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6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67화(167/193)
| 167화. 현장 업무 (1)
‘인 마이 오피스’ 캐스팅이 발표된 뒤 사방에서 기사가 쏟아졌다.
≫ 스파크 이월, ‘이제는 연기 할래요’…… 새로운 도전
≫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스파크 이월, 인 마이 오피스 출연’
≫ ‘성숙한 모습 보여 드리고 싶어……’ 스파크 이월의 색다른 변신
그중 절반은 나를 돌려 까는 기사였다. 얼마 전까지 내가 핫 토픽이었으니 대놓고 ‘김이월, 차세대 발연기돌 되는가?’라고는 못 하지만, 아이돌의 배우 활동엔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셈이다.
내 옆에서 헤드라인을 훑던 이청현이 말했다.
“사람들이 형 얼마나 연기 잘하는지 모르나 보네. 형 완전 연기 왕인데.”
“내가?”
아직 대본은 받기 전이고, 오디션 연기를 따로 보여 준 적도 없는데 이청현은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반문하자 이청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 그 연기 잘하잖아. 그…… ‘별 거지 같은 일도 다 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열과 성을 다할 것처럼 기운차게 대답하는’ 연기.”
“청현아, 우리 처음으로 숙소에서 갈등 한번 빚고 라이브에서 스파크 내부 분열 에피소드 푸는 시간을 가져 볼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 내가 형의 마음을 아주 콕 꿰뚫어 봤지?”
너무 콕 꿰뚫어서 심장에 구멍이 난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쟬 잘못 키운 게 확실하다. 아니면 저 녀석이 어디서 나 몰래 이상한 걸 배워 왔든가.
이청현이 낄낄대며 도망쳤다.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대본이 오기 전에 팬송 가사 줄기는 잡아 놓아야 할 것 같은데.’
목숨처럼 소중한 다이어리를 펼쳤다. 이번 달도 일정이 빼곡했다.
지역 축제 스케줄도 있었고, ‘도.삶’도 또 간댔고…….
잠깐.
‘도.삶’?
“성빈아, 우리 ‘도.삶’ 언제 간다는 이야기 있었어?”
“이번 달이라고만 들었어요. 녹화일은 아직 안 잡혔다고…….”
“그게 바로 오늘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스파크 여러분?”
“와악!”
정성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습실 문을 열고 제작진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가히 밀물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보다 지금 밤 10시인데.
미팅을 이 시간에 하러 오시진 않을 테니까…….
“설마 저희 지금 출발하나요?”
“역시 이월 씨야. 눈치 빠른 거 봐.”
“지금이요?”
강기연의 눈이 커졌다.
“저…… 저희 지금 꼴이 엉망인데요.”
박주우의 목소리가 애절했다. 앞서 안무 연습 대신 보컬 트레이닝만 해서 땀 냄새가 안 나는 게 그나마 천운이었다.
“괜찮아요. 가면 어차피 다 엉망진창 될 거예요.”
그 와중에 PD님께서 사람 좋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PD님, 진주는 진흙에 파묻혀 있어도 빛이 나는 반면 따개비는 건져 봤자 따개비랍니다.
저 같은 따개비에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 말입니다.
“지금부터 출발해야 하는 곳이 있나?”
최제호가 황당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지금 출발한다면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곳은 해 뜨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로 밤에 하는 일이 뭐가 있지?
환경 미화 편은 이미 나왔는데. 기차선로 정비 일인가? 아니면 카페의 연장선으로 PC방 야간 알바?
나는 짱구를 굴리면서도 급히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냈다.
그리고 박주우에게 냅다 멀미약을 먹였다.
“이거 분명 장거리야. 얼른 먹어.”
“으응…….”
박주우는 생명수 마시듯 꿀떡꿀떡 멀미약을 삼켰다. 본인도 생명의 위기를 느낀 듯했다.
“자자, 스파크 여러분! 우리 갈 길이 멀어요! 얼른 출발합시다!”
