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0화(41/193)
| 40화. 건강 관리도 실력 (1)
데뷔조가 된 게 실감이 난다는 이청현의 말처럼 데뷔는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룹명이 확정된 게 가장 컸다.
거의 치솟는 불기둥까지 갔던 그룹명은 돌고 돌아 ‘스파크’에 정착했다.
더 나은 이름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살던 때의 당사자들과 팬들이 귀하게 생각한 이름은 ‘스파크’였을 테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공식 SNS 계정 개설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룹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자 연습실의 분위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기백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전원의 집중도가 이전보다 배로 올라간 느낌이다.
연습의 강도도 올라갔다.
전체 연습 시간에서 쉬는 시간은 줄고 움직이는 시간은 늘었다.
기초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닌 박주우의 경우, 하루치 연습이 끝나면 5분은 바닥에 앉아서 쉬다가 숙소에 갈 정도였다.
이 와중에 아직도 댄스 숙련도를 더 못 올린 나는 평소의 두 배로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이월이 형, 자리!”
“김이월 각도 안 맞는다.”
이런 식으로.
어째 한 소절을 무사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집중한다고 했는데. 왜 이러지.’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런 패배감은 UA에 막 입사했을 때 이후로 간만이다.
“형. 오전부터 계속 같은 부분을 틀리는 것 같은데, 형만 따로 해 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오늘 내 일일 강사는 강기연이었다.
우리 중 제일 불이 붙어서 연습하더니, 안 그래도 불안했던 발목에 약간의 이상이 온 강기연은 이틀째 댄스 연습에서 열외 중이었다.
강기연 본인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 보겠다고 했지만 전원이 만류했다.
안무 숙지야 금방 할 놈이니 당장 연습을 더 시키기보단 안무 연습의 감독을 맡겼더니 틀린 사람 잡아내는 속도가 아주 귀신같다.
잡히는 놈이 나뿐인 게 문제였지만.
“미안. 다시 해 볼게.”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멤버들에게 사과했다.
나 때문에 음악을 멈춘 것만 벌써 여러 번이었다.
긴장이라도 한 건지 숨까지 차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직 쌩쌩할 시간인데도 몸이 후끈거렸다.
‘여름이라 그런가?’
연습실 자체가 더운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른 녀석들은 평소와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뒤떨어진 자의 조바심이 열기로 나타난 모양이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는데, 연습실의 대형 거울 앞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던 강기연이 물었다.
“형, 땀이 왜 그렇게 많이 나요?”
“춤 못 춰서 잘릴까 봐 걱정하는 심정이 표출된 것 같아.”
“농담하지 말고요.”
“내 걱정이 농담 같아?”
이쪽은 언제나 100% 진심이다.
안 그래도 요즘은 데뷔 전날 ‘많이 고민해 봤는데…… 역시 이월이는 빼고 가자.’란 말을 들을까 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걱정이 태산인 상태란 뜻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목전에서 데뷔에 실패했다간 죽어서 누나를 볼 면목이 없다. 그러니 진심일 수밖에.
내 심각한 표정을 본 강기연도 더 따지고 들진 않았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인가 보다.
대신 정성빈이 연습실 구석에서 수건과 물을 들고 오며 말했다.
“형이 긴장하셔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다들 괜찮으면 연습 잠깐 쉬었다 할까?”
“응……. 10분만 쉬자.”
“저도 찬성입니다……!”
정성빈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주우와 이청현이 바닥에 날계란처럼 퍼졌다.
“미안해. 나 때문에 다들 고생이네.”
“그렇게 생각하면 더 부담될걸요.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형.”
그러고서 정성빈은 내게 자신이 들고 온 수건과 물을 건넸다.
어째서일까.
상냥하기 그지없는 정성빈을 보면서 나는 꼴도 보기 싫은 남 부장을 떠올렸다.
‘김 대리 지금 차 마셔?’
‘네? 아, 예.’
‘요즘 직원들 팔자 좋다, 일하면서 티타임도 갖고.’
‘…….’
‘주변에서 눈치를 너무 안 줘서 그런가? 회사에선 마음이 좀 불편해야 되는 건데.’
일하다가 둥굴레차 한 모금 마신 것 갖고 30분을 갈궜던 남 부장이 희미하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본인은 커피 마시고 오겠다며 1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주제에 내게만 뭐라고 하는 걸 주변에서 간신히 막아 줬던 것도 기억났다.
심지어 난 얌전히 내 자리에서 마셨는데 말이다.
싫은 기억은 어쩜 이렇게 선명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형? 진짜 괜찮으세요?”
“어어, 괜찮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정말이죠?”
“그럼. 수건 고마워. 난 세수 좀 하고 올게.”
나는 수건만 받아 들고 허둥지둥 연습실을 나섰다. 이렇게 기강이 해이해졌을 땐 찬물 세수가 최고였다.
화장실로 직행한 나는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물을 틀고 얼굴을 벅벅 닦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부가 따가울 때까지 찬물을 끼얹고 고개를 들자 거울 너머로 시뻘게진 얼굴이 보였다. 흐리멍덩한 초점도.
나는 아이돌 팬들이 이런 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동태 눈깔 다 됐네, 나.”
스스로 채찍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멍청한 낯짝이나 하고 있는 자신을 보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거라도 어느 정도는 참아야 했다.
