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1화(21/193)
| 21화. 의견 충돌 (3)
강기연은 시선을 바닥에 꽂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넘겨짚고서 하는 말 아니에요.”
“…….”
“제호 형, 단체로 하는 일엔 의욕 없잖아요. 제가 무슨 말 하는 건지 본인은 알지 않아요?”
최제호도 짐작 가는 게 있는 눈치였다. 애초에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눈치챌 수 있을 일이었지만.
데뷔는 하지도 못했는데 고난과 역경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역시 사는 건 만만치 않았다.
속절없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려는 관계를 지켜보던 와중 무언가가 떠올랐다.
‘새 업무’에 적혀 있던 ‘작대기 기능’이었다.
기능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뭐라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때맞춰 귀신같이 등장한 업무 페이지를 눌렀다.
동시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멤버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새로운 설명도 나타났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녀석들 다리에 쥐가 날지도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글을 읽어 내려갔다.
+
[SYSTEM] ‘을’에게 ‘작대기 기능’이 고지됩니다.▷ 팀원 간의 협력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 작대기로 묶인 멤버의 관계에 대한 정보는 KPI 달성 성과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공개됩니다.
▷ 팀원을 선택한 후 적절한 조합명을 작성하면 작대기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지금 시점에 저 기능이 나왔다는 건 최제호와 강기연 둘을 묶으란 뜻이겠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최제호와 강기연의 이름을 끌고 와 눈앞의 상자에 넣자 빈 네모 칸이 생성되었다.
+
[SYSTEM] 조합명을 작성해 주세요.▶ [ ]
+
나는 망설임 없이 ‘맏막라인’을 적어 넣었다.
+
[SYSTEM] 부적절한 조합명입니다.▶ 사유: 사실 관계가 조합명과 다름
+
그리고 순식간에 반려당했다.
“왜?”
물어 봤자 대답은 없었다.
어이가 없다. 팬들이 부르던 공식 명칭인데 지가 뭐라고 반려를 한단 말인가.
나는 반려 사유를 천천히 다시 읽었다. 그러자 무엇이 문제였는지 짐작이 갔다.
‘내가 들어오는 바람에 최제호가 맏형이 아니게 된 건가?’
생일까지 따지면 내가 2월생, 최제호가 11월생이므로 엄밀히 말해 지금의 최제호는 맏형이 아니었다.
최제호 생일 같은 거 외워서 어디다 쓰나 했더니 이런 데 쓰는구나.
그 뒤로 나는 열 개가 넘는 조합명을 적었다가 모조리 퇴짜 맞았다.
거절당한 사유도 가지각색이었다.
+
[SYSTEM] 부적절한 조합명입니다.▶ 사유: 무성의함
[SYSTEM] 부적절한 조합명입니다.▶ 사유: 의미가 없으며 단순함
[SYSTEM] 부적절한 조합명입니다.▶ 사유: 지나친 악의가 느껴짐
+
심사의 난이도가 하늘을 찔렀다. 작대기 두 번 그으려면 작명소라도 차려야 할 판이었다.
적당히 독창적이면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고 귀여운 애칭 같은 건 친목 도모를 위한 회식만큼이나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일단 사랑이란 단어를 넣기로 했다. 이러면 애정은 느껴지겠지.
‘사랑둥이’까지 가니까 조금은 귀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둥이를 넣었다간 사유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아님’ 따위나 뜰 게 뻔했다.
쟤들은…… 딱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느낌과는 영 거리가 멀었으니까.
장고 끝에 나는 최후의 단어를 집어넣었다.
+
[SYSTEM] 조합명이 ‘사포둥이’로 확정됩니다.+
다행히도 시스템 역시 저 별명이 까칠한 두 남성에게 적절하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조합을 짜는 데 성공하자 두 사람이 생각하는 서로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
[최제호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 강기연]+
‘관심 없다’ 같은 게 아니란 점에 기뻐해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세상 혼자 사는 것 같더니 연습생 동료들에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반전은 강기연 쪽에 있었다.
