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4화(45/193)
| 44화. 가족 초청 행사 (1)
얼마 뒤.
스파크의 숙소에 중년의 여성분께서 방문했다.
“다들 오랜만이네. 처음 보는 이 친구가 새로 왔다는 이월이인가?”
바로, 정성빈의 어머님이셨다.
“반가워, 성빈이 엄마야.”
어머님께서 현관에 짐을 내려놓고 내게 손을 내미셨다.
나는 얼른 손을 마주 내어 잡으며 인사를 드렸다.
“네, 안녕하세요.”
뒤에 ‘처음 뵙겠습니다.’도 붙일까 하다가 참았다.
내가 아무리 친구 부모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지만, 저런 말투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정성빈의 부모님 곁에서 방방 뛰고 있는 이청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성빈의 어머님께선 웃는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월이는 성빈이한테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점잖다.”
벌써요? 아직 제 허리는 절반밖에 꺾이지 않았는데요.
처음 뵙겠다는 말까지 했다간 ‘애가 아주 점잖고 각이 살아 있네.’라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정성빈은 어머님께 내 얘기를 어떻게 한 걸까?
불안했지만 굳이 알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정성빈을 추궁하는 대신 어머님의 짐이나 들기로 했다.
“짐은 저 주시고, 편하게 앉아 계세요.”
“아냐, 아냐. 아줌마가 냉장고에 넣을게.”
그러시더니 어머님께서 내려놓았던 커다란 쇼핑백을 다시 집어 드셨다.
나는 소소한 실랑이 끝에서야 쇼핑백을 넘겨받고 부엌으로 향할 수 있었다.
쇼핑백 안에는 밀폐 용기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짐이 많아서 단출한 차림으로 오신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를 본 정성빈이 말했다.
“또 반찬 가져오셨어요? 일하느라 바쁘시면서.”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야 금방 하지. 기연아, 청현아! 얘네들 좀 베란다에 내놓을래?”
어머님의 지시에 따라 강기연과 이청현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게, 이런 일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현관문에서 다시 한번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쇼핑백 안의 물건을 꺼내는 데 열중하시던 어머님께서 고개를 들고 말씀하셨다.
“아. 너희 아빤가 보다.”
“아빠도 오셨어요? 오늘 출근 안 하신 거예요?”
“연차 냈대. 내가 너 보러 온다니까 굳이 자기도 오겠다더라.”
정성빈의 아버님일 거란 소식에 나는 허겁지겁 현관문 앞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확실히 정성빈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남자분께서 서 계셨다.
어머님이 가져오셨던 것의 두 배는 되는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어? 못 보던 얼굴이네. 네가 이월이니?”
“네, 안녕하세요!”
아버님과 비슷한 연배의 남성은 이전에도 많이 보았다.
편의점 사장님이나 택배 알바를 할 때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사람이 ‘동료의 아버지’라는 데서 오는 묘한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UA 안에서나 썼던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 기술을 선보여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성공적으로 아버님의 짐을 나눠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 순간 어머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니, 당신은 이걸 왜 애한테 들려? 여기 안에 과일 들어서 무겁다고 했잖아!”
“아이고, 깜빡했네.”
“별로 안 무거워서 괜찮아요, 어머님!”
고래와 새우 싸움에 낀 잔새우가 될까 봐 나는 급하게 해명했다.
정성빈과 함께 장바구니를 열자 이번에도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통들이 한가득 나왔다.
“이월이는 못 먹는 거 있어? 아줌마가 여러 가지로 챙긴다고 챙겼는데, 너 먹을 게 없을까 봐 걱정이긴 하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저 다 잘 먹어요!”
“이 형 쫄면만 먹긴 하는데 안에 들어간 채소는 다 먹더라고요!”
상사가 주는 거라면 독주라도 마셔야 하는 한평산업에서의 기억으로 인해 대답은 자동으로 나왔다……만 이청현이 초를 쳤다.
쟤는 도대체 왜 저렇게 내 입맛에 집착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월이 너 쫄면 좋아하니?”
“하하, 조금요!”
아무래도 두 분이 돌아가시면 이청현과 방에서 긴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기대해라. 잊지 못할 훈계를 해 주지.
그렇게 우리는 총 세 개 분량의 거대한 장바구니를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거실에 모여 앉을 수 있었다.
놈들이 어른들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 내가 차를 타기로 했다.
손님을 대접해 온 세월이 있는데 나는 가만히 앉아 있고 남을 시키는 건 자존심이 상하니까.
‘이러고 있으니까 탕비실 온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긴 한데.’
나는 곰팡내 나는 기억이 더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따뜻한 둥굴레차 일곱 잔과 내 몫의 미온수 한 잔을 쟁반에 올려놓고 거실로 향했다.
내 물만 투명한 것을 본 박주우가 물었다.
“……왜 형은 그냥 물 마셔요?”
“치아 변색을 방지하려고.”
얼굴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깔끔함이라도 유지해야 하지 않겠니.
그룹의 평균 비주얼 향상을 위해 힘쓰는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표정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나의 부족함은 잘 알고 있으니 눈빛으로 강조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내가 멤버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사이, 정성빈의 부모님께선 멤버들을 하나씩 챙겨 가며 안부를 물으셨다.
“기연이 저번에 발목 다쳤었다면서. 그건 다 나았니?”
“네, 이젠 멀쩡해요.”