사람은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수 없는 노릇이고, 좋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일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성빈의 말처럼 나만 뒤처지는 상황 때문에 긴장한 거라면?
‘그럼 더더욱 정신 차려야지.’
억지로 나도 같이 데뷔시켜 달라고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는 주제에 긴장해서 남의 발목을 잡는 건 민폐니까.
나는 얼굴의 물기를 닦고 연습실로 돌아가 앉아 있는 멤버들을 일으켰다.
“이제 다 쉬었지? 일어나. 얼른.”
“형은 안 쉬어도 돼요?”
“세수하고 왔잖아. 오늘 1절 끝내려면 부지런히 연습해야지.”
“1절요?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요?”
“어. 그러니까 나한테 난이도 맞추지 말고 너희한테 맞춰.”
기획안이 일곱 번 까여도 여덟 번 다시 써야 하는 직장인의 집념과 끈기를 보여 주마.
나의 비장함이 전해졌는지 연습은 곧바로 재개되었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
그렇게 우리는 밤 10시까지 꼬박 격정적인 춤을 추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이때의 객기를 크게 후회하게 된다.
* * *
대학에 다닐 때의 어느 날이었다.
그러니까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과외 알바를 하고, 밤부터 새벽까지는 편의점 알바를 할 때.
그날 밤, 내 앞 타임을 맡고 계셨던 사장님께서는 출근한 나를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이월이 안색이 안 좋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제 잠을 좀 설쳐서 그런가 봐요.’
‘잠을? 왜?’
‘그러게요. 그래도 지금은 하나도 안 졸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안색이 나빠 보이는 알바생에게 가게를 맡겨야 하는 사장님이 불안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써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 잠 좀 못 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수면 시간은 언제나 똑같았고, 생활 패턴도 늘 비슷했으니까.
그렇게 하루의 마지막 일과인 편의점 알바까지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전날 잠을 설친 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숙면이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일어났을 때 베개가 코피로 축축해져 있는 걸 잠에서 깰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몇 년 뒤인 오늘, 나는 정말 오랜만에 그때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거무죽죽한 베개를 보며 황당해했던 내 모습까지 생생했다.
‘오랜만에 별 꿈을 다 꾸네.’
당시를 떠올리자 어쩐지 코가 좀 아픈 느낌도 들었다. 이래서 코피가 났던 꿈을 꾼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코로 손을 가져갔다.
동시에 코가 아픈 게 착각이 아님을, 또 코 밑이 끈적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 밑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도.
‘설마.’
나는 제발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며 고개를 들었다.
불행히도 오늘의 베개 역시 군데군데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더불어 내 손끝도.
최근에 극도로 무리한 일이 있었는가?
없다.
그렇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왜 코피가 난 거지?’
프라이팬을 달구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의심 가는 구석이 없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을 리도 없었다. 매년 받았던 건강 검진에선 항상 아무 이상도 없었으니까.
몸 주인에게 변변한 병원비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내 몸은 크게 아픈 적 한번 없었다.
아침에는 이미 코피가 멎은 상태였다. 덕분에 코를 틀어막을 필요는 없었지만, 꼭두새벽부터 베갯잇 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깬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운이 나빴다면 등교 준비를 위해 일어난 이청현에게 아침부터 험한 꼴 보여 줄 뻔했다.
일찍 일어난 김에 빵도 미리 굽고 있는데 다른 방에서 정성빈이 나왔다.
잠옷 차림인 걸 보니 아직 씻기 전인 듯했다.
“형? 일찍 일어나셨네요……?”
“응. 눈이 일찍 떠졌어.”
나는 잠도 덜 깼으면서 숙소 6계명을 이행하고자 안녕히 주무셨냐고 인사하려는 정성빈을 잽싸게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디서 강기연이 튀어나왔다. 내 코 따위를 신경 쓸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분주한 아침이었다.
‘하긴. 코피 좀 나는 게 뭐 대수라고.’
나는 등교하는 고등학생들 몫의 토스트를 식탁 위에 차려 놓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일찍 일어난 김에 연습실이나 미리 가 있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30분 뒤, 연습실.
‘하…….’
정말 바보 같은 소리지만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여름맞이 몸살에 걸렸단 걸 말이다.
살면서 아픈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그냥 컨디션 난조인 줄 알았다. 식은땀이 줄줄 나기 전까지는.
몸만 풀었을 뿐인데 등이 축축해진 순간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지자 어제 유난히 땀이 많이 났던 것도 이해가 갔다.
‘티 많이 나나?’
얼굴에 아픈 게 드러나는 건 곤란하다.
한평산업에서 딱 한 번, 속이 좋지 않아서 화장실에서 네 발로 기다시피 나오다가 남 부장에게 된통 깨진 뒤로 나쁜 기억이 새겨진 탓이다.
‘김 대리 지금 아프다고 시위해? 건강 관리도 실력이라고 내가 누누이 얘기했어, 안 했어?’
‘김 대리만 아파? 나도 아파. 직장 다니면서 안 아픈 사람이 어딨어?’
그 뒤로는 그 인간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구역질이 나와서 내가 다시 화장실로 유턴했기 때문이다.
나는 연습실에 비치된 구급상자에서 해열제를 하나 꺼내 먹었다.
그리고 최제호와 박주우가 오기 전까지 손부채질로 최선을 다해 열을 식히며 다짐했다.
죽어도 참는다.
이것만은 절대로 안 들킨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