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6화(47/193)
| 46화. 단체 굿즈 주문
차감되었던 피로도가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칫했다간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익숙한 피로감이었다.
‘와. 진짜 회사 다닐 때랑 똑같네.’
10시간 일한 뒤인 듯한 이 피로를 이겨 내고 운동을 하는가,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 밥이고 뭐고 잠이나 자는가.
둘 사이에서 고민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겐 스파크를 ‘엄청난 칼군무 그룹’으로 데뷔시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니까.
나는 운동하다 곡소리를 내지 않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헬스장 바닥에 드러누워 중력과의 싸움에 패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훌륭히 오늘의 운동을 완료했다.
녹초가 된 몸을 근로 지원 서비스로 회복하고 돌아왔을 때, 연습실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웃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사적인 대화를 하는 놈이 이청현밖에 없는 곳답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연습실로 들어가자 거울 앞에서 몸을 푸는 몇몇 놈들의 표정이 묘하게 들떠 있기까지 했다.
제일 대표적인 게 이청현과 정성빈이었다.
명단과 날짜를 조합해 보자 정답은 금방 나왔다.
‘맞다. 쟤네 시험 끝나는 날이랬지.’
나는 동급생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똑같은 텐션을 고수하고 있는 강기연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시험이 끝났는데도 평소랑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인다?”
“시험 끝났다고 좋아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아서요.”
“자기 객관화가 완벽하네.”
연습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데뷔 준비에만 충실한 강기연에게 박수라도 쳐 주려는데 누군가가 내 등 위로 뛰어들었다.
이런 짓을 할 놈은 우리 중 이청현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청현이 내 머리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형! 형이 알려 준 거 시험에 나왔어요! 대박이죠!”
“그래서. 맞았어?”
“당연하죠. 틀렸으면 형이 저 불러내서 ‘청현아, 지금 배운 걸 틀려 놓고 웃음이 나와?’라고 할 거잖아요.”
“잘 아네. 그리고 너 성대모사도 잘한다. 나중에 개인기로 써도 되겠어.”
“하. 저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어쩌죠?”
그러더니 이청현이 크게 웃었다.
나는 등에 업힌 이청현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예능 나가면 네가 하드 캐리 해야지.”
“오……. 너무 리얼해서 무서운데요, 형.”
이청현의 매달리기 쇼는 정성빈의 만류로 금방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청현은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형! 형! 저희 시험도 끝났는데 다 같이 뭐라도 할까요?”
“하다니, 뭘?”
“놀러 가는 게 딱인데 연습 일정 때문에 그건 힘들 것 같고……. 흠, 고민되네요.”
어찌나 텐션이 높은지 시험이 아니라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온 줄 알았다.
들뜬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최제호는 아예 이청현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너 왜 이렇게 신난 거야? 혹시 시험 잘 봤어?”
“음, OMR을 밀려 쓰지 않았다면 반 1등은 했을 것 같은 정도?”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이청현은 엄청난 소식을 태평하게 지껄였다.
“진짜?”
“진짜.”
놀라서 되묻는 날 보며 이청현이 씩 웃었다.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가히 놀라운 영민함이었다.
나는 낮부터 밤까지 몇 날 며칠을 공부해야 간신히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이 녀석은 시험 기간에만 바짝 공부해 놓고도 나와 비슷한 성적을 냈으니 말이다.
‘왜 가족들이 처음에 아이돌 하겠다는 걸 반대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지식인 집안인 이청현은 데뷔하기 전까지 가족의 반대에 심하게 부딪혔다.
연구원 부원장인 모친과 고등학교 교사인 부친에게 K-Pop 아이돌은 조금 낯선 직업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스파크의 브이로그 구석에서는 이청현이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이곤 했다.
‘스파클러, 지금 시험 기간 아니에요? 빨리 라이브 꺼요. 저도 오늘 라이브 끝나면 문법 끝낼 거예요!’
‘저 오늘은 진짜 공부해야 돼요. 시험 못 보면 엄마한테 혼나.’
팬들은 그런 이청현의 모습을 ‘아이돌의 K-고딩 모먼트’라며 좋아했다.
졸지에 나도 남 부장 따님의 요청으로 브이로그를 박박 긁어서 ‘청현이와 공부해요(스파크이청현)’라는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어찌나 구석에 처박혀서 문제집을 푸는지, 영상을 만들 땐 확대를 하도 해서 애 얼굴이 도트 게임 캐릭터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쨌거나. 집에서 압박을 느꼈다면 왜 이 녀석이 새벽부터 일어나 시험공부를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정성빈의 만류로 인해 드디어 내 등에서 내려온 이청현을 보며 말했다.
“시험 끝난 기념으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같이 해야 하는 거면 해 줄게.”
“진짜요?!”
“맛있는 건…… 강기연이 식단 하니까 안 되겠다. 연습 빼는 것도 안 돼. 나 지금 1분 1초가 부족해서 발등이 불타고 있으니까.”
“아니, 그럼 되는 게 없잖아요!”
“불만이면 다음 기말고사를 노려 보든가.”
내 말에 이청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왜.
잘 나온 게 네 성적이지, 내 성적이니?
똑똑한 이청현이 돈과 시간 그리고 미식이 제한된 극한의 환경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고자 애쓰는 사이 박주우가 다가왔다.
“……우정템 같은 건 어때?”
“우정템이요?”
우정템이라니.
정말 박주우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단어였다.
연습실에 있던 우리 모두―최제호도 포함일 것이다. 아마도.―귀를 의심했다.
