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0화(20/193)
| 20화. 의견 충돌 (2)
“왜 둘 다 말이 없어? 설마 아이돌 할 거면서 주먹다짐하려고 했어?”
순간 연습실에 정적이 흘렀다.
“…….”
“데뷔 전부터 논란 안고 가고 싶었던 거야? 혹시 너희 둘 다 하이 리턴을 위해 하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타입이니?”
만약 그렇다면 이 둘은 둘이서 싸울 게 아니라 나랑 먼저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마땅했다.
개념과 예의가 척추에 새겨질 때까지 정신을 바로잡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최제호가 물었다.
“안 말릴 거면 왜 끼어든 건데?”
“대화의 방식을 바꿨으면 좋겠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둘 다 자기 의사 표현은 정중하게 할 수 있는 나이잖아.”
그러자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치고 들어올 녀석들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둘 다 아주 조금쯤은 내 말에 수긍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희가 건강한 대화를 했으면 좋겠어. 싸움을 핑계 삼아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
“최제호 너도 그래. 기연이한테 불만이 있는 걸 알았으니 뭐가 불만인지 말해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도덕 시간에 배운 걸 헛되이 하지 말자 우리.”
라떼 섞인 찬물을 한 바가지 맞은 두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싸울 의욕이 사라졌다는 표시였다.
‘싸움을 멈추기만 해서 되는 거면 여기서 그만두겠지만…….’
≫ 우리 성빈이 분위기 수습하다 지쳐서 주우랑 콜라 하나도 안 남은 컵 빨대로 쭙쭙거리는 거 봐ㅠㅠ 메댄 라인 눈치 챙겨 아니 챙기지 마
└ 스파쿨병 ㄹㅇ 닉값하네 생방 분위기 X창났는데 지들끼리 착즙에 쿨병 걸린 척까지 다 함
└ 정신 승리라도 안 하면 쟤넬 어떻게 팜ㅋㅋ X나 보는 내내 숨 막히는데
└ 보는 내내 숨 막힌다면서 생방 다 봤네? 입덕 ㅊㅊ
└ 진짜 정신 승리 지린다
무사 데뷔까지만 목표로 친다 해도 나는 스파크와 앞으로 최소 1년을 함께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의 골을 묻어 버리고 모른 체 한다는 건 언제 깨질지 모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산다는 데 동의한다는 것과 같았다.
하물며 신경전이 오가는 대상은 스파크 내에서도 제일 많이 싸운 놈들이었다. 아예 모른 척 이야기를 매듭짓긴 어려웠다.
“화를 식히고 말하기 어려우면 제삼자의 도움이라도 받아. 다른 사람이 끼면 머리가 좀 식을 거 아냐.”
“…….”
“나보다 너희가 단체 생활을 훨씬 오래 했으니까 더 힘들 거고, 너희끼리도 많이 참았겠지. 하지만 다른 애들이 눈치 보는 걸 원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최제호와 강기연의 시선이 뒤늦게 새하얘진 정성빈의 얼굴을 향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을 거고, 그때마다 정성빈이 어떻게든 끼어들어서 중재했겠지. 안 봐도 뻔했다.
“그럼 둘 다 원만히 합의하길 바랄게. 난 다시 들어간다.”
“들어가면 안 되지.”
“어?”
팔짱을 낀 최제호가 대놓고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네가 해, 제삼자.”
아니. 거기선 적어도 네가 큰형답게 ‘내가 할게, 스파크 명예 중재자.’라고 나서 줘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둘 사이의 다툼에 끼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내 사회성은 스파크와 매일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차분히 먹고 자신의 일은 주체적으로 해결할 것을 제안하려는데 눈앞에 시스템이 떴다.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멤버 간의 분쟁을 해결하여 논란의 싹을 제거하기(작대기 기능 1회 사용 가능)
▷ 보상: 경험치(20), 작대기 기능 활성화
+
아니 X발, 다 큰 애들 말다툼까지 해결하라고?
지성체가 여럿 있으면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고 그런 거지.
다만 ‘논란의 싹’이란 부분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머릿속으로 스파크의 일대기를 훑었다.
‘최제호랑 강기연 사이에서 있었을 만한 논란……. 태도 논란은 최제호한테만 있었던 거니까 빼고, 인성 논란은 둘 다 있었지만 둘이 엮인 게 아니니까 제외하고…….’
무슨 놈의 논란이 까도 까도 계속 생각났다. 아무리 내가 팀에서 제일가는 얼렁뚱땅이라지만 이런 난파선이 또 없을 정도였다.
말 많은 조별 과제를 7년이나 이끌어 온 정성빈도, 요절복통 스파크를 7년이나 열정적으로 덕질했을 남 부장의 따님도 존경스러웠다.
나 같으면 멤버 무시 논란 떴을 때 진작 탈덕했을지도 모른…….
‘이거다!’
데뷔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최제호와 강기연의 어색한 기류가 카메라에 잡힌 것을 시발점으로 퍼졌던 논란이었다.
직장인들끼리 다투면 뒷담화 몇 바퀴 돌고 끝날 일이었으나…….
한 그룹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데면데면해 보였던 최제호와 강기연의 거리감은 게시 글을 거칠수록 눈덩이처럼 와전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연장자인 최제호가 센터도 못 된 데다 나이까지 어린 강기연을 무시하며 팀 내에 날카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인성질 논란까지 가 버렸다.
