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4화(24/193)
| 24화. 컨셉 기획 (3)
‘이게 이렇게까지 귀에 꽂히는 음악이었나?’
나는 3분 남짓한 음원을 뒤로 돌려 다시 틀었다.
중간에 과하다 싶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전보다 더 인상적인 느낌이었다.
“좋은데?”
“진짜요?!”
내 말에 이청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음악적 소양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난 좋아.”
이청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청현의 재능이 활짝 피어나서 내가 아는 이청현보다 발전한 거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만약 ‘과거의 이청현이 이런 노래를 만들었음에도’ 편곡이나 모종의 과정을 거쳐 내가 아는 그 곡으로 발매가 되었다면?
이 경우는 곤란했다. 취향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범위였고, 대중의 반응이라는 건 까 봐야 아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내가 아무리 ‘어휴 쇤네는 이청현 버전이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한들 회사 전체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소용이 없었다.
‘이제 막 들어온 내가 A&R 팀까지 어떻게 할 순 없어.’
나는 이번 사태가 전자에 해당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뚝딱이의 칭찬이라도 좋은 건지, 이청현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이것도 한번 들어 봐 주세요. 이게 처음 생각했던 멜로디거든요.”
이청현이 새로 틀어 준 음원은 내가 알던 노래와 똑같았다.
“처음 생각했던 버전에서 아까 들려준 쪽으로 수정하게 된 계기가 있어?”
“저번에 주우 형이랑 셋이 컨셉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너희들의 대환장 취향 말이지.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전 그냥 ‘신나는 느낌이면 좋을 것 같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미지가 좀 더 구체적이면 좋으려나? 싶어서 이것저것 생각해 봤더니 방향이 변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생각해 봤는데?”
“6m짜리 대형 금속 팡파르요!!”
이청현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펑펑 터지는 느낌이긴 하네. 물론 팡파르를 터트리는 목적이 축하 말고 파괴에 가까울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를 토대로 곡이 변한 거면…… 이 멜로디가 그대로 갈 가능성도 있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들어 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청현이 수정했다는 버전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혼자서 여기까지 성장한 이청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여기까지 만들어 보느라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어.”
“갈 길이 구만리인데요, 뭘.”
하긴, 이청현이 앞으로 해야 할 작업들에 비하면 멜로디는 식재료 준비 정도에 가까웠다.
그래도 신선한 재료를 이만큼이나 찾아온 게 어디인가. 나는 꼬박 일주일이나 고생한 이청현을 기꺼이 방으로 들여보냈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건지, 이청현은 내게 얼른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나와 이청현의 얼렁뚱땅 작곡 도전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이다.
* * *
단체 연습을 할 땐 55분 연습하면 5분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거울 앞에서 동작이나 복기해 보려는데 정성빈이 다가와 물었다.
“안 피곤하세요, 형?”
“응?”
“밤마다 청현이랑 뭐 하시는 것 같길래. 휴식 시간이 부족하시진 않을까 해서요.”
나는 곡 만든다는 얘기를 하려다 급하게 에둘러 대답했다.
“노래 얘기지 뭐. 혹시 우리가 거실에서 떠들어서 방해됐어?”
남한테 자기 노래를 들려주는 것도 민망해했던 이청현이, 자기 얘기를 갖고 떠드는 걸 좋아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물병을 집어 든 이청현이 ‘작곡 얘기하느라 그래요!’라며 정성빈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연습실을 나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거면 어제는 왜 그렇게 긴장했는데?
어이를 상실한 나에게 정성빈이 되물었다.
“작곡이요?”
“응. 청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것 같길래 해 보라고 했는데,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
“아하.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정성빈은 내 건강이 걱정된다며 안부를 챙기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정성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섯 명의 근황을 혼자 다 챙기는 네 건강이나 걱정해라…….’
건강은 아무도 챙겨 주지 않는다. 보호자가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더더욱. 그럴수록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했다.
젊음이란 배터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려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이번 손님은 박주우였다.
“작곡이면…… 저번에 얘기했던 컨셉 관련된 거예요?”
“아니. 그냥 청현이가 개인적으로 써 보는 거야.”
“그럼 형은…….”
“채찍질 기능이 강화된 페이스메이커 역할.”
사실 내가 하는 거라곤 청음과 좋아요 누르기 정도밖에 없긴 했다.
그래도 사람이 물어봤으니 성실히 대답은 해 준 건데, 박주우는 대답을 듣고도 돌아가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형.”
“응. 왜?”
“저……. 바쁘겠지만 제 선곡도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월말 평가 선곡?”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는데 박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평가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아무리 박주우가 노래를 익히는 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고 해도 선곡을 지금 하기엔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간 고민이 많았나?’
빠른 선곡이 중요하다면 나보단 정성빈이 더 나을 듯해, 나는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안해 보았다.
“성빈이한텐 물어봤어? 나보단 성빈이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자 박주우가 고개를 저었다.
“……성빈이한테는 얘기하기가 좀, 그래서요.”
그때 정성빈이 쉬는 시간이 끝났다며 우리를 불러 모았다.
“이따 저녁 먹을 때 얘기할래? 우선은 연습부터 하자.”
“……네.”
선곡이 늦어진 것에 대한 초조함은 없는지 박주우는 선선히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 이후, 나는 저녁 시간이 오기 전까지 불안에 떨며 강기연의 혹독한 지도를 받아야 했다.
* * *
저녁 시간의 1층 로비는 대단히 한산했다.
