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7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71화(171/193)
| 171화. 사무실 리모델링
‘인 마이 오피스’의 첫 촬영일이 밝았다.
안내받은 소집 시간은 9시였지만 출근길 교통 체증에 갇히고 싶지도 않았고, 현장 분위기나 미리 봐 놓고 싶어 일찍 나왔더니 두 시간이나 일찍 와 버렸다.
“이월아, 시간 많이 남았는데 차에서 대기하고 있을래?”
“아니에요.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얼른 가서 배워야죠. 바로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해서 현장 주위를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드라마 촬영 같은 건 처음 봤다. 뮤비 촬영과는 다른 분위기인 점이 꽤 흥미로웠다.
‘세트장 잘 만들었네.’
기존 회사의 빈 사무실을 대여해 소품만 채웠다던데 소품들에 사용감이 있었다. 소품 팀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겠다 싶었다.
벽에 붙어 힐끔힐끔 현장을 구경하는데 연출가님의 표정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했다.
손에 들린 종이와 파티션을 번갈아 지적하시는 모습이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아니, 설치 팀 놈들은 이걸 이렇게 해 놓고 그냥 철수한 거야?!”
연출가님의 고함이 현장을 때렸다. 모두의 시선이 연출가님을 향했다.
“배치도를 보긴 한 거냐고. 아, 이 새X들 골 때리네.”
연출가님께서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셨다. 아무도 섣불리 연출가님께 무슨 일이냐고 여쭙지 못했다.
연출가님 옆에서 배치도로 추정되는 종이를 보던 조연출님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설치 팀 지금 출발하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바로 온다고 해도 출근길이라……. 도착은 제때 할 수 있어도 작업은 정시에 못 끝날 것 같습니다.”
“9시에 배우들 다 오는데 말이 돼? 아니, 하루 이틀 일해 본 애들도 아니고 왜 이런 실수를 하지?”
급기야 철수한 설치 팀을 다시 부른다는 논의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막 연출가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스태프님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내 질문에 스태프님은 주위를 휙 둘러보고는 귓속말을 하셨다.
“저희 남주 자리 있잖아요. 그게 위치가 완전히 잘못 놓였대요.”
“자리가요?”
“팀장석이 가야 할 자리가 따로 있는데 설치 팀에서 이 회사 옆 사무실 자리 배치랑 똑같이 해 놓은 모양이에요. 배치도를 안 본 거죠.”
한 공간에서 카메라가 수십 번 오가야 하는 현장에선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도 그렇지, 그냥 자리를 원래 예정된 곳으로 옮기면 되는 문제 아닌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자리를 옮길까요?”
마침 저쪽에서도 테이블 배치를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여기 있는 장정만 한둘이 아니니, 테이블 몇 개 옮기고 소품 정리하는 정도는 2시간이면 엄청 빡세긴 해도 해낼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출가님의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자리만 옮기면 다야? 랜선은! 저거 지금 다 몰딩 쳐 놨는데 다 뜯고 촬영 들어갈래? 아니면 주인공 컴퓨터에만 매번 인터넷 연결 안 되는 거 보여 줄 셈이야? 시청자들 그거 다 확대해 보는 거 몰라?”
요지는 바닥에 시공해 둔 인터넷 선을 건드릴 수 없다는 거였다. 보통은 그렇지. 가구 업체랑 다르게 랜선은 따로 시공사를 부르니까.
하지만 컴퓨터도 몇 대 없고, 기껏해야 포트에 랜선만 연결하는 수준이면…….
“안녕하세요, 연출가님. 끼어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월 씨?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막내가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혹시 지 팀장님 자리만 옮기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내 말에 연출가님이 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예, 그렇긴 한데…… 그게 지금 쉽지가 않아요. 일단 회의를 해 보고…….”
“저,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조심히 작업할 테니 한번 정리를 해 봐도 될까요?”
연출가님의 눈에 못 미덥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만도 하지. 시간은 없고, 앞에서 나서고 있는 나는 남들이 보기엔 스물한 살인 애송이니까.
“열정은 고마운데 이게 이것저것 얽혀 있어서요. 카메라나 배우 발에 선이 걸리면 안 돼서 미리 선 처리를 다 해 놓은 거거든요. 그래서 이걸 뜯으면 좀 곤란해져.”
“네, 유념해서 정리하겠습니다.”
“뭐라고요?”
1화에서 내가 소화해야 할 대사는 딱 두 줄이었다.
이 두 줄을 위해 새벽부터 숍에 들렀다. 촬영이 끝난 후에는 팬미팅 아이디어도 짜러 가야 한다. 시간을 쥐어짜서 써도 모자라단 뜻이다.
그런데 고작 이런 일로 설치 팀이 오고, 테이블 배치를 바꾸느라 촬영이 딜레이되는 건 참기 힘들었다.
나는 차에서 도영환 오디션 이후 줄곧 메고 다녔던 백팩을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케이블 타이를 한 움큼 꺼냈다.
드럼통에 숯불 붙일 때 이후로 챙겨 다녔던 목장갑까지 야무지게 끼고 나서 나는 열심히 바닥의 몰드를 뜯었다. 딱 필요한 구역만.
실제 사무실에서 쓸 거라면 ip가 꼬여선 안 되니 선 번호를 맞춰야 했을 거다.
하지만 촬영장 정도의 소규모면 말이 다르지.
PC 몇 대로 충돌이 나지도 않을 거고, 다들 진짜 업무를 볼 게 아니니 연결만 되어도 될 거다.