“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차에 올라탔다. 언제 설치한 건지 차에도 캠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저희 가면 뭐 할까요?”
강기연이 벨트를 매며 물었다.
“우리 엄마 보니까 실험 결과 안 나오면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있던데.”
“우리가 연구실에 가서 도움 될 일이 있나?”
모처럼 최제호가 맞는 말을 했다. 여기 다 석박사는커녕 학사도 없(어졌)는데 무슨.
“오징어잡이 같은 거 아닐까요?”
“그럴듯하다……!”
강기연도 의견을 내놓았다. 제법 그럴듯했지만 정성빈이 반박했다.
“그럼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울릉도까진 가야 하니까. 지금 끝물이고.”
“형이 어떻게 오징어잡이 철을 알아?”
“뉴스에서 봤어.”
아나운서님도 오징어철 기사를 아이돌이 열심히 볼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을 거다.
우리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차는 남쪽을 향해 달렸다.
바람 많이 안 부는 가을날 남쪽 지역에서 아침이나 새벽부터 해야 하는 일이라.
겉모습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메이크업이 필요 없고, 시청자들이 만족할 만큼 난이도 있으면서, 어린애들도 할 수 있을 만큼 단순 작업이고 노동력만 있으면 되는 일.
게다가 조명 비추기 어려운 어두운 환경을 감수하면서까지 밤에 가야 하는.
표현을 바꿔서 말하면, 특정한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는…….
“갯벌이다.”
“응?”
우리 갯벌 가는 중이라고, 바보들아!
* * *
차는 한참을 달려 목포에 도착했다. 사방이 칠흑처럼 검었다. 짠 내음이 풍겼다.
하나둘씩 차에서 내리고 있는데 PD님께서 다가오셨다.
“중간부터 어디 가는지 눈치챘다면서요?”
“네, 이월이 형이…….”
“아무도 안 잔다고 오디오 감독이 기겁을 하더라. 장거린데 좀 자지 그랬어요.”
스파크는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잠을 자선 안 된다는 철칙이 있어서요. 멀미, 부상, 급체, 24시간 무수면 스케줄과 같은 불가항력이 아닌 이상은 제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기사님께서 내비도 안 찍고 오셨는데 어떻게 알았지? 우리 대본 유출됐나?”
“하하, 그러게요.”
입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다. 갯벌만큼 가성비 나쁜 촬영지도 없기 때문이다.
갯벌에서의 노동은 강도와 분량이 반비례한다. 재밌는 장면은 초반에 사람들이 몇 번 엎어지는 것 외엔 뽑기 힘든 반면 뻘 때문에 작업 속도는 더디기 마련이었다.
이 촬영에서 스파크가 득 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전신 천연 머드 팩 말이다.
‘이걸 평범한 출연진 혼자서 찍었다간 다큐멘터리 될 게 뻔하니 그룹을 집어넣은 거겠지.’
조명에 의지해 대형을 갖추며 속으로 한탄했다.
현장이 정돈되고 나자 PD님께서 진행을 시작하셨다.
“그래서? 오늘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감이 좀 오시나요?”
“꼬막…… 캐기?”
박주우가 슬쩍 정답 맞히기를 시도했다.
“저 미튜브에서 그거 봤는데. 따개비 청소!”
“그게 뭐야?”
“선박 밑에 생긴 따개비를 고압 호스로 떼는 거야. 배를 들어 올려 가지고…….”
이청현은 따개비 청소 설명에 열을 올렸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이긴 했다.
‘그보다 고압 호스 같은 걸 드는 작업을 비전문가한테 줄 리는 없지.’
강도를 떠나서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도.삶’ 제작진이 그런 수위를 조절하지 못할 팀은 아니었다.
“아, 정답이 안 나오니 이렇게 뿌듯하네. 아이템 고민한 보람이 있다.”
쉽게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헤매는 우리를 보며 PD님이 흡족하다는 듯 웃으셨다.
