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화(4/193)
| 4화. 꼰대 시스템 (3)
스파크 놈들에게 돌아가며 갈굼당하는 것은 제법 죽을 것 같은 경험이었다.
먼저 댄스의 화신 같으신 최제호와 강기연.
이놈들은 나를 흥미로운 외계 생명체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녀석들은 초심자인 내게 온갖 요란한 동작이 들어간 춤을 한 번 보여 주고 ‘이해 돼?’라고 묻는 충격적인 가르침을 시전했다.
나는 그런 강의법으로 날 가르치는 건 부족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열심히 뚝딱거려 주었다. 둘 다 얼굴이 하얗게들 질리더라.
그래도 뭐 어떡하나. 나는 한 평생 성골 직장인이었는데.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했는지, 여차하면 최제호 앞에서 ‘센터 황제 최제호야, 내가 지금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맞니?’라고 물어볼 뻔했다.
녀석에게 모멸감 가득한 시선을 받는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나서부턴 머릿속으로도 별명을 떼고 부르는 연습까지 남몰래 함께 진행하고 있다.
두 무뚝뚝 보이즈 다음으로 침몰한 것은 정성빈과 박주우였다.
두 명품 보컬들은 격하게 고장이 난 움직임을 선보이는 내게 앞선 예술인들과는 달리 좀 더 인간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려 했다.
유감스럽게도 내 체력이 저 녀석들보다 좋았기 때문에 놈들이 먼저 뻗었다.
모든 참사를 지켜보던 이청현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형 정말 엄청나시네요! 파이팅이에요!”
그러더니 윙크까지 날렸다. 아이돌을 하기 최적화된 성격이었다.
그 윙크 자컨에서나 좀 많이 해 주지 그랬냐. 그랬으면 나도 너희 윙크 모음집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이청현의 반짝거리는 응원까지 받으며 노력한 덕분에 나는 정면을 보고도 팔을 반듯하게 옆으로 뻗을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4시간 만의 일이었다.
옆을 쳐다보니 강기연이 입술을 꽉 깨문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알바 하러 온 사장 아들을 보며 지었던 표정이 딱 저랬다. 두 번째 인생 정말 쉽지 않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캐스팅 담당자는 무엇을 보고 날 UA에 캐스팅한 걸까?
이건 나만큼이나 스파크 녀석들도 궁금할 것 같았다.
뜬금없이 며칠 전 연습생으로 합류한 애가 왼발과 오른발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면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다들 내색은 안 했지만 알 수 있다. 내 몇 안 되는 재능 중 하나가 남 눈치 보는 거라서.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웹셀 만지기가 인생의 전부였던 직장인이 춤을 하루 만에 잘 추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보상이랍시고 주는 경험치가 20씩이면 더더욱.
나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이전에도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남 부장이 정리되지 않은 서류 5년분을 넘기며 당일까지 정리해 달라고 했던 상황을 말이다.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고 아무리 해도 뾰족하게 더 나은 수가 없을 때 해야 할 일.
그건 바로…….
‘단순 반복이지.’
눈가가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흘린 땀이 두 눈에 동기화된 것 같았다.
그래도 더 나은 점은 분명 있었다. 적어도 여기엔 남 부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도와주는 사람까지 있다면 감사히 여겨야지.
비록 그게 첫 번째 인생의 원수 군단이더라도 말이다.
가르쳐 준 성의가 있는데 익히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해, 나는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녀석들이 시키는 대로 힘차게 굴러 주었다.
까짓거 연봉 20% 인상이라고 생각하면 큰 비율이긴 하니까. 역시 정신 승리는 하기 나름이었다.
* * *
무아지경으로 움직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스파크 놈들이 하나둘씩 연습실 구석에 주저앉고 있었다.
나약한 녀석들. 저 정도 체력으로는 경영진 몫의 보온병을 들고 북악산도 못 오른다.
가르침이 잠잠해진 틈을 타 나도 생수병을 하나 집어 목을 축였다.
그때였다. 연습실의 문이 열리더니 어딘가 낯익은 사람이 들어왔다.
동시에 야근한 직장인처럼 퍼져 있던 스파크 놈들이 벌떡 일어났다.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 너무나도 데뷔 초의 스파크 그대로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다들 연습하느라 고생이 많지?”
“괜찮습니다!”
“괜찮긴. 이월이는 캐스팅할 때 보고 처음이네. 애들이랑 인사는 했어?”
트레이너 같아 보이진 않는 깔끔한 비즈니스 캐주얼과 친절한 어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멘트가 내 의심을 확신하게 했다.
