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8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87화(18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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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단기 프로젝트 종료
“팀장님! 아니, 본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그래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선 팀장.”
주연 두 사람이 악수했다. 주변 인물들 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시원한 컷 소리가 들렸다. 주식 그래프처럼 요란한 사랑 곡선을 그리던 ‘인 마이 오피스’의 마지막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다. 얘도 쟤도 승진하고, 결혼도 하고, 마이자산운용은 업계 1위로 올라섰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완성도였다. 편집이 얼마나 뒷받침해 줄지는 다른 문제지만.
그렇게 마지막 신까지 촬영을 마친 오늘, ‘인 마이 오피스’ 제작진은 전원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이만한 인파가 한 번에 앉으려니 자리를 잡는 것만도 쉽지 않았다.
겨우 장내가 정리되자 총감독님께서 잔을 드셨다.
“자자, 잔 없는 사람 있어? 빨리 자기 잔 챙겨!”
테이블이 분주해졌다. 웬만해선 막내일 내가 소주잔을 기가 막히게 채우고 있는데 익숙한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옆자리에 구자한이 앉아 있었다.
잔 채워 드리고 오겠다며 요령껏 일어나려는데 멀리서 감독님의 건배사가 들렸다.
“건배사 선창하겠습니다. 우리 주식!”
“따상하자!”
주식 상한가를 기원하는 짧은 건배사가 끝나자 챙챙거리며 사방에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째 한평산업 건배사랑 비슷한데. ‘우리 회사 부도나라!’였지. 참고로 내가 만들었다.
자리 옮기기는 틀린 듯해, 나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 테이블 사람들과 건배했다.
“이월 씨, 첫 작인데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다들 잘 챙겨 주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지 팀장 산하의 팀원 선배들이 내 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아무래도 날 너무들 사랑하시는 것 같다. 넘쳐흐르네, 아주.
‘그래도 주연은 구자한인데, 나 먼저 챙기는 건 그림이 좀 그렇지 않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냅다 소주를 들이켰다.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그러게.”
조심스레 잔을 내려놓으려는데 구자한이 말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병 입구를 들이밀었다.
“이월 씨, 고생 많았어.”
격려를?
구자한이? 나한테?
이 인간이 사람들 눈치 볼 양반이 아닌데?
얼마 전까진 시비를 못 걸어 죽일 것처럼 굴더니 요즘은 웬일로 트러블을 안 만든다 싶긴 했다. 역시 자기도 지가 선 넘은 걸 눈치챘나.
“나한텐 술 받기 싫은가?”
“그럴 리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구자한이 내 잔을 채웠다. 잔의 4분의 3 되는 지점. 악의가 없는, 딱 주고받기 좋은 한 잔.
“저도 한 잔 드려도 될까요?”
“좋지.”
구자한이 남아 있던 소주를 비우고 잔을 내밀었다. 나는 똑같이 정량을 채워 보답했다.
술이 들어가자 사람들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나만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알바생처럼 능숙하게 고기를 구웠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다른 테이블에서 인사를 하러 온 하서명 씨였다.
“우리 팀원들 다 여기 있었네! 너무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서명 씨, 어디 있었어요? 우리 팀 다 있는데 서명 씨만 없어서 서운할 뻔했네.”
“저 우리 가족들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죠. 아무리 그래도 직장보단 어? 가족 아닙니까!”
“아, 그 테이블은 지 사위 안 데려가고 뭐 한대!”
“말도 마요. 그 양반 일이랑 바람나서 이혼 직전이니까.”
오프 더 레코드니까 할 수 있는 농담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구)지 사위, 예비 바람남 구자한만 조용히 고기를 집어 먹었다.
“우리 막내 이월 씨도 고생 많았어! 이제 자주 못 보고 서운해서 어째? 스파크 컴백까지 기다려야 하나?”
“어, 그럼 저희 빨리 컴백해야겠는데요.”
“음방 한 8주 뛰어. 드라마 버프 받아야지.”
