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화(2/193)
| 2화. 꼰대 시스템 (1)
나의 양친은 두 명의 자식 모두에게 대단히 무관심했다.
그들은 대체로 무책임했으며 때로는 폭력적이었다.
내 성장 환경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는 걸 초등학교에 가서야 알았을 정도’, 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보호자 운이 없었던 누나와 나는 방치와 방임 그리고 고압적인 태도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누나의 어린 시절이라고 내 과거와 별반 다를 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한참 어린 동생인 내가 눈에 밟혔는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원했다.
등록금을 구할 방도가 없어 대학 입학을 포기할까 고민했을 때도, 보증금을 모을 때까지만 집에서 버텨 보겠다며 아르바이트 공고를 뒤적거릴 때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누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 앞가림 하나 못하는 나를 집에서 빼냈다.
그리고 기어코 대학에까지 등록을 시켰다.
‘그냥 주는 돈 아니야. 나중에 다 받아 낼 거임.’
‘……최대한 빨리 갚을게.’
‘어어. 나도 말년엔 동생한테 효도 좀 받아 보자.’
‘1,500만 원으로 말년을 버티는 게 가능해?’
‘이자를 복리로 받을 거라 괜찮아.’
‘사회인은 역시 만만하지 않네.’
어쨌든 변제 기간 없는 1,500만 원을 손에 쥔 나는 집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책임지면 되었다.
한평산업에서 펼쳐진 나의 수발 일대기를 들은 대학 동기가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회사에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으면 일찌감치 퇴사하는 게 낫지 않아?’라고.
녀석의 맞은편에서 기계적으로 ‘형 라인 꽁냥꽁냥 모음.Zip’ 영상을 편집하고 있던 내 대답은 ‘나도 그러고 싶지.’였다.
누군들 돈은 조금 주고 일은 개처럼 시키는 그딴 회사 더 다니고 싶겠나.
심지어 별로 관심도 없는 동갑내기 남자애들 얼굴에 과일 스티커 붙여 가면서.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나에게 진 빚을 최대한 빨리 갚고 싶었으니까.
사회 초년생이 모을 수 있었던 돈의 수준을 뻔히 알게 될 나이가 되어서는 더더욱.
이직으로 낭비할 시간조차 아까웠던 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목표치에 근접해 가는 잔고만이 나의 치유제였다.
그렇게 몸을 갈아 가며 모은 돈으로 간신히 누나표 대출금을 전부 상환한 그날.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 보자고 다짐했다.
서로가 바빠서 자주 만나진 못했어도, 종종 메신저로나마…….
‘면세점에서 가방 사 줄 준비 됐지?’
‘면세점에서 사람 찾기 방송하게 만들어 줄 준비는 됐어.’
‘내가 못 할 것 같냐?’
……따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바로 이듬해 겨울, 누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집 근처 카페 앞에서 헤어진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누나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그날의 그 시간이, 내 유일한 가족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죽음이고 끝이라는 거였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차게 식었다. 대신 갈 곳 없는 분노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떻게 하면 이 꿈에서 깰 수 있지?’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1초라도 빨리 기상 알람이 울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지독한 잠이 끝나 버려서, 내가 지난 2년간의 감정을 상기하지 않도록.
그러나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깊이를 알 길이 없는 침묵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
[SYSTEM] ‘을’에게 ‘인수인계’가 진행됩니다.+
눈앞에서는 그새 또 새로운 메시지가 반짝거렸다.
X대로 떠들라지.
나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눕지 않았다간 벽에 머리라도 들이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허공에 글씨도 나타나는 마당에, 어떤 기현상이든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 말이다.
‘인수인계’에 대한 내용은 마치 책이나 문서를 읽은 것처럼 내 머릿속에 일방적으로 흘러 들어왔다.
+
[SYSTEM] 인수인계 진행 현황▷ 업무 진행 시기 고지: 20XX년 2월 XX일 (동기화 완료 및 변경 불가)
▷ 설명서 확인
▷ 프로세스 확인
+
머리를 두 대쯤 후려치려던 나는 낯선 정보 사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업무 진행 시기라고 적혀 있는 연도는 올해를 기준으로 9년 전의 시기였다.
계절도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진 초가을이었는데 진행 시기는 2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옛날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나는 아직은 녹음이 우거져 있어야 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창밖으로 앙상한 나뭇가지 몇 개가 보였다.
‘……!’
내다본 창밖은 서늘한 겨울 그 자체였다.
