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5화(25/193)
| 25화. 데뷔 평가 (1)
‘대박이네.’
어엿한 성인이, 그것도 사회인이 쓰기엔 품위가 떨어지는 어휘 선정이었다.
하지만 이 단어만이 지금의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2월 평가도 내 사직서처럼 잘게 찢어 놨던 스파크 놈들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라도 나온 것처럼 날아다녔다.
최제호나 이청현이야 원래 잘했으니 두말할 거 없고.
정성빈과 강기연의 성장은 괄목할 정도였다.
우선 정성빈은 평소보다 좀 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먹고 들어갔다.
원래도 노래와 춤 둘 다 잘하는 녀석이다 보니 준비한 걸 시원시원하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느껴졌다.
그리고 강기연.
인터뷰 때 손을 좀 떨고 표정이 굳는 버릇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녀석은 오늘 평가에선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본인의 장기인 춤에서는 특히나 망설임이 없었다.
달이 번쩍번쩍 빛날 때까지 연습실에서 구른 보람이 있는 시연이었다. 이미 댄스 선생님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아무리 결과는 까 보기 전까진 모른다지만 이건 안 까 봐도 알았다.
강기연 이 자식, 중박은 쳤다.
이 와중에 평가 곡을 일주일 전에 고른 박주우는 보컬 선생님에게 ‘이젠 부족한 부분이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본래 내 목표는 스파크 멤버들과의 거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좁혀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장래성을 보여 줘야 내 쓸모를 증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한 걸음 도약할 때 이놈들이 장대높이뛰기를 해 버리는 바람에, 내 도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해 버리고 말았다.
“형, 파이팅!”
내 차례가 되자 옆에 앉아 있던 이청현이 작게 속삭였다.
응원 고맙다. 너희들이 곡도 들고 오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바람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 * *
‘벌써 이월이 차례네.’
매니지먼트 본부의 아티스트 관리 팀 소속인 민주경이 마지막으로 남은 프로필과 2월 평가표를 확인했다.
UA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두 달 차 연습생이지만, 김이월은 성실하기로 인정받은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매일같이 연습실 불을 끄고 나오는 친구로 암암리에 인정받고 있었다.
성실한 사람은 태도로도 호감을 사는 법.
민주경은 비단 자신이 데려온 연습생이라서가 아니라, 김이월이 그간 보여 준 자세만 가지고도 그가 충분히 응원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잘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연습생들은 김이월보다 최소 1년 이상 연습생 생활을 더 한 멤버들이었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김이월의 데뷔조 합류와 차기 그룹 합류를 4:6 정도의 비율로 재어 보고 있었다.
‘실력을 쌓고 데뷔하는 게 본인으로선 활동하기 편하겠지만…… 다음 그룹이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어린 나이가 곧 무기가 되는 아이돌 시장을 생각하면 민주경은 김이월을 조금이라도 빨리 데뷔시키고 싶었다.
김이월이 한 사람분의 보컬만 맡아 준다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딱 서브 보컬 할 정도면 되니까……!’
민주경은 속으로 응원하며 저번 달과 변함없이 반듯하게 선 김이월을 쳐다보았다.
민주경의 옆자리에 앉은 오은이 김이월에게 물었다.
“가창이랑 댄스 둘 다 같은 곡으로 골랐네?”
“네, 맞습니다.”
김이월의 대답에 민주경이 선곡 목록을 확인했다.
유명한 남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였다. 다만 곡명은 낯설었다.
‘수록곡인가?’
민주경은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원곡의 이미지가 강렬하면 커버를 아무리 잘 뽑아도 원곡에 묻히기 쉬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대상이 연습생이라면 더욱.
김이월은 몇 번 안 되는 평가에서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해 왔다.
그러면 이제, 과거 회의 자리에서 평가자 중 한 명이었던 오은이 했던 말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센스가 있긴 한 것 같아. 열심히 하기도 하고.’
민주경 역시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아이돌 그룹에도 소위 말하는 지능캐는 필요했다. 팬 서비스에서든 예능에서든.
‘이월이가 그 역할을 해 주면 우리 애들도 걱정이 덜 될 텐데.’
경력은 짧지만 맏형인 나이나, 본인의 번듯한 태도 등은 민주경으로 하여금 몇 년을 더 썩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경이 감상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럼 춤추면서 노래도 같이 불러 볼까?”
그간의 평가에서는 가창과 댄스를 각기 따로 보고 점수를 매겼으나, ‘어차피 같은 곡이라면.’이라며 대표가 전례 없는 미션을 준 것이다.
UA에선 당연히 라이브가 되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자 했지만, 춤을 추면서 노래까지 부르기 위해서는 서서 노래만 부를 때와는 엄연히 다른 것들이 요구되었다.
‘호흡도 그렇고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민주경은 경악했다.
안 그런 연습생이 없겠지만 지금은 김이월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 만큼, 꼬박 한 달 내내 열심히 연습했을 김이월에게도 다른 연습생들과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했다.
왜 하필 김이월의 차례에서 이러는 것인지 난감해하던 민주경의 시야에 연습실 구석에 걸린 벽시계가 들어왔다.
신규 아이돌 그룹 론칭을 위해 잡아 둔 회의까지 10여 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회의가 한 번만 밀려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민주경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아직 앞길이 창창한 연습생에게, 적어도 이렇게 중요한 기회만큼은 보장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민주경이 고용주의 정면에 서서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려던 찰나.
