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39화(40/193)
| 39화. 프로필 촬영
비록 그룹명 문제가 아직까지도 난항을 겪고 있긴 하지만 그 외의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의 프로필 촬영도 그 일환이었다.
이날을 위해 나는 무려 일주일이나 새벽 1시가 되기 무섭게 잠이 들어야 했다.
매니저님에게 지시를 받은 정성빈이 ‘멤버 전원의 피부 컨디션 관리’를 사유로 심야 작업을 엄금했기 때문이다.
‘그, 성빈아. 이거 참고 자료 조사하는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이번 주 아침은 저희끼리 챙겨 먹고 갈 테니까 오늘은 그만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하세요.’
정성빈의 특별 관리 대상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성빈이 형, 나 진짜 멜로디 딱 한 마디만 더 쓰면 개운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얘기 1시간 전에도 했잖아. 청현이 너도 이제 들어가.’
고해한다. 아직 고등학생인 정성빈의 기백에 좀 밀렸다.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충분하고 규칙적인 수면, 새롭게 얻은 젊음, 전문가의 메이크업 솜씨가 합쳐진 결과 내 다크서클은 말끔히 자취를 감췄다.
얼마나 굉장했는지, 최제호도 칭찬 아닌 칭찬을 할 정도였다.
“넌 밤새우면 안 되겠다. 다크서클 없는 게 낫네.”
“성빈이 듣는 데서 그런 말 하지 마.”
야근은 사양이었지만 일이 밀리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야근이 낫다. 누적된 업무는 두통을 유발하는 법이니까.
“아휴. 맨날 연습복 입은 것만 보다가 셔츠 입은 거 보니까 인물이 확 사네.”
“진짜요? 셀카라도 찍어 놔야 하나?”
정신없는 와중에도 매니저님과 이청현은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재밌는 이야기 많이 나누면 좋을 텐데. 이청현은 굳이 우리가 있는 쪽까지 달려왔다.
“형! 매니저님이 저희 셔츠 잘 어울린대요! 사진 찍어서 남겨 놔요!”
“어어. 일단 너부터 백 장 찍고 와라.”
“아 왜요! 같이 찍어요!”
“너는 지금 누구랑 같이 찍자고 할 게 아니라 네 얼굴을 보존할 생각을 해야 해.”
이청현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 대단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같이 살면 외관이 주는 파급력은 무뎌지고 적응하게 되는 것이 순리였다.
나 역시 이제는 이청현의 얼굴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 빼고 광낸 미남은 민낯일 때와 완전히 달랐다.
어째서 팬들이 헤메코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기를 그토록 열망했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럴 수가! 저 그렇게 괜찮아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예요?”
“단위 면적당 85만 원 정도?”
“왜 하필 85만 원이에요?”
“지금 금값이 그래.”
“합격 드리겠습니다, 형님.”
이청현이 감격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런 이청현의 어깨 너머로 영상 팀의 카메라 렌즈가 이쪽을 향해 있는 게 보였다. 방금 장면은 편집해 달라고 해야지.
사람이 많으니 걸리적거리지 않게 앉아 있자고 말하며 간신히 이청현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자 이번에는 정성빈이 보였다.
‘헤어 끝났고. 메이크업도 끝났고.’
이쪽은 준비가 끝난 것 같아 다른 녀석들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려는데 정성빈의 손에 들린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우리의 프로필 사진 컨셉은 ‘단정한 학생증’이었다.
아이돌의 번듯하고 말끔한 정면 사진은 의외로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옷이 단정한 버전은 더더욱 그랬다.
따님께서도 그렇게 스파크 얼굴에 교복이며 정장을 합성하셨었지.
활동을 하다 보면 컨셉추얼한 사진은 매 차례 뽑을 수 있다.
하지만 풋풋할 때의 증명사진은 지금이 아니면 남길 수 없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흰색 셔츠에 회색 넥타이였다. 가장 기본적이고 깔끔하니까.
‘그런데 저걸 들고 있다는 건…….’
나는 정성빈의 넥타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넥타이 맬 줄 알아?”
“아뇨, 저희 교복은 자동 넥타이라서요.”
역시나. 하긴 나도 고등학생 땐 넥타이 맬 줄 몰랐던 것 같다.
둘러보니 스타일리스트분들은 두 분이서 우리 여섯 명을 챙기느라 고군분투 중이신 것 같았다.
