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7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72화(172/193)
| 172화. 간담회 (1)
대외적인 회의명은 ‘제1회 스파크 팬미팅 기획 회의’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회의명은 자꾸만 ‘개노잼 팬미팅 대탈출 대책 위원 회의’로 변질되었다.
팬도 아이돌도 할 말이 없어 보이는 그딴 팬미팅을 또 볼 생각은 없다. 확실하게 준비해 주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파크 놈들이 팬미팅 준비에 매우 열의를 보였단 점이었다.
팬미팅도 전담 팀에 넘기자고 말하는 놈이 한둘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들 팬미팅은 꼭 자기들이 준비해 보고 싶다며 나섰다. 의외였다.
그게 지금 우리가 연습실 바닥에 이면지와 노트북을 마구잡이로 펼쳐 놓고 모여 앉은 이유였다.
정성빈이 역대 아이돌 그룹의 팬미팅 콘텐츠 목록을 훑으며 말했다.
“일단 팬분들의 Q&A는 필수로 넣어야겠죠?”
역시 뭘 좀 아는 녀석이다. 설문지와 Q&A, 포스트잇 질문은 빠질 수 없는 소통 창구니까.
“코스프레도 많이들 하시나 봐.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아, 저도 그거 보고 있었는데.”
박주우의 말에 강기연이 맞장구를 쳤다.
“분장 좋네. 이벤트성 있어서 다들 좋아하실 것 같아.”
이청현도 관심을 보였다. 단어 선택을 보아하니 이놈은 아무래도 코스프레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얼굴에 화장만 하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닐걸.”
내가 덧붙이자 이청현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박주우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네받은 이청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게 뭐야? 막 캐릭터랑 똑같이 꾸미는 거야?”
“그렇대. 네 상상 이상이지?”
“대박이다! 나 이거 꼭 하고 싶어!”
이런 걸 보고 예전에 SNS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뭐라더라. 고도로 발달한 머글은 오타쿠와 구분할 수 없다……?
“노래도 부를 거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With List』를 어쿠스틱으로 편곡하면 딱 분위기 좋을 것 같아. 가을이고, 어때?”
그러더니 이청현이 왜 우리 팀엔 어쿠스틱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없냐며 개탄했다.
“이 감성엔 어쿠스틱 기타가 딱인데!”
“그거 칠 줄 아는 놈이 있었으면 우리가 아이돌이 아니라 밴드돌이었겠지.”
최제호가 구시렁거렸다. 그 순간 정성빈이 머쓱하게 나섰다.
“음……. 코드가 복잡하지만 않으면 칠 수 있을 거야.”
이걸 칠 줄 아는 놈이 있네. 밴드돌을 향한 박주우의 열망에 토치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슬쩍 옆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눈깔이 돌아 있다.
“그럼 나 이거 한다? 알았지? 통과한 거야!”
“그래, 그래.”
정성빈이 웃으며 들뜬 이청현을 진정시켰다.
“아왕실 화제작인 기연이 랜덤 플레이 댄스도 한 번 더 해야지.”
내 말에 강기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건 팩트인걸. 랜덤 플레이 댄스 한번 찢은 후로 강기연의 인지도는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지금까지 올라온 강기연의 다른 무대들 직캠까지 함께 떴을 정도니 이 콘텐츠를 안 살릴 순 없지.
“맏형들도 뭐 하나씩 해야지?”
이청현이 건들거리는 말투로 볼펜을 흔들며 말했다.
“미안한데 최제호랑 날 함께 묶지 말아 줘. 우린 동갑인 걸로 이번 생의 연을 다했다고 봐.”
“누군 지 좋은 줄 아네.”
최제호가 지지 않고 투덜거렸다. 마음씨 좋은 정성빈만 애써 우리 둘의 사이를 포장하려고 노력했다.
“에이, 두 분 다 왜 그러세요. 평소에 잘 지내시면서.”
“그건 확신할 수 없어. 저 형들 방에서 한 마디도 안 하거든.”