정작 박주우는 덤덤하게 연습실에서 쓰는 공기계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시험 끝난 학생’을 검색한 화면이 떠 있었다.
아래에는 ‘시험 후 버킷리스트’, ‘시험 끝나고 할 일’ 등의 검색 기록도 있었다.
“청현이 너 이런 거 좋아할 것 같아서…….”
“완전 좋아하죠! 어떻게 이렇게 내 취향을 딱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이청현의 얼굴은 정말로 신나 보였다. ‘얘가 이렇게 팀에 애정이 많은 멤버였나?’ 싶다.
“우정 반지 좋다. 형들, 반지 어때요?”
“너희 한참 성장기잖아. 지금 맞췄다간 나중에 사이즈 안 맞을지도 몰라.”
“그런가? 그럼 성장기 끝났을 제호 형이랑 이월이 형 먼저 맞춰요.”
“그렇게 시간 차로 맞춘 걸 우정 반지라고 할 수 있나……?”
얼떨결에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우정 과시용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해 고민하게 됐다.
개중에는 썩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최제호 말이다.
녀석이 ‘굳이 다 같이 뭘 맞춰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길래 나는 몰래 강기연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최제호도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둘이 싸우게 된 계기를 잊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10여 분이 지나도록 좋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전원이 착용하기에 부적합한 이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토끼 머리띠를 대체 어디에 하고 갈 거냐고.”
“귀엽잖아요! 웃기기도 하고.”
“넌 그냥 멤버들을 우습게 만들고 싶은 거잖아.”
갑자기 눈이 돌아간 이청현이 동물 귀 머리띠를 제안하질 않나.
“그냥 목걸이 이런 거 하면 안 돼?”
“주우 목걸이 안 하지 않아? 답답해서.”
“응……. 그래도 다 같이 맞추는 거면 할게.”
“에이, 목걸이 말고도 좋은 거 많을 거예요!”
목걸이, 팔찌, 발찌가 줄줄이 각자의 취향으로 인해 기각당하질 않나.
의견을 조율하려면 하고도 남았겠지만, ‘우정템’이라는 것에 꽂힌 모양인지 다들 ‘모두가 만족스러울 수 있는 걸 맞춰야 한다!’는 데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소모적인 대화로 연습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하는 건 곤란했다.
“설마 오늘 연습 시간 내내 우정템 얘기만 할 건 아니지?”
“헉. 벌써 20분 가까이 지났네요……!”
“응. 다 좋은데 할 건 하고서…….”
그러던 찰나, 말하다 말고 생각났다.
이 녀석들에게 잘 어울리고, 모두가 착용할 수 있으면서.
들인 비용 대비 많은 시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우정템이 말이다.
그로부터 3일 뒤, 숙소에 꽤 부피가 큰 택배가 도착했다. 우리가 주문한 우정템이었다.
정성빈과 이청현이 택배를 뜯는 동안 최제호가 내게 물었다.
“야.”
“왜?”
“보통 우정템으로 운동복을 맞추냐?”
그렇다.
우리는 단체로 1년 365일 입을 수 있는 운동복을 맞췄다. 때도 잘 안 탈 검은색으로.
“유니폼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학생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필기도구 세트 사 주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필기도구 세트가 뭐 어때서?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나랑 최제호가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 사이 정성빈이 우리 사이즈의 옷을 들고 다가왔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포장을 뜯고 있었다.
“형, 저희 나중에 이거 입고 안무 연습 영상 찍을까요?!”
“그러려고 맞춘 거야. 그러니까 영상 찍기 전에 잃어버리면 가만 안 둔다.”
나는 너희가 세기말적인 사복을 입고 찍은 안무 연습 영상을 보고 싶지 않거든. 보는 내내 좀 괴롭더라고.
숫자나 이름 같은 건 일부러 새기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빠져도 티가 나지 않아야 하니까.
‘단체복은 회사 후드 집업 이후로 오랜만이네.’
검은색의 우정 트레이닝복 세트를 들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중간고사 종료와 더불어 처음 생긴 우정템에 기뻐한 것도 잠시, 이청현은 곧바로 현실 세계로 복귀해야 했다.
데뷔곡의 데드라인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청현의 곡은 충분히 완성도가 높았다.
과거에 수록곡으로 실렸을 때보다 훨씬 좋았고, A&R 측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참고용으로 보내 준 기획 PPT나 안무 연습 등에서의 지시가 이청현에겐 다른 방식의 피드백으로 느껴진 듯했다.
창작욕에 불이 붙은 이청현은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곡을 뜯어고치며 대대적인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역으로 이상하게 수정이 되면 말려야 하니 덩달아 나도 잠을 못 잤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 기간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난 뒤.
“……어때요?”
음원 재생이 끝나자 이청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가 뜰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깨어 있던 탓에 이청현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이청현을 쳐다보았다. 녀석의 눈 밑이 새카맸다.
“솔직하게 얘기하길 원하는 거지?”
“……그러면서 표현은 부드럽게?”
이청현은 장난스럽게, 하지만 본인은 전혀 장난이 아닐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런 이청현에게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들은 버전 중에 제일 좋다. 이걸로 가자.”
“진짜요……?!”
이청현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잠긴 이청현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아마 ‘아싸!’ 따위의 감탄사를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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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업무의 최종 확인을 알리는 시스템이 나타났다.
“그래. 진짜.”
데뷔까지의 가장 큰 산을 넘어서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