이 난리 통에 넥타이 매는 거 도와 달라고 부르기도 염치없는 일이었다.
“와 봐. 매 줄게.”
“형 넥타이 맬 줄 아세요?”
“어.”
남 넥타이 매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아침에 졸면서도 매던 넥타이라 그런지 매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모양까지 예쁘게 잡고 나서 정성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끝. 나중에 생각 있으면 배워 놔. 별로 안 어려워.”
“네, 감사해요!”
“형, 저도…….”
밝게 인사하는 정성빈의 옆에서 박주우가 멋쩍게 두 손으로 넥타이를 내밀었다. 차마 안 매 줄 수가 없게 만드는 공손함이었다.
정산 많이 받으면 넥타이는 꼭 자동 넥타이로 준비해 달라고 인수인계서에 적어 놔야지.
아득한 미래를 그리며, 나는 박주우의 목에도 꼭 맞게 넥타이를 매 주었다.
촬영은 내가 예상한 것보단 순조로웠다.
뮤비 한 번 찍었다고 그새 카메라가 익숙해진 것 같은 최제호부터.
학교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3년은 받았다는 정성빈과.
데뷔 초에도 카메라 적응은 빨랐던 이청현까지.
카메라가 있든 없든 무던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박주우도 훌륭했다.
나야 뭐…… 가식이지만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는 덴 도가 터서, 무표정과 웃는 얼굴 둘 다 한 번에 통과했다.
‘사실상 강기연만 잘 마무리하면 되는데.’
나를 포함한 연습생 다섯 명은 마지막으로 세트장에 걸어 들어가는 강기연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여차하면 전원 강기연에게 뛰어들어서 간지럼이라도 태울 기세였다.
분명 그랬는데.
“좀 더 웃는 얼굴로! 그렇지, 자연스럽고 좋네!”
강기연은 옅지만 분명히 웃고 있었다.
생일 브이로그에서 케이크를 쳐다보는 표정이 ‘화형식을 지켜보는 영 보스’로 돌아다녔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너희 밤에 웃는 얼굴도 연습하냐?”
“아니, 저건 독학의 산물이야.”
‘예뻐 보이게 웃는다’는 건 생각보다 제법 어려운 일이다.
자연스럽고 환한 미소야 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지만, 아이돌은 미소를 지을 때조차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써야 했다.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억지웃음이라며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또 마냥 웃을 수도 없다. 웃는 얼굴이 대중적인 미의 기준과 맞지 않을 시 악의적인 순간 캡처본과 함께 악성 댓글이 달리니까.
아이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점심 맛있게 드시라며 웃는 얼굴로 남 부장을 배웅했다가 눈꼬리가 떨렸다는 이유로 쥐 잡듯 잡힌 적이 있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물도 못 마시고 일하느라 눈가가 고장 났던 건데.
어쨌든.
우리 중에서는 제일, 특히나 카메라 앞에서는 더더욱 굳어 있던 강기연이 저렇게 시원하게 웃는다는 건 정말 놀랄 일이었다.
우리는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모니터링하다가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강기연을 에워쌌다.
“기연아, 사진 완전 잘 나왔어!”
“진짜 괜찮더라.”
“아니, 사진 하나 찍은 거 가지고 뭘…….”
나나 이청현이 저랬으면 ‘뭐야. 저리 가(요).’라고 했을 놈이 정성빈과 박주우의 칭찬엔 대단히 멋쩍어했다. 좀 꼴받았다.
“사회 나가면 칭찬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대. 그러니까 지금을 즐기자, 강견!”
“누가 그랬는데?”
“이월이 형이.”
“내가 봤을 때 저 형 인생 2회차야. 생각이 속세에 찌들었어.”
“속세에 찌든 형한테 예절 교육 받고 싶은 거 아니면 둘 다 그쯤 해라.”
속세에 찌든 것과 별개로 궁금하긴 했다. 어떻게 저 목석같은 놈이 갑자기 아이돌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연습했어요.”
“언제?”
“그냥 뭐…… 주변에 거울 있을 때 틈틈이.”
과연, 본 교관도 감동할 태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단 말은 정말 틀린 거 하나 없는 말이었다.
마음은 예상외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제일 불편했다.
내가 이 다섯 명 사이에 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인지 부조화가 왔던 것이다.