+
[강기연 ― 서운하다 → 최제호]+
형한테 서운한 게 있어서 마음이 상했던 거라니. 제법 깜찍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스파크 막내 강기연 씨는 차가운 입에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강기연 혼자서만 화를 참고 있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희망은 있다.
나는 곧바로 작대기 기능을 종료했다. 동시에 숨 막히는 분위기가 돌아왔다.
최제호가 입을 열려던 것 같았으나, ‘모르겠는데.’ 아니면 ‘관심 없는데?’ 따위의 말이 나올 것 같아 내가 먼저 강기연에게 선수를 쳤다.
“어떤 부분이 서운했던 건지 말해 주면 안 될까? 그래야 나도 앞으로 조심할 수 있잖아.”
“서운…….”
강기연의 눈이 커졌다.
감정이 명확한 단어로 정의되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지. 이해한다.
그러나 강기연은 곧 머뭇거린 게 무색할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제호 형, 단체 연습 같이 해 보자고 하면 자긴 다 출 줄 아는데 왜 처음부터 같이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잖아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음.”
“누군가가 틀려서 흐름이 끊기는 게 싫은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형은 형만 잘하면 그걸로 본인 역할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전 마음에 안 들어요.”
강기연이 하는 말은 정제되어 있으면서 분명했다. 이 정도까지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는 건 평소에도 같은 문제로 여러 번 고민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물어보면 되지.”
“네?”
“최제호 넌 왜 기연이가 같이 연습하자고 하는데 싫다고 했어?”
대화의 주체가 강기연에서 본인으로 옮겨 가자 최제호가 당황했다.
“싫다고 한 게 아니라, 굳이 같이할 이유를 못 찾겠단 거잖아.”
최제호다운 대답이었다. 세상엔 다 같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이해했어. 더 나은 점이 있는 게 아니어서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거지?”
“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난 기연이 입장이 조금 더 이해가 가긴 한다.”
“왜?”
“그러게. 혼자서 데뷔하는 게 아니라 그룹 데뷔를 준비하는 거여서 그런가?”
사회생활에서 단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냐던 남 부장이 떠올라 등골이 선득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닮지 않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말을 골랐다.
“데뷔만 한다고 해서 팀워크가 생기긴 어렵잖아. 최제호 너한테 실력을 키우는 게 1순위라면 기연이는 팀워크 같은 부가적인 요소도 중요하게 생각한 걸 수 있지.”
“그럼 개인이 실력을 쌓는 건 안 중요하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네 실력이 단체 연습 몇 번 한다고 큰일 날 수준은 아니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
“그러니까 기연이가 같이 연습하자고 하면 ‘아, 얘 다 같이 뭐 좀 해 보고 싶은 거구나.’라고 생각해 주는 건 어떨까? 얼마나 기특해. 형한테 먼저 말도 걸어 주고.”
“나한테 먼저 말 거는 게 기특할 정도의 일이야?”
“궁금하면 네가 하루에 멤버들한테 몇 마디나 거는지 세어 봐.”
그러자 최제호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런.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는데.
“그래요, 형. 강견이 외동이라 연장자한테 놀아 달라고 하는 말을 많이 안 해 봐서 그런 거예요!”
“놀아 달라는 의미로 말한 거 아니거든? 와전하지 마라?”
갑자기 심각해지려는 분위기를 이청현이 솜씨 좋게 마무리 지었다. 이놈도 저놈도 오늘은 제법 기특했다.
그렇게 갑자기 막이 오른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사건은 매니저님의 연습실 방문으로 종식되었다.
나는 장시간의 기 싸움 끝에 다시 좁고 갑갑한 보컬 연습실에 돌아오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마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경험치 20 얻겠다고 이 고생을 매번 할 바엔 강기연표 특훈을 3주 연속으로 받는 게 훨씬 나았다.
정성빈처럼 슬럼프가 오는 것보다야 싸우는 게 100배는 낫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그룹에 떨어지게 된 걸까.
나는 내 직군으로 결정된 ‘프로듀서 멤버’가 사실은 ‘멘탈 프로듀스 멤버’가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다음부턴 대화고 소집이고 없다.
