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29화(30/193)
| 29화. 경쟁사의 등장 (1)
정성빈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도 우리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 해 봤자 내가 퇴사 대소동을 벌이며 ‘저 새X가 죽일 놈입니다!’라고 외치는 게 최대였기도 하고.
‘개판 칠 자신만큼은 충분한데 말이지.’
대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이를 기준으로 다음 사람에게 칭찬을 해 주기로 했다.
자존감이 깎여 나간 서로를 격려해 주자는 취지였다.
기특하게도 ‘그’ 박주우가 먼저 낸 의견이었다.
‘정성빈을 칭찬해 줄 사람이 최제호라는 게 불안하긴 하다만…….’
눈치가 있으면 적당히 내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하겠지.
아, 매니저님에게 핸드폰 반납하러 갈 때 사무실에서 언급을 한번 하긴 했다.
‘매니저님, 저희 회사엔 내리갈굼 같은 거 없죠?’
‘없지. 그런 거 있으면 큰일 나!’
‘진짜요?’
‘당연하지. 연습생 애들끼리도 그런 거 없지 않아?’
‘없죠. 그래도 선후배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게 있진 않나 싶어서요.’
‘기본적인 예의는 중요한데 괴롭히고 이러진 않아. 그랬다간 매장이지.’
이 대화를 나눈 사무실은 매니지먼트 본부가 사용하는 사무실이었다. 듣는 귀만 열 개가 넘는 공간에서 떠들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연예계에서 민감한 갑질 이슈로.
내가 당장에라도 장준후의 일을 찌를 것 같았는지 정성빈의 안색이 창백해지긴 했었지만.
결국 말하지는 않았던 터라, 정성빈도 아무 말 않고 넘어갔다.
지금이야 별 얘기 아닌 것 같겠지. 하지만 언젠간 내가 뜬금없이 떠들었던 이 말의 맥락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안 터지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터지면 좋은 거니까. 일단은 보험 개념으로 들어 뒀다.
그렇게 딱히 희망하진 않았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그룹의 멤버십 트레이닝이 저절로 되고 있는 가운데, 입사 후 처음으로 연습생 전원의 단체 면담이 잡혔다.
본격적으로 데뷔조 육성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 * *
UA의 회의는 한평산업의 것보다 유한 구석이 있었다.
일단 고성과 볼펜이 책상 위를 넘나들지 않는다는 점에서부터 그랬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회의실 풍경은 어떠했는가.
‘누가 대단히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방식 알고 싶대? 편법을 가져오라고, 편법을.’
‘산악회 안 온다는 애들 다 신입 사원이지? 걔네 명단 추려 봐. 아니다, 지금 당장 다 내 자리로 오라고 해.’
‘경영진이 까라는데 어쩔 거야. 다들 사회생활 하기 싫어? 싫으면 사직서 쓰고 다 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갈 걸 그랬다.
그때 나갔으면 적어도 그 뒤로 15분마다 한 번씩 남 부장의 담배에 불을 붙이러 가진 않아도 됐을 텐데.
UA의 건물은 전 구역 금연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만 생각하면 옷에서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전 삶에 비해 훨씬 향긋한 분위기에서, 나는 스파크를 강제로 덕질하는 동안 물리게 들었던 이 그룹의 초기 컨셉을 다시 듣게 되었다.
“매니지먼트 팀에서 너희가 다 냉미남 상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앨범이나 그룹 로고 등에 겨울 소년의 느낌을 많이 낼 생각이야.”
그래서 데뷔곡 뮤비를 잔디가 죄다 얼어 죽은 풀밭에서 찍었던 거고 말이지.
잠깐만.
그럼 왜 그룹 이름은 스파크로 지은 거지?
보통은 팀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이름을 짓지 않나?
2월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김이월로 개명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겨울 소년 느낌을 낸다면서 팀 이름이 불꽃인 건 조금 어폐가 있었다.
