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7화(17/193)
| 17화. 대표 면담 (1)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빵을 한 쪽씩 받아 드는 걸로 녀석들의 등교 준비는 끝이 났다.
나는 정신없는 신발장에서 용케 제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도 식빵은 야무지게 사수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배웅 인사를 건넸다.
“차 조심하고, 얼굴 조심하고, 허튼 짓거리 하지 말고 성실한 모습 보여 주다 와.”
그러자 강기연이 불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우리 부모님도 형만큼 잔소리 안 해요.”
그러냐? 난 양친한테 잔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강기연 씨는 차도 안 조심하고 얼굴도 안 아끼고 허튼 짓거리 하겠다고?”
내 말에 반박할 차례를 놓친 강기연이 왜 얘기가 그렇게 되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꼭두새벽부터 등교하느라 힘들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기연아.”
“왜요.”
“내가 공부 열심히 하고 오라고는 안 하잖아.”
“…….”
“헛짓거리만 하지 말고 오자. 알았지?”
그러고는 강기연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나의 다정한 면모에 강기연이 몸서리쳤다.
건강하고 무탈한 하루 보내라는 배웅을 받으며 세 명의 고등학생은 숙소를 떠났다. 소란스러운 아침이었다.
* * *
“그래서 네가 빵을 구웠다고?”
평소 기상 시간인 8시에 귀신같이 일어나 나온 최제호가 물었다.
나는 한 김 식은 토스트를 접시에 덜며 대답했다.
“응. 애들 거 굽는 김에 더 구웠는데, 먹을래?”
“어.”
검정고시 합격자라 등교할 필요가 없는 박주우는 이미 야무지게 배급받은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청현이 ‘주우 형 부럽다…….’라고 중얼거리면서 나가더라.
“고등학생이라. 좋을 때네.”
“넌 뭐 한 10년 전에 졸업한 것처럼 얘기한다?”
어떻게 알았냐, 너.
나는 내 의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귀와 관련된 비밀이 누설되었다는 처분이 나올까 싶어 최제호의 말을 못 들은 척 넘겨 버렸다.
그렇게 눈치만 살살 보며 토스트를 씹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박주우가 대화에 참여했다.
“……형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뭐 할 생각이었어요?”
“어?”
“연습생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길래…….”
대학 갈 생각이었지.
갔어야 하는데 못 가게 된 그 대학 말이다.
박주우 녀석, 스파크 때도 숨겨진 눈치 왕 소리 좀 듣더니 허를 찌르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덕분에 빵 먹다 말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스템 덕분에 내 입장만 곤란해졌다. 예전엔 갔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생엔 못 가게 되었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는 최제호와 박주우는 멀뚱히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사람에게 거짓말을 시킬 거라면 사용 가능한 모범 답안도 함께 주든가.
말을 지어내는 재주도, 거짓말하는 재주도 없는 나 같은 놈에게 이런 상황은 가혹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에둘러 대답하는 쪽을 택했다.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국엔 안 갔어.”
“……왜요?”
“등록금 못 내서.”
하필이면 등록일 이후에 회귀당할 건 또 뭔가.
향할 곳 없는 분노를 담아 열심히 토스트를 씹어 먹고 있는데 마주 앉은 녀석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물어보면 안 될 걸 물어봤다는 얼굴이었다.
“너희 표정이 왜 그…….”
아.
설마 집에 돈이 없어서 등록금 못 낸 거라고 이해했나?
나는 이 오해를 정정해 주어야 할지 3초 정도 고민하다 관뒀다.
애초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 자체가 누나에게 빌린 것이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설령 내가 등록일 전에 회귀해 UA를 박차고 나가 대학에 가진 돈을 다 넣어 등록했다 쳐도, 당시 머물던 본가가 사라진 이상 길바닥에서 노숙하며 학교에 다녀야 했을 터였다.
몸 하나만 달랑 들고 과거로 돌아온 시점에서 내 학위는 슈뢰딩거의 졸업장이 된 셈이었다.
나는 내 곁을 떠나 버린 졸업장과 한평산업에서 개같이 버티며 모았던 전 재산을 떠올렸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시원했냐…….
