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4화(35/193)
| 34화. 추노 (4)
이청현은 다섯 명의 연습생 중 가장 연습 기간이 짧았다.
최제호나 강기연처럼 원래 춤을 췄던 녀석도 아니었고, 정성빈이나 박주우처럼 일찍부터 노래를 배운 것도 아니었다.
이청현이 가진 재주라곤 대중음악과는 정반대에 있는 클래식, 그것도 피아노 연주가 다였다.
“너, 저번 평가랑 이번 평가 둘 다 3등은 했었지?”
그러나 이청현은 언제나 평가에서 중위권, 때로는 중상위권을 차지했다.
“꼴찌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연습 벌레들 사이에서 네가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재능과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
“요행으로 된 걸 수도 있죠.”
이청현은 바로 반박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언제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거야. 그걸 스포츠에선 에이스라고 하고 조직에선 기둥이라고 하지.”
정성빈과 이청현이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심적으로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둘에게 필요한 말은 크게 달랐다.
정성빈에게 위로가 필요했다고 한다면, 이청현에게는…….
“너. 저번에 왜 내가 강기연한테는 밤에 자라고 하면서 너한텐 곡 쓰라고 하냐고 물어봤었지?”
“그랬죠.”
“너한테 기대하는 게 있어서 그래.”
일종의 확신을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난 네가 하면 할 수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거든.”
산속이어서 그런지 격려만큼이나 간지러운 바람이 불었다.
“뭐, 비평 듣는 게 싫으면 ‘칭찬 가득 청음회’라도 열어 줄까? 우리끼리는 칭찬만 해 주는 거야. 동기부여 되게.”
“아뇨, 그건 그것대로 엄청 부담스러운데요!”
“사회 나가면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어. 기회를 소중히 여겨라.”
“형은 왜 그렇게 매번 사회의 쓴맛을 다 본 사람처럼 얘기해요?”
“나도 단맛만 보면서 살고 싶었는데,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더라고.”
사실은 네가 원하지 않으면 자작곡을 타이틀로 쓰는 건 보류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곡을 쓴 본인이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 했다지 않은가.
나라도 내가 입사 초기에 만들었던 PPT가 평생의 포트폴리오로 남는다면 세숫대야에라도 코를 박고 싶을 거였다.
이청현 또한 그런 상황을 쉽게 예상했겠지.
여러 상황 때문에, 무엇보다 내 고집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건 정말로 유감이었다.
그래서 사과를 해야 할지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과를 했다간 ‘네 곡이 아직 성에 안 찰 텐데 타이틀로 밀어붙여서 미안해!’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아 관뒀다.
‘대신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면 되지.’
다운로드한 파일을 찾지 못하는 인턴에게도 ‘열심히 하는 자세가 보인다’며 칭찬했던 나다.
그 경험을 살리면 1일 30 칭찬까진 가능할 것 같았다.
한참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잘만 앉아 있던 이청현이 벌떡 일어났다.
이청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왜 그래?”
“혀…… 형. 저 아까 거기 밑에 가방 두고 온 것 같아요.”
“가방? 이거?”
그제야 나는 이청현을 따라 뛰기 직전에 집어 들었던 가방을 기억해 냈다.
이청현을 따라잡고 나선 급한 대로 벤치 옆에 내려놓았는데 이청현 쪽에선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헉. 그거 언제 챙겼어요?”
“너 도주할 때 들고 쫓아왔는데.”
“그럼 그 가방을 들고 산을 뛰어오른 거예요?!”
“그래 봐야 등산로잖아.”
네가 주말마다 서울 시내 산 다 돌아봐라. 이게 어렵나.
나는 흙먼지를 턴 다음 이청현의 품에 곱게 가방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청현의 양쪽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청현아.”
“네?”
“내가 널 찾아 버스를 1시간 타고, 이렇게 가방까지 챙겨 왔는데 내 노고를 생각해서 나한테 꼰대 발언 한 번만 할 기회를 주지 않을래?”
“뭔……데요?”
“별건 아니고. 나는 여섯 명 전원이 무탈하고 멋지게 데뷔하는 걸 보고 싶거든.”
나는 이청현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참기 위해 기를 쓰고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날 올려 보는 이청현의 표정은 점점 떨떠름해져 갔다.
“그러니까…… 고민을 하든 삽질을 하든 웬만한 일은 ‘숙소에서’ 해결하자. 알았지?”
사람 발품 팔게 하지 말란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는지 이청현이 격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랬는데 또 가출하면 그땐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그렇게 나는 이청현과 30분을 마저 채우고 다시 먼 길을 돌아와 연습실로 복귀했다.
성실 근무가 보장된 작곡가를 잡아 와야 한단 생각에 눈이 멀어 무작정 뛰쳐나온 만큼 주의를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정성빈이 눈물의 읍소를 했다나. 역시 근면한 녀석일수록 회사의 신임을 받는 법이었다.
내가 한 번만 봐 달라는 소리나 했다간 이미 계약 해지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을 거다.
아, 예상치 못했던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최제호와 강기연이 처음으로 함께 짠 댄스 브레이크 안무가 완성된 것이다.
“아직 선생님들께 보여 드리진 않았는데…… 대충 이래.”
