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2화(33/193)
| 32화. 추노 (2)
이후로도 30분을 더 기다려 보았지만 이청현은 오지 않았다.
녀석의 심경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해지는 시점이었다.
‘어떻게 한 놈도 그냥 넘어가지를 않냐.’
새삼 사춘기의 고등학생들을 몇십 명씩 졸업시키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정성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청현이 갑자기 연습을 빠진 이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상으로도 이청현이 연습생 때 탈주했었다는 썰은 들은 적이 없다.
최제호와 강기연의 다툼이나 정성빈의 갈등이야 원래 일어날 일이 앞당겨진 것이라지만, 없던 사건이 생긴 건 이번이 최초였다.
‘이전과 달라진 사건에서 이청현이 연관된 거라고 하면 데뷔곡이 바뀐 것밖에 없는데.’
다른 연습생들과 마찬가지로 핸드폰이 없을 이청현이 하교 중에 데뷔곡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청현의 자작곡 외에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니면 이 자식…… 눈치를 챘나?’
겉으로는 상당히 맹탕처럼 보이지만 이청현은 제법 쓸 만한 눈치를 갖고 있었다.
과거 방송에서 최제호나 강기연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때마다 영혼을 끌어모아 수습하던 녀석이다.
다시 말해, 상황상 본인이 작곡한 노래가 데뷔 타이틀로 쓰일 수 있겠다는 가정을 완료했을 수 있단 뜻이었다.
자작곡이 수록곡으로 실릴 땐 아무렇지도 않아 했던 애가 타이틀로 선정되는 것에 대해선 심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전보다 더 기가 막힌 노래를 만들어 놓고?
그렇다면 이청현이 튄 이유는 안 봐도 뻔해지는 것이다.
‘눈에 띄고 싶진 않은 거지.’
정확히는, 본인이 전면에 나서고 싶지 않은 거다.
데뷔 이후 스파크 내 카메라 담당이라 불릴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것은 역시 서비스였나 보다.
팀에서 예능 담당 멤버라는 포지션을 맡게 되고 연차가 쌓이면서 갖춰진 모습일 수도 있고.
간혹가다 있더라. 일은 잘하는데 티를 안 내는 사람.
한평산업에도 그런 숨은 공로자들은 심심찮게 있었다.
티를 안 내는 이유도 다양했다.
낯을 가려서,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을 너무 오래 듣고 자라서.
아니면 정말 일만 하느라 성과를 챙길 정신이 없어서.
그러면 남 부장 같은 족속들이 그들의 성과를 쏙쏙 빼먹고 승진을 하는 것이다. XXX들.
어쨌든. 지금의 이청현은 고등학생이었다.
어쩌다 처음 만들어 본 노래가 타이틀이 된다는 데 부담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했다.
‘그래서 새 업무가 그 꼴이었군.’
데뷔곡을 확보하라는 건 요컨대 도망간 이청현을 설득하라는 뜻이었나 보다.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하고 싶진 않았으나 이청현의 노래는 전처럼 수록곡으로 두기엔 지나치게 아까웠다.
정성빈의 정서적 방황도 그렇고, 뭔가 작정하고 꼬여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화약과 연결된 도화선에 불이 붙었는데 그 뒤를 쫓아가며 재만 치우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은…… 잡으러 가야겠네.’
나는 연습실 소파 위에 개어 놓았던 운동복 상의를 집어 들었다.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야, 걔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나가게?”
“응, 잘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년 전, 나는 남 부장이 임원진들과의 회식 자리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넥타이를 찾아 술집을 헤맨 적이 있었다.
단서라고는 회계 팀에서 받아 온 법인 카드의 결제 내역과 남 부장이 앉았다던 자리의 분위기 정도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그날 남 부장이 분실했던 넥타이를 찾아냈다.
강남 일대의 무수히 많은 술집 의자들 밑에서 말이다.
과정까지 떠올렸다간 눈물이 날지도 몰라서 관뒀다.
‘검정 민무늬 넥타이도 찾았는데 사람이라고 못 찾겠어?’
고등학생인 이청현이 움직여 봤자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을 게 분명했다.
날 제외한 연습생들 모두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니저님에게 받아 온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이청현네 학교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과 해당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까지, 모조리.
다음으로는 내가 퇴사하고 싶을 때 부동산을 알아봤던 기준을 차근차근 되짚었다.
‘제일 중요한 건 도망치고 싶은 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느냐, 지.’
퇴사하면 한평산업이 있는 쪽으로는 주차도 하지 않을 거라며 진절머리를 냈던 동료의 말에 얼마나 공감했던가.
나는 종점이 이청현의 고등학교와 UA의 연습실에서 먼 거리순으로 다섯 군데를 추렸다.
그다음 번화가나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를 제외했다.
