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7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73화(173/193)
| 173화. 간담회 (2)
마지막으로 팬미팅에 간 게 언제였더라. 원채희가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뒤지게 오래됐다는 것 외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내 돈 내고 간 팬미팅에서 원채희는 수모를 많이도 겪었더랬다. 아이돌의 멘트보다 시큐와 스태프의 경고를 더 많이 들었으니 할 말 다 했지.
반면 UA가 내건 팬미팅 공지는 좀…… 신선한 구석이 있었다.
≫ [OFFICIAL] 스파크의 첫 팬미팅 ‘IGNITION’ 참여 관련 사전 안내
.
.
.
촬영 가능 여부
─ 본 팬미팅에서는 팬미팅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촬영이 가능합니다. 예쁘게 찍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사 촬영 등으로 인해 타 팬분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예외적으로 안내 요원이 촬영 자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
.
.
촬금이 없었던 것이다. 없는 수준이 아니라 촬영을 적극 장려하고 있었다.
이런 패기로운 팬미팅은 처음이다. 원채희의 카메라가 백 안에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게다가 장소도 시야 좋기로 유명한 팬미팅 명소였다. 회사가 도대체 얼마나 처맞았길래 이렇게 매사에 성의가 넘치나 싶었다.
팬미팅이 시작되기 전까지 원채희는 하릴없이 탐라에 올라오는 스파크 떡밥들을 구경했다.
‘아왕실 결승이 마지막 활동이었으니까 오늘도 한복 입고 나오려나? 아니면 교복?’
솔직히 말해서 삼선 추리닝만 입고 나오는 거 아니면 뭐든 괜찮게 봐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 놈을 실제로 봤다는 건 원채희 인생에 몇 안 되는 수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스파크는 ‘모든 활동에’ 진심이라고.
입구에 인영이 일렁이면서 소란스러워졌던 장내가 곧 행복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제일 먼저 등장한 건 리더 정성빈이었다.
갈색 머리 위에는 월계관의 형태를 본뜬 구릿빛의 화관이 얹혀 있었고, 손가락과 팔목에는 금속 체인으로 된 장신구가 반짝였다.
흰 튜닉에 얇고 녹색 빛이 도는 숄까지 걸친 모습에서 묘한 고전미가 느껴졌다. 흡사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상케 하는 의상이었다.
X벌, 엘프가 따로 없네. 원채희가 감탄하기 무섭게 뒤에서 다른 놈이 나왔다.
푸른빛이 물결치듯 주름을 타고 흐르는 실크 셔츠와 양 볼에 과하지 않게 옅은 하늘색 글리터를 얹은 박주우였다.
원채희가 줌을 당기자 글리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끝이 뾰족한 타원형 모양 서너 개가 박주우의 두 뺨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박주우는 인어 왕자 같은 건가. 속으로 유추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X.’
올백으로 앞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최제호가 버건디 셔츠에 블랙 셋업을 갖춰 입고 등장했다.
셔츠 깃에는 브로치를 단 건지 체인이 달려 있었다. 금색 장식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진한 화장을 많이 하지 않는 스파크답지 않게 눈과 립에도 기합이 빡 들어가 있었다. 원채희의 자리에서도 얼굴이 4K로 보이는 듯했다.
뒤이어 나온 강기연은 최제호보다는 이전 시대의 복식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잔머리 하나 없이 포마드로 넘긴 모습이 강기연 특유의 날카로움을 더욱 부각했다.
머플러와 화려한 베스트, 핏이 좋은 코트가 완벽한 삼박자를 자아냈다.
‘저기다 장갑까지 끼운 새X 누구냐 진짜, 변태 아니야?’
강기연의 손을 감싼 티 없는 흰색 장갑은 원채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들렸다. 재밌는 점은 그 누구도 연사를 갈기진 않았다는 거다. 한 땀 한 땀 최선을 다해 찍는 소리들이 합쳐져 연사와 같은 볼륨을 냈을 뿐.
그때였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듯 무대 입구가 환하게 빛났다.
