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7화(28/193)
| 27화. 직장 내 괴롭힘 (1)
“네?”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쳐서 수습이 필요하다거나, 무서운 학교 선배한테 돈을 뜯겨서 복수를 꿈꾼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내 예시를 들은 정성빈이 기겁을 하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는 사람과는 한배에 탈 수 없지.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성빈이 먼저 입을 열길 기다렸다.
정성빈을 만나기 전, 정성빈이 입 열기 전까진 기다리자고 언질을 둔 덕에 최제호도 입 다물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공포의 주둥아리를 막아 놓으니 마음은 한결 편했다.
“형들이 오해하시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정성빈은 비장하게 운을 뗀 것치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저희가 같은 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대표님께서 저한테…… 리더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건 원래 흐름대로 진행된 모양이군.
변동성이 남 부장 기분만큼이나 큰 현재 상황에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뒤이어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성빈은 고개만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설마. 이게 용건이야?’
정성빈 성격에 형들만 불러서 본인의 리더 취임을 축하해 달라고 하진 않을 것 같은데.
옆을 보니 최제호는 아예 얼굴에 ‘할 말은 그게 다야?’라고 적어 놓고 있었다.
스파크 놈들, 나한테 감사하도록 해라. 내가 최제호의 입을 미리 틀어막지 않았더라면 네놈들의 7년짜리 상사를 모시는 자리가 파국이 될 뻔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저게 용건의 전부라면 정성빈이 우릴 부른 이유는 뻔했다.
팀에 연장자가 있는데 자신이 리더를 맡게 된 상황이 면목 없다는 거겠지.
자신보다 연상인 후임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한평산업에도 몇몇 있었다.
동기일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던 나이 차가 승진 이후에서야 와닿는 경우도 흔했다.
‘그래도…… 본인 말고는 리더 할 사람이 없단 생각은 안 드나?’
나는 스파크의 눈부신 면면들을 떠올렸다.
말만 하면 불화를 일으키는 세계제일 주둥이 파이터 최제호를 시작으로.
자체 콘텐츠에서조차 다섯 마디 하면 많이 말한다고 팬들이 날짜를 기록한 박주우와.
마냥 해맑아 보이는 꽃밭 이청현.
매사에 안광이 돌아 있는 맑은 눈의 광인 강기연까지.
누구 하나 대중 앞에서 ‘안녕하세요, 스파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할 만한 놈이 없었다.
전 직원이 다섯 명인데 다섯 명 다 실무만 해서 결재를 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조합이 글러 먹었다는 뜻이다. 정성빈이 없다면 말이다.
“나도 우리 중에 리더를 뽑는다면 네가 제일 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정성빈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형들이 계신데 제가 리더를 맡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너 그렇게 연공서열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니?”
반은 농담이었지만 반은 진심으로 묻는 말이었다.
애초에 연습생 중에서 정성빈 혼자만 극존칭을 쓰는 것도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최제호와 협의만 된다면 빠른 시일 내로 그룹에 반말 사용 제도를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정성빈의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혼자서 정말로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만약 성빈이 네가 사교성 떨어지는 멤버들을 대표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거면 모르겠지만, 나이 때문에 눈치 보는 거라면 전혀 그럴 필요 없어.”
“멤버들이 사교성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정성빈이 손사래를 쳤다.
정말 착한 녀석이다. 난 그 생각 좀 했었거든.
“그럼 고민하는 이유가 진짜 나이 때문이야?”
“대부분의 팀에서 맏형이 리더를 맡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들에 비해 전 통솔력 같은 것도 부족하고…….”
놀랐다. 돌판에서 인성 갑 리더로 평판이 자자했던 정성빈이 이렇게까지 심약할 줄은 몰랐다.
팬덤 사이에서 알려진 학창 시절 정성빈의 일화엔 제법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사교적인 이야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습 생활이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이 낮아지는 모양이었다.
‘그건 좀 마음이 안 좋네.’
한평산업에서 두들겨 맞으며 자존감이 풍화된 나와 달리 얘들은 아직 스무 살도 되기 전인 어린애들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이 팀은 데뷔보다 자존감 회복이 먼저인 것 같았다. 최제호 빼고.
그러나 자존감 지킴과는 별개로 정성빈이 리더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이쪽도 곤란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말단 체질인 날 제외하고서라도.
다년간의 모니터링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스파크 놈들은 정성빈이 없으면 어디 가서 입도 못 열 테니까 말이다.
최애의 분량을 애타게 긁어모으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해서라도 스파크엔 정성빈이 필요했다.
이럴 땐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제 입으로 말하게 하는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성빈아.”
“네.”
“너 말고 우리 팀에 리더를 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내 말에 정성빈이 멈칫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정성빈처럼 생각이 많은 애라면, 못해도 스무 번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봤을 거란 것을.
“상대가 막내여도 진심으로 싸우는 최제호나, 말로 해선 왼쪽 턴이랑 오른쪽 턴을 구분 못하는 내가 리더가 되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왜 가만히 있던 나한테까지 난리야?”
“지금 내 말을 부정하는 거야?”
“하던 얘기 계속해라.”
비단 성격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정성빈이 리더가 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연습을 주도하는 것도 정성빈이었고, 연습생들을 가장 자잘하게 챙겼던 것도 정성빈이었으니까.
