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2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8화(29/193)
| 28화. 직장 내 괴롭힘 (2)
‘꼴에 트집 잡힐 거리는 꼼꼼하게 없앤다 이건가?’
웃기지도 않았다. 그럼 본인이 행실을 똑바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순순히 핸드폰을 내밀자 장준후가 내게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래 봤자 소용없는데.’
휴게실 입구가 찍힌 사진은 휴게실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모두 지운 상태였다.
내가 이 상황을 알게 한 걸로 그 사진은 역할을 다했으니까.
의도했든 아니든 불법적인 소지가 있는 건 아무리 이득이 뒤따른다 해도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시스템의 의도도 내 생각과 같았던 모양이다. 내가 사진을 다 지운 순간 이런 알림이 떴기 때문이다.
+
[SYSTEM] ‘을’이 ‘직업 윤리’를 준수함에 따라 제재가 면제됩니다.+
업무를 완료했을 때 보상을 주지만 실패해도 제재는 없는 ‘업무’와 달리, ‘직업 윤리’는 준수하지 않을 때만 벌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편법 쓰지 말고 똑바로 활동하란 뜻이겠지.’
한평산업의 말도 안 되는 사내 규칙조차 안 지키면 양심통을 앓았던 나에겐 쓸데없는 규칙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후로도 장준후는 내 핸드폰을 한참이나 붙잡고 뒤적거렸다.
“야, 가져가라.”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무언가가 나오지 않자 찝찝한 기색으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선배님.”
하지만 규칙을 지키는 건 지키는 거고.
“혹시 성빈이가 선배님께 크게 혼날 짓을 했나요?”
잘못을 짚고 넘어가는 건 다른 문제지.
어디서 마흔 살 다 되어 가는 아저씨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를 갈궈.
본인에게도 내 말이 아니꼽게 들렸는지 장준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 그거 무슨 뜻이야?”
“밖에서 잠깐 보이기로는 성빈이가 선배님께 혼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요.”
“형, 그런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정성빈이 내 팔을 붙잡았다.
장준후가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아니라잖아. 어디 가서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선배님이야말로 어디 가서 행동거지 조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뭐?”
내가 한 말은 정성빈이 그쪽에게 혼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장준후가 ‘그렇게 보였니? 그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내가 조심해야겠다.’라고 말했으면 끝날 일이었단 의미다.
‘거기서 발끈해서 상황을 기정사실로 만든 건 본인이지.’
제 발 저리는 속도가 수준급이었다.
아무래도 저 인간, 현명한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았다.
행동거지를 이따위로 하는 시점에서 인간성을 기대하는 것도 웃기지만 말이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남들이 잘못 보고 오해하면 좀 그렇잖아요.”
“너 지금 나 가르치냐?”
“아뇨.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나를 기로 누르려고 하는 듯한 장준후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지금 설마 남 부장에게 단련된 내게 하등 영향이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가?
유감스럽지만 10년은 이르다.
“연습생을 혼내려다 걸린 것도 아니면서 지나가는 사람 핸드폰을 빼앗아 검사하는 소속사에 있어도 될지를요.”
물론 나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나가라고 하면 이쪽에서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무조건 장준후에게 불리해.’
내가 정성빈처럼 UA에서 몇 년 구른 연습생이라면 장준후에게 바짝 길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일단 업계의 대선배이고,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니까.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막 소속사에 들어온 연습생이었다.
연예계보다는 바깥 사회와 더 가깝고, 지금 당장 장준후가 외압을 행사한들 외적으로는 잃을 게 없는 뉴비란 뜻이다.
‘연습생이 자신의 치부를 내부 고발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매장시키려던 유명 가수의 몰락…… 같은 이슈로 뜨고 싶지 않다면야.’
내부 고발자의 신고는 진의와 증거를 끊임없이 의심받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UA에 실제로 소속되어 있었단 사실을 계약서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눈치가 다 뒤져버린 맑은 눈의 신입처럼 굴 수 있는 이유였다.
초면인 사람의 핸드폰을 뒤져 증거까지 인멸할 사람이면 머리가 아주 안 돌아가진 않을 터였다.
심지어 저쪽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다. 진흙탕 싸움이라면 몇 번이나 보고도 남았을 연배였다.
“하, X발…….”
장준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본인이 여기서 나를 이겨 먹어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아마도 본인의 기분이 상했단 죄로 나까지 갈궜다가 내가 모든 걸 폭로했을 때의 반응까지 예상했겠지.
≫ ㅈㅈㅎ UA에서 연생한테 갑질한 거 팩트야?
└ 팩트 맞음 ㅇㅇ 폭로한 애가 인증도 다 함
└ 근데 글만 보고 갑질했다고 하긴 좀…… 일단 중립기어 박음
└ X발 중립기어충들 그냥 반으로 갈라서 양측에 던져주면 안 됨? 맨날 중립기어 ㅇㅈㄹ 할 바엔 뇌를 둘로 미리 나눠주는 게 편할 듯
≫ ㅈㅈㅎ가 대체 누군데
게시글에 다 ㅈㅈㅎ 얘기밖에 없음?
└ 옛날에 반짝 뜨고 바로 퇴물 된 가수 있음ㅋㅋㅋ
└ 이제 막 데뷔 준비하는 애들한테 추해요 아저씨 ㅠㅠ
이것 역시 내가 데뷔하지 않았을 때나 나올 수 있는 온건한 반응이었다.
내가 데뷔를 했다면 ‘노이즈 마케팅이네.’, ‘선배한테 싸가지가 없었네.’하며 말이 많아지겠지만, 그런 가정은 내가 언제든 UA를 나갈 수 있다고 생각 중인 장준후에겐 아무 의미 없었다.
