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2화(22/193)
| 22화. 컨셉 기획 (1)
나는 지난 7년간 스파크가 소화해 온 컨셉들을 떠올려 보았다.
서리가 내려 잔디가 다 죽은 풀밭에서 겨울 소년 느낌을 내며 발라드를 부르던 데뷔 앨범부터.
반전미를 노리고 싶었던 건지 폐공장에서 점프 수트를 입고 사랑 노래를 부르던 것까지.
개중에는 제법 스파크 본인들과 잘 어울리는 컨셉도 있었다. 단지 계절감이나 패션 센스 등을 거하게 말아먹었을 뿐.
‘사이버 전사 컨셉이 나온 시점에서 UA 기획력은 다 죽었다고 봐야 해.’
나는 떠올리기도 싫은 회색빛의 다섯 사이버 전사를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그렇다면 스파크에겐 어떤 컨셉을 줘야 하는가.
‘얼굴이랑 피지컬은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데…….’
우선 곡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될 이청현에게 희망하는 컨셉이 있는지를 묻자 이청현은 이렇게 대답했다.
“펑펑 터지는 느낌에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신나게!”
“그거 그냥 지금 쓰고 있는 노래랑 어울리는 걸로 말한 거 아냐?”
이청현이 이런 곡을 구상 중이라며 흥얼거렸던 노래는 과거 데뷔 앨범의 수록곡으로 들어갔던 곡이었다.
그 노래가 어떻게 완성될지 알고 있는 만큼, 이청현이 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제 인생 목표가 ‘한 번 사는 인생 신나게 살자’라!”
썩 도움은 되지 않았으나, 귀한 작곡가님의 말씀이니 새겨듣긴 했다.
“아! 미래지향적인 컨셉은 어때요? 멋있잖아요. 영화 같고!”
“그런 끔찍한 단어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마.”
LED에서 태어난 사이버 전사가 되고 싶은 거 아니면.
“따로 필요한 건 없고?”
“자기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동생을 위한 따뜻한 칭찬?”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진 청현아, 만족스럽니? 그럼 이제 다시 할 일을 하자.”
그렇게 이청현을 노트북 앞으로 도로 데려다 놓는데 박주우가 방문 밖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제 발로 고개를 들이밀고 나타난 박주우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끼리 잠깐 컨셉 얘기하고 있었거든. 주우 넌 해 보고 싶은 컨셉 있어?”
“아이돌스러운 컨셉 중에서라면…… 조금 센 느낌이요.”
여전히 온순한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취향이었다.
“그건 노래 가사나 메시지가 셌으면 좋겠다는 의미야? 아니면 스타일링이나 안무처럼 보이는 게 셌으면 좋겠다는 거?”
“……으음.”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은 듯 박주우가 고민했다.
“주우 형 취향 생각해 보면 곡의 난이도가 센 쪽을 원하는 거 아닐까요? 파워 고음 이런 거 나오고.”
“어차피 이 그룹이 박주우 정성빈 보유국인 이상 고음을 피할 순 없단다.”
“……굳이 고른다면, 메시지가 센 게 좋아요.”
상당히 철학적인 취향이었다.
내가 철학에 대해 고민했던 건 한평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갈 경영 철학을 제발 좀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말이다.
이후로도 정성빈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에게 물어본 결과, 각자가 해 보고 싶은 컨셉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최제호: 안무 빡센 것.
정성빈: 멤버들과 잘 어울린다면 뭐든지 좋아요.
박주우: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것.
이청현: 신나게 펑펑 터지는 것.
강기연: 독창적인 대형을 활용할 수 있고 시선을 끌 수 있으며 그룹의 색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것.
중화요리 집 가서 각자 다른 메뉴 다섯 개 시킬 놈들 같으니. 이렇게 단합이 안 되는데 어떻게 7년이나 같이 활동했냐.
나는 밀려오는 두통을 쫓아내며 내가 짜야 할 컨셉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1. 멤버들의 장점인 피지컬과 비주얼을 살릴 수 있어야 함.
2. 이청현이 작곡할 노래와 어울려야 함.
3. 요구 사항이 많으신 멤버들의 취향에도 부합해야 함.
4. 시장에서 팔릴 수 있어야 함.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아는 아이돌들의 앨범 컨셉이라곤 스파크가 7년간 해 온 컨셉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의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입사 직후 인터넷을 뒤져 인사 서류 양식을 찾았을 때처럼 정보의 바다에 몸을 맡기는 것 말이다.
나는 빈틈없는 일과에 꾸역꾸역 ‘레퍼런스 조사’를 끼워 넣었다.
하루가 이토록 터질 것처럼 바쁘다니. 시스템에게 야근 수당이라도 청구하고 싶었다.
* * *
나는 한때 최제호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선플을 긁어모으러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가 아마…… 응원 댓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 선물한다고 했던 때였지.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봤던 글 중 스파크가 컴백할 때면 복사해 붙여넣기라도 한 것처럼 올라오는 유형의 글이 있었다.
≫ UA만큼 애들 얼굴 활용 못하는 회사도 없는 듯
옷 색깔만 맞춰서 입혀놔도 될 애들한테 굳이 굳이 정성스럽게 거적때기를 입혀줌
└ >굳이 굳이 정성스럽게<가 킬포
└ 본격 사복이 제일 잘 어울리는 아이돌 1위
그 밑으로는 상의와 하의만 갖춰 입으면 된다는 듯 테트리스 룩을 걸친 스파크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었다.
