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8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80화(180/193)
– 사내 주제가 (3)
“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월 씨, 잘 지냈어? 그래도 안색이 많이 좋아졌네?”
“칭찬 감사합니다!”
기획 팀 팀장님과의 화기애애한 인사가 오갔다.
“청현 씨는 참관이라고?”
“네. 아이데이션 목적으로 온 거라,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처럼 부탁드립니다.”
나와 이청현이 참여한 건 스파크 전담 팀이 아닌, 기존 UA 기획 팀의 모 프로모션 회의였다.
사전에 언질을 넣어 놓은 터라 이야기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이청현이 안심한 표정으로 회의실 구석 자리에 앉았다.
30분 후.
“아니, 그런 식으로는 회의를 하는 의미가 없다니까 그러네.”
“같은 얘길 언제까지 할 거예요? 이쯤이면 결론이 나야죠!”
“저희 오늘은 무조건 결과 나와야 해요. 다들 아시죠?”
“알죠, 아는데……. 휴.”
짜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의 풍경이 연출됐다.
이청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당연하다. 녀석은 언제나 내가 할 말을 다 정해 와서 하는 회의만 봤으니까.
이걸로 뭐 영감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 감도 안 잡힐 거다. 가사를 ‘매일 회의해도 안 나는 결론, 더 이상 안 돼 이걸론’ 이따위로 쓸 수도 없을 테니까.
나는 메모 패드 귀퉁이에 짧게 몇 자를 적어 내려갔다.
소리에 집중해.
이청현의 눈이 커졌다.
한숨 소리, 높아지는 언성, 한쪽이 발언하면 조용해지는 분위기, 다 함께 고조되었다가 순식간에 식는 흐름. 볼펜을 딸각이는 소리.
소리를 구현할 건지 분위기를 구현할 건지는 이청현이 택할 일이지만, 현장음을 실제로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제일 확실하지 않겠는가.
보통 이럴 때면 소리에 집중하려고 눈을 감던데, 이청현은 눈을 더욱 부릅떴다.
그리고 회의실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듯 집중했다.
젖은 종이컵을 책상에 소리 나게 내려놓는 움직임 같은 것들도 모두.
지지부진한 회의가 1시간을 넘길 때쯤 이청현이 내 메모 패드를 툭툭 건드렸다. 나가자는 신호였다.
우리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
“더 안 봐도 되겠어?”
“응, 충분해.”
이청현이 비열하게 웃었다.
“감정적인 장면 나올 때마다 안 쓸 수가 없는 OST를 만들어 주지.”
각오가 남달랐다. 진작에 이런 날것 같은 회의 좀 보여 줄 걸 그랬나 보다.
***
“그래서 OST가 그렇게 빨리 넘어간 거구나. 청현 씨랬나? 진짜 천잰가 봐.”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하서명 씨가 깔깔거리며 웃으셨다. 안 그렇게 생겨서 멤버 사랑이 지독하다나.
“완성본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 안 그래도 ‘내.가.장’ 봤는데 성빈 씨 노래 엄청 잘하더라고.”
“저희 메인 보컬들이 진짜 노래를 잘해요. 저만 따라가느라 고생 중이고요.”
“그래? 그럼 다음엔 이월 씨도 나오는 걸 한번 봐야겠네.”
“선배님의 귀한 시간을 좀 더 아름다운 곳에 쓰는 건 어떠실까요? 성빈이가 또 커버 곡을 기가 막히게 부른 게 있거든요.”
정성빈 다음에 김이월이라니 그런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 촬영부터 괜히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는 하서명 씨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필사적으로 스파크 놈들의 최고 아웃풋 노래들을 영업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딴따라 출신끼리 죽이 잘 맞네.”
남자 주인공인 지성인 역 배우, 구자한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
하서명 씨가 실소했다.
구자한이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비아냥대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나야 구자한의 말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딴따라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내가 자존심 상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오히려 구자한 본인의 저열한 사고방식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꼴이지.
하지만 하서명 씨는 나날이 구자한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가는 게 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딴따라 출신’ 하서명 씨보다 ‘성골 배우’ 구자한이 더 연기를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연기도 못해서 맞춰 줘야 하는 놈이 자길 상대로 비꼬기까지 한다? 그걸 저놈이 주인공 중 하나라는 이유로 봐줘야 하고? 하서명 씨 입장에선 돌아 버릴 일일 것이다.
이래서 하늘에 억지로 두 개의 태양을 두면 안 된다니까. 한쪽이 불완전한 인공 태양이니까 진짜 태양이 두 배로 에너지를 생성해야 하잖아. 불합리함의 극치였다.
‘심지어 연기에서만 밀리는 것도 아니니…….’
하서명 씨는 본인이 맡은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다. 나를 붙잡고 매일 몇 번씩 애드리브를 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대본에서 뽑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뽑겠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 씨앗은 많이 심어 놓겠다는 게 하서명 씨의 의지였다.
구자한은 정반대였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뽑고 싶어 했다. 모든 대기업이 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기업과 구자한에겐 차이가 있었다. 대기업엔 오랜 시간 축적한 기술력이 있고 구자한에겐 없다는 것.
대사만 외워 온 대본은 동선이 조금만 꼬이면 구자한의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조연들 이름을 틀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결정적으로 구자한은 연기가 별로였다. 정확히는 ‘본인의 연기 경력 대비’ 연기가 뛰어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꼬리표 떼고 싶어서 죽어라 연습한 사람, 적당히 열심히 한 사람. 둘 중 누가 더 잘하겠나.