당신이군요, 저를 이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신 분이?
나는 당장이라도 저분을 붙잡고 대체 내 어디가 아이돌을 할 것 같았냐고 여쭙고 싶었다. 그날 홍대에 인재가 그렇게 없었냐고 말이다.
“네, 다들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참아 냈다. 극한까지 단련한 인내심 덕분이었다.
“에이. 우리도 이월이 너한테 기대하는 게 많아!”
이분도 아까 전 스파크의 안광을 잃은 두 눈을 보셨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저런 말이 안 나왔을 거다. 스파크에 악감정밖에 없는 나조차도 쟤들이 불쌍해질 정도였으니까.
나는 시스템이라는 친구가 허락만 해 준다면 지금이라도 이력서를 새로 써서 스파크의 신입 매니저로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에게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여튼 이럴 때만 조용하지.
급작스럽게 찾아온 방문객은 스파크 다섯 명의 군무 영상을 촬영하러 왔다며 핸드폰을 꺼냈다.
“연습생이 늘었으니까 그림 같은 걸 다시 봐야 하거든. 안무 숙지 끝나면 이월이 너까지 껴서 한 번 더 찍을 거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대답이라도 재깍재깍해야 하는 법.
나는 우선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스파크가 영상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맞은편의 거울 앞으로 이동해 직원분의 옆에 섰다.
곧이어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꽤 굉장했다.
다섯 명의 연습생들이 칼같이 박자를 맞춰 춤추는 모습은 알못인 내 눈에도 제법 멋있었다.
‘교차 편집 만들 땐 내 또래인 놈들이 관절도 팔팔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놈들, 적어도 제 할 일을 할 땐 박력이 있다.
소속사 직원 수보다 많은 논란을 딛고도 이 그룹이 7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얼굴과 실력 때문이라는 대중들의 의견이 맞지 않았나 싶다.
나는 처음으로 영상 편집의 의무에서 벗어나 마음껏 놈들의 화려한 동선을 감상했다.
대신 녀석들의 목 위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굴을 보면 화가 치솟으니까.
참고로 내가 몇 시간에 걸쳐 배우고 복지 포인트 1점을 따낸 동작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체감상으론…… 1.8초 정도?
‘내가 한 곡 완성하려면 꼬박 2주 정도는 굴러야겠네.’
구른다고 저 정도의 박력이 나올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정말로 간단한 모니터링용 영상 촬영이었는지 촬영은 한 번 만에 끝이 났다.
“이월이 네가 보기엔 어때?”
“네?”
“애들 말이야. 잘하지?”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시다니.
대답은 정해져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예, 개쩝니다.’밖엔 없었다.
백날 칭찬한들 발화자가 나인 이상 스파크에게 전해질 것 같진 않다는 게 문제지.
“네, 굉장한 것 같습니다.”
나는 최대한 영혼을 가득 담아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나대는 것처럼 보이진 않도록 선은 지켜서.
덕분에 모처럼 한평산업에 막 입사했을 때의 시절이 떠올랐다.
눈칫밥을 끼니처럼 먹으며 사회생활을 익히곤 했던 그 시절이 말이다. 물론 조금도 그립진 않았다.
다행히 내 무난한 대답은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담아 29년간 숙련해 온 화술 덕이었다.
다만 신경 쓰이는 부분은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에게 시선이 모였다. 뭣도 모르는 신입이 설마 이 멋진 춤에 토를 달려 하는 건가 하는 눈빛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기연이 너, 춤 춰도 되는 거야?”
“예?”
“조금 힘들어 보이길래.”
제 몸도 건사를 못하는 뚝딱이가 말까지 얹으니 그 최제호의 시선까지 모두 나에게 고정됐다. 가끔 팬싸 직캠에서나 보던 시선이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띌 거 같아서 말하기 싫었는데.
변명해 보자면 입 다물고 모른 척하기엔 상황이 좀 그랬다.
다른 건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아파 보이는 걸 외면하는 건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가.
내게 1:1로 붙어서 안무를 가르쳐 줄 땐 긴가민가했지만, 여러 명이 같은 춤을 추는 걸 보니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아무도 저놈한테 쉬라고 안 하길래 다들 모르는 건가 싶긴 했지.
내 예상이 맞았던 모양인지, 나를 향했던 시선들은 곧장 강기연에게 넘어갔다.
“기연이 너 어디 아파?”
“아뇨, 아픈 데 없어요.”
직원분의 질문에 강기연은 평소랑 별반 다를 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눈은 못 속인다.
저 X끼 100% 거짓말하고 있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 전에도 강기연은 저런 표정으로 ‘저희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라고 했었다.