≫ 카메라 있는 데서도 저럴 정도면 카메라 없는 데선 어떨지 상상도 안 감;;; 찬바람 지리네
≫ 아무리 그래도 남도 아니고 같멤인데 저렇게까지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거임? 내가 다 무안하다
≫ 낯가린다고 팬들이 피의 쉴드 쳐준 게 몇 년째야ㅋㅋㅋㅋㅋ 그 결과가 이거였구나 X나 실망이다 제호야
└ 남 탓할 거 없음ㅋㅋㅋ 즈그들이 저렇게 키워 놓고 이제 와서 실망 ㅇㅈㄹ 사회성 떨어지는 모습도 귀여운 느그 제호 많이 파세여
여기에 사이버 레커까지 붙어서…….
‘군대 문화에 참지 못하고 하극상 벌인 남돌’, ‘멤버 패싱으로 논란된 아이돌…… 멤버에게 이렇게까지?’
……따위의 영상이 활개를 쳤다.
어찌나 알고리즘을 많이 탔는지, 최제호와 강기연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주작 썸네일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불행히도 스파크의 언급량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시점에 발생했다.
즉, 아직은 대놓고 수면 위로 올라올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게 왜 벌써 터지지?’
최제호와 강기연이 유난히 데뷔 직전에 거리를 뒀던 건 사실이다.
그러니 시기상으로는 빨라야 2년 뒤, 이슈가 터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4년은 후에나 터질 문제였다.
정성빈도 갑자기 멘탈 못 잡더니.
그 순간 얼마 전에 봤던 유의 사항이 떠올랐다.
+
[SYSTEM] ‘을’에게 ‘유의사항’이 고지됩니다.▷ 기존의 일정을 과도하게 변경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일정을 앞당길 경우에도 발생이 예정된 사건의 등장 빈도는 유효하며, 변경된 일정에 맞게 발생 시기가 조정됩니다.
+
X발, 얘들이 아니라 내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하고 있었네.
이 모든 게 내 업보였다는 걸 알게 되자 위가 쓰렸다. 머리도 조금 아픈 것 같았다.
‘X같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건 어쩔 수 없어.’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이라면 후회할 시간까지 뽑아다 최선책을 찾는 데 쓰는 게 맞았다.
나는 최대한 지금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번 일에조차 장점은 있었다.
‘UA가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개인 팬덤에 불 지른 걸 생각하면 차라리 미연에 방지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최제호 팬과 강기연 팬이 너덜너덜해지는 걸 보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않겠는가.
물론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를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나는 역시 내가 매니저로 전직 신청을 해 봤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UA 전속 고해성사실 운영자라도.
“얘들아, 지금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네?”
“다들 앉아 줄래? 얘기 좀 하자.”
비상. 정말이지 비상이었다.
* * *
대체 누가 언제 데려온 건지 모를 박주우까지, 우리는 연습실 가운데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이게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강기연이 불만을 표했다.
본인이 욱해서 지르긴 했지만 나름대로 수습하려고 했는데, 최제호가 눈치도 없이 들쑤신 데다 내가 불을 지른 듯해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건강한 대화를 하자고 했잖아. 머리 식을 때까지 기연이 넌 발언 금지야.”
그래서 그냥 입을 좀 막아 두기로 했다. 열받아 있을 땐 좋은 말도 비뚤게 나오는 법이니까.
“최제호 넌 기연이가 한 말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딱히 마음에 안 든 것까진 아니야.”
“네 의견을 듣기 위해 앉아 있는 우리 네 명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솔직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길래 웃으면서 좋게 좋게 부탁했더니 최제호가 움찔했다.
친구가 없는 녀석이니 동갑내기와의 친근한 대화가 어색한 거겠지. 이해했다.
“쟤가 날 띠꺼워하잖아.”
“네?”
최제호가 말하기 무섭게 강기연이 반응했다.
서로 마주 보는 각도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 덕분에 허공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그룹명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멤버들이었다.
나는 최제호까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기연이가 자기 입으로 너 거슬린댔어?”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런데 왜 기연이가 널 띠꺼워한다고 생각해?”
“상대방이 날 싫어한다는 걸 꼭 말로 들어야 알아?”
요컨대 강기연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었다는 의미였다.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다. 최제호가 원체 남 눈치 안 보고 인생 혼자 사는 걸로 유명했던 녀석이라.
아이돌을 하면서 성격이 변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간 숙식을 함께하며 지켜본 최제호는 매체에 비친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 남을 의식하는 건…… 예상외긴 하네.’
졸지에 동료에게 ‘나는 네가 싫어.’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다닌 사람이 되어 버린 강기연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비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게 있는데.”
“너 나랑 똑같이 살았잖아.”
내가 너보다 사용감 있다 이 자식아. 한 9년 정도.
“내 기준으로 타인의 기분을 짐작하는 것보단,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설명하는 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덴 도움이 되더라.”
“100m 밖에서 봐도 내가 싫다는 티를 내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대놓고 말하라고 판 깔아 준 거야. 됐어?”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대화가 과열되려던 찰나 강기연이 해명했다.
그러나 그 말을 신용하긴 힘들었다. 강기연의 표정이 정말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냥 안 맞는 거지. 그리고 맞출 생각도 없어요.”
강기연은 단호했다.
“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지 물어봐도 돼?”
내 질문에 강기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저 형도 남한테 맞출 생각을 안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