또 다른 아이돌 출신인 나 또한 다른 연기는 몰라도 ‘적당히 좋은 사람인 척하는 연기’와 ‘직장인 연기’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개꼰대 부장 연기’에도 자신이 있지만 이건 도영환과 관련이 없으니 제외하겠다.
어쨌든, 그런 외부인들이 조연으로 나오는 것도 모자라 주연까지 꿰찼으니 심기가 불편할 수 있지. 그래도 그 옹졸한 마음을 이렇게 티 내면 쓰나.
“제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선배님.”
“이월 씨 선배는 서명 씨죠. 제가 아니라.”
구자한이 끝까지 내 말을 비꼬고는 자리를 떴다.
하서명 씨가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저 인간이랑 로맨스 신 찍을 거 생각하니까 다 때려치우고 싶어지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말로도 하서명 씨를 위로할 수 없었다.
***
금주의 회의 시간.
스파크는 여느 때처럼 평범하고 화목하게 서로를 칭찬하고, 숙소 12계명―어쩌다 보니 그간 두 배로 늘었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그중 ‘대화 많이 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나도 주제를 하나 들고 온 참이었다.
“너희들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한테?”
“웬일로요?”
이청현과 강기연이 건방진 반응을 보였다.
응, 아는 친구가 없어서 네놈들한테 물어보려고.
“나는 이직……이라고 해야 하나, 진로를 바꾸는 건 가산점은 아니지만 특별히 마이너스 요인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어떤 경우를 보면 전향하는 과정에서 반발에 부딪히는 일도 많은 것 같아. 너희는 어땠나 싶어서.”
이청현을 제외하고도 주 전공이 바뀐 놈은 많았다. 최제호는 스트리트 댄스에서 아이돌 댄스로, 박주우는 록 발라드에서 아이돌 보컬로 바뀌었으니까.
“무시하는 놈들이 있긴 했는데 별로 신경 써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하는 말이 다 거기서 거기라.”
“보통 뭐라고 하는데?”
최제호가 옮긴 발언은 아주 추잡하고 더러웠다. 내가 천수관음이 아닌 탓에 멤버들의 귀를 전부 막을 수 없는 게 한스러웠다.
이청현이 양 팔뚝을 쓸어내렸다.
“디스 랩보다 저 판 신경전이 더 무서운 것 같아.”
“디스 랩도 만만치 않지 않아……?”
“디스 랩엔 리스펙이 들어가 있을 때도 많은걸? 그런데 저건 그냥 폭언이잖아!”
대형견 입마개를 차고 선배 그룹을 디스하던 네가 할 말은 아니구나. 조만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좀 갖길 바란다.
“노래는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많으면 칭찬받으니까.”
박주우가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말에 반대 의견을 들고 나온 건 정성빈이었다.
“일반 가수가 뮤지컬이나 성악으로 넘어갈 때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다고 봐. 연기의 문제도 있다지만, 창법이 달라지는 영역에서는 거부 반응이 있다고 생각해.”
“음…… 그 부분엔 동의.”
박주우가 깔끔하게 정성빈의 발언을 인정했다. 여기서 강기연이 난입했다.
“창법의 문제라기엔 애매한 지점이 있지 않나요? 메탈 하시던 분이 발라드 부른다고 질타받진 않잖아요.”
“그러면 판소리 전공인 사람이 아이돌 연습생이 되는 건? 오페라 가수가 트로트로 전향하는 건?”
“잠깐만, 얘기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마!”
이청현의 ‘만약에’ 모음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강기연이 머리를 싸매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제일 다이내믹하게 바뀐 건 역시 이청현이겠지.’
녀석 쪽을 보기 무섭게 이청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집은 무조건 정장 입는 일 하라고 했었어. 연구원, 판검사, 교수. 정 음악을 할 거라면 피아노나 지휘.”
“오케스트라 세션도 포함 대상이 안 됐어?”
“응. 이름이 따로 적히는 거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연주랑 지휘가 얼마나 다른 줄도 모르고, 재밌으신 분들이야.”
하나도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이청현은 조소했다.
“그런데도 용케 연예인 한다고 했다?”
최제호가 거침없이 직구를 던졌다. 최제호와 이청현을 제외한 우리 네 명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야 사정은 예전에 대충 들었고, 강기연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을 테지만…….
정성빈과 박주우는 그야말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정작 이청현은 덤덤했다.
“엄청 싸웠지. 싸웠다기보단 그냥 일방적으로 혼났어. 호적에서 파네 마네 하고, 그때 또 하필 난 마음 여릴 때라 방에서 막 울고.”
“진짜……?”
동생이 측은해 보였는지, 박주우의 눈썹이 팔자가 됐다.
“그런데 뭐, 내가 공부 안 하겠다는데 별수 있어? 그래서 처음엔 피아노라도 허락해 주시더라. 나도 한번 대들어 보니까 방법을 알게 돼서 그때부터 드리프트했지.”
“굉장하네.”
“대신 일정 성적은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야. 성적 떨어지면 진짜 호적 판댔어. 그런 고로 이월이 형, 제 이번 중간고사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은 시험 날짜부터 알려 주고 하는 게 어떨까, 청현아?”
나는 온화하게 웃었다.
이청현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동안 정성빈이 나를 불렀다.
“이월이 형.”
“응, 왜?”
“‘인 마이 오피스’ 촬영, 많이 힘드세요?”
뭐야.
나 말고 네가 사실 조상신 모시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