이청현의 등장이었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아카데미 교수가 입을 법한 중후한 의상 위에 놓인 화려한 자수가 돋보였다.
예로부터 자주색은 부를 상징했다더니, 얼굴만 봐도 백만장자가 확실해 보였다.
색감을 맞춘 학사모도 잘 어울렸다. 어찌 보면 수석 졸업생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원채희는 병당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이름 모를 와인을 떠올렸다.
저 비주얼은 눈으로 안 보면 손해인데. 앵글 안을 보는 한순간조차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진 한 번 찍고 고개 들고, 다시 사진 찍으러 거북목으로 돌아가느라 원채희는 아주 바빴다.
남은 멤버는 한 명이었다. 원채희가 대포 각도를 조절하는 동안 주위에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슬로건을 꺼내는 듯했다.
‘개인 팬 이벤트가 이렇게 당당해도 되나?’
당황스러웠다. 멤버 하나를 위해 팬들이 슬로건 이벤트를 준비할 만큼 멤차가 심하면 판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는 법인데.
원채희의 우려와 무관하게 마지막 멤버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요란했던 멤버들의 패션과는 사뭇 다르게 촌스러운 스타일로.
체크무늬 남방, 멜빵 바지, 반무테안경, 빈티지 운동화가 강렬하게 어떠한 패션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었다.
어쩐지 취미가 비트코인 채굴일 것 같고, 특기가 큐브 빨리 맞추기일 것 같은 스타일 말이다.
‘아니, 코디가 얘만 싫어해? 그래서 팬들이 이렇게 보듬어 주는 거야?’
그나마 머리에 펌이 들어가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그리고 자세는 꼿꼿한 주제에 쭈뼛쭈뼛 들어오는 것도 웃겼지만 어쩐지 애잔했다.
측은지심이 들려던 찰나 객석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월아!”
“이제 다 나은 거 맞지?!”
그제야 원채희의 눈에 팬들이 든 슬로건이 들어왔다. ‘이월이 복귀 축하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맞다. 얘 부상 이후로 오프 행사는 이게 처음이랬지.’
그래서 팬미팅 경쟁률이 더 치열했던 건데 잊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객석을 보던 김이월이 부끄러운 듯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객석에서 ‘고개 숙이지 마! 머리에 무리 갈라!’ 소리가 나왔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대단한 프로 정신이었다.
* * *
정성빈을 필두로 멤버들은 첫 팬미팅에 와 준 팬들에 대한 감사와 팬클럽 결성의 소회 등을 이야기했다. 원채희는 멘트가 궁금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사진만 찍었다.
앵글 속의 스파크는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었다.
통일감은 내다 버렸지만 한 명 한 명이 극강의 미모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스파크는…… 미의식이 강한 그룹이었구나……. 원채희의 손이 주인의 명령 없이도 알아서 셔터를 눌렀다.
“저희가 오늘은 좀 특별한 콘텐츠를 준비했잖아요.”
“그렇죠.”
정성빈과 강기연이 멘트를 주고받았다. 이미 옷만으로도 준비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뭐가 더 있었나 보다. 삼선 추리닝 돌을 파다 와서 그런지 원채희의 기대치는 바닥이었다.
“저희 옷이 워낙 통일성이 없어서 다들 당황하셨을 텐데, 사실은 컨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거 정하느라 우리 머리 다 주우 형처럼 될 뻔했잖아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 박주우에게 향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뻔했단 얘기였나 보다.
컨셉이 있다는 말이 무슨 소리였는지는 이어지는 특별 무대에서 알 수 있었다. 무대를 준비한 멤버끼리 조금씩 공통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던 덕이다.
첫 무대는 정성빈과 박주우가 열었다.
정성빈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춰 박주우가 클래식하게 편곡된 『With List』를 불렀다.
왜 이렇게 엘프와 인어 왕자 같이 꾸몄나 했더니, 자연을 사랑하는 목가적인 음악 소년과 세이렌이 모티브였던 듯했다.