김이월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알겠습니다.”
……라고.
그리고 민주경은, 4분 후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 *
영겁 같던 시연이 끝나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게 되네.’
유명한 그룹의 노래를 고른 이유는 명확했다. UA가 ‘정석적인 아이돌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주우에게 유난히 K-pop의 색깔이 강한 노래를 요구한 것과, 데뷔 앨범을 신인 그룹의 정석인 청춘 콘셉트로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감점당하지 않는 것에만 집착해 나만 아는 노래 같은 걸 골랐다간 신입 사원이 가져야 할 열정과 패기가 없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컸다.
대신 하이라이트가 높고 격렬한 곡이 많은 타이틀보단 좀 더 보컬이 여유로운 수록곡을 골랐다.
어디까지나 내가 서브 보컬이라는 포지션에 적합해 보이도록.
곡 자체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그룹의 유명세로 보완하면 그만이었다.
‘콘서트나 음악 방송에서 한두 번만 공연했던 곡이라면 원곡과 비교당할 일도 거의 없지.’
이른바 이름값만 먹고 튀는 방법이었다.
수록곡의 이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보통 특별 무대로 많이 나오는 만큼, 타이틀보다 안무가 쉬운 경우가 많다는 것.
이걸 단체로 커버했다면 꿀 빨았다는 비판이 안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부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인원 그룹이 다 같이 부르는 노래를 혼자서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개인 역량에 있어선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이렇게 혼자서 춤도 노래도 1인분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면 댄스와 보컬을 동시에 선보여야 했다. 그것도 극적인 방식으로.
예를 들자면…… 원래는 따로 보여 줬어야 할 평가곡을, 갑자기 치고 들어온 제안에 의해 같이 보여 준다든가 하는 방식 말이다.
들어온 지 이제 두 달 된, 아이돌을 처음 준비해 본 연습생의 차례.
이런 시점에 노래도 막 어렵진 않아 보이고, 안무도 크게 힘들 것 같진 않은 템포의 곡을 두 번이나 들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것도 사람 여럿 모이는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시간이 금이라고 여기는 사람―특히 임원 놈―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냥 한 번에 봐도 되지 않을까?’
여차하면 다른 방식으로 평가한 점 고려하겠다고 말만 하면 되니까.
잘하면 오히려 더 좋고.
이러한 전개는 그간 스파크 녀석들이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UA의 의사결정 방식을 복기해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매니저님이나 민주경 님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UA의 이번 주 회의실 예약 내역도 전부 확인했었고.
이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덕에 평가는 상정해 뒀던 케이스 중 가장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행이다. ‘21번 작전: 사연 팔이를 통한 동정심 유발 및 셀프 노예 계약 자처’ 시나리오를 쓰지 않아도 되게 되어서.
‘노래랑 춤 둘 다 성공할 때까지 죽도록 구르긴 했지만…….’
완주가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에 고행의 길을 피할 순 없었다.
이번에도 근태 관리 보정을 받아서 가산점이 붙기를 기대하는 수밖엔 없었다.
‘이제 적당한 이미지만 보여 주고 빠지면 된다.’
머리를 굴릴 땐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무런 티도 나지 않는다면 어필이 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 도면을 다 보여 주면 상대방을 갖고 놀았다는 인상을 준다.
‘반응이 유도됐다는 것까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선곡을 잘했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게 베스트인데.’
나는 빠르게 심사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종이에 표시를 하던 임직원들의 표정은 티 없이 흡족해 보였다.
작고 소중한 나의 도약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청소년기가 무섭긴 하다. 저번 달이랑 이번 달이 또 다르네.”
UA의 대표, 윤현주의 말에 월말 평가에 참석했던 모든 관계자가 동의했다.
“이번에 유독 애들이 잘했어요. 데뷔조 추린단 얘기를 해 놔서 그런가?”
“동기부여가 되면 더 집중하게 되긴 하죠.”
“기연이가 잘한 게 진짜 의외였어. 압박받으면 더 긴장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강기연을 항상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던 댄스 트레이너 송준환은 그야말로 마음의 짐을 던 표정이었다.
“밤마다 이월이랑 연습했다던데요.”
연습생들의 출퇴근을 체크하고 있는 매니저 찬영이 말했다.
“진짜?”
“기연이가 악바리 근성이 있어. 아 참, 주경 씨 청현이가 보낸 음원 들어 봤어?”
“네. 괜찮던데요?”
“그렇지? 그거 A&R 팀에도 들고 갔었다더라.”
장기간의 연습생 생활로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연습생들이 새롭게 의욕을 낸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원래도 열심히 하던 멤버들이었지만, 최근의 연습생들은 직원이나 트레이너들이 체감할 정도로 연습에 적극적이었다.
자신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윤현주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무엇이 연습생들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있는가.
회사 입장에선 명확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꽉 잡아 놔야 했다. 그래야 지금의 좋은 흐름이 유지가 될 테니까.
여섯 장의 평가표를 가지런히 정리하며 윤현주가 들떠 있는 직원들에게 물었다.
“우리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바뀐 결정적인 계기가 뭐라고 생각해?”
대표의 질문을 시작으로, 회의실에선 장장 2시간의 브레인스토밍 대회가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