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3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8화(39/193)
| 38화. 경쟁사 분석
파르테의 티저는 세련된 그룹 로고와 함께 시작되었다.
곧이어 강렬한 분장을 한 미소년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비췄다.
전원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것과 바닥에 자욱하게 깔린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새빨간 달 CG 밑에서 대형을 맞춰 선 것으로 짧은 티저는 끝이 났다.
신인이라 다들 표정이 조금씩은 어색한 걸 빼면 수작이었다.
“……세네.”
최제호가 말했다. 본인다운 간결한 감상평이었다.
“무슨 컨셉일까요? 달이니까 늑대 인간인가?”
“지하 세계일 것 같은데. 그룹 이름부터 파르테논 신전에서 따 왔으니까. 초반부터 그리스 신화 컨셉으로 가려는 게 아닐까?”
나는 재생 바를 다시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스파크 덕질을 대신 하느라 다른 아이돌 볼 정신은 없었지만 이 정도로 컨셉이 확실하면 모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다음 티저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다음 거 공개 일정도 떴어?”
“……다음 주에 뜬대요.”
다음 주면 장준후의 뮤비가 공개되는 주였다.
이쪽은 티저랄 게 없이 바로 공개였다.
홍보 계획이 마땅히 없는 건지, 아니면 티저에 분산될 화력까지 뮤비에 모으려고 그러는 건진 알 수 없었다.
‘아이돌이랑 발라드 가수라는 차이를 고려해도 비교가 되긴 하네.’
비록 한 번뿐이지만 촬영 현장을 직접 보고 와서 그런지 티저만 보아도 세트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대충 감이 잡혔다.
이래서 머슴을 하려거든 대감 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는 거였나 보다.
나는 스크롤을 밑으로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해외 팬이 붙은 건지 댓글의 절반이 영어였다.
드문드문 보이는 한국어 댓글들만 봐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 이 맛에 대기업 파지
≫ 자본의 맛 달달하다
≫ 민일아 데뷔 축하해 ♥ 꽃길만 걷자!
≫ MYTH는 어떻게 저런 얼굴들을 매번 데려오는 걸까…… 매일매일 새롭게 잘생긴 애들이 나와
비주얼은 우리 팀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백옥 같은 이청현을 필두로 누구 하나 꿇리지 않는 외모를 자랑하는 것 또한 스파크의 강점이었다.
스파크 컵홀더를 스무 개 넘게 만들면서 나의 시야가 흐려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거 하나는 자부할 수 있다.
스파크는 어디 가서 외모 구멍이 있다는 원색적인 악성 댓글은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누구보다 일반인 그 자체인 내가 들어오면서 이번 그룹에겐 그 명예가 주어지지도 못할 거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단연 문제는 ‘자본력’에 있을 터였다.
엔터 사업에서 트렌드가 중요해지고, 아이돌 사업에 투자하는 비용의 규모가 달라지면서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평가 기준 역시 매해 올라갔다.
스파크의 데뷔 일정을 앞당겨서 파르테를 비롯한 선발주자들과의 격차를 좁힌 건 좋았지만 그룹 간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일.
≫ 솔직히 스파크 뮤비…… 많이 구림 UA도 돈 쓴다고 쓰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싼티 남
≫ 무대 의상에 쓸 돈 아끼는 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뮤비엔 돈 안 아꼈으면 좋겠음ㅠㅠ 애들 얼굴만 믿고 날로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 걍 회사가 쓸데없는 데 돈 쓰기 싫은 거임ㅇㅇ 개X같이 찍어서 내보내도 팬들이 좋다고 빨아 주는데 뭐하러 돈 씀ㅋㅋㅋㅋ 이게 다 팬덤이 자초한 일임
└ 와 이걸 팬 탓을 한다고?ㅋㅋㅋㅋㅋ └ㅇ┐
당장 내가 스파크 댓글 모음 영상 만들다가 본 댓글만 해도 이 정도였다.
여기에 대형급 신인이랑 정면 비교를 당한다?
벌써부터 뮤비 배경 스크린샷 네다섯 개 연속으로 붙여넣고 ‘중소의 현실’이란 제목 달아서 신나게 커뮤니티에 뿌려질 게 훤했다.