그건 비단 천성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행하는 건 감투만 쓴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_절망편.zip’까지 친절히 설명하고 나서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미안하다거나, 동생이 리더가 되어서 형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형…….”
“다른 애들이야 너랑 친구거나 동생이어서 괜찮겠지만, 나중에 최제호가 말 안 들으면 그땐 나한테 얘기해. 내가 대신 대판 싸워 줄게.”
“왜 나만 말을 안 들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정성빈 속 터지게 할 수도 있지.”
“난 권력자에게 바짝 엎드리는 타입이라 그럴 일이 없단다.”
정성빈은 내 말을 농담으로 오해한 건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참나. 이쪽은 진심인데.
내 말엔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으면서도 최제호 역시 본인의 의견을 에둘러서 피력했다.
“애초에 정성빈 말고 딱히 리더 할 사람도 없어.”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그런 말을 안 할 것 같은 사람의 한마디가 더 와닿기도 하는 법.
최제호의 관문까지 넘은 정성빈은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리더 자리 자체에 부담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큰 산은 성적 얘기하면서 넘어간 줄 알았는데. 내가 안일했다.
순위에 대한 문제를 극복한 이후로도 정성빈의 자존감이 계속해서 올라오지 않는 건 곤란했다.
이미 자신감을 잃고 고생 중인 강기연의 사례를 보면 더더욱 그랬다.
나는 앞장서서 연습실로 향하는 정성빈의 등을 보며 부디 이게 내가 데뷔 일정을 앞당긴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니기를, 그리고 앞으로는 제발 별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내 기도는 정확히 3일 만에 개박살이 났다.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는 뜻이다.
* * *
사건은 매니저님에게 핸드폰을 받는 김에 겸사겸사 비밀 유지 서약서를 받아 오면서 벌어졌다.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비밀 유지 서약서가 포함된 사진 찍기
▷ 보상: 경험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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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업무와는 결이 전혀 다른 업무에 의아해하던 참이라고 해야 하나.
‘서류에 장난질이라도 친 건가?’
지금껏 시스템이 아이돌 활동에 득이 되면 모를까 실이 되는 업무를 준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비밀 유지 서약서에 독소 조항이라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고작 독소 조항 몇 개를 놓쳤을 리는 없었다.
‘서약서 자체가 아니라 서약서가 포함된 사진이라는 게 특히나 의심스러워.’
업무 설명만 보면 서약서는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서약서가 정중앙에 오도록 사진을 찍어도 업무가 완료되었다는 안내는 뜨지 않았다.
‘뭐 어쩌라는 거야.’
나는 서약서를 왼쪽 구석에도 놔 보고, 오른쪽 허공에도 둬 보며 스무 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서약서는 끄트머리만 나오고, 서약서 뒤쪽에 위치한 휴게실의 문이 4분의 3 정도 화면에 잡혔을 때.
+
[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5)
▷ 누적 경험치: 60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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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빛과 함께 완료 안내가 나타났다.
‘사진을 이따위로 찍었는데 완료라고?’
나는 사진첩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초점도 애먼 곳에 잡히는 바람에 비밀 유지 서약서라는 글씨조차 보이지 않는 사진이었다.
어찌나 초점이 이상한 곳에 잡혔는지, 휴게실 유리문 너머에 있는 남자와 정성빈이 되레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
나는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눈앞에 있는 휴게실을 응시했다.
정말로 휴게실 안엔 정성빈이 서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도 아는 얼굴이었다.
얼마 전 가이드 녹음 체험에서 불렀던 노래의 주인인 장준후였다.
‘둘이 따로 만날 정도로 친했나?’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쪽만 태평하게 앉아서 남을 세워 놓고 낄낄거리는 한, 친한 사이라는 가정은 집어치워야 한다는 걸.
그런 내 가정에 확신이라도 심어 주듯 장준후가 정성빈의 근처로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이 미친 새X가?’
나는 즉시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쪽을 향했다.
“성빈아, 여기 있었어?”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두 사람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는 장준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선배님이 계신 줄 미처 몰랐던 미숙한 신입처럼 인사했다.
“장준후 선배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십니까!”
“……어어. 못 보던 얼굴이네?”
“이번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김이월입니다, 선배님!”
오랜만에 남 부장 앞에서 기강 잡히던 시절의 발성이 나왔다.
흘깃 바닥을 보자 물이 약간 들어 있는 물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X발, 애가 맞았으면 어쩌려고.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나는 태초의 분노를 간신히 눌러 참고 말했다.
“매니저님이 성빈이를 찾으셔서요. 혹시 하던 얘기가 있으시면 밖에서 기다릴까요? 매니저님에겐 제가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냐, 됐어.”
“감사합니다!”
나는 눈치 없는 새X처럼 해맑게 90도 인사를 한 뒤 정성빈의 팔을 끌어당겼다.
내가 오버하는 거라면 좋겠지만, 만약 장준후가 정성빈에게 꼽이라도 주고 있었다면 정성빈부터 여기서 분리시킬 생각이었다.
“잠깐.”
이대로 우선은 휴게실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장준후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장준후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핸드폰에 닿아 있었다.
“연습생들은 폰 못 가지고 다니지 않나?”
장준후가 삐딱하게 앉은 채 물었다.
나는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저는 사정이 있어서 매니저님 허락하에 쓰고 있습니다.”
그러자 장준후가 나를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가져와 봐.”
장준후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