”
“가끔 사진 같은 거 찾아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어서 시간이 남을 때 찾아 주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남자 아이돌 사진을 열심히 찾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이름이 뭔데?”
“제호래. 스파크란 그룹에.”
“스파크면 거기 아닌가? 이청현 있는데?”
“응.”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누나도 이청현은 알았나 보다.
“걘 진짜 잘생겼더라. 걔가 지금 남돌 대표 비주얼 아니야?”
“잘생겼지. 나도 사진 찾다 보면 가끔 깜짝 놀라.”
누나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말 나온 김에 멤버 누구 있는지나 좀 보자는 게 이유였다.
“제호가 맏형이래. 야, 너랑 동갑인데?”
“그러니까. 진짜 안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글쎄다.”
누나는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며 최제호의 프로필을 터치했다.
김이월이 어제도 본, 선이 굵고 번듯하게 잘생긴 미남자의 얼굴이 확대됐다.
“얘 잘생겼네. 포지션이…… 센터? 키가 187cm야? 센터 할 만하다.”
“직캠 보면 엄청 커.”
“너 얘 직캠도 봤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남팬 다 됐네.”
“눈물 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변명하는 순간까지도 김이월은 자신의 최제호 자료 수집 업무가 빠른 시일 내에 종료되기만을 바랐다.
“맏형이 리더가 아니네? 특이하다. 얘는 좀 귀염상이네.”
“그래도 걔가 야무진 면이 있어. 말도 잘해.”
“그렇게 생겼다. 딱 반장 상이야.”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위에 제호가 있으면 이 동생이 기를 펼 수나 있을까?”
누나는 중책을 맡은 정성빈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했다. 최제호의 비주얼을 극찬하던 것과는 영 다른 태도였다.
박주우의 프로필을 볼 차례에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누나의 앞엔 크림 리조또가, 김이월의 앞엔 바질 파스타가 올라왔다.
도우가 얇은 피자까지 차려지는 것을 보며 김이월이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야, 남들 이 정도는 기본으로 시켜 먹어.”
“반씩 내, 그럼.”
“누가 밥 먹기도 전부터 계산 얘기하냐? 입맛 떨어지게.”
누나는 스파크 탐구가 즐거웠는지 리조또를 먹으면서 프로필 탐방을 멈추지 않았다.
“주우……? 얘는 처음 들어본다. 메보인 거 보니까 노래 잘하나 보네. 그런데 아까 성빈인가 걔도 메보 아니었나?”
“둘이 음색이 좀 달라. 주우가 좀 더 날카로워.”
“아무리 봐도 청현 얘가 제일 잘생겼어. 왜 얘가 센터가 아니지?”
“그런데 또 무대 보면 제호가 잘 보이긴 해.”
“기연 얘도 인상 장난 아니다. 완전 막내온탑 상이네.”
“얼굴만 그렇지 멤버들한텐 깍듯하더라. 애는 착한가 봐.”
김이월은 거기서 또 하나하나 코멘트를 달아 줬다. 아이돌 얘기에 왜 자기가 일일이 맞장구를 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누나랑 이런 주제로 떠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김이월은 작년 누나의 생일을 떠올렸다.
그때 김이월은 졸업반이었다. 누나는 수척했다. 불볕더위가 누나에게만 내리쬐는 듯한 여름이었다.
‘환경만 됐으면 너한테 졸업 유예를 하라고 했을 텐데.’
멍한 얼굴로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영원히 쉬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대학생 때의 방학이 인생의 마지막 휴식기일 줄은 몰랐다고.
그건 하소연이기도 했고 동정이기도 했다. 칼졸업에 칼취업을 꿈꾸는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이제 내 할 몫 해야지.’
당연했다. 그리고 김이월은 제 목표를 지켰다.
동기들이 어려운 시험을 준비해 대기업에 합격하든, 공무원이 되든, 김이월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 벌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누나와 김이월 자신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그것만으로도 김이월은 만족했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팀장 얼굴이 생각나는 아이돌 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어울려 준 건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는 맛있었다. 식당은 따뜻했고 듣기 좋은 클래식이 흘렀다.
김이월이 제 몫의 파스타를 말끔히 비우고 코트와 가방을 집어 들었을 때, 누나는 이미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에 가 있었다.
식당 밖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나눠서 내자니까.”
“너도 내 생일에 밥 사. 오마카세로.”
“나 7월부터 잠수 탈 거니까 그렇게 알아.”
평일의 저녁이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내일의 출근을 준비해야 했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야.”
누나가 김이월을 불러 세웠다.
“회사에서 이상한 거 시키는 것 같으면 그냥 나와.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그래도 2년은 채워야 이직할 수 있지 않을까?”
“꼴통 짓 2년 한다고 꼴통 회사밖에 더 가겠냐?”
누나는 짐짓 진지했다. 김이월이 슬며시 웃었다.
“아직 그 정돈 아니야. 경력 쌓을 정도까지만 생각해 볼게.”
“그러시든가.”
누나가 콧방귀를 뀌듯 대답했다. 어련하시겠어, 라는 의미였다. 김이월의 누나는 때로 제 동생의 판단력을 못 미더워했다. 지금처럼.
“사서 고생하지 마. 알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나는 사라졌다.
지하철 개찰구로 내려간 건지, 택시를 탄 건지, 버스 정류장 안으로 들어간 건지 모르게.
김이월은 혼자 번화가의 도시에 남겨졌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김이월은 낯선 숙소에 남았다.
고개만 돌리면 쇼핑백에 있던 최제호가 옆에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이청현이 튀어나와 아침 인사를 했다.
“……오늘이 며칠이지?”
김이월이 물었다. 겨울이어서일까. 목이 건조했다.
이청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14일이요. 오, 발렌타인데이!”
이제는 2월 14일이 김이월의 생일이라는 걸 알아줄 이가 없다.
생전 그 사실이 씁쓸했던 적은 없는데도 오늘은 유난히 몸이 시렸다.
‘연습, 가야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김이월이 몸을 일으켰다.
부지런히 일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