중소라는 이미지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회사가 실제로 작은 걸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중소에서 데뷔해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회사가 그룹에 투자하지 않는다’라는 이미지를 연속으로 심어 주는 건 위험했다. 그것만으로도 팬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야 얼마 안 있다가 나갈 사람이라지만 스파크는 7년을 갈 그룹이다. 이럴 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했다.
그러려면 회사에서 어떻게든 예산을 따내는 게 중요했다.
나는 여차하면 이청현이 곡 쓰고 최제호랑 강기연이 안무 만들어서 아낀 제작비를 하나하나 따지며 뮤비에 부어 달라고 간청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7년이고 자시고 간에 7주라도 버틸 거 아니야.
‘시X…… 7주년에 해체한 건 다시 생각해도 꼴받네.’
이런. 그룹의 미래를 너무 열심히 생각하다 좋지 않은 기억까지 떠올려 버렸다.
평화를 찾기 위한 심호흡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핸드폰을 넘겼더니 강기연과 정성빈이 내가 보던 댓글창을 그대로 이어 보기 시작했다.
바로 합류한 이청현까지 총 세 명은 점차 굳어지는 얼굴로 진지하게 댓글을 정독했다.
“이렇게 멋있는데도 악플이 달리는구나……. 게다가 아직 티저인데.”
“이것도 호불호가 갈리네요? 사운드 나만 좋은 거였어요?”
동시에 녀석들은 본인들의 정신력을 팍팍 갈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밤새 파르테 대신 선플 달다가 바이럴 아니냐고 취조라도 당할 기세였다.
특히나 강기연의 얼굴은 아주 흙빛이었다.
“아직 데뷔도 하기 전인 분들한테도 이렇게나 비난 댓글이 달리면…… 데뷔 후에는…….”
“야, 폰 내놔.”
“아, 네.”
“그리고 너희들은 데뷔 날부터 모니터링이랑 자기 이름 검색 금지야. 알았어?”
“네?”
큰일 날 뻔했네. 남의 팀 모니터링하다가 우리 팀 녀석들을 죄다 수렁에 빠트릴 뻔했다.
나는 모니터링 요주의 인물 3인방을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해 두기로 했다.
댓글 읽다가 안구 건조증이 오는 한이 있더라도 모니터링은 내가 하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 * *
“마지막으로 이번 무대를 앞두고 각오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컷!”
내가 컷을 외치자 트레이닝복 차림의 강기연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 둘은 오늘 밤에도 빠지지 않고 절찬리에 ‘강기연 전용 모의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무려 4주하고도 3일 만에 강기연은 괄목할 성과를 냈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기적이다.
“너, 오늘 처음으로 손 한 번도 안 떨고 인터뷰 끝까지 한 거 알아?”
“정말요?”
강기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직접 확인해 보라며 녹화해 둔 영상을 틀어 주었다.
발음 양호하고, 성량 양호하고, 멘트 양호하고.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시선이 조금 불안하고 답변도 기계적이었지만 그건 차차 연습하면 될 일이었다.
+
[SYSTEM] ‘숨겨진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용: 멤버의 성장을 돕기
▷ 보상: 경험치(10)
▷ 누적 경험치: 95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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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봐. 시스템도 성공으로 쳐 주잖아.
이는 명백히 강기연의 능력치가 올랐다는 증거였다.
강기연 본인도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는지, 카메라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고쳐야 할 게 많긴 해. 알지?”
“네. 특히 시선이…… 거의 땅바닥에 가 있네요.”
“연습하면 돼. 내일부턴 다른 것도 신경 써 가면서 해 보자.”
다음 과제를 짚어 주고 나서 나는 바닥에 설치해 뒀던 삼각대를 정리했다.
‘다음에는 폰 카메라 말고 어디서 고장 난 카메라라도 구해서 놔 봐야 하나.’
장준후의 뮤비 촬영장만 해도 카메라가 몇 대씩 있었다. 그런 렌즈들이 주는 압박감은 스마트 폰의 손톱만 한 카메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였다.