해가 떠 있긴 하지만 창문에는 김이 서려 있고, 이파리 하나 없이 휑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똑똑히 보였다.
‘핸드폰이 어딨지?’
나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평소처럼 베개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기종이 내 것과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내 것과.
눈앞에 있는 건 내가 거의 10년 전에 썼던 2G 폰이었다.
남들이 다 스마트폰을 쓸 때, 기기값이 부담스러워 공부에만 집중할 겸 장만한 핸드폰이었다.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이 90%를 넘는 한국 사회에서 발신자 표시 제한도 걸 수 있을 듯한 벽돌 폰이 나온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이상했다.
마지막 기억보다 한참 어린 센터 황제 최제호의 얼굴도, 전원이 켜지질 않아 오래전 버린 것이 분명한 폰도 단 한 가지 가능성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잠금 화면에 예전에 쓰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암호가 해제되었다.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건 핸드폰에 떠 있는 날짜였다.
‘……9년 전이다.’
시스템에 고지된 업무 진행 시기와 똑같은 날짜이자 내가 이 핸드폰으로 영어 단어를 검색하던 시절.
나와 동갑인 센터 황제 최제호가 스무 살이던 해면서, 스파크가 데뷔를 목표로 달리고 있었을 그해.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버석한, 아니. 어제보다 3,400일 정도 회춘해 촉촉해진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누나…….
나 X된 것 같아…….
* * *
화창한 겨울 아침.
깊이 잠든 타인 덕분에 평온할 정도로 조용한 방.
그 안에 앉아 있는, 눈 떠 보니 냅다 9살이 어려진 나.
그런데 이제 누나와 미래를 인질로 잡혀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를 받고 있는(29세/직장인).
나는 꺼져 버린 핸드폰의 액정 위로 흐릿하게 비친 내 얼굴을 확인했다.
검은 화면 위로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좋아진 혈색과 확연히 줄어든 다크서클이 눈에 띄었다. 딱 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의 얼굴이었다.
‘정말로 어려졌어.’
일어났을 때 개운했던 것도 회춘해서 그런 거였나? 그런 거라면 나 좀 슬플 것 같은데.
나만 어려진 거면 모를까, 모든 시간이 거꾸로 돌아갔으니 과거로 와 버렸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이라도 쓸 수 있으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텐데. 이 벽돌 폰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죽어서 사후 세계 같은 데 온 건 아니겠지?’
정신 나간 소리라는 건 알지만, 여기가 저승이라면 눈앞에 글씨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스물아홉 살 남자가 방에서 해체 발표한 아이돌 현수막 만들다 죽을 가능성도 지금 상황의 개연성만큼이나 희박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긴 했어도 멀쩡히 잘 살던 내가 돌연 죽었을 것 같진 않다.
게다가 그렇게 죽은 사람을 저승 세계에서 아이돌로 데뷔시킨다?
돌았나.
차라리 시간이 되돌아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잠깐.’
시간 자체가 되돌아간 거라면 누나를 살리겠다고 아이돌로 데뷔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지금 당장 누나를 만나서 내 말 듣고 장수하자고 설득만 하면 되는 문제니까.
나는 급히 연락처에서 누나의 번호를 찾았다. 그러나 전화번호부는 텅 비어 있었다.
온갖 회사의 사장님들 번호로 가득했던 내 폰에선 보여선 안 되는 깔끔함이었다.
다행히 누나의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예상치 못한 자동 응답이었다.
다시 번호를 확인해 보았지만 분명 맞는 번호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누나가 번호를 바꾼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연락이 안 닿으면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기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누나 집이 어디였더라?’
누나가 살던 동네와 건물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른 기억은 생생한데 마치 그 부분의 기억만 들어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장문의 글이 추가로 떠올랐다.
이번엔 메시지보다 문서의 형태에 더 가까웠다.
+
[SYSTEM] ‘을’에게 ‘인생 재사용 설명서’가 고지됩니다.▷ 이전 인생 기준 과거 시점에서 깨어나면 인생이 재사용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 재사용된 인생이 시작되면 이전 인생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 이전 인생에서 습득한 기억과 지식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이를 어길 시 제재를 받습니다.
▷ 이전 인생에서 습득한 기억과 지식이 재사용된 인생의 과업을 달성하는 데 지장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 기존 기억의 활용은 ‘을’의 동의 없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원활한 인생 재사용을 위해 부속품(이력서, 스케줄러 등)이 제공됩니다.