이청현의 가차 없는 고발로 인해 다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최제호와는 엮이고 싶지 않다.
일단 내 쪽의 스텟이 너무 딸린다. 너그러운 팬분들께서 ‘그림체 다른 맏형들’로 애써 포장해 주시는 건 알고 있지만 비주얼의 강렬한 정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실력도 그랬다. 똑같이 움직여도 최제호는 춤선이라는 게 있다는데 나는 매번 ‘우리 이월이는 늘 각이 살아 있지!’ 소리밖에 못 들었다.
열심히 연습해서 멤버들 발끝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 중인데 최제호 옆에만 서면 한 마리의 민달팽이가 되고 마는 현실이라니, 슬퍼서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쪽이 본심에 가까운데…….
기억 데이터를 되찾은 뒤로 다시금 녀석이 껄끄러워졌다.
막 회귀를 했을 때 최제호에게 느꼈던 분노가 떠올랐다는 뜻이다.
사실 최제호에겐 죄가 없지. 죄가 있다면 녀석이 하도 눈에 띄어서 남 부장의 따님 눈에도 띈 죄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내 부정적인 감정은 시스템이 잘 막아 주고 있는 상태다. 그게 아니었다면 최제호가 껄끄러운 정도에서 내 감정이 그치지 않았을 거다.
같이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니, 가급적 당분간은 최제호와 협동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밸런스 게임 같은 거 해요. 이월이 형 메인 댄서 만들기 vs 주우 형 단독 예능 돌리기.”
“우리 기연이, 밸런스 게임 만드는 데 재능이 있네.”
나는 강기연의 아이디어에 극찬의 박수를 보냈다. 박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 *
“얘들아, 너희 팬클럽 키트 실물 샘플 나왔다!”
“정말요?”
주경 님의 호출에 우리는 하던 연습을 내던지고 회의실로 올라갔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남색 박스가 놓여 있었다.
짙은 남색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상자에는 화려한 불꽃들이 프린팅되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둥그런 불꽃들이 축제를 연상케 했다.
스파크의 공식 표기법인 ‘spArk’의 ‘A’자 주위에 관람차처럼 작은 불꽃들을 찍어 놓은 것도 잘 어울렸다.
귀여운 내용물도 많았다.
팬분들께선 스티커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니 꼭 소장용과 사용용 두 장을 넣어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했던 멤버별 사인+자필 메시지 스티커나 『Flowering』 때의 조별 활동 보고서, 『With List』 시절의 인생 여섯 컷 등이 가지런히 들어가 있었다. 조활 보고서의 이름 칸엔 맨 끝을 비워 팬분의 성함이나 닉네임을 적을 수 있게 했다.
‘사진…… 픽셀 안 깨졌고, 엽서에 얼룩도 없고…….’
다른 놈들은 키트 구경하느라 바쁜데 나만 하자 찾기 바빴다. 이게 다 택배 대리 개봉하면서 영상까지 찍는 습관이 든 탓이다.
“와, 다이어리 진짜…… 실용적이게 생겼다.”
신나게 다이어리를 펼쳐 본 이청현의 목소리가 급 차분해졌다.
“그러게. 나도 이걸로 갈아탈까 봐.”
급기야 강기연은 주경 님께 자기도 팬클럽 가입하면 다이어리를 받을 수 있냐고 질문했다.
물론 음지사랑 콜라보해서 예쁘면서 실용적인 면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만들었지만! 내가 쓸 다이어리라는 생각으로 내지 한 장 한 장 열심히 골랐지만!
너희들이 그걸 쓰면 대놓고 팬클럽 가입을 유도하는 잇속 뻔한 아이돌이 되잖아!
그 외에도 이것저것 들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열과 성을 다해 찍은 12종 포토 카드 세트가 마음에 들었다. 여섯 명 전원이 각각 아이돌 버전과 일상 버전으로 나눠 찍은 카드였다.
일상 버전 카드 만드느라 그간 쌓아 온 내 외장하드를 다 털어야 했었지.
