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49화(50/193)
| 49화. 업무 분배
박주우는 멤버들의 정성 가득한 관심을 한껏 받아 금세 쾌차했다.
물론 내 간호도 빼놓을 수 없지. 지극정성으로 돌봐 준 덕분에 박주우는 아주 때깔이 고와졌다.
그 후 나는 주말 저녁 시간을 틈타 친절하게 비상시 행동 요령도 주지시켰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즉시 정성빈에게 보고하고 낮에 병원에 가란 말이야. 알겠어?’
환자인 박주우는 배려 차원에서 소파에 앉혀 놓고 특강을 진행했다. 나머지는 죄다 바닥행이고.
이 와중에 이청현은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고 물었다.
‘형, 이거 적어야 해요?’
‘어. 시험에 나와.’
우수한 수강 태도를 보인 이청현은 작곡하라고 일찍 방으로 보내 주었다.
한 놈 풀려나는 걸 보니까 다들 그다음부터는 열심히 듣더라.
그렇게 건강 관리와 컨디션 유지의 중요성까지 주입된 녀석들은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먹고 자며 운동까지 잊지 않는 갓생러로 진화했다. 바람직한 변화였다.
데뷔곡의 가사도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딱 내가 원했던 분위기대로였다. 멤버들과 회사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다들 잘 풀리는 걸 보니 조만간 뭐 하나가 터지겠다 싶었는데 시스템도 잠잠했다.
회춘한 뒤로 이런 평화로운 나날은 처음이었다. 그간 팔자에도 없던 하이틴 스타를 꿈꾸느라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가.
“형, 무슨 생각 해요?”
“쥐구멍에도 곰팡이는 안 슬겠다는 생각.”
따뜻한 삼라만상의 볕을 느끼며 나는 다시 가사지에 집중했다.
이청현과 내가 각각 작곡가와 프로듀싱 멤버의 자격으로 파트 분배를 우선 고려해 보는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멤버가 이 부분을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했는데 딱 꽂히는 느낌은 없네요.”
“처음 해 보는 일인데 감이 잘 안 잡히는 건 당연하지. 일단은 의견만이라도 정리해 봐.”
“이걸 정말 저희끼리 정할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도 한 번씩 검토해 주실 거야.”
그러자 이청현이 미간에 한껏 주름을 잡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미간은 펴. 주름 생긴다.”
“참 나.”
참 나? 참 나?
내가 지 미간에 세로줄 생기는 걸 이렇게 꼼꼼하게 막아 주고 있는데 참 나?
당장에라도 들고 있던 가사지를 뒤집어 사람 얼굴 하나 그려 놓고 부위별 보톡스 비용이라도 설명해 주려다 말았다.
그랬다간 이놈이 또 엉뚱한 데 꽂혀서 ‘형은 성형외과 쪽으로 진로 안 잡고 왜 아이돌 했어요?’라고 물어볼지도 모르니까.
내 손안에서 가사지 양쪽이 찌그러지는 걸 본 이청현이 곱게 미간을 폈다.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하여튼 이놈들은 꼭 말을 두 번 하게 만든다.
“아마…… 이렇게 나누는 게 제일 무난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고서 나는 9년 전의 멤버들이 각자 불렀던 파트를 가사지에 표시했다.
스밍 총공을 몇 년씩 돌리다 보면 수록곡 파트 구분이야 눈 감고도 하는 법이다.
어차피 고음부는 지금 단계에선 박주우랑 정성빈 둘밖에 소화 못하고.
직접 써야 하는, 공란으로 된 랩 부분을 통으로 이청현에게 넘긴 다음 남은 가사를 조각조각 나누는 덴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청현은 내 옆에서 김이월의 가사 해체 쇼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형형색색의 형광펜으로 나눠진 가사지를 보며 감탄했다.
“오, 대충 어떤 느낌일지 예상 가는 것 같아요!”
“그렇지?”
나는 뻔뻔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가사지를 뚫어져라 보던 이청현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데요, 형.”
“왜?”
“형 파트가 하나도 없는데요?”
아뿔싸. 그걸 생각 못 했네.
완벽하게 파트를 복원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얼렁뚱땅 서브 보컬 김이월 씨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고 말았다.