“저번에 스파크가 너무 쉽게 알바 준비를 해 왔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 작가진이 이를 악물고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도.삶’분들은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신가 보다. 그러니 우리를 새벽 1시에 목포까지 데려오신 거겠지.
“오늘 스파크의 일일 업무는 바로 ‘뻘낙지 잡기’입니다!”
사전에 흔히 들어 보진 못했을 아이템.
대비를 미리 해 보기 어려울 작업.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까 봐야 하는 특수성까지.
완벽하다. 그래서 눈앞이 캄캄하다.
스파크는 허우대도 멀쩡하면서 일도 끝장나게 잘해 시비 걸릴 거리 하나 없는 멋진 아이돌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런데 아직 물이 안 빠진 것 같은데요?”
최제호가 바다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정말로 멀지 않은 곳에 수면이 보였다.
“저희는 여기서 배를 타고 들어갑니다.”
“배요?”
“낙지가 가까운 해안가에는 안 산다고 하더라고요.”
동시에 우리 손에 승선을 위한 서류가 쥐어졌다. 항목들을 채우고 나니 비닐 백이 하나씩 제공됐다.
“안에 작업복이랑 장갑 등 다 들어 있고요, 배 안에서 입으시면 됩니다. 지금 입으신 옷 위에 바로 걸치면 되세요!”
“와, 저희 연습복 이후 첫 단체복이에요!”
이청현이 기뻐했다. 아무래도 첫 우정템으로 연습복을 사자고 했던 날 돌려 까는 것 같다.
물때를 맞춰야 하다 보니 승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배 안에서 장갑을 겹쳐 끼고 있는 모습이 꽤 신선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스파크에게선 보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주우 형, 멀미 괜찮아?”
“응, 아직 괜찮아.”
“기연이 어깨 끈 꼬였다.”
“감사함다.”
서로를 꼼꼼히 챙기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오늘의 목표를 되새겼다.
“아까 PD님께서 인당 몇 마리 잡아야 한다고 하셨지?”
“열 마리 아니었어요?”
“열 마리면 잡을 만한 건가? 한 번도 안 잡아 봐서 감이 안 오네.”
정성빈과 강기연, 이청현이 머리를 맞대고 ‘스파크, 오늘 안에 낙지 60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최제호는 선원분께서 타 주신 믹스 커피를 마시며 벽에 등을 딱 붙이고 앉아 관전 중이었다. 저놈은 뭐, 여기 던져 놔도 잘만 적응하고 살 것 같다.
좁은 공간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다 보니 정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선장님의 안내에 따라 대기하자, 서서히 물이 빠지며 드넓은 갯벌이 드러났다.
“스파크 여러분, 이제 배에서 내려 주세요! 뻘이 엄청 깊으니까 발 조심하시고요!”
PD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억 소리가 들렸다. 최제호의 오른쪽 다리가 무릎까지 진창에 처박혀 있었다.
“여러분은 여기서 오늘 2시간 동안 낙지를 잡아 주시면 되는데요. 낙지를 잡으려면 도구가 필요하겠죠?”
그 순간 스탭분께서 배 위에서 무언가를 뻘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셨다.
낙지를 담는 용도로 추정되는, 밀짚 같은 걸로 엮은 커다란 바구니 여섯 개와…….
‘삽?’
……삽 여섯 자루였다. 그것도 머리와 자루가 굉장히 긴.
이상하다. 분명 내가 인터넷에서 봤을 땐 모종삽 같은 걸로 조개 같은 걸 캐던데. 갯벌 체험과 진짜 갯벌은 장비부터 다른 건가?
내 동공이 흔들리거나 말거나 PD님은 신경 쓰지 않으셨다. 대신 선원분을 옆으로 모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본격적인 삽질…… 아니 낙지잡이에 앞서! 숙련된 전문가분의 시범을 보시겠습니다!”
나 방금 똑똑히 들었어.
분명 저 양반, 삽질이라고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