남 부장이 산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싶다고 구매했던 카메라조차 간절해지려던 찰나, 뒤에서 의자를 치우던 강기연이 말을 걸었다.
“저, 형.”
“왜?”
“형은 이런 걸 어디서 배웠어요?”
“커흡, 응?”
돌아보니 강기연은 악의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날을 백 번쯤 간 칼로 회귀자의 약점을 찌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송곳에라도 찔린 것처럼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배, 우긴. 그냥 ‘실제랑 비슷하게 연습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생각해 본 것뿐이야.”
배우긴 배웠다. 상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그러나 강기연은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렇다기엔 형이 엄청 꼼꼼하게 짚어 주는 것 같아서요. 지적하는 포인트도 매번 다르고.”
“눈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 다들 나보고 항상 보는 눈이 좋은 것 같다고 하잖아.”
“흠.”
네가 신규 입사자 몇십 명씩 받아 놓고 오리엔테이션 진행해 봐라. 동공도 분열할걸.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니, 나는 오히려 배 째란 식으로 당당하게 나갔다.
“왜, 내 교육 방침이 못 미더워? 내일부턴 미튜브에 있는 스피치 훈련 영상 틀어 줄까?”
“죄송합니다.”
다행히 강기연은 바로 물러섰다.
비록 내 인간성이 좀 타락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는 걸 들켜서 정보만 다 털리고 방출당하면 어떡해.
그럴 순 없지. 이쪽은 너희들 신발 바닥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을 거다.
“인터뷰나 무대 말고 단순 촬영은 가능할 것 같아? 곧 있으면 프로필 촬영이잖아.”
그렇다.
데뷔 후 포털 사이트에 올라갈 프로필 촬영이 곧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많이 자고 얼른 커야 할 강기연을 이 시간까지 붙잡아 놓진 않았을 거다.
“사진만 찍는 거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 증명사진 찍을 때도 괜찮았거든요.”
아.
그 미소라곤 눈을 빼서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는 사진?
나는 후에 ‘예고 증명사진계에 다시없을 북부대공 샷’으로 이름을 날릴 강기연의 고등학생 시절 증명사진을 떠올렸다.
본인이 그런 강직한 인상을 좋아한다면야 사진이 어떻게 나오든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팬들도 이목구비만 선명하면 무슨 사진이든 좋아했고.
‘하지만 본인이 그런 사진을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기연은 제 인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 그룹 놈들이 다들 그렇긴 하지만, 입 다물고 있으면 오해받기 딱 좋은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저 어디 아프냐고요? 아니에요, 스파클러. 저 오늘 기분 좋아요. ……제 표정 많이 딱딱해 보여요?’
‘아냐 강견! 기죽지 마! 오늘 카메라 화질이 안 좋아서 그래! 그렇죠 여러분?!’
인상 이야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지는 강기연과 이를 달래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청현이 눈앞에 선했다.
물론 타고난 얼굴의 모양새가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본인이 교정을 희망하는 이상 입꼬리에 고무줄을 걸어서라도 미소 기계로 만들어 줄 거니까. 사회생활의 애환을 안면에 새겨 주마.
이참에 ‘멤버들에게 아침마다 웃으며 인사하기’라도 시키려는데 강기연이 말했다.
“사진 찍는 연습은 혼자서 더 해 볼게요.”
“할 수 있겠어?”
“네. 형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설마 나 일찍 들어가라고 배려해 주는 건가 싶었지만 이놈은 ‘그’ 강기연이었다.
나를 밤 11시까지 연습실 바닥에 나뒹굴게 했던 놈이 갑자기 그런 선의를 베풀 리가 없었다.
‘뭐…… 일찍 가나 늦게 가나 할 건 어디든 있으니까.’
연습실에 오래 남는 거면 연습을 더 하는 거고 숙소에 돌아가면 일을 하는 거라 사실상 내 휴식 시간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래. 오늘은 이만 가자.”
그래도 애를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 나도 그쯤에서 연습을 마무리 짓고 짐을 챙겼다.
며칠 뒤, 강기연이 해사한 미소를 장착해 돌아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