내 머릿속엔 아직도 연말 시상식에서 레드 카펫을 밟던 스파크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비교될 건 처음에 얘들 발목 잡고 데뷔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짝반짝한 면면들과 사진을 찍으려니 저절로 얼굴이 죽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나는 프로필 사진 컨셉을 제안할 때 구도까지 미리 전달해 두었다. 내가 맨 끝자리에 서 있는 구도였다.
이러면 내가 탈퇴한 뒤에도 사진의 가장자리만 잘라 내면 되겠지.
나는 앞으로도 단체 사진 찍을 땐 최대한 끄트머리에 서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중에 5인 버전만 포토샵으로 만들어서 따로 백업해 둬야겠다.’
마음속에 새로운 과제를 남기고, 프로필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뭐라고 해야 할까. 대단히 묘한 기분이었다.
* * *
“사진까지 찍고 나니까 진짜 데뷔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요? 저 어제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잤잖아요.”
“잠은 자야지. 그래야 키 커.”
“이 형 또 분위기 깨는 거 봐.”
이청현은 중압감에 도망을 갔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한 손으로는 수박을 먹고, 한 손으로는 영어 학습지를 풀면서 쉴 새 없이 떠들 만큼 말이다.
나는 내 눈앞에 놓인 오늘분의 학습지를 보며 생각했다.
‘이 나이에 문제지 풀고 있는 시점에서 실감이 나고도 남는다, 이 자식아.’
청소년기에도 돈 없어서 못 풀어 본 사교육 학습지를 이 나이 먹고 풀게 될 줄이야. 감개무량했다.
“청현아, 그래도 공부하기로 한 시간엔 집중하자.”
“내가 너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정성빈과 강기연에게 한마디씩 들은 이청현은 그제서야 입을 다물고 제 몫의 숙제를 시작했다.
글로벌 시류에 걸맞게 아이돌 그룹엔 적어도 한두 명의 외국어 담당이 있었다.
게다가 영어라면 다들 기본 인사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식도 있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밤 10시 반에 숙소 거실에 모여 영어 학습지를 풀고 있는 이유였다.
연습 스케줄을 많이 뺄 수는 없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강사분과 다대일로 만나 수업을 듣고, 그 외의 요일에는 주어진 분량의 숙제를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솔직히 어렵진 않았다. 취준할 때까지만 해도 토익 스피킹을 준비했었으니까.
하지만 기분은 다른 문제다.
남이 시키는 공부를 12년 하고,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4년 하다가 겨우 탈출했는데 다시 책상 앞에 끌려오니 죽을 맛이다 이거다.
공부의 필요성이야 인지는 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어 표현이 죄다 비즈니스 영어였기 때문이다.
라이브 방송에 들어온 해외 팬에게 ‘귀한 시간을 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아이돌이라.
잘은 몰라도 이상한 놈이라는 소문은 확실히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불평할 순 없었다. 영어로 프리 토킹이 되는 이청현까지 멤버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거실에 나와서 화성학 공부를 하고 있으므로.
덕분에 이청현은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발휘하여 학구열 넘치는 정성빈 학생의 전용 강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이청현 넌 영어 언제 배웠냐?”
집중력이 바닥난 건지 최제호가 샤프를 내려놓고 물었다. 안 그래도 내가 너 오래 버틴다 했다.
“이게 다 영어 유치원에서 갈고닦은 실력입니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프리 토킹이 돼?”
“그 뒤로 의무 교육이 줄줄이 있잖아요, 형.”
이청현이 새하얗게 불타 버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지긋지긋한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월이 형도…… 대화는 다 되지 않았어요?”
“난 아는 것만 대답할 수 있어. 스크립트를 너무 많이 주입당해서.”
“그런 것치고 영수증 끊어 달란 말은 너무 정확하게 하던데요.”
“너희도 그건 무조건 외워 놔. 돈 쓰면 증빙 자료는 필수야. 알았어?”
말하기 무섭게 석식비와 교통비 신청하면서 영수증은 못 끊었다고 사정하던 직원분들이 떠올랐다.
아니면 영수증만 올려놓고 계좌를 안 적으셨거나, 작성하신 지급액이 안 맞거나…….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정신 건강에 해로운데.’
아무래도 조만간 평화를 찾는 명상법 같은 걸 배워야겠다. 심신이 너무 피폐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