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4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7화(48/193)
| 47화. 동료의 병가 (1)
곡이 완성되고 나자 UA는 곧 데뷔곡에 가사를 붙일 작사가 섭외에 나섰다.
음반 만들던 회사이니 작사가를 섭외하는 것부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UA에서 특별히 가사에 들어갔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냐고 하길래, 이전에 공유했던 기획안을 구체화하고 레퍼런스만 추가해 새로 넘겼다.
다행히 이번에도 ‘무대를 위한 조언’의 달성률이 올라갔다.
이로써 데뷔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적어도 내가 손댈 수 있는 선에서는.
그렇다고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일 하나를 끝내면 새로운 일이 온다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이제 또 이상한 거 한가득 시키겠지…….’
그래서 나는 마음을 놓는 대신 잠깐이나마 생긴 여유를 최대한 쪼개 쓸 생각을 해야 했다.
새로운 업무가 뜨기 전까지 밀린 계좌 정리를 하든, 한동안 멤버들 사이에 긋지 못했던 사랑의 작대기를 긋든.
정신 차려 보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게 일이다. 업무의 축복이 끝이 없다.
노동의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업무가 없어서 걱정할 일은 내가 죽어 땅에 묻히지 않는 한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아이돌 그만두고 났을 때 기업들이 채용 공고 많이 올려 줬으면 좋겠다.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형, 오늘 보컬 연습실 쓰세요? 보드에 이름 적어 놓으셨길래요.”
“응. 득음하고 올게.”
나는 무리하진 말라는 정성빈의 말에 적당히 대답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연습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여섯 명 사이에서 유난히 모난 돌처럼 튀는 내 실력을 알고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몇 번을 봐도 존경스러울 정도의 배포다.
‘저렇게 말해 주면 오히려 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정성빈의 팬들이 왜 그토록 ‘다정도 죄다.’라고 외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땐 그냥 다정하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이젠 나도 공감한다. 다정은 죄가 맞다.
내 양심이 아무리 가루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먼지만큼은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니까.
한평산업에서도 못 받아 봤던 근로 지원도 받고 있으니 성대 정도는 불살라 주는 것이 도리였다.
나는 보컬 숙련도의 성장을 꿈꾸며 각오를 다지고 연습실로 향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미약한 성장에 비해 성장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3단 고음은 못 해도 2단 고음은 해 보려던 나는 거짓말처럼 목소리를 반쯤 잃어버리고 말았다.
목소리가 맛이 갔다는 걸 알게 된 건 부지런히 방에서 걸어 나오던 정성빈에게 아침 인사를 하면서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형.”
“어어. ……?”
‘너도 잘 잤어?’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 목에서 시멘트를 갈고 있는 게 아닌가.
공사장의 매캐한 공기를 목 안에 그대로 옮겨 놓은 줄 알았다. 뒤늦게 목이 칼칼한 게 느껴졌다.
“형, 목소리가 왜 그래요?!”
“아침이라, 크흠, 그런가 봐.”
유감스럽게도 나의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어제 노래방에서 세 시간 놀다 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니면 북악산 정상에서 고래고래 상사 욕을 세 시간쯤 한 사람 목소리거나.
“형, 억지로 목 쓰지 않는 게 좋겠어요.”
내가 힘겹게 목소리를 가다듬는 걸 본 정성빈이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건네주었다.
온정은 감사했지만 내 상태는 심란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 실력은 손톱만큼 늘었는데 성대는 강판에 간 것처럼 갈렸단 말인가.
이건 부당하다. 한평산업도 최저 시급은 줬는데 이놈의 아이돌력은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것 같다.
하물며 근로 지원까지 받고 있는데 이 지경이라니. 성과에 비해 육체 데미지가 과도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알았, 어. 아오. 뭔 말을, 큼, 못 하겠네.”
“말하지 말라니까요……!”
정성빈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기연이 무슨 일 있냐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월이 형 목소리가 엄청 상했어. 어제 너무 무리하셨나 봐.”
“목소리가요?”
“응. 형, 아침은 저희가 알아서 먹고 갈 테니까 형은 좀 쉬시다 병원 다녀오세요.”
“목소리랑 빵 굽는, 게 무슨 상관이야.”
초미세먼지 농도를 재면 매우 나쁨이 뜰 것만 같은 목 컨디션으로 힘겹게 ‘그만 떠들고 앉아서 빵이나 기다리렴.’이라는 의미를 담아 말했더니 강기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 진짜 병원부터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초짜 연습생이 목 한 번 험하게 다룬 걸로 다들 과민했다.
내가 평생 노래할 것도 아니란 말을 할 수가 없는 게 답답할 따름이었다. 목소리 좀 상한다고 큰일 날 일 없는데 말이다.
어딘가 아파서 연습에 지장이 간다면 지체 없이 병원행을 택했겠지만 목소리는 그렇게 치료가 급하지 않았다.
