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3화(44/193)
| 43화. 사내 친목 도모 (2)
직장인이 되면, 특히나 말단 사원이라면 높은 확률로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월 씨, 오늘 회식 어디서 하기로 했어?’
‘조 팀장님이 고깃집 추천해 주셔서 거기로 예약했습니다!’
‘고기? 하, 나. 옷에 냄새 배겠네.’
회식 자리 잡기부터 환영회 할 치킨집 예약하기, 야유회 갈 지역 선정하기, 임원진의 100대 명산 도장 채우기용 등산 코스 짜 주기까지.
근 몇 년간 한평산업에서 내가 예약하지 않은 일정이란 없었다.
그보다 남 부장 그 인간, 내가 예약 안 할 땐 고기 잘만 처먹었다더라.
난 또 내가 눈치 없이 고깃집 잡은 줄 알고 죄송하단 말을 서른 번쯤 했었는데.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뮤직 비디오 촬영지 섭외
▷ 보상: 경험치(촬영 장소의 상태에 따라 상이)
+
‘촬영지는 섭외해 본 적이 없는데 어쩌지?’
아무래도 이 시스템은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바꾼 것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내게 물으려는 모양이다.
이게 곡 바꿨다고 시비 거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배경이자 만만한 건 학교였지만 ‘촬영 장소의 상태에 따라 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마도 장소 선정이나 연출과 같은 점까지 프로듀싱의 역량에 포함되는 듯했다.
‘보통은 야외와 실내 스튜디오까지 최소한 두 곳에서 찍었던 것 같은데……. 그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나?’
나는 언제나 전문가의 힘을 믿는 편이었다.
전문가가 왜 전문가겠는가. 그쪽 일을 잘하니까 전문가가 된 거지.
그런데 왜 일 잘하시는 분들을 두고 내가 이 짓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비품 구매 전문가인데 말이다.
대학생 땐 알바만 하고 취직한 뒤로는 야근만 하느라 어딜 돌아다녀 본 기억이 없는 게 더 문제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기라도 했으면 감이라도 잡혔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거라곤 한평산업 근처에 맛집이 많다는 추억뿐이었다.
‘이제 와서 발품을 팔기엔 시간이 없어.’
밤에 잠 좀 자나 싶었던 요 며칠간의 달콤한 나날도 오늘로 다 끝이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동이 틀 때까지 스킨 스쿠버 할 생각을 하니 즐거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차피 시작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일이라는 건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찾아오는 놈이니까.
그렇게 자려고 누운 지 2시간 만에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머리 위에서 익숙한 알람이 울렸다.
이청현의 알람이었다.
알람은 순식간에 꺼졌다. 그리고 곧이어 이청현이 힘겹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너 왜 이 시간에 알람 맞췄어? 지금 새벽 5시야.”
나는 혹시나 이청현이 알람을 잘못 맞췄을까 봐 최제호가 깨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알람을 잘못 맞춘 게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저 좀 있으면 시험 기간이거든요……. 공부하다 학교 가려고요.”
“뭐?”
나도 모르는 사이, 고등학생들의 시험 기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 * *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공부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썼다.
밥 먹고 씻고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공부만 했을 정도였다.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학력을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집중하고 있으면 집에서 큰소리가 나도 모르게 되니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이 되면 대학에도 갈 수 있으니까.
천운으로 나는 노력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누나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집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만 했던 시간을 후회하지도, 괴로웠던 때로 기억하지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공부와 먼 삶을 살았고.
‘분명 그랬는데.’
나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제집을 펼치고 있는 학생즈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더라?’
새벽에 사이좋게 침대에서 일어난 뒤로 이청현은 거실에서 1시간 공부 시간을, 나는 뮤비 촬영지 검색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이청현이 골머리를 싸맸고.
‘뭐 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해설지 학교에 있어서 지금 확인도 못 해 보는데.’
운 좋게도 내가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길래 대충 풀이를 해 줬더니 이청현은 앞으로도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나 시험 날이 임박한 지금, 학생들은 연습 후 거실에서 대대적인 공부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것도 나와 함께.
‘잠깐만. 나는 왜?’
‘필요할 때 언제든 얘기하라면서요.’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니?’
정성빈과 이청현, 강기연 세 놈 다 취약 과목도 가지각색이길래 어쩔 수 없이 나는 녀석들이 모여 있는 밥상 앞에 앉아야 했다.
수험 당시의 지식이 남아 있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성적 관리를 하는 정성빈과 이청현은 가끔씩 뭔가를 물어보는 정도였고, 강기연은…….
“기연아, 펜이 멈춘 것 같은데?”
거의 영혼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과목의 문제는 어떻게든 잘 푸는 것 같더니 수학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뻗은 뒤였다.
