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8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86화(186/193)
186화. 직장인의 애환 (2)
배우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구자한도 그랬다. 연기에 뜻을 둔 뒤로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연기 학원을 다녔고, 시작이 늦어 연영과는 가지 못했지만 소속사에 들어간 후로는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주연까지 왔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너무나도 쉽다.
‘뭔 아이돌 출신이 둘이나 있대요?’
‘에이, 자한 씨! 서명 씨 연기 잘해요!’
‘다른 하나는 완전 생초짜잖아요. 둘이 소속사 같은 거 아니에요? 끼워팔기 같은데.’
마음 같아선 출연 결정을 무를지도 고민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찾아온 주연의 기회를 고작 이런 일로 내칠 수는 없지 않겠나.
다행히 그들은 현장에서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김이월이라는 신인 아이돌이 지나치게 자주 보이는 것 빼고는 별일 없었다. 어린애들은 어디서든 튀고 싶어 하니까,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주연인 하서명이 김이월을 대놓고 밀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단은 자신과 하서명이 약간의 말다툼을 한 데 있었다.
‘자한 씨, 이 부분의 대화 말인데요…….’
‘각자 알아서 하죠. 대사만 주고받는 건데.’
‘네?’
비전문가와 맞춰 봐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구자한은 손해 볼 생각도, 시간 낭비를 할 생각도 없었다.
구자한이 어울려 주지 않자 하서명은 차선책을 찾았다.
‘이월 씨, 이 부분 대화 조금 더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
‘애드리브 말씀이실까요? 다음 전개를 고려하면…….’
자기들끼리 잘 논다 싶었다. 현장이 장난도 아니고. 우스울 따름이다.
촬영장에서 무슨 짓을 하든, 한 편에 담을 수 있는 시퀀스가 정해진 이상 편집할 때 다 잘릴 테니까.
그래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정확히는 끌 셈이었다.
‘영한 씨, 아니…….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하지만 실패했다. 현장 분위기가 어지러우니 짧은 대사 하나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기강이 제대로 서질 않으니 돌아가는 꼴이 개판이었다.
‘영환입니다, 선배님.’
김이월이 작게 말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가르치려 드는 듯한 태도가 아니꼬워서, 구자한은 못 들은 척 매니저가 대본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그런 구자한의 복잡한 속내도 모르고. 어딜 가나 있는, 남 뒷얘기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자한을 두고 멋대로 떠들어 댔다.
‘구자한 콧대 더럽게 높네, 진짜…….’
‘캐스팅 보드 1순위에 있던 배우들한테 다 까이고 차례 넘어가서 된 거 본인은 모른대요?’
‘왜 모르겠어. 알면서도 그 XX인 거지. 그 인간도 키 빨이지, 아니었음 남주 롤로는 어림도 없었어. 데뷔한 지 한참 됐는데 이제야 주연 맡은 거 보면 몰라?’
구자한은 스태프들의 날 선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별 대단치도 않은 인간들이.’
스태프 몇 명 따위 더 뽑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배우가 빠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드는 손해액이 얼마인데. 이쪽은 몸값부터 다른 사람 아닌가.
당사자가 전부 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스태프들은 신나서 대화를 이어 갔다.
‘아이돌 걔들도 그래. 가만히 있는 분량만 찍으면 어련히 금방 끝날 걸, 계속 촬영 끌기나 하고.’
‘NG 계속 내는 10년 차 구자한이 더 별로예요, 하서명네가 더 별로예요?’
‘X발, 다 거기서 거기야.’
저런 사람들은 어디서든, 누구든 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변하지도 않는다.
한심한 인생들. 구자한은 그들을 불러 세워 면박을 주기보다는 그저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촬영에 들어간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와…… 구자한은 어떻게 한 달 내내 그 대사량을 찍는데도 연기가 안 느냐.’
‘슬로우 스타터라잖아요. 언제 스타트할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XX, 종방연 때 스타트하게 생겼네.’
구자한은 또 한 번 자신의 뒷얘기가 오가는 상황에 직면했다.
구자한이 예상한 것처럼 그들은 그대로였다. 남 헐뜯기 좋아하고, 입이 가벼운.
그럼에도 변한 것은 있었다.
‘김이월 걔는 연기 계속하려나?’
‘하지 않을까요? 튀는 거 없이 곧잘 하잖아요. 열심히 하고.’
‘걔는 뻗대는 구석이 없더라.’
‘소문이긴 한데 원체 그냥 깍듯하대요. 성실하고.’
‘이 바닥에서 소문 믿을 게 얼마나 된다고.’
‘적어도 여기선 믿을 만하죠. 누구처럼 대사도 안 씹고.’
‘하긴, NG 낸 적 없는 건 대단해. 애가 대가리 굴릴 줄을 아니까 조연출도 욕 한번 안 하잖아.’
저런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건 아니다. 칭찬도 마땅히 할 법한 급의 사람에게 들어야 기분 좋은 법이니까.
하지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같은 한 달 동안 자신도, 김이월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그 녀석에 대한 평가만 후해지는 건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김이월이 본격적으로 거슬리기 시작한 게.
* * *
구자한은 김이월의 바닥을 보고 싶었다.
진솔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가식적이기 짝이 없는 가면 밑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게 네 진심이잖아. 나는 다 알고 있어.’라 말해 줄 심산이었다.