“회사에서 우선 생각해 둔 그룹명 후보는 스파크랑 플레이크, 글린트, 플레임 이렇게 네 개야. 아이디어는 언제든 환영이니까 생각나는 게 있으면 거리낌 없이 얘기해도 돼.”
후보군이 하나같이 단순하고 번쩍번쩍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부시고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잊을 뻔했다. 여기 정석 아이돌에 환장한 회사였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이름들에선 심볼도 넣고 싶고 대중성도 넣고 싶으니 죄다 때려 붓고 나중에 정리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래서 기획서는 한 사람이 써야 하는 거다. 작성자가 여러 명이면 내용이 산으로 가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기존의 팀명을 유지하고 싶었다. 스파크가 갈 길은 최대한 그대로 보전해 놓는 게 예의이므로.
그러나 대화는 내 희망처럼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기왕 불꽃 계열로 갈 거면 스파크보단 플레임이 좀 더 강한 느낌이 나서 괜찮지 않나요?”
“강하게 나가려면 블레이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인 그룹을 향한 직원들의 열정이 그룹명에서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도 이성적인 사람은 있었다.
“그, 겨울 소년 컨셉으로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지만 군중 속에서 지성인은 늘 고독한 법.
나를 포함한 연습생들은 그룹명이 타오르는 불기둥이 되어 가는 꼴을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으로 논의 중인데 의견 있니?”
대표가 물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숙소에서 논의 후 매니저님 통해 바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영양가 없는 논의를 끝내고 본다!
내 말에 대표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성빈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 생각에도 그룹 이름으로 불 쇼를 벌이는 모습은 좀 아니었겠지.
그 뒤로는 통상적인 주의 사항 안내가 이어졌다.
“너희 성실한 거야 다 아니까 ‘연습 열심히 해라.’ 이런 말은 많이 안 할 거야. 대신 행동 하나하나는 전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해.”
이 부분은 나 역시 전적으로 대표의 의견에 동의했다.
박주우가 선배 그룹한테 인사할 때 표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수업이 좀 더 추가될 거야. 외국어랑 피트니스를 생각 중이긴 한데, 뭐부터 한다고 했었지?”
“외국어부터요, 대표님.”
피트니스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외국어부터?
말도 안 된다. 청소년기에 만들어 둔 근육은 10년을 간단 말이다.
스파크가 당장 해외 진출을 할 것도 아니었다. 얘네가 일본 데뷔를 5년차 때 했는데 외국어는 무슨.
게다가 스파크 멤버는 전원 성장기였다. 지금을 잘 활용하면 과거보다 몇 cm는 더 클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골격을 방치하는 건 명백히 손해였다.
‘어차피 이청현이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외국어는 크게 급하지 않아.’
내 기억으론 정성빈도 일본어를 꽤 잘했었다.
지금이야 일본어를 아직 안 배웠을 수도 있다지만, 활동기에 능숙하게 사용했던 걸 보면 본인이 언어를 익히는 데 재주가 있는 걸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내가 ‘사무직이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문장 100선’이라도 선보이면 그만이다.
내 인생에서 영어 공부는 졸업 직전에 점수 따려고 준비했던 토스가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영어랑 일본어는 기본 회화랑 읽고 쓰는 걸 목표로 하자. 자세한 건 나중에 주경 씨가 알려 주고.”
나는 마음속으로 신속하게 백 번 정도 심호흡을 했다.
윗선이 정한 일에 반박이라니, 한평산업이었다면 당장에 서류철이 날아왔을 일이다.
하지만…….
‘나 하나 된통 깨지고 마는 거면 당연히 평균 신장을 취해야지.’
일렬로 선 멤버들 사이에서 혼자만 푹 꺼져 있던 강기연까지 떠오르자 사명감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대표님!”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심호흡하고 대표를 불렀다.
먼 훗날 모두가 날 무임승차러라고 비난해도 강기연 너만은 그래선 안 된다.