나는 빵 봉투를 뜯으며 말했다.
“얘들아.”
“형…….”
“목 아픈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러자 드디어 녀석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이돌 해 먹을 놈들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앞으로의 고생길이 훤하다.
내가 그렇게나 별거 아니라고 말했건만 정성빈은 기어코 최제호를 깨워서 ‘이월이 형 꼭 병원 다녀오라고 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등교했다.
“목이 얼마나 안 좋길래?”
“그냥 그래.”
“쇳소리가 나는데?”
최제호가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 그 정도야?
내 성대가 혹사당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면접 시즌이 되거나 회사 건물에 점검 혹은 공사라도 있는 날이면 8시간 내내 앵무새처럼 떠드는 게 내 일상이었으므로.
그래서 별로 이상하다는 걸 못 느끼고 있었는데, 듣기에 어지간히 이상한 모양이었다.
“형.”
최제호에게 병원 정도는 알아서 가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 시간에 숙소에 있을 연하 멤버는 박주우뿐인데.
돌아보니 박주우가 머그컵을 들고 서 있었다. 머그컵 안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
“……이것 좀 드세요. 꿀물이에요.”
박주우가 내 식빵 접시 옆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꿀을 꽤 탔는지 물의 색깔이 제법 노랬다. 그런데도 꿀 냄새가 안 나는 걸 보니 코까지 막힌 듯했다.
고맙다고 말하려던 나의 인사는 박주우의 만류에 의해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그렇게 맨입으로 얻어먹은 꿀물은 엄청나게 달고 뜨거웠다.
“주우야.”
“왜요, 형?”
“꿀을……. 큼, 얼마나 넣은 거야?”
“이만큼요.”
박주우가 가리킨 곳은 컵에서 4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이었다.
우리 메보는 나를 감기 따위가 아니라 당분 과다 섭취로 치워 버리고 싶은 모양이다.
지독하게 단 꿀물이었지만 성의를 봐서 한 모금은 더 마시려는데 박주우가 물었다.
“……물 더 넣어 드릴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보다 열다섯 배는 더 아프고 이백오십만 배 정도 더 지쳐 있었던 옛날 일이 떠올랐다.
‘김 대리는 어디가 아파서 약을 그렇게 자주 먹어?’
‘별건 아닙니다. 요즘 두통이 좀 있어서요.’
한평산업에 입사하고 2년쯤 됐을 때였나.
그때부터 나는 만성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나름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가 보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심할 때마다 진통제를 먹는 것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 부장은 오며 가며 내게 꼭 한마디씩 했다.
‘젊은 사람이 너무 약에 의존하는 거 아냐? 그거 의지 부족이야.’
의지만 있으면 두통도 낫고 혈액 순환도 잘된다던 남 부장의 명언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정작 남 부장 본인은 나이 들더니 소화가 잘 안된다는 이유로 식후만 되면 옥상에 올라가 한 시간씩 담배를 피워 놓고.
애초에 내게 두통이 생긴 것도 지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남 부장은 머리가 쪼개지기 직전인 내 손에서 약을 가져다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었다.
‘아무튼 약 자꾸 먹지 마. 평소에 건강 좀 챙기고.’
‘네, 알겠습니다.’
‘아프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보면 일하기 싫어서 보란 듯이 그러는 줄 알겠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싶은데 알겠어서 문제였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한결같이 나를 쪼는 남 부장의 변치 않는 마음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 남 부장은 날 볼 때마다 몸은 좀 어떠냐며 한마디씩 해 댔다. 영문 모를 직원들이 이월 씨 어디 아프냐고 묻기라도 하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나를 내일 죽기라도 할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주말엔 다들 좀 푹 쉬고. 특히 김 대리! 허튼짓하지 말고 주말엔 꼼짝하지 마! 그냥 쉬기만 해!’
이쯤 되다 보니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매일같이 허튼짓만 하는 사람으로 알더라. 덕분에 임원진에게도 건강 관리도 능력이라며 한 소리 듣기까지 했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 대접은 황송한 수준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일이었다.
그래도 악의 없는 걱정을 받는 건 나쁘지 않았다. 조금 낯간지러워서 그렇지.
나는 민망한 마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멋쩍어하는 박주우를 보고 말했다.
“아니야, 맛있어. 고마워.”
그러자 박주우가 내 꿀물보다 훨씬 옅게 웃었다.
그걸 보고 나니 차마 꿀물을 남길 수가 없게 되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벌집 그 자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단 꿀물을 전부 마시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게는 안일한 구석이 있었다.
근로 지원 서비스를 받으면서 내게 누적되는 피로도가 줄어든 만큼, 내가 멤버들을 보조해 주면 멤버들도 고된 스케줄을 무탈히 견딜 수 있을 거라 착각한 것이다.
정신력이든 체력이든, 이 녀석들은 아직 성장이 덜 끝난 애들이라는 것도 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