물론 이 우여곡절을 비밀까지 유지해 가며 녀석들에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그럴 의무도 없고.
‘이참에 헝그리 정신으로 중무장했다고 해 보지, 뭐.’
씁쓸히 다짐하고 있는데 최제호가 생전 안 보던 눈치를 다 보며 말했다.
“그…… 힘내라.”
최제호의 응원이라니.
다른 놈도 아니고 ‘저’ 최제호가 카메라도 없는데 타인을 응원하다니.
최제호 골수팬인 남 부장의 따님도 못 봤을 것 같은 희귀한 광경이었다. 세상이란 건 정말 살고 볼 일이었다.
+
[SYSTEM] ‘숨겨진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용: 동료와 사적인 대화 나누기
▷ 보상: 경험치(10)
▷ 누적 경험치: 10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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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아니었다. 화목한 연습생 생활을 장려하고 싶은 건지 숨겨진 업무도 저절로 달성이 되었다.
역량 쌓기에도 바쁜데 친목까지 도모해야 하다니.
아무리 조직에서 소통이 중요하다지만, 경험치는 제자리걸음인데 할 일만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 * *
고등학생들은 오후가 되자 차례로 돌아왔다.
복귀 장소는 물론 연습실이었다.
나는 손을 씻고 돌아온 이청현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안전 귀가했어? 얼굴은 무사하고?”
“당연하죠. 상처 하나 없이 복귀했습니다!”
“자세가 되었구나. 훌륭해.”
“형, 너무 얼굴의 안전에만 집착하는 거 아니에요?”
이청현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본인의 얼굴로 찍어야 할 광고가 몇 개나 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게 투자 비용을 들이고 있는 UA에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데뷔하기 전에 멤버들 얼굴에 보험을 하나씩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 다니면 연습은 언제 해?”
“성빈이 형이랑 기연이는 최저 일수 맞추면서 다녀요. 예고는 스케줄 편의를 어느 정도 봐주거든요.”
“그럼 너는?”
“저희 학교는 짤 없죠. 대신 저는 학교가 가깝고, 기연이넨 학교가 멀어서 통학 시간 같은 거 고려하면 거기서 거기예요.”
과연 강기연이 옆에서 대단히 아쉬운 표정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잘 시간은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그러자 강기연이 대꾸했다.
“형은 매일 밤까지 연습하잖아요.”
“난 성장기가 거의 끝나서 괜찮아.”
“저도 뭐…… 군대 가서도 크는 사람들 있다잖아요.”
그건 그 사람들 얘기고 너는 안 큰다.
강기연의 키는 데뷔한 후로 변하지 않았다. 이건 무려 강기연이 본인 입으로 직접 밝힌 사실이었다.
‘저 성장기 왔었냐고요? 스파클러…… 우리 키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강견 너무 진심으로 씁쓸해하는 거 아냐? 진짜 웃겨.’
‘고2 아니면 고3 때 이후로는 계속 똑같았어요…….’
‘기연쓰 우는 거 아니지?’
다시 말해 강기연은 지금이 마지막 스퍼트를 낼 때란 뜻이었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골든 타임도 놓치고 밤이나 낮이나 깨어 있다간 좋은 꼴을 보기 어렵게 되고 만다.
멤버들 다 클 때 혼자서 뭐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키가 안 크는 게 오히려 당연할 정도였다. 빵이랑 샐러드만 먹는 식단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단백질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모를 노릇이다.
‘가능하면 애들이 잘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보고…… 안 되면 아침에 우유라도 같이 먹이는 수밖에 없겠어.’
원래 아이돌 데뷔시킬 때 이렇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걸까.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보단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날 밤, 나는 강기연과 초봄의 밤바람을 맞으며 저지방 우유까지 두 팩 사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돌 말고 매니저로 진로 변경 신청이나 해 볼걸.’
후회스러운 밤이었다.
그리고 이 후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활짝 만개하게 된다.
* * *
한동안 내 일정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요즘 내 하루는…….