“응?”
“죄송하지만 헬스 수업 먼저 들을 순 없을까요?!”
이건 부탁이 아니다. 당장 허락해.
이게 다 귀댁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란 말이다.
나의 비장함이 전해졌는지 대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월이 헬스가 하고 싶었니? 저렇게 하고 싶어 하는데 피트니스를 먼저 끊을까?”
“한 달 차이를 두고 시작할 거라 헬스 먼저 한다고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
“그럼 그렇게 하자. 나중에 비용 처리한 것만 보고해 줘.”
“네!”
그렇게 헬스 쟁취를 위한 이의 제기는 날아오는 물건 하나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몸 만드는 것보단 비용 처리 작업이 내 적성에 맞을 것 같지만.
* * *
헬스 수업을 따낸 것과 더불어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형! 형!”
“왜?”
“저 곡 완성했어요!”
이청현이 몇 주간 매달렸던 곡을 완성한 것이다.
작곡에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지는 모르지만, 창작물 하나를 처음 만드는 데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대단하긴 한 것 같았다.
심지어 이청현은 과거에 작업했던 기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노력을 재능이란 말로 함부로 재단할 순 없겠으나, 정말이지 굉장한 능력이었다.
“전하고 많이 달라졌어?”
“거의 비슷한데 끝만 조금 고쳤어요.”
그러면서 이청현이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기연이 물었다.
“뭐야. 형은 이전에도 들은 적 있어요?”
“수정 전 거? 응. 청현이가 들려줬지.”
“이청현 뭐냐? 왜 나한텐 여태 안 들려줬어?”
“우리 강기연 씨에겐 완성되면 들려주려고 했지!”
이청현이 삐졌냐며 강기연의 얼굴을 수제비 반죽처럼 주물럭거렸다.
트러블 생길지도 모르니까 얼굴엔 손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아주.
그나저나 강기연도 노래를 못 들어본 건 의외였다. 이청현의 성격이라면 다들 모여서 내 노래 좀 듣고 가라고 하루에 두 번씩 말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A&R 팀 말고는 여태 아무한테도 안 들려준 건가?’
이청현은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노트북에 꽂은 유선 이어폰을 강기연에게 내밀었다.
“어때?”
“기다려 봐. 아직 13초밖에 안 됐잖아.”
강기연이 턱을 괴고 노래를 듣는 동안 이청현은 옆에서 비둘기 떼에 다가가는 어린애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약 4분이 지난 뒤.
“좋네.”
“진짜?!”
이청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강기연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하지만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 진짜로.”
그러더니 강기연은 소파에 누워 졸고 있는 최제호에게 물었다.
“형, 이따 저녁에 안무 하나 같이 짜 보실래요?”
“뭘로?”
“이청현 노래로요.”
전엔 서로 허공에서 눈빛만 닿아도 쌍심지를 켜더니. 굉장한 성장이었다.
나는 대단히 감동한 나머지 둘의 관계성을 ‘사포둥이’에서 ‘사랑둥이’로 바꿔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2초 정도.
그렇게 댄스 라인 둘이서 건설적인 연습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이, 취침을 위해 노트북을 정리하던 이청현이 큰소리를 냈다.
“어?”
얼핏 보인 노트북의 화면 위에는 수년간 변하지도 않는 분홍빛의 연예 뉴스 UI가 띄워져 있었다.
“왜 그래?”
물을 마시던 정성빈까지 이청현의 옆으로 다가갔다가 기사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MYTH에서 보이 그룹을 낸다네요.”
그렇다.
향후 3년간은 신인 보이 그룹 원탑을 찍을 확신의 1군이자.
컴백 시기를 지지리도 못 잡는 스파크와 몇 년간 지긋지긋하게 성적 싸움을 벌이는 그룹.
심지어는 그 싸움에서 매번 승리를 가져간, ‘파르테’의 데뷔 계획이 공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