+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한 가지는 확실했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
눈이 떠지길래 일어나 버린 건데 이미 인생이 재사용된 것으로 처리되었다니.
살 때부터 개봉된 불량품을 받았는데 개봉품은 환불 불가라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싶었던 적이야 있었지만 그게 라이프를 바꾸겠단 뜻은 아니었단 말이다.
네 번째 항목에 이르러서는 생각을 포기하고 싶었다.
쉽게 말해, 내가 최종 보상이라는 누나와의 재회를 KPI 달성 없이 어둠의 루트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강제성이 발동한다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누나와 접촉할 수 있는 연결고리인 기억을 지우는 방식으로.
‘만약 내가, 사고가 났던 장소에 가서 누나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면…….’
나는 누나의 기일과 당시 사고가 났던 곳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그리고 실패했다. 머리 한구석에 구멍이 난 것처럼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 * *
사람이 살면서 갑자기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가족과 미래를 인질로 잡혀 팔자에도 없는 직종 변경을 해야 한다면?
배정받은 직무가 무려 반짝반짝 빛나야만 하는 아이돌일 가능성은?
그걸 거부하면 어제까지 날 주 7일 연속 야근시켰던 직장에서 평생 일해야 하고?
잘은 몰라도 개같이 망한 케이스라는 건 알겠다.
나는 현실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체념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누나가 살 수 있다는 조건이 붙은 이상 내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누나가 살아 있을 때도 미처 다 못한 효도다.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지긋지긋한 한평산업과도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6인조 보이 그룹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는 것뿐인데.
스파크와…… 데뷔?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히다 못해 눈앞이 캄캄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스파크가 나쁜 그룹은 아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원한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개개인의 능력치만 보면 나를 받아 달라며 빌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을 크게,
1. 문제 있는 아이돌
2. 문제가 없는데 이유 없이 두들겨 맞는 아이돌
3. 데뷔한 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아이돌
세 그룹으로 분류할 때.
스파크는 문제 있는 아이돌과 두들겨 맞는 아이돌에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전원 대외적인 과거는 깨끗했다. 마약도 안 했다.
하지만 스파크는 인성 논란을 시작으로 툭 하면 갖은 논란에 휘말려 돌판의 새로운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한 그룹이었다.
≫ 노이즈 마케팅을 배우고 싶은 자 고개를 들어 ㅅㅍㅋ를 보라
└ 스팤은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 걍 노이즈 아님?
└ 마케팅 킹정이지 이슈 터질 때마다 인지도 개떡상했잖아ㅋㅋ
이 그룹에 내가 낀다고 생각해 보자.
다른 것으로는 다 까여도 얼굴만큼은 안 까이던 비주얼 그룹에 일반인 1이 들어갔을 때 예상되는 반응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미꾸라지 한 마리가 수질 다 망치죠? 혼자서 와꾸 평균치 다 깎아 먹죠? 저것도 재주죠?
└ 다섯 명이 1급수인데 한 마리가 폐급이라 수질 오염 지림 주어는 없습니다
└ 아이돌이라는 놈 얼굴 수준 실화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마찬가지로 실력만으론 돌판 대선 후보라던 보석 같은 그룹에 일반인 1이 들어갔을 때의 반응도 쉽게 예상이 갔다.
≫ 미꾸라지 한 마리가 수질 다 망치죠? 혼자서 뚝딱쇼 지렸죠? 저것도 재주죠?
└ 보는 내가 다 공수치 오는데 본인은 존나 당당함 멘탈만은 1군임
└ X발 멘탈이 1군이면 뭐 하냐고요 본체가 ㅎㅌㅊ인데
가뜩이나 말 많은 그룹에 내 존재가 기름을 붓게 생겼다. 상상만으로도 최악이었다.
왜 하필 나일까.
왜 하필 스파크일까.
나보다 스파크로 데뷔하고 싶은 사람은 못 해도 2백 명 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아마도 안광이 다 죽었을 눈으로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메시지를 응시했다.
그러다 퍼뜩 시선이 꽂힌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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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활한 인생 재사용을 위해 부속품(이력서, 스케줄러 등)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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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품이라.
웰컴 키트 같은 건가? 한평산업은 개X소라 그런 거 안 줬는데.
나는 화면을 노려보며 저 부속품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자 정말로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눈앞에 뜬 건 친숙한 레이아웃의 이력서였다.
바로 나 ‘김이월’의 이력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