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3화(34/193)
| 33화. 추노 (3)
이청현은 소스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찾아왔지?’
이청현은 자신이 제때 귀가하지 않으면 찾을지도 모르겠거니 생각했다. 생각만.
하지만 설마 잡으러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연락 한 통 없이 어떻게 사람을 찾아낸단 말인가.
더욱 무서운 것은 그를 발견한 김이월의 덤덤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역시 여기 있었다고?’
그 말은 김이월이 이청현을 찾아낸 게 우연이 아님을 의미했다. 그 점이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금방이라도 ‘형 혹시 연습생 하기 전에 흥신소에서 알바한 적 없어요?’라고 물으며 분위기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러진 못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김이월의 표정이 단어 그대로 흉흉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온 동료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스산하다고 해야 할지 냉랭하다고 해야 할지.
혹은 그 둘을 합친 것처럼 냉기가 줄줄 흐르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 이 형 보통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때의 김이월은 최제호를 제외하면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할 만큼 위압감이 있었으니까.
그나마 김이월이 겉보기와 달리 요상한 성격인 게 접근성을 낮춰 주었을 뿐, 김이월과 일대일로 직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인 강기연이 이 형과 매일 자율 연습을 하는 게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이청현에게. 자신 때문에 버스로 1시간이나 걸리는 이곳까지 찾아온 김이월과 마주하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데뷔조에까지 앉혀 준 회사에 일언반구도 없이 도망친 자신.
돌아가면 마주쳐야 할, 자신의 초라한 첫 창작물이 데뷔작으로 논의되는 상황까지.
이청현에게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끝나지 않는 시험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청현은 그대로 도망치길 선택했다.
잡히면 죽는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면서.
“이청현!”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청현은 속으로 ‘미안해요, 형!’이라고 외쳤다.
그답지 않게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연습생 중 체력이 가장 좋은 김이월이 자신을 잡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무작정 등산로를 뛰어 올라간 이청현은 20분 만에 산 중턱의 약수터에서 팔뚝을 붙잡히고 말았다.
팔을 틀어쥔 악력이 얼마나 센지, 이청현은 자기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청현아.”
동시에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김이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면 지금의 호명에는 분노, 오직 분노뿐이라는 게 절실히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이청현이 ‘나는 턱 밑까지 숨이 찼는데 저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같은 생각을 하려던 때였다.
좀 전의 악력이 최대치가 아니었는지, 김이월이 이청현의 팔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물었다.
“아이돌이 장난이야?”
김이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청현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 * *
‘이 자식 표정이 왜 이래.’
나는 드디어 눈앞에 붙잡아 놓는 데 성공한 이청현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남은 진지한데 정작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나 하고 있었다.
‘지금이 얼마나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는지 모르나?’
모르니까 저렇게 멀뚱한 표정이나 짓고 있지.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래도 위 보호제를 다시 챙겨 먹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침착하게 ‘심신의 평화가 필요할 때 떠올리는 풍경’ 30선을 생각하며 이청현에게 물었다.
“금덩어리 같은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산에서 뛰어다녀?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앞으로 네 고화질 사진 한 장에 울고 웃으며 밥 안 먹어도 배불러 할 팬들 생각은 안 해?”
저런 얼굴을 가진 이상 이청현은 제 얼굴의 파급력을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외모 지상주의자가 아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파크가 사고 쳐도 이청현 얼굴 봐서 참는다는 댓글이 얼마나 많았는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청현의 얼굴을 봐서 스파크에 터진 논란을 참아 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팬의 발목은 한 번이라도 잡아 준다는 점에서, 이청현의 얼굴을 보존하는 건 곧 팀을 위한 일이라고 봐야 했다.
나는 울화통이 터지려는 걸 참기 위해 심호흡을 세 번이나 해야 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구는 무탈하게 데뷔 한번 해 보겠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대가리만 굴리고 있는데.
이렇게 주변에서 협조를 안 해 주는 기분은 남 부장이 뜬금없이 내 자리만 화장실 앞으로 옮겼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눈앞의 이청현이 아직 미성년자이며 태풍의 눈 속에서 충분히 심란할 수 있는 상황임을 상기하고자 애썼다.
그러자 들끓던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제가 도망쳐서 화가 난 건 아닌 거……죠?”
“이미 잡았는데 도망친 걸로 왜 화가 나?”
한평산업에서 몇 년이나 살아남은 내게 이 정도는 뺑이 친 축에도 못 꼈다.
“화가 안 난 건 아냐. 끽해야 먹던 밥을 뺏긴 수준 정도?”
“쫄면이 아니라 밥 정도라 다행이네요…….”
“내가 꼴받은 부분은 네가 안전 장비도 없이 산에서 뛰어다녔다는 거야. 네가 순순히 따라오기만 했어도 우리는 수평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고.”