그중에서도 비눗방울 사이에서 싱그럽게 웃는 강기연을 단연 원픽으로 꼽겠다.
얼굴에 분수대가 주는 시원함과 태양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공존했다니까? 비눗방울에서도 사람 얼굴에서도 무지갯빛이 났다고.
내가 UA 말고 어디 다른 곳에 제출했으면 분명 강기연 사진이 올해의 사진상을 받았을 거다. 고맙게 생각해라, UA.
“이제 진짜 팬클럽이 생기는 거네요.”
정성빈의 목소리가 떨렸다. 보지 않아도 녀석이 감격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다들 바쁘겠지만 팬미팅까지 조금만 더 힘내자. 파이팅!”
“파이팅!”
모두가 기세 좋게 외쳤다.
심장이 떨렸다. 사인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었다.
* * *
원채희. 27세. 한때 화려한 홈마 경력을 가졌었으나 최애의 클럽 VIP 등극으로 다시는 돌판을 밟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돌아섰던 케이팝 고인물.
그런 그가 봉인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낸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물리 법칙을 압도하는 미남의 출현. 격동하며 새 시대를 알리는 비주얼의 등장에 원채희는 과거의 자신이 죽었음을, 그리고 새로운 자신이 태어났음을 느꼈다.
‘일단 찍먹만 하는 거야. 요즘은 신인 때부터 인성 XX난 놈들도 있으니까.’
원채희는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면서 막 열린 팬클럽 모집 글에 신청 폼을 작성하고, 키트를 기다렸고, 키트가 도착한 날 반년간 잘 쓰고 있던 다이어리를 단숨에 갈아치웠으며 다이어리 표지를 멤버들의 자필 스티커로 도배했다.
꽂히면 돈부터 쓰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회사 말 많았다더니 지금은 나름 일하나 보네.’
그래도 스파클러 1기 키트는 전체적으로 훌륭했다. 지른 걸 후회하지 않는단 뜻이었다.
원채희네 자취방 쓰레기통을 스쳐 지나간 X같은 굿즈가 얼마나 많았던가. 보자마자 한숨만 나와서 다 처분하고 카메라 렌즈를 바꾼 게 그나마 잘한 일이었다.
팬미팅 공지가 떴을 땐 한때 즐겨찾기를 해 두고 밥 먹듯 들락거렸던 커뮤니티에서 스파크에 관한 글을 심해까지 찾아가 뒤졌다.
이놈들이 스케줄 당일에 펑크를 낸 전적은 없는지, 성의 뒤진 리액션을 자주 하는지……. 시간과 돈을 쓰면서 감정까지 쓰는 일에 지쳐 버린 돌덕들은 아마도 대부분 원채희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원채희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래서 원채희는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 티켓팅을 시도했다. 홈마로서 내 아이돌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던 실력이 건재했다.
그리고 포도알이 증발한 순간.
≫ @minamhunter
팬미팅 성공한 사람 있냐?
탕
있냐?
원채희의 타임라인에 네임드 스파클러의 글이 떴다.
≫ @minamhunter
어쩐지 아왕실 방청이 너무 쉽게 된다 했다
그때 내 평생 운을 다 쓴 거지
≫ @minamhunter
얘들아 원래 팬미팅 같은 의미 있는 행사는 고척돔에서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무슨무슨 법에 걸려
내가 UA에 불 지를 거거든
└ 무슨무슨 법에 걸리는 게 님이냐고요
≫ @minamhunter
내 주변에 성공한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케 된 거임??
우리 애들 벌써 슈스 됨????
가시는 분들 불꽃 같은 의리로 넉넉한 후기 남겨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제발 진짜 제발
경쟁이 치열했는지 SNS가 핫했다.
‘가서…… 괜찮은 사진이나 몇 장 건져 봐야겠네.’
좁고 각박한 돌덕 생활, 서로서로 안 도우면 어떻게 사나. 네임드의 울부짖음을 보며 원채희는 박애 정신을 발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