“형 데뷔 전날 도주라도 하려는 거 아니에요?”
아니. 데뷔 훗날 도주할 거다. 사정상 데뷔는 해야 해서.
그러나 내가 얼마나 데뷔에 간절한지 모르는 이청현의 눈에는 벌써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애써 내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려 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깜빡했어.”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자기 파트를 한 줄도 안 챙겨요?”
“너희 다섯 명의 목소리 합이 너무 좋다 보니 그만…….”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 아니죠?”
이청현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미간 좀 펴라니까 말도 어지간히 안 듣는다.
“진짜야. 그보다 시간 없으니까 집중하자.”
이청현과 고작 파트가 있느니 없느니 하며 입씨름할 시간은 없었다.
이청현도 못마땅한 표정을 하긴 했지만 더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팬들이 중요하게 보는 포인트가 도입부랑 후렴, 고음 파트였던가.’
‘도입부 요정’이나 ‘고음 담당’처럼 수식어가 뒤따르는 자리는 전부 멤버들에게 분배해야 했다.
후렴구 외에도 곡마다 꼭 언급되는 킬링 파트는 피해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이 곡 안에서 누가 하든 하등 상관없을 것 같은 파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청현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만진 덕분에 모든 멜로디가 수려하고 좋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안에서 가장 무난하고 심심한 멜로디가 들어갈 부분을 찾아냈다.
힘겹게 발굴한 가사 두 줄에 형광펜을 긋는 나를 보고 이청현이 물었다.
“설마 그게 형 파트예요?”
“어. 왜?”
“너무 적지 않아요? 다른 멤버들 거 봐 봐요.”
“이게 확정본인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는 능력치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칼 같은 파트 분배? 되면 좋지.
실력이 있어야 파트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아이돌판에서 초 단위로 분량을 재고 이를 비교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이런 시장에서 모든 멤버가 동등하게 분량을 나눠 갖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터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모두가 실력을 갖췄을 때’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춤을 추면서도 생라이브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 혼자 밀려오는 현기증을 참으며 꾸역꾸역 마이크 잡고 있어 봐라. 그것만큼 꼴사나운 일이 있나.
애초에 내 분량 가지고 서운해할 사람도 없을 거고.
그러니 나는 두 줄의 가사로 충분했다.
하필이면 한 줄은 남 부장 따님이 열렬히 사모해 마지않던 최제호의 파트였으나, 이 정도는 직장인일 때 고생한 보상이라 치고 넘기기로 했다.
따님, 이제 이 가사는 제 겁니다.
그러나 약 14초의 시간만 깨끗하게 쓰고 데뷔 후엔 반납하려던 나의 완벽한 계획은 며칠 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월아. 파트 말인데, 청현이랑 얘기해서 다시 짜 볼래?”
“네?”
나의 완벽하기 그지없는 파트 분배가 기획 팀 선에서부터 까인 것이다.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UA의 운영 방침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소속사에서 벌어진 일들은 내가 아는 것과 비슷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기존의 파트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이야말로 UA에서 내놓았을 ‘파트_분배_최종’에 가장 가까웠을 터였다.
그래서 도입부는 부담스럽다는 정성빈에게 ‘나 한 번만 믿어 봐.’라며 억지로 도입부도 맡긴 건데.
“네 파트가 너무 적잖아. 청현이도 여기에 동의했어?”
“아뇨, 청현이도 같은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밸런스가 맞아야지. 여섯이서 비슷한 분량을 가져가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완전 똑같이 나눌 수는 없더라도 얼추 균형은 맞아야 해.”
아닌데요. 얘네 노래는 다섯 명이 불렀을 때가 제일 완벽한데요.
이건 다수의 대중도 인정했다.
모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스파크의 노래를 커버했던 팀이 심사 위원과 댓글러들에게 별의별 혹평을 다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도전 정신이 가상하네요 3점 드립니다
└ 5점 만점인가요?
└ 100점 만점이요
≫ 스파크 노래가 진심 특이함…… 멤버들이 부를 땐 쉬워 보이는데 노래방 가면 목 터짐
└ ㅋㅋㅋㅋㅋㅋ 패기롭게 신청해 놓고 1절 끝날 때 냅다 취소
≫ 노래를 이렇게 잘하는데 안 뜨는 것도 신기하다
얼굴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재주임
└ 병크가 해마다 멤버 수만큼 터지잖아
└ 환절기보다 독한 그룹임 어느 날 성큼 찾아와서 눈물 콧물 다 빼놓고 지 혼자 떠남
≫ 연생들 서바이벌 나와서 스팤 커버 좀 적당히 했음 좋겠어…….