“제호 넌 못 본 사이에 더 컸다. 어쩜 이렇게 키가 쑥쑥 크지?”
두 분의 말에선 연습생들을 오랜 시간 지켜본 티가 났다.
동시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막장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 예비 시어머니 될 인물이 여자 주인공에게 ‘촌스럽긴. 너는 우리 아들과 어울리기엔 격이 너무 떨어지는구나!’라고 말하는 장면 말이다.
‘몇 년간 연습생 준비하던 아들네 그룹에 듣도 보도 못한 잔챙이가 낀다고 하면 그런 생각이 드실 만도 해.’
아까 말씀하신 반찬 역시 현실판 ‘섭섭지 않게 넣었다.’ 봉투일지도 몰랐다.
나 같아도 정성빈 같은 아들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과 7년간 한배를 타야 한다고 하면 심란함이 지붕을 뚫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부모님과 모든 녀석의 안부 인사가 끝나고 나자, 내 차례가 오고야 말았다.
“이월이는…….”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그 뒤에 나올 말을 예상해 보았다.
‘뭘 믿고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아니면…….
‘정말 데뷔할 때까지 UA에 남아 있을 거니?’
그것도 아니면.
‘혹시 눈치가 없는 편이란 소리 많이 듣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나는 강렬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한평산업에서 봤던 압박 면접 때보다 더 심장이 조여들었다.
함부로 타인의, 그것도 웃어른의 마음 씀씀이를 의심하면 안 되건만.
마치 내 머리가 전신의 모든 에너지를 나쁜 생각 하는 데 쓰고 있는 듯했다.
천 년 같은 1초가 지나가자 정성빈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연습생 하면서 힘든 건 없니?”
“네?”
그리고 당황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류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다고.
아이돌 데뷔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 걸리긴 했지만, 정말로 누나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남들은 얻지도 못했을 귀한 기회를 얻었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같이 데뷔해야 하는 동료는 사고를 좀 쳐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보장된 녀석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충을 토로하는 건 사치였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라고. 아주 솔직하게.
* * *
정성빈의 부모님께선 1시간 정도 계시다 돌아가셨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쭈었지만 두 분께선 한사코 거절하셨다. 애들끼리 쉬는 걸 방해하면 어쩌냐며.
정성빈에게 물어보니 놀랍게도 두 분 다 바로 집으로 가실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집 어른들은 한 번 나가면 3일 정도는 집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하긴, 커 가면서 얘기를 들어 보니 웬만한 가정에서는 밤이 되면 가족들이 집에는 모이는 것 같더라.
숙소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각각 구역을 나눠 손님이 다녀간 거실을 정리하던 중 정성빈이 빈 컵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마이크를 쥔 손을 특히 좋아하던 팬들을 위해 녀석들의 손이 찬물에 부르트지 않도록 내가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설거지해야 하는 컵이야? 그 옆에 두고 가.”
“아뇨. 그, 형. 오늘은 죄송했어요…….”
“뭐가? 오다가 컵에 침 뱉었어?”
남 부장이 가끔 지 기분 나쁘다고 내 신발 근처에 가래침을 뱉었거든. 그래서 내가 길에서 침 뱉는 사람을 싫어해.
하지만 정성빈이 고백한 것은 그런 불쾌한 부류의 내용이 아니었다.
“저희 엄마 아빠 오셔서 많이 불편했죠?”
“응?”
정성빈이 컵의 손잡이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이어 나갔다.
“형이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닌 건 저도 아는데, 뭔가 오늘 좀 긴장하셨던 것 같아서요.”
긴장? 당황이 아니고?
‘그냥……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라 정신이 좀 없었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 판단에도 어폐는 있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면 수능을 말아먹거나 한평산업 입사 면접에서 죽을 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수능을 망치지도, 그리고 불행히도 한평산업 면접을 못 보지도 않았다.
잘 보여야 한다는 무의식 때문에 당황을 했던 것인지도 의아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무수히 많았으니까.
‘잘 보여야 할 사람이 대학에만 스무 명 정도 있었지, 아마.’
새삼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초조해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동료 부모님께 나쁘게 보일까 봐 긴장한 건가.’
X팔리지만 이거라면 말이 됐다.
아니, 이 경우 외에는 말이 되질 않았다.
아는 사람 가족을 만나 봤으면 이만큼이나 뚝딱거릴 일도 없었을 것을, 혼자 잔뜩 얼어서는 북 치고 장구 치며 오카리나까지 분 모양이다.
이쯤 되면 어른 앞에서 말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걸 넘어선 수준이다.
나는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애써 가리며 말했다.
“내가 부모님 또래의 분들과 이야기해 볼 일이 많이 없었거든.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뿐이지, 불편한 건 전혀 없었어.”
“정말요?”
“어. 두 분 다 우리 잘 챙겨 주셨고.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나는 죄송하다고 이마에 써 놓은 듯한 정성빈에게 에둘러 대답했다.
애초에 정성빈이 사과할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과는 내 본가 사람들 같은 인간이 왔을 때나 하는 거지.
나는 잠시 그런 상황을 가정했다가 괜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얼마나 X같은지 숙소에 몇 없는 유리컵을 싱크대에 떨어트릴 뻔했기 때문이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환기하기 위해 노력하려던 찰나 생각이 미치는 곳이 있었다.
정성빈이 어떻게 내 이상 심리를 눈치챘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