새해맞이 콘서트에서 그렇게 말해 놓고 1년도 안 지나서 해체를 해? 이 양심 없는 새X들.
“기연이 괜찮다는데?”
“안 괜찮은 거 같아서요. 왼쪽 발목이요.”
심사가 뒤틀린 나는 갸륵할 만큼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강기연의 표정이 묘해졌다. 정곡을 찔리니 제대로 유효타를 먹은 것 같았다.
“기연이 너 발목 아프니?”
“언제부터!”
직원분과 이청현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러자 강기연이 당황해했다.
“아니, 막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데…….”
“무슨 소리야, 기연아. 아프면 당연히 병원엘 가야지.”
이제는 정성빈까지 거들었다. 대신 저쪽은 가증스러운 나와 달리 진짜로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이젠 주변이랑 본인이 알아서 챙기겠지.
나는 소임을 다해 가벼워진 마음으로 강기연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임진각 야외무대에서 혼자만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강기연의 모습이었다.
연습생 때부터 난도 높은 안무를 쉬지 않고 연습한 탓에 고질적으로 자리 잡은 발목 부상 탓이었다.
강기연에게 그 시기가 암울했으리란 건 공개 라디오의 저화질을 뚫고 나오는 생기 없는 낯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앞날을 아는 어른으로서 도의적으로 한 번은 도와주자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번 강기연과 대화하는 고생을 감수하고 말했다.
“병원은 꼭 가.”
“네?”
“내 친구 중에도 발목 아픈 거 무시했다가 고생한 애 있었거든. 고질병 되면 골치 아파, 그거.”
그냥 같은 반이기만 했던 애를 친구라고 뻥튀기하려니 양심이 찔렸다.
하지만 내 말이 먹혀든 건지 눈빛이 흔들리는 강기연을 보자, 이놈 고집은 꺾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환자 병원 보내려고 하는 일이니 우리 반 학우도 이해해 주겠지.
고맙다 친구야. 네가 미래의 댄스 천재 하나 살렸다.
그 뒤로는 뭐, 뒤늦게 전화를 받고 나타난 매니저라는 분과 강기연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는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병원으로 떠나는 강기연을 배웅하는 내게 잔잔한 현타가 찾아왔다.
저놈들 뭐 예쁘다고 걱정을 해 줬냐는 생각 반. 그렇다고 아픈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냐는 생각 반이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생겨도 그땐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래도 이렇게 몇 번만 더 찌르면 임진각에서 다섯 명 전원이 서서 춤추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에 내가 치솟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화병으로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 *
분위기가 잠깐 어수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저희 연습생 때 에피소드요?’
‘뭐가 있지……. 있……나?’
‘진짜 연습만 했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스파클러. 저희 재미없죠?’
라이브 방송 녹취록 뜰 땐 ‘요약 타래 10개 달아야 잘 수 있으니까 뭐라도 얘기해라.’라는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알겠다. 종일 연습만 하면 할 말도 없을 거라는 걸.
밥 먹고 한다는 짓이 춤과 노래뿐인데 에피소드가 있을 리가 있나.
그래도 이젠 이청현이 발목 아픈 강기연을 업으려다 함께 자빠졌던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적인 우정이었다.
인생 첫 연습은 확실히 꽤 고됐다. 하지만 뻗을 만큼 힘든 건 아니었다.
게다가 하염없이 뚝딱거리기만 하면 데뷔는 물 건너갈 테니, 눈물은 나지만 연습을 좀 더 하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나를 만류하는 멤버는 딱히 없었다. 내 역동적인 움직임이 녀석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저놈들은 데뷔하고 3년만 지나면 대한민국 실력파 아이돌 순위에 단골처럼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 말은 즉, 이 조별 과제에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조별 과제에서 처음으로 조장이 아니라 자료 조사를 맡은 기분이었다.
이 얹혀 가는 느낌……. 죄악감이 가득했지만 신선한 경험이긴 했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 기술을 익히는 건 자신 있었다.
조상님께서는 내게 특별한 재능이 없는 대신 웬만한 일엔 쉽게 질리지 않는 악바리 근성을 주셨다.
기초 동작만 몇 번 반복했을 뿐인데 2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걸 보며 사람 성정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엔 경험치 안 주려나.’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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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장장 반나절 만에 다시 시스템이 나타났다.
다만 이번에는 경험치의 출처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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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숨겨진 업무(첫 야근)’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20)
▷ 누적 경험치: 40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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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발…….”
욕을 안 하고 싶어도 어떡하나.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