너무 실력차가 잘 보여서 오히려 거부감만 듦
차라리 자기들 실력에 맞는 무난한 노래를 하는 게 좋을 듯
└ 연생한테 바라는 것도 X나 많네
개중에는 스파크를 칭찬하는 것인지 돌려 까는 것인지 모를 게시글도 있긴 했지만.
시스템은 나한테 홀로그램 스케줄러를 줄 게 아니라 기존 5인 체제의 스파크 음원을 줬어야 했다.
그래야 기획 팀 직원분들 귀에 음원을 꽂아 넣고 설득할 게 아닌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을 중의 을인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작성해 보겠습니다.”
내가 또 까라면 까는 반복 노동의 귀재지.
결국 나는 이청현에게 미안하게 됐다며 고개를 조아리고는 다시 가사를 나눠야 했다. 면목이 없었다.
* * *
나와 이청현의 100분 토론, 기획 팀의 긴급회의, 스파크 TF 팀의 회의까지 거쳐 파트는 무사히 확정이 났다.
녹음하는 자컨 봤을 땐 A4 용지에 대충 볼펜으로 가사 옆에 자기 이름 적어 놓고 부르길래 한 10분이면 정하는 건 줄 알았건만. 역시 뭐든 쉬운 일이 없다.
자기 파트가 정해지고, 최제호와 강기연이 짠 안무까지 완성되면서 연습생들은 본격적으로 라이브 연습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든 연습 시간에 춤과 노래를 함께 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하나를 알려 주면 하나만 출 수 있는 내게 노래하고 춤추며 시선 고정하기는 새벽 4시에 웹셀 시트 정리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한꺼번에 두 개의 산을 정복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한평산업을 떠올렸다.
‘김 대리, 똑같은 일만 하려면 지루하지? 대표님께서 우리도 사내 스터디 같은 것 좀 꾸려 보라는데, 김 대리가 맡아서 한번 생각해 봐. 아, 보고서는 나 퇴근하기 전에만 넘겨주고.’
‘어, 김 대리. 대표님네 장롱이 안 열린다는데 김 대리가 가서 한번 봐 주고 와.’
이러면 연습을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
한평산업에 돌아가서 독서 스터디 만들고 남의 집 장롱 문짝 열어 주느니 연습실에서 최후를 맞이할 생각이다.
신발 밑창이 갈리도록 연습실에서 구른 덕분인지, 자다 일어나도 춤을 출 수 있을 지경이 되자 시스템도 나의 안무 숙지도를 인정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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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5)
▷ 누적 경험치: 95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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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었다.
문제의 자컨이 드디어 10화 분량 정도 확보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 편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컨셉이나 자막, 멤버마다 붙여 줄 효과 등은 이미 따로 정리해서 기획 팀에 넘긴 뒤였다.
이번에도 웹소설 키워드를 적극 활용했다. 미리 보기 분량 뒤를 이어서 봤으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정산받으면 만 원이라도 질러 둬야겠다.
그렇게 콘텐츠 분량까지 쏠쏠하게 비축해 둔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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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5)
▷ 누적 경험치: 100
▷ 누적 포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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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 백만 년 만에 포인트를 딸 수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녹음 일을 떠올리며 보컬 숙련도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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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7(▲)/20
― 댄스 숙련도: 6/20
― 자기 PR: 12/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0/20
누적 경험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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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점 이상부터는 숙련도를 수동으로 투자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으니, 내가 경험치로 올릴 수 있는 건 댄스 숙련도 1점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시스템의 도움이 없었다면 데뷔는 고사하고 벌써 한평산업 건물 문 옆에서 남 부장이 떨어트린 담배꽁초나 줍고 있었을 거다.
비록 가는 길이 불길이었지만, 아직 통구이는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직장과 사회에서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 법.
가을바람과 함께, UA에도 혹한기를 예고하는 듯한 이른 파란이 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