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5화(36/193)
| 35화. 인턴 실습 (1)
나는 이청현이 뮤비 출연자로 지목당한 이유를 대충도 아니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데뷔 초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나가듯 이청현이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청현 씨는 뮤직비디오로 먼저 데뷔를 했다면서요?’
‘네! 같은 소속사인 장준후 선배님 『지나간 시간』에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연습생 중에서 청현 씨가 출연하게 된 이유가…… 잘생겨서라고요?’
‘나중에 직원분께 전해 듣기로는, 네, 그랬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외모만 보고 뽑았다 이거다.
그러나 이청현을 뮤비에 내보내는 건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뭐든 다 곧잘 해내는 이청현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선보인 경험은 상대적으로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적었다.
어릴 때부터 대회란 대회엔 다 나가 보았던 최제호나 강기연.
실용음악 수업이나 오디션에서 실기 테스트를 봐 왔던 정성빈과 박주우까지.
반면 이청현이 다수의 군중 앞에 서 봤던 경험이라곤 어렸을 때 참가한 피아노 대회 정도가 전부였다.
그 때문에 당시 이청현의 표정 연기나 표현력은 다섯 명 중 가장 부족했다.
미래의 이청현은 무대 경험을 쌓으며 그 차이를 금방 극복해 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뭐든 다 잘하는 실력파 그룹으로 홍보할 거면 장준후 문제를 제외하고 생각해도 최제호가 나가는 게 맞아.’
심지어 뮤비 주인공은 오래전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상대를 그리워하는 처연한 남자 역할이었다.
쓸쓸한 가을날 낙엽이 진 거리를 걸으며 아련한 옛 기억에 젖는 코트 차림의 열일곱 살 남자애? 부조화도 그런 부조화가 없었다.
‘역이랑 찰떡이란 소리가 나올 이미지는 아니지.’
지금의 이청현은 미남이나 미청년이란 말보단 미소년이란 말이 어울릴 나이였다.
오히려 이런 일엔 자타 공인 ‘무심한’이란 키워드가 붙어 있을 것 같은 최제호가 제격이었다.
“제호 형이 가신다고 해도…… 형 혼자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성빈은 머뭇거리면서도 분명하게 본인의 의사를 피력했다. 심지가 곧은 녀석다웠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정성빈이 걱정하는 게 뭔지는 나도 잘 알았다.
아무리 동생들이 미성년자라 해도 최제호와 정성빈네들의 나이 또한 거기서 거기였다.
성인 남자 한 명이 작정하고 괴롭히려 들면 최제호라고 해도 별수 없을 가능성이 높단 의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역시…….
‘인성 논란이지.’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쪽에서 나가는 사람은 ‘그’ 최제호였다.
당일에 최제호가 무슨 말을 해서 타인의 화를 돋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정성빈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나도 따라갈 거니까.”
* * *
“진짜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메이크업을 끝낸 최제호가 시원하게 깐 이마가 돋보이는 스타일을 뽐내며 말했다.
풋풋함을 숨길 수는 없어도, 확실히 이청현에 비해서는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뮤비 촬영일인 오늘, 나는 최제호가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숍에 들르는 지금까지 녀석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이게 다 최제호 씨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 입술에 침 바르지 마라. 더 트니까.”
“넌 골 때리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밖에선 말 곱게 하라고 난 분명히 얘기했다?”
다른 사람이 봐도 사이가 좋아 보이도록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말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는 대형 거울 너머로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최제호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메라가 돌 때의 십계명, 기억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어제저녁, 최제호를 비롯해 멤버들 모두를 앉혀 놓고 카메라가 돌아갈 때의 주의 사항을 주지시켰다.
내용이야 다 기본적인 얘기였다.
1. 입단속 하기.
2. 지시받은 사항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카메라 돌아가면 웃기.
3. 어디 나가서 일하게 되면 인사 똑바로 하기.
4. 누군가가 말을 하면 경청하기.
5. 대답과 리액션은 큰소리로 하기.
6. 다리 모으고 반듯하게 앉기…….
……같은 거.
필사를 열 번 시켰는데도 못 외우길래 ASMR 듣는 셈 치라고 밤새 침대 머리맡에서 중얼거려 줬다.
그랬더니 새벽 3시쯤엔 다 외웠다며 줄줄 읊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시 암기엔 반복이 최고다.
내 질문에 최제호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귀에서 피 나오겠다.”
“걱정 마. 내가 봤는데 멀쩡해.”
나는 한껏 스타일링을 마친 최제호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말했다.
아무렴, 고작 열 개밖에 안 되는데 그 정도는 외워 줘야지.
이쪽은 주연 배우를 바꾸기 위해 기획 팀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비전 설명회를 하고 왔단 말이다.