흥분해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점을 후회하려던 찰나 이청현이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기가 팍 죽은 사과였다.
가까이서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얘가 이럴 애는 아닌 것 같았는데. 심적으로 정말 단단히 궁지에 몰린 모양이었다.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는 쪽이 좋겠지.’
가뜩이나 건장한 성인에게 압박을 당했던 정성빈의 일을 알게 된 뒤에 애를 다그치는 꼴이 되자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아무리 이쪽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한들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 차를 의식하지 않기는 어려운 법.
결국 나는 꾹 참고 먼저 분위기를 환기하기로 했다.
“아니야. 네가 혼자 있고 싶을 거 알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찾으러 와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걱정돼서 온 거니까 너무 거북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말에 이청현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로 거북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혼나는 분위기가 싫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듯했다.
“딱 30분만 더 있다 가려고 했는데. 들켰으니 어쩔 수 없네요. 아쉽다 아쉬워!”
그러더니 이청현은 벤치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그럼 30분 채우고 가든가.”
“네?”
“자율 연습 더 하고 가면 되지. 어차피 늦은 거 계획한 만큼 땡땡이치고 가라고.”
나는 주변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이청현이 앉았던 곳 옆자리에 앉았다.
이청현도 나를 곁눈질하며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눈치를 그렇게 봐?”
“연습 째다 걸렸으면 당연히 눈치 봐야죠.”
“그렇게 눈치 볼 거면서 연습을 째? 너는 괘씸죄 추가야.”
이청현을 쳐다보자 이청현이 침을 삼켰다.
나는 시선을 최대한 산 중턱 밑에 펼쳐진 도심지 어딘가에 두며 물었다.
“그렇게 좋은 곡을 써 놓고도 걱정이 돼?”
그러자 이청현이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여기에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거친 과정을 일일이 이야기할 필요성이 느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그게 이청현에게 중요한 이야기일 것 같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신 나는 이청현이 제일 고민하고 있을 듯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성적이 안 나오면 어떡할까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건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냐.”
“네?”
“음원이랑 음반 시장의 차이도 있고, 그룹 인지도도 중요하고, 홍보랑 음방 노출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수십 개인데 그 책임이 작곡가한테만 돌아갈 리가 없잖아.”
이는 이청현도 머리로는 동의할 이야기였다. 마음이야 다른 문제겠지만.
뛰어난 멤버들이 아무리 좋은 컨셉을 들고 와도 곡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어필조차 할 수 없다는 건 수많은 사례로 증명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청현 본인은 어릴 땐 음악이면 음악, 공부면 공부를 놓치지 않았던 녀석이다.
이렇게 뭐든 잘해 온 사람 중에선 성과 압박을 느끼는 이가 적잖이 있다.
실패해 본 적이 없으니 실패하는 게 두려운 것이다.
평소엔 한껏 들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남 눈치를 잔뜩 보거나, 잘한다고 이미 인정받은 걸 내보이는 덴 스스럼없으면서 본인이 도전하는 분야에서는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다.
그 모습만 봐도 이청현의 성향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신경 쓰이겠지. 그런데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걸 누구 한 명의 책임으로 돌리진 않을 거야. 난 누가 독박 쓰는 건 용납 못 해서.”
말을 하면서도 질색이라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주름이 늘어 봤자 에스테틱 숍 예약과 함께 정산에서 까일 돈만 늘어날 것이란 생각에 서둘러 미간을 폈다.
“어렵네요. 얼마 전까진 형한테 진도 얼마나 나갔는지 대답할 생각만 하면 됐는데.”
“뭐, 정 걱정되면 진도 확인할 때처럼 집요하게 피드백 회의를 열어 줄 수도 있어.”
“와. 상상만 했는데 벌써 기가 다 빨리는 기분…….”
이청현이 양팔을 쓸어내렸다.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부정적인 평가에 엄청 약한가 보네.’
작업물 들고 A&R 팀에 갈 때까지만 해도 이청현은 그런 데 거부감이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 창작자 입장에서 평가를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살면서 호평만 받는 사람은 없다.
자연히 인간은 적어도 한 번은 지적이나 비판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청현에겐 이 ‘비판’이 상당한 영향을 주는 듯했다.
남들이 알면 말 그대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고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천차만별인 법이니까.
구더기가 몸서리쳐지게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청현에겐 좋지 않은 평가가 그런 존재일 수도 있는 거겠지.
그쯤이야 아주 이해하지 못할 감정도 아니었다.
“애초에 나나 애들이 전문가도 아니고. 기껏해야 감상 얘기하는 정도일 텐데도?”
“그렇……긴 하죠. 음.”
이청현의 얼굴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청현은 그러한 기색을 곧바로 숨겼다.
나는 여전히 시선을 발밑에서 제일 높은 건물 꼭대기에 두고 말했다.
“기 빨릴 게 뭐 있어. 늘 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