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8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89화(189/193)
189화. 사무실 오픈: 2부 (2)
아이돌에게 긴 대기는 일상이다.
녹화가 늦어지는 일도 다반사고, 애초에 하염없이 기다리는 걸 전제로 소집되는 일도 많다.
그런 여유 시간 동안 스파크는 참으로 다양한 걸 해 왔다.
공부, 색칠 놀이, 운동, 타 가수 신곡 안무 따기, 누가 누가 대기실 더 잘 치웠나 대결하기…….
그러다 종래에는 여기까지 왔다.
『주우: 와인, 위스키, 보드카 무엇도 나의 갈증을 달래지 못해』
『주우: 목이 타, 영혼을 흘려줘 나의 입가에…….』
1. 박주우가 열과 성을 다해 유명한 록 밴드의 노래를 부른다.
『청현: 아 키가 모자라네. 제호 형! 내 침대 위에 있는 패드 좀 갖다주라!』
『제호: 패드 뭐?』
『청현: 회색이고 뒤에 피깍츄 스티커 붙어 있는 거!』
2. 이청현이 공기계나 패드로 피아노 앱을 켜서 반주를 친다.
『기연: (혼신의 힘을 다해 박자를 맞추는 중)』
3. 강기연이 손에 잡히는 걸로―저 날은 먼지떨이 손잡이였다―의자나 식탁 다리를 두드리며 박자를 깔아 준다.
그러면 이제 내가…….
『이월: 둥둥둥둥, 두둥, 둥.』
입으로 베이스를 쳐 주는 거다. 손으로 에어 베이스 쳐 주는 건 덤이고.
이 난리가 난 지 꽤 돼서 몰랐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돌아이가 따로 없었다.
이런 나를 조롱하듯 화려한 자막이 나타났다.
『☆ 기간 한정 밴드 라이브 개최 중 ☆』
“나 지금 너무 수치스러워.”
“형은 좀 그렇겠다.”
“너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래, 이청현이 수치스러울 게 뭐 있겠는가. 나처럼 입으로 악기를 연주한 것도 아니고 헤드뱅잉 좀 했을 뿐인데.
심지어 방송을 보며 안 사실인데 정성빈 이 자식, 옆에서 녹화를 하고 있었다.
『성빈(19세/멤버들을 사랑하는 리더)』
저게 어딜 봐서 멤버들을 사랑하는 리더야? 멤버들의 약점을 틀어쥐고 이용할 생각이 가득한 리더지.
『주우: ……한 곡 더 해도 돼?』
『청현: 물론이지, 우리 밴드는 널 위해 존재하는걸!』
이 상황에 이청현은 박주우를 데리고 콩트까지 하고 있었다.
『기연: 뭐 해, 빨리 곡 안 고르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구나. 정말 뭔가에 씌었구나.
『이월: 좋아, 가 보자!』
그리고 나도…….
* * *
광란의 밴드 라이브 이후로도 스파크는 파격적인 행보를 잔뜩 보여 주었다.
샤워하러 들어간 강기연이 습관처럼 하의만 챙겨 갔다가 당당하게 상체를 노출하고 나오는가 하면, 곰국을 마시려던 최제호의 안경알에 뿌옇게 김이 끼는 바람에 팀의 센터가 조금 우스워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기어코 내 포로로 수저 세트도 화면에 잡혔다. ‘Lovely……♡’라는 자막을 보며 나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저녁 식사 후엔 블랙 코미디가 폭발했다.
『청현: 저 대신 시험 좀 봐 주실 분?』
『이월: 내가 봐 줄까? 대신 대학은 못 가.』
『청현: 내가 잘못했어, 형.』
『이월: 아니, 부정 응시는 안 되니까 못 간다고 한 것뿐인데;;;』
『제호: 이거 왜 이렇게 뚝딱거리냐?』
『이월: 나? 나 뭐 안 했는데?』
『제호: 너 말고 멀티탭.』
『이월: 아아, 난 또.』
거의 내 스탠드업 코미디 쇼이긴 했는데, 하여튼. 도대체 저 날은 왜 저랬는지 모르겠다.
응원하던 아이돌의 지나치게 리얼한 모습을 본 탓일까? 팬덤은 울음바다였다.
≫ 일단 애들이 이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겠음
└ 얼굴은 섹시하고 뇌는 청순한 아이돌? 오히려 좋아
≫ 우리 이월이 수저가 귀엽네 설마 돈 주고 산 거야?