박주우의 음색은 독특하기로 스파클러 밖에서도 유명했다. 이 목소리는 평범한 팬미팅 현장 안에서도 빛을 발했다.
‘실제로 듣는 건 완전 다르네.’
음원으로 들을 때도 좋다고 생각했건만, 그때의 판단이 우스울 정도로 대단한 목소리였다. 이 유닛이 딱 한 곡만 준비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음으로는 슈트 컨셉의 댄스 라인이 나왔다. 저 옷을 입고 뭘 추나 했더니…….
둘이서 왈츠를 췄다. 원채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왈츠가 저렇게 추는 게 맞는지는 모른다. 본인은 그런 쪽에 특별히 관심 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보기에 멋있는 건 확실했다. 각이 살아 있었고, 움직일 때 부드러웠으며 음악과의 일체감이 있었다.
요즘 아이돌은 왈츠도 춰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꼰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원채희는 조금 스며들었다. 어깨의 뻐근함이 점점 잊혔다.
이쯤 되면 마지막 조는 뭘 할지 궁금해졌다. 왈츠로 뜨거워진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저 학자와 대학원생 같은 차림으로 퀴즈 배틀이라도 했다간 순식간에 노잼이 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원채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이월과 이청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나섰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둘이 저희 팀 공식 브레인이잖아요.”
엘프에서 사회자로 복귀한 정성빈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래서 둘이 두뇌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 보기로 했는데요.”
망했다. 퀴즈 배틀 확정이다.
이제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머나먼 외국 수도 맞히기 따위나 하며 시간을 보낼…….
“일명 ‘나만 아는 상대방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릴레이 폭로입니다!”
……응?
그런 거 해도 돼? 상호 합의된 거야?
당혹스러운 원채희를 두고 주변은 뜨겁게 환호했다. 어쩐지 다들 폭로와 TMI 대방출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룰은 간단합니다. 서로 저희가 모르는 이야기를 폭로해 주면 되고, 멤버 중 한 명이라도 아는 얘기가 나오거나 한 명이 지나친 수치심을 느끼면 그대로 게임이 종료됩니다!”
쉽게 말해 너희들끼리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 좀 털어 보란 뜻이었다. 관계성이 중요한 아이돌 판에서는 흥미로울 소재였다.
“……양쪽 선수, 준비되셨나요?”
박주우가 이청현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이청현이 거뜬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형부터 할래? 아니면 나부터 할까?”
심지어 도발까지 했다. 김이월의 한쪽 눈썹이 까딱거렸다.
“덤벼.”
김이월이 선공을 허하자 이청현이 무대 위를 활보했다.
빌어먹을 일이었다. 저 얼굴을 맨눈으로도 보고 카메라에도 담아야 했으니 말이다.
“형.”
“…….”
“숫자에 콤마 안 붙으면 아닌 척해도 짜증 나지?”
이청현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김이월도 지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는 미소도 잃지 않는 품격이 돋보였다.
“알면 숫자 서식 좀 바꿔 주지 그래? 내가 알려 줬잖아.”
“형이 그걸 꼬박꼬박 바꾸는 게 너무 웃겨서 그만…….”
“미안한데 난 그게 없으면 만 원 이상은 읽을 수가 없어.”
하찮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원채희는 지금 이 순간, 운영 스태프가 팝콘을 좀 팔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프로필
이름: 정성빈
생일: 3월 30일
출생: 서울특별시
신장: 179cm
MBTI: ESFJ
별명: 정신적 지주, 조장, 대장님, 선생님, 스파크의 유일한 양심
좋아하는 것: 보컬 레슨, 뉴스 보기, 야경 관람
싫어하는 것: 자신의 부족한 부분, 정성준의 돌발 행동, 지나치게 단 음식
좌우명: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최애 음식: 감자탕
선호하는 향: 코튼
즐겨 듣는 음악 장르: 발라드
좋아하는 스포츠: e-스포츠
자신 있는 신체 부위: 발목
나만의 습관: 피곤하면 잠꼬대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