아이돌이어서 그런지 김이월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뭘 시켜도 웃는 낯이었다.
고작 20대 초입인 주제에. 자기네 팬들에게 칭찬만 받고 험한 말 한번 안 듣고 자라 봐서 저러지.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를 보는 듯해 우스웠다.
구자한이 빈정거렸다.
“조만간 감독님 앞에서 배도 까뒤집겠어. 우리 집 강아지가 딱 그러거든. 이월 씨도 혹시 알아? 대사 몇 줄 더 떨어질지.”
순간 김이월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가라앉았다.
정말로 잠깐, 찰나의 시간 동안.
‘지금…….’
구자한이 이상을 인지하려던 것과 거의 동시에, 김이월이 멋쩍게 웃었다.
비꼬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는, 티 없는 웃음이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이월이 젖은 바짓단을 손으로 탁탁 털었다. 그러더니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어째서였을까. 김이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몰래 욕하던 스태프들을 두고 ‘별 대단치도 않은 인간이’라 생각하던 모습을.
사람을 개무시해? 제까짓 게?
엄연한 모욕이었다. 구자한에겐 선배로서 김이월의 태도를 지적할 권리가 있었다.
구자한은 황급히 김이월의 뒤를 쫓았다.
김이월을 따라 코너를 돌려던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벽 뒤로 몸을 숨겨야 했지만 말이다.
“감독님, 식사 잘하셨습니까?”
“어.”
조명이었나 음향이었나, 하여튼 어느 파트의 감독과 김이월이 대면한 모양이었다.
“야, 이월아.”
“네, 감독님.”
감독이 김이월을 재차 불렀다.
그래, 김이월이 비단 메인 PD나 조연출한테만 이미지 공작을 쳤겠어?
누구든 김이월을 붙들고 칭찬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구는 꼬락서니가, 아주 가관인…….
“너 톤 다운인지 뭔지, 그것 좀 빡세게 해 달라고 해라. 내가 너 하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야겠냐?”
“피부 톤 말씀이실까요? 지금 정도로 충분하다고 전달받긴 했는데, 혹시 더 어두워야 할까요?”
“충분은 개뿔. 적당히 사람 새끼 같아야 그림이 이쁘지. 뭔 시체도 아니고. 병원이나 가 봐.”
“네.”
“아, 나도 너희 PD처럼 언론에 찌르는 거 아니지? 나 너 미워서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
일순간, 구자한의 머리가 잠시 멈췄다.
이 촬영장에서 김이월에게 엄격한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김이월에게 이상하리만치 너그러우니, 자신이라도 한마디 해서 이 바닥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조만간 감독님 앞에서 배도 까뒤집겠어.’
‘시체도 아니고. 병원이나 가 봐.’
내가 하는 말과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다를 게 뭐지?
그리고…….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이크업은 담당자분께 말씀 전하겠습니다.”
“중요한 걸 잃어버리신 게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김이월은 어째서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이는 거지?
구자한의 발걸음이 코너로 향했다.
구석을 끼고 돌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감독과, 허리를 숙여 인사했는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있는 김이월이 보였다.
감독이 자신을 등지고 있었음에도 김이월의 얼굴에는 분노 같은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 하서명이 연기했던 선구안의 대사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데. 뭐였더라.
그러니까, 분명…….
‘X발. 쪽팔리게.’
구자한은 곧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 차에 있지? ‘인 마이 오피스’ 지난 회차 대본 거기 있어?”
다행히 대본은 모두 차에 있었다. 뒷좌석에 구겨 넣는 바람에 꼴이 엉망이었지만, 구자한이 찾던 부분은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구안: (버럭) 팀장님 같은 분은 저희 같은 평직원 마음 모르시겠죠. 상급자가 한숨 쉬는 거, 못 들은 게 아니고 못 들은 척하는 거고요. 왕창 깨져도 괜찮아 보이는 거, 요즘 젊은이들이 책임감 없어서 타격이 없는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는 거예요! (답답하다는 듯 소리친다.) 일하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없으니까, 그게 사회생활이니까!
지성인의 무미건조한 대사 밑으로, 선구안이 다시 외쳤다.
구안: 바보라서 참고 있는 거 아니고요, 용기가 없어서 말 안 하는 게 아니에요. 더럽고 치사해도 버티는 거예요. 그걸 우습게 볼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어요. (씁쓸하게 웃으며) 참고로 지금 저도요, 되게 큰맘 먹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짜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땐 내야 하니까.
이 대사에서 지성인은 선구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
‘연기는 가장 기계적인 방법으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숭고한 기술이야.’
대선배의 말을 잊지 못해서 연기 판으로 뛰어 들어온 구자한에겐 지성인이라는 오만한 팀장 역할이.
당차고 적극적이며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 하서명에겐 선구안이라는 역할이.
김이월에겐 대기업 유망 팀의 사회생활 잘하는 과묵한 막내 역할이 주어졌다면.
자신이 지성인을 맡게 된 건 주연 배우감이어서인 건가, 그저 오만하기에 지성인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좋은 수단이어서인 건가.
역으로 김이월의 사회생활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걸까, 단지 본인의 사회성인 걸까.
아니면 그가 인간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익혀 온, 가장 모나지 않은 인간다운 모습인 걸까…….
김이월의 젖은 바짓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깊은 눈동자도.
부끄러웠다.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