└ 진짜 개너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원래 애기들은 저런 수저 쓰는 거 맞아 암 그렇고말고
≫ 어쩌다 맏형만 저런 귀염뽀짝 수저 세트 쓰고 있는 건지 오천 자로 설명이 필요함
≫ 이청현 더블 피아노까지는 어찌저찌 참았는데 김이월 마우스 연주에서 터져 버림
너네끼리 있을 때 이러고 노냐고ㅠㅠㅠㅠㅠㅠ
└ 심지어 처음에는 우리 맏형 애기들 놀아준다고 고생 많다ㅠㅠㅠ 이랬는데 나중 가면 이월이 땀 닦으면서 개운해하고 있음…… 누가 누굴 놀아 주는 건지 모를 노릇임
≫ 나 인장 이걸로 바꿨어
(안경알 뿌옇게 변한 최제호 사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
└ 안경 제호 좋다 했더니 이렇게 안경의 A to Z를 보여 줄 줄은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 X발 김이월 기죽지 마
넌 최고의 뚝딱이야
└ 네가 제일 나빠
하얗게 불타 재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모든 것이 연소하고 잔해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지쳐 버렸다.
충격과 공포의 방송 종료 후, 몇 마디 담소를 나누던 와중 정성빈이 질문했다.
“형, 이제 곧 촬영 끝이죠? 저희 슬슬…….”
“응, 컴백 준비 때문에 그러지?”
제반 준비는 촬영 중간중간마다 확인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컴백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스파클러분들 기준 최고의 뚝딱이, 김이월이 오랜만에 춤을 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인 마이 오피스’의 ‘출연’이 숙련도 수령 기준이니까, 공개일이 늦어지지만 않으면 컴백 기간 중에라도 댄스 숙련도는 계속 올릴 수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요즘 드라마가 일괄 공개되는 시스템이라 다행이었지.’
여차하면 0.nn 프로씩 찔끔찔끔 올라가는 숙련도를 애타게 기다릴 뻔했다. 음, 사전 제작 최고.
“이번 안무는 어때? 많이 어려워?”
내가 묻자 강기연이 뜸을 들였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것 같은데요.”
“누가 그런 ‘달달하지만 혈당 신경 써야 하니까 설탕 많이 안 들어간 음료 사 와’ 같은 말 하래.”
정색한 나를 보며 강기연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니, 여태 저희가 안 해 본 컨셉이잖아요. 형한테 잘 맞을지 아닐지는 춰 보기 전엔 모르는 거죠.”
“너랑 최제호는 어땠는데?”
“저는 잘 모르겠고, 제호 형은 뭐…….”
강기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이 컨셉에서 최제호가 날아다니지 않으면 곤란하지.
‘절제’라는 단어가 앞에 붙긴 하지만, 무려 스파크의 첫 ‘으른 컨셉’이니까.
* * *
컨셉추얼한 장르는 언제나 복불복이다. 정도가 과하면 소수의 팬들은 열광시킬 수 있지만 대중에게 외면받고, 그게 두려워 물을 한가득 타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지금까지 스파크는 겨울밤의 청량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했다. 그리고 아왕실과 팬 미팅을 통해 팬덤의 수요를 모니터링해 왔다.
그 결과 나와 전담 팀이 내놓은 결론은 이랬다.
‘한 번쯤은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건전하고 마음이 뻥 뚫리는 고유의 감성은 유지한다. 하지만 스타일에서는 달라진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팬분들께서 섹시 컨셉을 원하시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응?’
‘기연이랑 청현이 아직 고2잖아요. 성빈이랑 주우도 미성년자고요. 어린 나이에 너무 과한 걸 시키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나온 컨셉이 ‘슈트 입은 어른 섹시’ 되시겠다.
스파크가 소년미를 내기 힘들어서 그렇지, 제 나이보다 몇 살 더 먹어 보이는 건 껌이다 이 말이야.
애들은 꼭꼭 싸매고 최제호만 어떻게 잘하면 밸런스가 맞을 거다. 믿는다, 운동맨.
냅다 정장만 입혀도 스파클러분들은 좋아해 주시겠지만 오랜만의 컴백인 만큼 컨셉에는 조금 공을 들이기로 했다.
비밀 요원으로 말이다. 건물 해킹해서 문 따고 와이어 타고 침입하는 그런 거.
전원 몸은 만들어져 있으니 전담 팀에서는 역할만 잘 분배해 주시면 될 일이었다.
컨셉을 듣자마자 이청현은 며칠 내내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했다. 가상 악기를 넣겠다며 샘플을 수백 개 듣고, 딱따구리처럼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베이스 라인을 짰다.
‘OST에 못 넣은 세션 여기에 다 넣을 거야.’
충혈된 눈으로 이청현은 중얼거렸었다. 발라드 만들다 한 맺힌 악귀가 들린 듯했다. 무서워서 건드리진 않았다.