직원분들은 대부분 퇴근을 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따로 먹겠다고 말해 둔 덕분에 오늘의 저녁 식사조는 나와 박주우 둘뿐이었다.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 샐러드의 포장을 벗기며 박주우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박주우가 어김없이 오리엔탈 소스를 플라스틱 용기 바깥에 빼 놓으며 말했다.
“……저번에 제가 센 컨셉을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 뒤로 쭉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노래를 들어도 이거다, 싶은 게 없어서요.”
“취향에 맞는 노래 찾기가 쉽지 않긴 해.”
“나중엔, 제가 뭘 찾으려고 했는지도 애매해졌어요.”
박주우는 며칠 전 잠깐 떠들었던 주제를 가지고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해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얘가 이렇게까지 취향을 고집하는 성격이었나?’
오히려 데뷔 이후로 박주우가 보여 준 모습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에 가까웠다.
내가 알던 모습과 비슷했던 대부분의 멤버들과 달리 지금의 박주우는 조금 낯설었다.
“선곡하는 데 있어서 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게 뭐야?”
“……모르겠어요.”
“1번, 마음에 드는 노래를 못 찾았다. 2번, 지난 평가에서 받은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는 노래를 못 찾았다. 3번, 기타 등등. 이 중에서 골라 봐.”
“3……번?”
망했네. 이렇게 되면 찍어서 맞추는 수밖엔 없었다.
나는 최근 박주우의 심경을 어지럽혔을 요인으로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거와 가장 많이 달라진 건 UA 최고의 통제 불능 뚝딱이인 내 존재일 테고.
최제호랑 강기연이 싸운 게 박주우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이청현의 작곡.
‘그때도 분명 박주우가 이야기하는 자리에 껴 있었어.’
정확한 인과관계는 몰라도, 맞으면 이득이라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청현이가 작곡하는 거 보고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어?”
내 말을 들은 박주우는 고심 끝에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지금의 상황을 엮어 만든 막장 드라마 한 편이 떠올랐다.
얄팍한 칭찬 몇 마디에 홀려 미성년자임에도 밤늦게까지 영혼을 갈아 장차 자신의 업이 될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이청현과…….
‘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도 마음대로 못 부르는데 너만 자아를 찾아?’라며 분개하는 박주우가 나오는 망한 드라마 말이다.
하하, 데뷔고 뭐고 풍비박산만 안 나면 다행이네.
아마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을 내 앞에서 박주우는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청현이는 장르가 다른 음악에도 잘 도전하는데…… 저만 아직도 갈피를 못 잡은 것 같아서.”
그러더니 박주우가 시선을 떨궜다. 클래식만 했던 이청현이 대중가요를 쓰고 있는 마당에 자기 고민 정도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샐러드를 한 입도 못 먹고 있는 박주우의 포크 포장을 뜯어 주며 물었다.
“조바심 생겨?”
“……그런가 봐요.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요.”
실로 감동적인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한평산업에서 단 한 번도 ‘내가 너무 안일하게 일하고 있나’라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데뷔곡도 아니고, 고작 가창 시험용 노래 하나일 뿐인데.’
솔직히 평가 곡 정도야 적당히 고르면 되는 거 아닐까 싶었지만.
나부터 선곡에 목숨을 걸었을뿐더러, 매사에 진지한 태도가 녀석들을 데뷔까지 견인했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말을 얹을 순 없었다.
대신 나는 내 발언이 지극히 개인적인 제안이라는 걸 강조하며 박주우에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노래들의 장점이 메시지나 컨셉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장점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장점이요……?”
“어떤 곡에선 기타 리프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또 다른 곡에선 드럼이 마음에 들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죠.”
“좋아하는 요소를 늘리다 보면 네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는 게 더 쉬워질 수도 있지.”
“……그렇네요.”
난 저 방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남 부장의 장점을 못 찾았지만 말이다.
“혹시 알아? 록 음악 마니아인 작곡가가 쓴 아이돌 노래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쪽에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자 박주우도 뒤늦게 웃어 보였다.
나는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박주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왜 성빈이한텐 얘기를 못 한 건지 물어봐도 돼?”
“아, 그거요…….”
청소년들의 우정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박주우는 무던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 성빈이가 같이 아이돌 해 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봐서 아이돌 연습생으로 진로를 바꿨거든요.”
알고 있다. UA 입사 초기의 박주우는 솔로 가수를 준비했으니까.
“멤버들이랑 같이 데뷔 준비하는 것도 좋고, 아이돌 하기로 한 것도 고민 많이 하고 결정한 거라 이젠 후회를 안 하는데…… 제가 록 음악 듣고 있으면 성빈이가 눈치를 봐서요.”
“친구 하나 끌어들였다고 죄책감을 가졌구나, 우리 성빈이가…….”
박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제 눈치를 보는 게 어지간히 미안했던 모양이다.
‘선곡 고민은 얘기 못 할 만하네.’
그래도 그룹에 저런 친구가 있다는 건 좋아 보였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친구라니 훈훈하지 않은가.
물론 나는 친구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공감하진 못했다.
어쩐지 인생을 좀 헛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3월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빵도 굽고 녹음 체험도 하고.
멤버들 간의 분쟁도 해결하고 곡 열심히 쓰라고 응원도 하고 긴장하지 말라고 모의 평가도 봐주고 선곡 상담도 해 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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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데뷔조에 들어가기
▷ 보상: 경험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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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충실한 한 달을 보낸 끝에, 스파크의 데뷔조를 결정지을 3월 월말 평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