이전에 이청현이 팬 사인회의 포스트잇에 답변했던 걸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청현이에게 자유로운 휴일이 주어진다면
사람이 많은 곳을 편하게 돌아다니기 ( ) vs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쉬기 (○)
이청현이 선택지 밑에 정갈한 글씨로 ‘나중에 힐링 여행지 추천해 줘요!’라고 적었던 것까지 기억난다.
안 그럴 것 같이 생겨서는 고민이 많으면 사색에 잠기는 편이었나 보다.
게다가 녀석은 곧 데뷔를 앞둔 연습생 신세다. 엄한 곳에 얼쩡거렸다가 구설수에 오를 만큼 멍청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포털 사이트에 ‘서울 외곽 산책로’를 검색해 최종적으로 어느 곳의 추천 글이 가장 많은지를 확인했다.
PPT도 많이 안 만들어 봤다는 놈이 검색을 잘했을 거 같진 않으니까.
기껏해야 학교에서 친구들 핸드폰을 잠깐 빌려 검색했을 테니 고민할 시간도 많지 않았겠지.
나는 인플루언서 추천 글이 가장 많이 떠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했다. 버스로 한참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놈을 잡으면 반드시 근무지 무단이탈에 대한 책임을 물으리라.
나는 굳게 다짐하며 매니저님에게 이청현을 데려오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물론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교통 카드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청현을 찾는 데 들어간 비용도 UA에 청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 * *
이청현은 벤치에 앉은 채 무릎만 움직여 두 다리를 번갈아 흔들었다.
발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발밑으로 보이는 경치는 너무나도 멀어서, 마치 다른 공간인 것만 같았다.
한평생 성실하게만 살아오신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흠잡을 곳 없는 가정 교육을 받으며 자라 온 이청현은 그 흔한 학원 빼먹기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무려 이청현의 두 번째 일탈이었다.
첫 번째는 강기연과 연습실 대신 동네 놀이터나 다녀온 게 전부여서 혼나지도 않았지만.
데뷔조까지 된 마당에 이래서야, 크게 혼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강기연도 이런 기분으로 평가 날마다 산책을 하는 건가?’
동갑내기 친구가 중요한 국면에서 긴장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이청현은 화장실 한 칸에 들어앉아 분을 참던 강기연을 끌고 나와 친구의 머리가 식을 때까지 한참 동안 함께 바깥을 돌아다녔었다.
강기연의 불안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청현은 긴장이라는 걸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답답해한 나머지 숨이 막혀 가는 친구를 데리고 무작정 나온 것뿐이었는데.
이청현은 그 긴 외출의 끝에 자신의 도망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언제나 강기연과 함께였던 것과는 달리 오늘의 이청현은 혼자였다. 그리고 막힌 듯 응어리진 마음을 산책으로 풀지도 못했다.
내려다본 손목시계는 연습실에 갈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나 지난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습실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갈 수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연습실에서 어떤 불편한 소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예상이 김칫국이길 바랄 정도였다.
이청현에겐 ‘이번 일은 흑역사니까 다들 어디 가서 얘기하기 없기예요!’라며 민망한 척을 잔뜩 하고 넘어갈 뻔뻔함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청현은 자신이 보편적인 수준에 비해 눈치가 빠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곡이 그룹의 데뷔 타이틀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건 룸메이트인 형이 핏발 선 눈으로 기획안이라는 걸 쓸 때부터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동료의 열정을 믿었다기보단, 동료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설득력 있는 문건이 나온 뒤로는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커리큘럼이 갖춰지지 않아 데뷔조가 정해진 뒤로도 수업을 더하고 빼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소속사가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컨셉을 버릴 것 같진 않았다.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아이돌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자체 제작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 또한 회사 입장에선 아까운 일이었다.
이청현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수긍했다.
하지만…….
‘그러다 망하면 어떡해.’
이청현의 상식으로는 고등학생이 만든 노래를 타이틀로 쓴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모든 부분을 자신이 만든 곡을 쓴다는 건 랩 몇 마디를 책임지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하물며 그 노래로 데뷔를 할 사람들은 그간 이청현이 옆에서 지켜봐 온 멤버들이었다.
모두가 데뷔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 왔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만큼 이청현에겐 동료들이 더 멋진 곡으로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고민은 이청현이 제 노래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끝날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한심하게도 이청현 본인은 어른의 이야기를 거절하는 것을 대단히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청현이 부모의 의사에 반했던 것 역시 아이돌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런 이청현에게 가족보다 멀고 어려운 어른의 집합체이자, 객관적으로 갑에 위치해 있으며, 본인의 진로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속사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속사에 자신보다 훨씬 오래 있었으며, 연습생들의 리더 격이었던 정성빈조차 같은 회사의 선배 가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단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이청현이 어른 사회에 반기를 들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망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청현의 눈앞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동시에 서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역시 여기 있었네.”
익숙한 음성에 이청현이 고개를 들었다.
역광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음산해 보이는, 그의 동료이자 룸메이트가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