이청현에게 1차로 완성된 곡을 넘겨받은 최제호와 강기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실에서 회의에 매진했다.
가끔은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던 것 같은데, 웬만하면 숙소로 올 땐 알아서들 풀고 들어오는 듯했다. 감동한 듯 은은한 미소를 짓는 정성빈을 보고 내 마음이 다 아팠다.
댄스 라인이 옥신각신하며 ‘섹시란 어디에서 오는가?’로 토론하는 동안 이청현은 A&R 팀과 뒤집어지게 회의를 하며 완성본을 찍어 냈다.
가이드는 박주우가 맡았는데, 요즘 할 일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적어 심심했던 이 녀석이 신나게 더블링에 백 보컬까지 가녹음을 해 버렸다. 그 바람에 멤버마다 파트가 더 늘었다.
파트 분배는 정성빈이 맡았다. 나는 ‘김이월 분량 삭제 사태’ 이후로 분배 담당에서 해고됐고, 이청현은 수록곡을 써야 한다며 정성빈에게 전권을 일임했기 때문이다. 비록 잘린 몸이지만 정성빈이 의견을 구할 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인 마이 오피스’를 찍을 때 진행되었다. 다들 컴백 몇 번 해 봤다고 진행 속도가 일사천리였다.
이제 남은 건 타이틀 곡의 최종_진짜 최종 편곡과 안무 연습, 노래 연습과 녹음, 뮤비 촬영, 앨범 사진 촬영, 수록곡 녹음…… 어휴, 많네.
“형 이제 다크서클 관리 시작해야겠는데.”
“내 다크서클 관리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어.”
이청현은 믿지 않았다. 대신 자기 몫을 덜어 내고 난 수분 크림 통을 내밀었다.
나는 얼굴에 치덕치덕 크림을 바르며 생각했다.
‘컨셉 포토로는 뭐가 올라가려나? 포카엔 얼빡샷이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다들 입에다 뭐 하나씩 물리면 제법 그림이…… 아, 이거 크림 좋네. 촉촉한데 유분기 없고.’
스파크 놈들 입에 뭘 물려야 모양새가 살지 생각하며 메마른 피부에 수분을 충전하던 찰나 매트리스가 덜컹거렸다.
이청현이 사람 하나를 덮칠 기세로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뭐야?!”
“생각해 보니까 진짜 이상해.”
“뭐가? 내가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특히나 네 얼굴은 갑자기 들이밀면 심장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고 했어, 안 했어?”
“그건 미안한데, 형 다크서클 말이야.”
이청현이 엄지로 내 다크서클을 꾹 눌렀다. 진지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였다.
“왜 옅어질 기미가 없지?”
“태생이 그렇다, 왜.”
“숍에서 발라 주시는 크림 얼마짜리인지 형도 알잖아. 그보다 정확히는 ‘호전될 기미가 거의 없어’.”
“뭐?”
“형 연습생 초기 때 생각해 봐. 그땐 잠도 거의 못 잤잖아. 그리고 입원했을 때. 그때는 컨디션이 나빴으니까 다크서클이 심해지는 게 당연하다 쳐. 그런데 전보다 많이 쉬는 지금은 일정 수준 이상으론 좋아지지 않는 느낌이야.”
“…….”
“비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컨디션이랑은 하등 상관없이 계속 톤이 유지되냐, 이거지.”
듣고 보니 이상했다. 아무리 나라고 매번 다크서클을 달고 산 건 아니었으니까.
운동을 자주 하고, 비교적 야근이 적을 땐 분명 다크서클이 없는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것도 시스템의 영향인가?’
스물아홉 살 때보다 옅어졌다는 것 외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부분인데. 별의별 일을 겪다 보니 이런 것까지 그냥 넘어가기가 찝찝해졌다.
누적 피로도 관련해서 설명이 많았던 것 같으니 조만간 설명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그래도 아이돌 하라고 사람을 몰아넣었으면 이런 건 좀 보정해 주지. 아이돌의 기본은 백옥 같은 피부인 거 모르나.
나한테서 유의미한 답을 얻지 못한 이청현은 다시 제 침대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위에서 고개만 내밀고 말을 걸었다.
“괜히 테스트해 본다고 회식 같은 거 다닐 때 술 많이 먹지 마. 그러다 다크서클 확인하기 전에 형 진짜 골로 가.”
“형편껏 할 테니까 미성년자는 술 얘기 입에도 담지 마세요.”
“네. 잘 자!”
이청현은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천장 너머로 사라졌다.
괜히 손이 눈가로 향했다. 그렇게 애꿎은 눈 밑만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었다.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