하서명 씨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업계 선배.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구자한 씨도 한잔하실래요?”
하서명 씨가 한참 트러블이 많았던, 그러나 마지막 마무리 정도는 제대로 해낸 파트너에게 물었다.
“그러죠.”
메인 커플의 우정 아닌 화해 샷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구자한 저 양반, 철들었네. 괜히 흡족해지는 기분에 나도 소주를 털어 넣었다.
* * *
회식은 길었다. 정말 정말 길었다. 아이돌이 된 이후로 미성년자가 있는 그룹 스파크를 일찌감치 보내 주던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회식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이월 씨 오래 버티네?”
“저 살살 마셔서요. 괜찮으세요, 조감독님?”
“어어, 괜찮지.”
조감독님이 젓가락 하나로 면을 집으려 애쓰셨다. 이제 또 한 분 집에 보내게 생겼다.
머리로는 나도 집에 가고 싶었다.
술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중간에 돌아갔다가 남 부장에게 유턴해서 돌아오라는 말을 들은 후로 중도 귀가만 하려고 하면 발목이 잡힌 듯 움직이질 않는 게 문제였다.
안주가 맛있긴 했지만 근육 붙이는 중이라 막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 주는 술이나 적당한 페이스로 받아 마시면서 얼굴도장 찍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뉴리 씨와 연이 닿아서 정성빈이 ‘내.가.장’에 나갈 수 있었고, 폴로 씨가 나를 좋게 봐서 라디오에 출연시켜 준 데다 하서명 씨가 은 선생님의 부탁으로 나를 더 자주 챙겨 주셨던 걸 생각해 보면.
앞으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므로 얼굴도장이나 찍어 둬야겠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여기까진 좋다. 웬만해선 주량으로 나가리 될 일이 없고, 사람도 꽤 줄었으니까.
문제는…….
“이월 씨, 술 세네.”
“그런가요? 아직 술자리를 많이 못 겪어 봐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3차도 갈 거야?”
“선배님들 가시면 저도 가야죠!”
……구자한 이놈이 아까부터 괜히 따라붙고 있다는 거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사람 불편하게.
‘보아하니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은근슬쩍 계속 말을 붙이는데, 의도를 모르겠어서 거슬리기만 했다.
‘선배님도 3차 가실 거냐고 물어보면 내가 왜 네 선배냐고 난리 칠 거고, 안 물어보면 선배가 물어보는데 너는 듣고 씹냐고 욕할 것 같고…….’
진퇴양난이다. 그냥 취한 척 쓰러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구자한이 조용했다.
한참을 뜸 들이던 구자한이 입을 뗐다.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구자한이 식당을 나갔다.
인간이 갱생된 줄 알았더니 불러서 또 나를 꼽 주려고? 아니면 다시는 업계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협박하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남 부장과 유한수를 겪고 난 내게 두려움이란 없으니까.
나는 하서명 씨께 ‘자한 선배님께서 부르셔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언질을 넣어 두고 밖으로 나섰다.
담배를 피우던 구자한이 밖으로 나온 나를 보고 물었다.
“담배 피우냐?”
“아뇨.”
“생긴 건 골초 같은데.”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다. 담배 말고 시가 피울 것 같다는 얘기가 더 많긴 했는데, 무슨 차인지는 모르겠으니 그건 됐고.
비흡연자라는 얘길 들은 구자한이 장초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때 밴 한 대가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얼굴을 드러냈다.
“자한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별로. 차 문이나 열어 줘.”
구자한의 매니저님이신가 보다.
날 차에 태워서 어디다 내다 버리려고 하는 모양이지.
주짓수 수업을 최대한 빨리 끊었어야 했는데. 아니면 최제호 따라 액션 스쿨에라도…….
“이월 씨.”
주춤거리며 자세를 잡는 나와 달리 구자한은 먼저 차에 상체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내부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받아.”
각 잡힌 쇼핑백이었다.