그땐 무조건 ‘그랬구나.’로 당사자끼리 해결하게 만들 테니까.
* * *
간신히 불씨만 꺼트렸다고 생각했던 대화 시간은 의외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주 미미한 정도지만, 멤버들끼리 인사 외에도 서로 조금 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최제호가…….
“너 그 빵 굽는 것도 팀워크 때문에 굽는 거야?”
……라고 물었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빵을 다 태울 뻔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한 건 이청현이었다.
원래도 혼자서만 텐션이 따로 놀았던 이청현은 경직된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말문을 개방했다.
“형! 배 안 고파요?”
이놈은 하교해서 연습실에 온 뒤로 배고프지 않냐는 말만 세 번째 하는 중이었다.
“고프지. 안 그래도 내일 아침에 뭐 먹을지 고민 중이었어.”
“그래 봤자 빵 아니면 쫄면 먹을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몸은 한창 먹을 때인 스무 살인데 아침엔 빵 먹고 점심 저녁엔 샐러드만 먹으려니 배가 안 고플 수 없다.
“너희 점심엔 급식 먹어? 샐러드 챙겨 가는 건 못 본 것 같은데.”
“아, 학기 중엔 점심 안 먹어요.”
“뭐라고?”
이놈들이 내가 안 보는 곳에서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정작 이청현은 멀쩡히 나오는 밥을 안 먹는단 소리를 태평하게 해댔다.
“연습 시간이 줄어드니까 운동량도 줄어서요. 평소랑 똑같이 먹으면 살쪄요.”
“아니……. 그렇다고 끼니를 아예 안 챙겨?”
“체중 검사하고 지적받는 것보단 그게 낫죠.”
그러더니 이청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UA는 몸무게 자주 재는 편 아니에요. 대형 기획사들은 진짜 관리 심하대요.”
“너도 또래들 중에선 마른 편 아니야?”
“에이 형,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은 표준 체중으로 안 되죠.”
이청현의 말은 들을수록 심란했다.
분명 스파크는 활동하는 7년간 항상 한결같은 모습만을 보여 왔다.
이른바 ‘잘 관리된 모습’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은 변화에 민감한 만큼 변하지 않는 것엔 무뎌지기도 했다.
7년 내내 키도 체중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쟤넨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여야지.’
하루 종일 움직이고 나서 샐러드만 먹느라 안 그래도 기운이 안 나는데 그나마도 한 끼를 거른다?
밥친놈의 나라에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데뷔가 1년 넘게 남았는데 체중만 관리하는 것도 이상했다.
뭐라도 먹여서 키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남돌에게 키가 얼마나 중요한데.
관리가 힘들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우선순위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살은 나중에라도 뺄 수 있지만 키는 성장기를 놓치면 끝이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게 무슨…….”
“근래 봤던 형 표정 중에 지금이 제일 심각해 보이긴 하네요…….”
그럼 고등학생이 끼니를 굶는다는데 안 심각하겠냐.
하물며 그 한평산업에서도 점심시간은 줬단 말이다.
물론 법적으로 줘야 하는 거고, 그나마도 나는 남 부장 점심 배달하느라 10분 안에 먹어야 했지만.
세상의 어떤 팬도 내 아이돌이 밥 안 먹고 돌아다니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조공용 도시락에 붙일 스티커 도안에 ‘밥 굶고 다니지 마!’란 말이 빠지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문득 스파크가 내 기준으로 7년 전,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하이틴 스타일의 여리여리한 남학생 재질로 데뷔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여리여리 소년 컨셉을 위해 일부러 더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던 건가?’
나는 눈앞의 이청현과 그 너머로 보이는 최제호 외 3인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청춘의 소년이라기엔 무서울 정도로 냉랭한 면면뿐이었다.
심지어 이 녀석들, 골격이 좋기를 타고 나서 살을 뺀다고 한들 극한으로 빼지 않는 이상 티가 나지 않을 체형이다.
‘컨셉을…… 미리 생각해야겠다.’
최대한 얘네들에게 어울리는 걸로.
무엇보다, 스키니한 교복은 안 입어도 되는 컨셉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