7:00 일어나서 고등학생들 빵 구워 주기 (+강기연 저지방 우유 챙겨 주기)
8:00 아침 먹고 연습 갈 준비
9:00~24:00 연습 및 기타 등등
00:00~00:30 씻으면서 그날의 뚝딱거림 반성하기
00:30~ 미래에 대한 고민, 스파크 부흥 계획 수립 등등
……으로 매우 단조로웠다. 가끔 프렌치토스트도 해 줬는데 잘 먹더라.
다음 월말 평가를 준비하는 것도 순조로웠다.
보컬 숙련도가 오르면서 노래를 부를 때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를 감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내가 찾아낸 문제점과 멤버들이 그간 받았을 트레이닝 루트를 역으로 추론한 내용을 합치면 다음 평가까지 듣게 될 피드백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앞으로 내가 받게 될 피드백이 개선되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노래만 고르면 됐는데, 이 부분도 깔끔하게 해결이 됐다.
스파크의 인간 노래방 책인 정성빈이 조건 한 번 듣고는 하루 만에 스무 곡을 바로 뽑아다 주었기 때문이다.
빵 몇 번 구워 준 걸로 엄청 미안해하길래 운이나 떼어 본 건데.
‘저번보다 곡 수가 줄었네?’
‘일일이 다 듣는 것도 고생이잖아요. 저번 리스트 보고 생각한 형 취향이랑, 월평 때 형이 불렀던 노래 고려해서 제 선에서 좀 더 쳐 내 봤는데…… 후보가 많을수록 좋으세요?’
‘아니. 넌 천재야.’
그렇게 되어서 평가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이제 춤만 폭주 기관차에서 증기 기관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될 것 같았다.
참고로 춤은 탈선만 안 하는 게 목표다.
“너 진짜 춤에는 소질이 없다.”
“원래 입사하고 한 달 지났을 때가 제일 무능한 법이지.”
“그건 또 무슨 비유야?”
탈선만 피하겠다고 다짐하기 무섭게 최제호가 내 팔꿈치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각도가 안 맞은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제호에게서 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거울 보면 각이 안 맞는 게 보이잖아. 아직 몸에 안 익었어?”
그 정도로 병렬 연산이 되는 몸이었으면 이 고생도 안 했을걸.
엄격하지만 적어도 최제호보다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가르쳐 주던 강기연이 그리웠다.
“커버 댄스 한 곡은 할 수 있어야 면담 가서도 할 말이 있을 거 아냐.”
“면담?”
“우리 회사 월초에 개인 면담해. 대표님이랑 매니저님이랑 관리 팀이랑.”
친구야. 그런 게 있으면 얘기를 빨리 좀 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대표 면담이라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권력자와의 면담만큼 생산성 없는 일이 또 있을까.
때마침 시스템도 나와 최제호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며 새 업무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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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내용: 첫 대표 면담 진행하기
▷ 보상: 경험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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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랑 대화 중에 초점을 돌렸다간 헛것을 본다고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나는 빠르게 요점만 읽고 다시 최제호를 보며 물었다.
“가면 주로 무슨 얘길 해?”
“별 얘기 안 하긴 해. 연습생 할 만한지랑 요새 잘하고 있는지 그런 거.”
X나 중요한 거잖아.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면 회사 생활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모르냐?
‘하긴 얘가 그런 걸 신경 쓸 애는 아니지.’
나는 마지막으로 남 부장과 했던 면담을 떠올렸다.
내가 위에다 김 대리 칭찬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과 그것 때문에 아주 눈치가 보여서 죽겠다는 말.
마지막으로 우리 애가 부탁한 현수막인지 그것 좀 빨리 끝내 달라는 말까지, 남 부장의 1인 토크쇼 같았던 그때의 면담을 말이다.
나는 부디 UA의 대표가 내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있기를.
더불어 슬하에 아이돌 팬인 자식이 있다 해도 그걸 직장에 끌고 오는 몰상식한 부류의 인간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최제호의 말이 복선이라도 되었던 것인지, 며칠 뒤 연습생들에게는 개별로 면담 시간이 공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