‘원양어선 강제 탑승하기 싫으면 이 안을 현금으로 가득 채워 오라는…… 그런 건가?’
그렇다기엔 안에 뭐가 들어 있었다.
잔뜩 경계하며 열어 봤더니 비닐 포장된 옷이 상하의 한 벌씩 들어 있었다.
“이걸 왜…….”
“바지 버렸잖아.”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었다. 구자한이 별 말 같지도 않은 심부름을 시켜서 남은 음료로 바짓단을 다 적신 날 말이다.
나는 묵직한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웃옷도 있는데요?”
“직원이 어울리는 거라고 그렇게 줬어. 그냥 입어.”
그러니까, 지금 이거 사과하는 거야? 그날 잡심부름 시켜서 미안하다고?
“집 갈 때 주려고 했더니, 어린놈이 술만 잘 마셔 가지고.”
그래서 그렇게 나 3차 가는지 심문하듯 캐어물은 거였군.
안 그래도 회식 자리에 안 낄 타입이라곤 생각했는데, 어째 오래 있는다 싶었다.
비싸 보이는 재질이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내가 사과받는 입장인데 겸양까지 떨고 싶진 않았다.
“네, 잘 입겠습니다.”
“그래.”
구자한이 먼 산을 보며 대답했다. 멋쩍은 모양이었다.
구자한은 인사나 하고 오겠다며 매니저분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사이 나는 습관처럼 구자한이 비벼 끈 장초를 주웠다.
“뭐 해? 더럽게.”
“괜찮습니다, 습관이라서요.”
물론 버린 네놈이 줍는 게 제일 이상적이지. 그렇다고 화재의 가능성이 있는 걸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정작 꽁초 버리고 튀려던 구자한의 얼굴이 불에 덴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줘.”
“네?”
“주라고, 내가 가져가서 버릴 테니까!”
구자한이 내 손에서 꽁초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씩씩대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가, 인사를 대체 어떻게 한 건지 30초 만에 코트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인사도 없이 구자한은 그대로 차를 타고 떠났다.
나는 물끄러미 손에 들린 쇼핑백을 내려다보았다.
승진이 걸린 것도 아니고, 공론화를 당한 것도 아니고, 후환이 두려운 것도 아닌 사람에게서 사과를 받았다. 상대방이 개심해서,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로.
‘있긴 하네, 반성할 줄 아는 사람.’
놀랐다.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참 아름답고 행복했겠으나, 아쉽게도 나와 구자한 씨의 악연은 고깃집 앞에서 끝나지 않았다.
의류 브랜드에 빠삭한 정성빈의 얼굴이 내가 받아 온 옷값을 알아채고는 급체한 사람처럼 창백해졌기 때문이다.
“이거 비싼 브랜드야? 처음 들어 봤는데.”
“많이 비싸요. 재작년쯤 한국 들어온 브랜드인데, 여기 양말 한 켤레 가격이…….”
정성빈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구자한 씨에게 다이렉트로 콜을 넣었다.
그리고 ‘예 구자한 선생님 되십니까 제가 그날 입었던 바지는 평범한 바지였는데 금칠한 바지가 온 것 같아서요 저는 작은 계기로 큰 것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니 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적당히 연예인 형편에서 아쉽지 않을 수준으로 샀을 줄 알았지. 내가 사과받는 입장인데 ‘어휴 이렇게 좋은 옷을…….’이라며 굽신거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옷값이 내 상식을 넘어섰다. 이런 건 바로잡지 않으면 후에 필히 탈이 나고 만다.
─ 너 그럴 줄 알고 태그 다 뗐다. 그냥 입어.
“계좌 불러 주시면 제가…….”
─ 네 돈 내고 그 바지 사면? 입고 다니긴 하겠냐?
못 입지. 가끔 최제호 출근길에나 입혀서 내보내면 모를까.
─ 자라.
전화가 끊어졌다.
진한 술 냄새와 비싼 새 옷 세트를 남기고, ‘인 마이 오피스’는 그렇게 끝이 났다.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