그날 이후로 회사 안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100% 나쁜 의미로 묘해졌지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남 부장에게 대놓고 구박받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다.
준비를 마친 우리가 숍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매니저님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올라오셨다.
나는 오늘의 대배우이신 최제호를 뒷좌석으로 보내고 조수석에 앉으며 물었다.
“매니저님, 오늘 촬영 때 장준후 선배님도 오시나요?”
“안 그래도 이월이 네가 물어보길래 준후 씨 매니저 형한테 물어봤는데 촬영 따로 한대. 오늘은 안 올걸?”
“그래요?”
“왜? 너 준후 씨 팬이었나?”
“너무 대선배님이라 저희가 조심해야 할 건 없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저는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따라가는 거다 보니…….”
“에이. 준후 씨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니야! 표현이 좀 투박해서 그렇지 후배들을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럴 사람 아닌 새X가 우리 집 어린이한테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니까요?
난폭하고 경우 없는 걸 ‘표현이 투박하다’고 포장하는 데 동의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어찌 됐든 안 온다 이거지.’
안 온다면야 잘된 일이었다. 내가 최제호를 대신해 맞서 싸울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그보다 제호야, 너 꾸며 놓으니까 인물이 확 산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 인사가 재깍 안 나와? 이 자식 ASMR이 부족했네.
백미러 너머로 최제호를 쳐다보자 본인도 인사에 뜸을 들였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는지 슬금슬금 내 시선을 피했다.
‘일하러 가기 전이니까 한 번만 봐준다.’
그래도 인물이 살았다는 평가를 들은 건 흡족하다. 숍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뮤비 틀면 최제호밖에 안 보이겠네.’
나쁘지 않은 전개였다.
* * *
인생 최초로 방문한 촬영 현장은 상당히 분주했다.
나는 최제호와 함께 현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90도로 인사부터 했다.
나까지 촬영장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허락해 주신 촬영 감독님께도 오자마자 바닥에 대가리를 박을 기세로 인사드렸다.
‘1차 목적은 장준후가 보이면 최제호랑 장준후 사이에서 방파제를 하는 거였지만…… 장준후가 안 왔으니 그럴 필요는 없겠고.’
나는 부산스럽게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촬영지 뒤편을 쭉 둘러보았다.
음악 방송 비하인드 컷에서나 보던 촬영 장비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이전 같았으면 영상 업계의 고용 환경에나 관심이 갔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벤치로 걸어가고 있는 최제호를 보자 강기연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회사에 굴러다니는 소형 캠 하나만 앞에 갖다 놔도 사시나무 떨듯 떠는 그놈 말이다.
‘데뷔 뮤비 찍을 것까지 생각하면 대책을 세워야 하긴 해.’
안 그래도 스파크의 첫 뮤비에서 방황하는 시선을 어찌할 줄 몰라 하던 녀석이다.
멀지 않은 미래를 생각했을 때 강기연은 하루라도 빨리 카메라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경험은 한평산업에서 차고 넘치게 해 봤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나는 매니저님 옆에서 카메라의 배치나 앵글이 돌아가는 모습을 열심히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분위기라도 익혀 가야 모의 테스트든 뭐든 해 주지.
불행 중 다행으로 최제호의 연기까지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저 녀석이 표정 연기 하나는 잘하기 때문이다. 춤을 오래 춰서 그런지 표현력이 발군이더라.
지금 시점에선 우리 팀에서 ‘이별 후 어딘가 처연한 모습이 보이는 쓸쓸한 남자’를 최제호만큼 연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제호를 지목한 것도 있으니까. 못하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
결과물을 두고 UA 측에게서 ‘본 교관은 김 대리에게 실망했다.’ 따위의 말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조별 과제에서 무수히 나를 스쳐 지나간 무임승차러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편하고 안락한 기분이었겠구나, 너희들.
이해해 주진 않을 거지만 공감은 해 주마.
* * *
촬영은 장소를 여러 번 옮기며 진행되었다. 드라마 컷은 모두 최제호가 찍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는 스튜디오나 세트장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만 찍을 모양이었다. 촬영장 안 겹치면 이쪽이야 좋지.
물론 마냥 촬영 모습을 구경만 하진 않았다.
촬영지가 여러 번 바뀌면서 짐을 옮길 일이 많아 보이길래 중간부턴 온갖 가방들을 나르는 데 동참했다.
장비 무게가 꽤 나간다며 많이들 걱정하시길래 남 부장 몫의 생수까지 짊어지고 100대 명산을 하나씩 올랐던 나의 실력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덕분에 어쩜 그렇게 주변 사람이랑 카메라에 안 걸리게 짐을 잘 옮기냐고 칭찬도 받았다.
“무슨 짐을 그렇게 날라?”
뿌듯한 마음으로 막내 작가님이 싸 둔 가방을 차량에 옮기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최제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