심드렁한 말과 함께 댄스 라인 두 명이 보여 준 안무는 문자 그대로 대단했다.
뚝딱이는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하는 듯한 신들린 움직임에 나는 박수를 보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이청현은 연신 굉장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제 노래로 두 사람이 안무까지 짜 준 게 정말로 기쁜 모양이었다.
데뷔곡 확보 업무가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떴기 때문이다.
+
[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10) 지급
▷ 누적 경험치: 80
▷ 누적 포인트: 0
+
이청현은 자기 곡으로 데뷔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또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시스템 너머로는 다시금 활기찬 웃음을 되찾은 이청현이 강기연 옆에서 방방 뛰면서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박이다! 그런데 이거보다 더 멋있게는 못해?”
“네가 앞에서 텀블링 두 바퀴 돌면 될 듯.”
“그럴까? 내가 한 바퀴까진 돌 수 있거든? 오늘부터 특훈 간다.”
설마 그 텀블링을 여섯 명 다 같이 하자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얼마 전까지 시렸던 무릎 관절이 다시 아파 오는 기분이었다.
* * *
회사의 상황이나 홍보 방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돌 연습생들은 데뷔 전부터 매체에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광고라든가 선배 가수의 백댄서로 나와 일찍부터 얼굴을 알리는 것이다.
일례로 이청현의 경우 데뷔 전 한솥밥을 먹는 선배 가수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장준후 님 뮤비에서 청현이가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아.”
그게 장준후 뮤비였다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가이드 딴 게 얼마 전이니까 뮤비 찍을 시기가 되긴 했다만.’
그 새X 뮤비 따위 알 바인가?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뮤비 출연으로 쌓을 수 있는 인지도가 필요한 거라면 차라리 내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뛰어서 그 돈으로 강남역에 애들 사진을 거는 게 나았다.
마음 같아선 ‘그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일에 애들 손 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깽판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해당 안건은 동료들과 사전에 합의안은 도출하고 칼춤을 춰야 할 것 같아 우선은 참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매니저님이 연습실을 나가기 무섭게 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당사자인 이청현이 억지웃음을 짓는 걸 제외하면 우리 다섯 명의 표정은…… 정말로 좋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주의인 정성빈조차 안색이 나빴으니 말 다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물꼬를 텄다.
“일단 나는 미튜브 조회 수 6만 회가 주는 이득에 비해 이청현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봐.”
“왜 하필 6만 회예요?”
“장준후 뮤비 평균 조회 수가 그 정도쯤 됐던 걸로 기억하거든.”
데뷔도 하지 않은 연습생이라면 6만은커녕 600의 조회 수도 아쉬워해야 했다.
하지만 고작 그걸 위해서 데뷔도 안 한 애 멘탈을 가루로 만드는 게 더 손해였다.
‘역시 야간 알바를 뛰어서 강남역에 광고를 걸어야…….’
진지하게 이 근처에 편의점이 몇 개나 있었는지를 떠올리고 있는데 정성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차라리 선배님이랑 안면이 더 있는 제가 간다고 하는 게…….”
“자. 다음으로 의견 낼 사람?”
더 들어 볼 필요도 없는 의견이라 잘라 냈지만. 저게 말이야 남 부장 개소리야.
멤버를 감싸려는 태도가 갸륵하다는 건 인정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정성빈을 보내는 건 고려할 여지도 없는 사안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지.’
나는 구부정하게 앉아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최제호를 보며 말했다.
“최제호, 네가 가야겠다.”
“나?”
그럼 내가 가리?
“애들을 보낼 순 없잖아. 그렇다고 우리한테 싫다고 말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녹음기라도 사서 잘 챙기고 있을게요! 저는 성빈이 형만큼 그분이랑 접점도 없었으니까, 다들 너무 걱정 안 해도…….”
“아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너희가 나가고 말고를 고민해야 할 일조차 아니야.”
그리고 현실이 얼마나 빡센데.
아무리 녹음기를 준비하려고 해도 촬영이 시작되면 스타일리스트부터 촬영 감독까지 모든 스태프가 옷 핏이든 행동이든 주시할 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최악의 경우 녹음기를 들키기라도 한다면 ‘데뷔도 안 한 놈이 선배님이랑 일하는 곳에 이상한 거나 들고 다닌다.’라며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분명했다.
‘대비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에 애들을 어떻게 보내냐고.’
애들을 제외하면 남는 사람이라곤 최소한 스무 살은 되었으며 어디 가서 쉽게 당하고 다니진 않을 최제호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제호는 썩 내키지 않는 눈치로 말했다.
“네가 가면 되잖아.”
“내 얼굴로 뮤비 찍고 싶다고 지원할 순 없잖아.”
“그…… 얼굴만 보면 형들 둘이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요.”
가만히 앉아 있던 박주우가 전혀 공감 가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귀담아듣진 않았다.
“회사는 뭐라고 설득하게요? 명분도 없이 다른 연습생이 나간다고 하면 안 들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나마 강기연이 이성적인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이미 대응책을 생각해 둔 뒤였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가서 얘기할게.”
“형이요?”
“응. 왜 이청현을 지목했는진 대충 알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