≫ 모든 무대를 이렇게 입히는 것도 재주임
멤버 중 한 명이 사장 얼굴에 아아라도 쏟은 게 틀림없음
└ 꼬라지를 봤을 땐 아무래도 다섯 명이 동시에 쏟은 거 같어
└ 사장이 입고 있던 셔츠가 80만 원이라고 하면 이해 쌉가능
신랄한 비판과 화려한 사진이 번갈아 가며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 사이 무언가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게 뭐야……?!’
그건 바로 내 사진이었다.
무려 검은 티셔츠에 형광 노랑 비닐 조끼를 입고 흰색 면 반바지를 입은.
충격적인 사진이 첨부된 게시 글엔 한 줄짜리 코멘트도 달려 있었다.
≫ 김이월 착장이 ㄹㅇ 지림
거의 건반 위에 떨어진 포스트잇임
걸출한 표현력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조회 수 3인 그 게시글에조차 댓글은 달려 있었다.
≫ 저 안광 다 뒤진 동공이 XX 불쌍함
“허억……!”
댓글과 함께 박제된, 죽어 있는 나의 흐릿한 동공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이 떠졌다.
끔찍한 꿈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스트잇 컨셉은 피하고 만다.’
나는 굳세게 각오를 다졌다. 안 그래도 매일이 지옥이건만, 오늘 역시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거실로 나가자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이청현이 인사를 건네 왔다.
“형 악몽 꿨어요? 자면서 끙끙 앓던데.”
“지금 여기가 현실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주 지독한 꿈을 꿨나 보네.”
이청현의 동정을 받으며 부엌으로 가려는데 누군가가 인덕션 앞에 뒤집개를 들고 서 있었다.
등교 준비를 모두 마친 정성빈이었다.
“뭐 해?”
“아, 형!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러더니 정성빈은 식탁을 가리켰다.
“오늘은 제가 빵 구워 놨어요. 형도 드세요.”
식탁 위엔 빵이 정갈하게도 차려져 있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싶었다.
눈이 빨리 떠졌으면 누워서 뒹굴기라도 할 것이지. 정말이지 도덕 교과서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만든 것 같은 성실함이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뭘요.”
그러더니 정성빈도 자리에 앉아 빵을 먹기 시작했다.
이런 정성빈도 그룹 생활 7년이면 ‘독기 가득한 남돌 리더 대표주자’가 된다, 이거지.
대체 앞으로의 아이돌 생활이 어떻게 굴러갈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 * *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난 29년간 그 말이 내겐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나 자신부터 공부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 때 물리게 공부했는데 커서 공부하고 싶겠냐고.
고등학생 때까진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대학생 땐 장학금 받고 빨리 졸업해 취직이나 하려던 게 공부를 하는 이유의 전부였다.
단언컨대, 내가 좋아서 공부를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한평산업에서도 인수인계서 하나가 없어 맨땅에 모종삽으로 삽질을 했던 나다.
누군가가 강제해서 무언가를 새로 익히는 것은 진심으로 그만하고 싶었다. 내가 뻘짓을 자초하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그렇게 되었을 테고.
그러나 옛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나는 음원 사이트들의 근 5년분 월간 TOP10을 정리하느라 빠질 것 같은 눈을 마사지하며 마음속으로 인정했다.
살다 보면 회사원이 아이돌 시장을 공부해야 할 날도 오는 만큼, 공부엔 정말 끝이 없다는 걸 말이다.
‘어떻게 월평 준비 하나 끝나 간다고 이렇게 일이 치고 들어올 수 있지?’
한평산업에서 차곡차곡 쌓았던 슬픈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3시간씩 자면서 낮에는 연습하고 밤에는 노트북을 들여다본 결과.
“형. 다크서클이 진화한 것 같은데요?”
내 얼굴은 이청현에게 저런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쩐지 안구 건조증이 도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 안색이 구리긴 했는지 최제호까지 질문을 해 왔다.
“그만큼 자면 안 졸리냐?”
“졸리지.”
하지만 지금 잠을 아껴 두지 않으면 미래에 포스트잇 룩으로 망신살이 뻗칠 게 확실해서 말이다.
그 생각만 하면 오던 잠도 달아났다.
“근데 형 밤에 뭐 해요? 월평 곡은 골랐다고 하지 않았나?”
“미래를 위한 준비?”
“이 형 진짜 말 특이하게 해.”
그러면서 이청현이 웃었다.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은박지에 싸인 김밥 신세 피하게 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형, 긴장은 정말 안 하시나 봐요.”
“그러게. 형 첫 평가도 잘하셨잖아요.”
사이좋게 스트레칭을 하던 박주우와 정성빈까지 끼어들었다.
나한테 관심이 쏟아지는 건 사양이었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칭찬은 고마운데, 우리 슬슬 연습 시작해야 하지 않나?”
그러자 다행히 연습에 있어선 FM인 정성빈이 곧바로 연습 모드에 들어갔다.
이렇게 사소한 대화는 끝이…… 나는 듯싶었으나.
“형.”
“어?”
야심한 밤, 연습실에 나와 단둘이 남았던 강기연이 말을 걸어오면서 별것도 아닌 대화가 이어지게 되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미안한데 기연아.
나는 이제 네가 입만 열면 무서워지려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