덕분에 나는 열다섯 번째 폐교를 찾아보다 말고 강기연에게 교육 방송식 수학 강의를 해야 했다.
과외 알바를 몇 탕씩 뛰던 경험을 한껏 발휘해 주었더니 강기연의 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주우가 힘내라며 컵에 따라 준 이온 음료까지 마시고 있으니 정말 과외 수업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형, 형은 어쩌다 아이돌 할 생각을 했어요?”
음료를 마시며 한숨 돌리던 이청현이 내게 물었다.
멀리서 냉장고에 주스를 넣으려던 박주우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맞다, 쟤 내가 학비 못 내서 대학 안 가고 아이돌 하는 걸로 오해하고 있지.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은 척 되물었다.
“그건 갑자기 왜?”
“그냥요. 형 공부도 잘하는 것 같은데, 뭐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이돌에 관심을 갖게 됐나 해서.”
그건 오히려 사람들이 이청현에게 궁금해했던 부분이었다.
어린 시절엔 클래식을 했었고, 커서는 영재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녀석이 돌연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까.
그렇다고 이청현에게 ‘응, 원래는 개미만큼도 관심이 없었는데 효도와 이직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나는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는 선인들의 말을 실천하듯 환하게 웃으며, 아직 한 문제도 풀지 않은 새 페이지를 가리키고 말했다.
“청현아, 지금 그게 중요해?”
“당연히 공부가 더 중요하죠, 형님.”
강기연이 잘들 논다는 얼굴로 쳐다보거나 말거나 이청현은 다시 문제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경이로운 집중력이었다.
나는 언제 떠들었냐는 듯 무서운 속도로 문제집을 풀어 나가는 이청현을 보며 생각했다.
‘아이돌을 하게 된 계기와 관련된 대답은 미리 마련해 두는 게 좋으려나?’
이 질문은 언제 어디서 또 나올지 모르는 질문이었다.
지금이야 이청현에게 장난치듯 말하며 대답을 피했지만, ‘캐스팅을 계기로’라는 말로 둘러대기엔 내가 남 보여 주기 부끄러울 정도로 치열하게 연습하고 있어서 말이다.
‘말문이 막히지 않은 게 다행이네.’
남 부장과 일하며 온갖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좋게 대꾸한 경험이 이런 곳에서 발휘될 줄은 몰랐다.
그때도 한 1년 지나니까 적당히 대화를 돌리는 말이 자동 응답기처럼 나오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닥칠 여러 상황을 내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
정말이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 * *
살다 보면 자신의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사실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좋은 상사라거나 과제를 적게 주는 교수님처럼.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사내 복지로 중식을 제공하는 회사나 친동생처럼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대상들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좋은 양육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 내 불화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괴롭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추워서 못 자고 있으니까 엄마가 배가 불렀다면서 우리 밖으로 내쫓았잖아. 기억 안 나? 한겨울이었는데.’
‘난 하나도 기억 안 나.’
‘와, 나만 손해네. 넌 어떻게 동상까지 걸려 놓고 그걸 잊어버리냐.’
오히려 나는 제대로 기억하는 게 거의 없는 편에 속했다.
나와 달리 어릴 때의 일을 자세히도 기억하는 누나가 분해했던 것만 기억날 정도였다.
사회에서도 어른은 수없이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선생이나 상사였지 ‘보호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오는 동안 내 또래와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성인을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오신다고?”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숙소에 찾아오신다는 정성빈의 부모님은 내가 처음 만나는 유형의 어른이 될 예정이었다.
“네. 데뷔 확정되었다니까 맛있는 거라도 해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헐! 성빈이 형네 부모님 오신대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성빈의 가족분들은 이전에도 종종 숙소에 찾아오며 냉장고를 채워 주셨다는 듯했다.
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친구라도 있었으면 친구네 놀러 가면서 친구 부모님이라도 뵈었을 것을.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까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대면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다.
다 같은 어른이라도 교수님과 의사 선생님, 경영진에게 보이는 예절이 조금씩은 다른 법 아닌가.
비록 내 본가는 개판이어서 망나니 같은 나를 키워 냈지만 정성빈네 집은 정성빈을 키워 낸 집이었다.
그런 집안의 분께 나도 모르게 경우 없는 행동을 하면 큰일이었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실수한 것만 모른다고 하지 않나.
내가 나도 모르게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나머지…….
‘나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우리 아들이 저런 글러 먹은 놈이랑 데뷔하는 거 인정 못 한다!’
‘한 번만 믿고 맡겨 주세요, 어머님!’
……하는 상황이 생기면 큰일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과거로 돌아온 이래,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