결국 장준후는 내게 입조심하라는 말만을 남기고 휴게실을 나갔다. 어찌나 문을 세게 닫는지, 경칩이 부러지진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형…… 괜찮으세요?”
나와 장준후 사이에 낀 나머지 찌그러진 캔처럼 쭈그러든 정성빈이 물었다.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다행이에요. ……그, 매니저님께서 부르셨다고 하셨나요?”
“아. 그거 휴게실 들어오려고 거짓말한 거야.”
“네?”
“그보다 성빈아.”
“……네.”
“우리랑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
내 말에 정성빈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최제호와 강기연의 불꽃 튀는 기 싸움 이후 두 번째 소집이었다.
* * *
정성빈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덴 옛날부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노력한 시간이 언젠가 자신의 자산이 되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몇 년의 연습생 생활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너무나도 어려운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는.
‘연습생?’
‘그렇긴 한데 얘도 노래를 오래 했고, 정말 잘해. 은이도 인정했어.’
‘형, 내가 연습생이 가이드한 노래 받을 짬은 아니지 않아?’
자신처럼 경험이 없고 풋내기인 사람이 이미 데뷔까지 한 사람의 가이드를 맡게 된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실력이 내보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해서?
‘야. 네가 이따위로 녹음을 했는데 A&R에서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내가 네 가이드 계속 들어 봤거든? 그런데 너 목소리가 막 대중적인 음색은 아니다. 듣다 보면 질려.’
‘너 그룹 짜면 메인 보컬 들어간다며? 네가 메인이면 너희 팀 망하는 거 아니냐?’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정성빈은 복도에서, 로비에서, 장준후를 마주칠 때마다 업계 선배가 아무한테나 해 주지 않는 솔직한 조언을 가장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한 말들은 대개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이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정성빈에게도 장준후의 힐난은 비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정성빈의 ‘연장자에게 깍듯하며 겸손하고 자기 검열을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는 장준후에게 ‘만만한 새X’로만 보였다.
놀림이 조롱이 되고, 조롱이 비난으로, 비난이 욕설로 변하기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낮은 월말 평가 순위가. 칭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 피드백이.
무엇보다 몇 년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부터가, 장준후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이드를 콕 집어 정성빈에게 맡기고, 정성빈이 녹음을 끝내면 장준후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되었을 때.
정성빈은 자신이 정말 무능력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만 하면 인정받는 날이 와. 정말이야.’
자신을 배려해 줄 필요가 없는, 이제 막 들어온 무던한 동료가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기 전까진 말이다.
* * *
연습실엔 침묵이 흘렀다. 코끝이 빨개진 정성빈만 이따금 작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장준후가 인간 말종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장준후 노래 가이드 따러 가선 경험치 받는다고 좋아했던 게 말이다.
그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몇 년 전이면 정성빈은 고작 중학생이었다.
본인이 재기하지 못한 분풀이를 수년에 걸쳐 스무 살이나 어린 애한테 풀었다?
용납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쯤 되자 내 머릿속엔 온갖 상스러운 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XXX가…….’
사람이 할 짓이 있고 못 할 짓이 있지.
스파크 때문에 한 달에 20시간씩 잔업해야 했던 나도 얘들과 동고동락 중인데 지가 뭐라고 그 난리를 쳐.
입조심이고 뭐고 그냥 ‘실례합니다. 장준후 씨 계신가요?’ 한 다음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며 주변에 불이라도 질러 주고 싶었다.
옆에 있던 최제호는 아예 욕을 갈기고 있었다.
“X발, 그 새X 정신 나간 X 아니야?”
“화나는 건 나도 마찬가진데, 애들 앞에서 욕은 하지 말자.”
정성빈의 잘못도 아닌데 연장자 둘이서 되는대로 화를 내 봤자 동생들 눈치 보게 하는 꼴밖에 안 되니까.
나는 화를 눌러 담고 정성빈에게 물었다.
“성빈이 너는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어?”
정성빈이 사과를 받고 싶어 하면 나는 그 인간의 사진이 모든 뉴스 포털에서 모자이크 처리가 될 때까지 공론화 글을 올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지저분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정성빈은 모든 일이 조용히 묻히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선배님하고는…… 지금보다 더 대화를 섞고 싶진 않아요. 해결을 위한 거라고 해도요.”
“그래. 그래도 그 사람하고 계속 뭔가를 같이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 이 점엔 동의해?”
“……네.”
“그럼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2인 1조로 다니자. 하교할 땐 기연이가 조금만 신경 써 줘.”
“네.”
“그리고 어디서 헛소리 듣고 오면 무조건 멤버 두 명 이상에게 얘기하기. 알겠어?”
그 이후로도 정성빈과 장준후를 분리하기 위한 대책 회의는 계속되었다.
“가이드 제안이 또 오면 어떡해요? 회사 내에서 편하게 해결하려고 지금까지 연습생들에게 맡긴 걸로 알고 있거든요.”
“목 터지도록 연습해서 내가 나갈게.”
이청현의 걱정에 내가 손을 들고 자원했다.
이놈들을 사지로 몰아내는 것보단 내 목에서 피가 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장장 30분 동안의 회의를 끝낸 후.
“마지막으로 성빈아, 딱 두 가지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 넵.”
“하나는 절대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고.”
나는 아직 앳된 기가 그대로 있어, 차마 막말을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은 정성빈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동안은 눌러둔 애환이 튀어나올까 봐 정면으로 쳐다본 적이 거의 없던 얼굴이었다.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그 인간이 너한테 못되게 굴었던 증거가 될 만한 거 나한테 다 들고 와.”
시X놈. 이대로 일 잘하는 신입을 뺏길까 보냐.
지금이야 우리가 이룬 게 없어서 복수를 못 하지만.
전도유망한 새싹들을 보호하려는 사회인의 시커먼 마음이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