이러면 테이블 배치 전체를 바꿀 필요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선만 바꿔치기해도 충분하다.
케이블 타이 몇 개를 입에 물고 열심히 선을 묶는 동안 옛 생각이 났다.
피복이 벗겨진 전선에 절연 테이프를 손수 사 와서 감고,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몰딩 작업에 동원되던 나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돌았다고 그 짓을 다 했지, 싶다.
기존 선 정리가 깔끔했던 덕에 업무용 데스크는 두세 개 정도만 옮기는 것으로 해결됐다. 나는 다시 책상 밑에 기어들어 가 튀어나온 선들을 묶어 정리하고, 뜯어냈던 몰드를 다시 테이프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발로 몰드를 팍팍 차며 몰드가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지 점검했다.
“연출가님, 이렇게 마무리하면 될까요? 자리 확인해 주시면 소품 옮기겠습니다!”
내 말에 멍하니 계시던 연출가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어려운 문제 아니라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바뀐 자리 위로 소품을 옮겼다. 그러다 1차로는 스태프분에게서 ‘이월 씨, 일 그만하고 가서 대기하고 계세요!’ 소리를 들었고, 2차로는 매니저님께 ‘이월아, 너 누가 부를 때까진 앉아 있어!’ 소리를 들어야 했다.
* * *
“그래서? 가서 또 일을 하고 왔다고?”
이청현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안 그러면 촬영이 늦어지게 생겼는데 어떡해.”
“연기 쪽이 시간 많이 잡아먹는다더니, 진짜 그렇네.”
“내 말이.”
이번만큼은 이청현의 말에 동의한다. 어쨌든 하루 종일 현장에 있었던 것치고 내가 기여한 거라곤 ‘대리님, 부탁하신 자료입니다.’와 ‘일단, 당분간 정시에 집 가기 틀렸다는 건 알 것 같습니다.’ 두 줄뿐이니까.
참고로 하서명 씨, 대본 리딩 때 하셨던 애드리브를 현장에서도 그대로 하셨다.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뻔했다.
“형 그, 직장인 역할이랬나? 증권맨?”
“응. 왜? 안 어울려?”
“아니, 어울려서 이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다이어리를 꺼내는데 뒤에서 이청현이 말했다.
“그런데 진짜 이상하긴 해.”
“뭐가?”
“형 말이야. 왜 이렇게 회사원 같은 모습이 안 어색할까?”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정작 이청현은 태연자약했다.
“형이 프로다운 능숙한 모습을 연기하고 싶어 하는 성격도 아닌데 말이야. 그냥 원래 직장인이었던 것 같단 말이지.”
“나 스무 살 때부터 너희랑 연습생 생활했던 거 잊었어?”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었지만 이청현은 이상한 데서 진지했다.
“회사원에 대한 선망 같은 건가? 아니면 장래 희망이었다거나?”
“그럴 리가.”
고등학생 땐 장래 희망이었지만 선망은 조금도 없다. 회사고 뭐고 4대 보험의 혜택에서조차 벗어나서 1인 가구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고 보면 형은 우리에 대해 아는 것치고 자기 얘길 진짜 안 해.”
뜨끔했다. 이놈들 입장에선 내가 자기들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느낄만한 포인트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나한테 궁금한 건 있고?”
“많지.”
“그런데 물어보진 않네?”
다이어리에서 북마크를 해 둔 페이지를 펼쳤다. 이쯤에 팬미팅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메모해 뒀었는데…….
“형이 대답 안 해 줄 것 같아서.”
……손이 멈췄다.
최제호의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하던 이청현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거봐. 선뜻 물어보라고 못 하겠지?”
이청현은 그런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았고.
“그런데 형, 일하다 힘든 거 있고 그러면 그런 건 얘기해.”
“……갑자기?”
“우리야 어차피 형이 다 터치하잖아.”
이청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형 일은 멤버들한테 얘기하고 그러라고. 그래야 균형이 맞지.”
그 말을 끝으로 이청현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멋쩍어 보이기도, 부끄러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감정을 모른 척, 다이어리와 볼펜을 들고 방을 나와 버렸다.
* * *
과거, 나는 딱 한 번 스파크의 팬미팅에 간 적이 있다.
당시엔 UA가 지나칠 정도로 신원 확인에 집착을 했었고, 내가 개인 정보는 귀중하다는 이유로 남 부장 따님의 계정을 이용한 대리 티켓팅만은 하지 않은 결과…… 그렇게 됐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주목은 처음 받아 봤다. 소외감을 느낄 내가 걱정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온정의 무료 스티커 나눔도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정작 스파크의 팬미팅 자체는 어땠냐고?
말해 뭐 해. X노잼이었다.
최제호는 허공 보고 있지, 박주우는 시선을 땅바닥에 처박고 있지, 강기연은 헛소리하지, 이청현만 혼자 고삐 풀린 듯이 달려 나가지.
내가 정성빈이었으면 팬미팅 끝나고 다 대기실로 불러서 아이돌이 그렇게 하기 싫으면 짐 싸고 나가라고 했을 거다. 성빈아, 너만은 절대 이 팀을 떠나지 마라.
‘지금은 그나마 다들 뭐라도 하려고 한다만…….’
어떻게 하면 스파클러분들께 최고의 팬미팅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한 대대적인 회의가 바로 오늘, 지긋지긋한 지하 연습실에서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