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50화(51/193)
| 50화. 검증되지 않은 인재
조금이라도 어릴 때 데뷔해야 하는 연습생들과 간신히 끌어모은 데이터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변하는 아이돌 시장.
이 두 가지는 곧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UA는 서두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팀 담당 인력 한 명 없이 기존 직원만으로 신사업을 벌여 보려던 UA는 근래에 들어서야 본인들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았다.
‘스파크와 관련된 일만을 전적으로 담당할 관리자가 필요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인력도 경험도 일머리도…… 그 외 아무것도 없는 기업의 최후였다.
그래도 UA에겐 최소한 양심이 있었다.
낮에는 연습을 하고 밤에는 어째서인지 일을 하며 직원들만큼이나 찌들어 가고 있는 막내 연습생 김이월을 본 회사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르게 새 전문가를 영입했다.
아이돌 그룹을 론칭해 본 경험이 있으면서, 엔터 업계에서도 오래 일한 팀장급 경력직을 데려온 것이다.
UA는 이것이 연습생들을 위한 최선의 지원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그들의 연습생인 김이월이, 정확히 3일 후 뉴 페이스로 인해 사직 충동을 겪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하고 말이다.
* * *
‘신규 인력이 지원된다……라.’
매니저님을 통해 전달받은 소식은 그렇게까지 놀랍진 않았다.
이쯤 되면 UA도 인력의 필요성을 느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같은 엔터 사업이라고는 해도 아이돌 사업은 UA가 처음 도전해 보는 분야다. 그걸 기존 조직원만 데리고 운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중요한 건 새로 올 인물이 어떤 사람이냐는 건데.
대리 덕질을 하면서 UA의 내부 사정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은 별로 없다.
팬들이 하는 소속사 얘기는 대체로 운영 방침이나 활동 계획 등에 치우쳐져 있으니까.
≫ X같은 새끼들아 포카가 화질구지인 게 말이 되냐고 XX XX
└ 돌덕질 하면서 이런 일 처음 겪어 봄…… 앨범 판매계의 새 역사임
≫ 저번 초동이 50만 장 나왔는데 이번 초판 물량을 30만 장만 준비해 두는 건 무슨 경우임? 애들은 성적 내려고 X나 노력하는데 회사가 발목을 두 쪽 다 잡음
≫ 데뷔 초엔 유에이도 아이돌 처음 만들어 보니까 그런 거겠거니 했는데
이젠 그냥 일 개같이 해도 팬들이 돈 써 줄 거 믿고 손 놓은 거 같음
살다 살다 소속사 때문에 탈빠하긴 처음임
└ 탈덕은 좀 조용히 하면 안 되냐? 지 탈덕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애들 왜 이렇게 많음 X나 아무도 관심 없는데
이런 분노 가득한 비판이 대부분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새로 올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다.
7년 후의 미래를 알면 뭐 하나. 7일 후의 미래도 모르는데. 얄궂은 일이다.
“아마 너희들의 프로듀싱을 전담하시게 될 거야. 이월이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거고.”
“그럼 이제 아이돌 팀이 생기는 건가요?”
정성빈이 물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아이돌 담당 팀이 없는 게 퍽 불안했던 모양이다.
연습생을 오래 하면서 보고 들은 게 있을 테니 더 그랬겠지.
정성빈의 질문에 매니저님이 답했다.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 대학도 좋은 곳 나오셨고 아이돌 소속사에서도 여러 번 일하신 분이야. 너희가 많이 의지할 수 있을 거야.”
죄송하지만 나는 사람의 학력과 경력을 믿지 않는다. 남 부장도 학교 하나는 좋은 곳 나왔거든.
나는 매니저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가 은근슬쩍 물었다.
“혹시 그분 성함 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내 정신 좀 봐. 정작 PD님 성함을 안 알려 줬구나? 유한수 PD님이야.”
매니저님이 말했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인물이자, 회사 전체가 욕을 먹으면 먹었지 누구 하나만 두들겨 맞는 일이 없던 UA에서 유일하게 전방위로 붙잡혀 와 돌을 맞았던 인물.
≫ 제발 부탁이야
유한수 XXX 좀 내보내
그럼 지금까지 앨범 개X같이 냈던 거 다 잊어 줄게
초기 스파클러의 평생 숙원이었던 ‘UA의 PD 내보내기’.
그 숙원 사업의 당사자인 PD가 바로 유한수였다.
유한수의 업적을 전부 읊으려면 이틀 밤낮도 모자랐다.
자꾸만 꿈에 나와 날 괴롭히는 ‘사이보그 전사’를 포함한 주옥같은 걸작들은 모두 유한수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유한수는 멤버별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겠다며 21세기 팬미팅에서 박주우에게 묵언 수행을 시키는 극악무도한 짓까지 저질렀다.
그때의 커뮤니티 반응은…….
회상하기도 힘들다. 스물아홉 살 먹은 어른이 봐도 무섭더라.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욕먹은 걸론 전 직원 무병장수할 것 같았던 UA조차 팬덤의 맹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문을 올릴 정도였다.
팬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컨셉 강화의 일환이었는데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다는 개소리 가득한 사과문을.
그럼에도 UA는 한번 뽑은 직원은 최대한 소중히 데리고 있는 회사였는지, 유한수를 쉽게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유한수는 스파크의 골든 타임이었던 3년간의 앨범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유한수가 이전에 만들었던 결과물들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한수가 직접 프로듀싱 했다고 알려진 포인트로 중박 이상을 치거나 새롭게 주목받은 아이돌도 많았다.
‘그런데 왜 하필 UA에 오고 나서 악마의 재능이 활짝 피었냐, 이 말이야.’
스파크를 향한 프로듀싱만 불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거라면 원인은 대충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었다.
유한수가 갑자기 노망이 났거나, 회사에서 유한수의 제안에 갑자기 이상한 걸 콜라보했거나.
어느 쪽이든 골치가 아팠다. 벌써 온몸에 건반 위의 단무지 룩을 걸친 기분이었다.
그래도 설마 유한수 개인의 문제로 일이 그 지경까지 갔을까 싶긴 하다.
애초에 일이 잘못되는 게 누구 하나만의 책임도 아니고. 회사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유한수는 노력했으나 하필이면 UA가 유한수를 담기엔 너무 작은 그릇이었을 수도 있지.
그래서 나는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하는 대신, 밤이 되자마자 숙소에서 직업 행성과 워크닷컴에 접속했다.
그리고 유한수가 머물렀거나 협업했던 회사를 검색하고 직군을 맞춰 설정한 다음, 시기를 대조하자 그로 추정되는 인물이 언급된 리뷰들을 볼 수 있었다.
리뷰들은 대체로 절망적이었다.
≫ 사람들 다 좋은데 딱 한 명이 물을 다 흐리는 회사
그 사람 안 내보내면 답 없습니다. 평생 그렇게 일하세요. 전 나가렵니다.
≫ 상사가 정성도 안 들여서 쓰레기를 만들면 거기에 박수 쳐 줘야 하는 극한 직업
쓰레기를 쓰레기라 말하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음
그리고 결국엔 그런 사람이 포상을 다 받아 감…… 커리어 도둑질당하고 싶으면 오세요
≫ 회사가 쓰레기 같고 상사가 더 쓰레기 같아요
장점: 문제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밖에 없음
단점: 그 인간이 안 나감
합법적이고 음습한 방식으로 모든 기업 평가 페이지를 훑은 나는 생각했다.
‘X된 거 같은데?’
일단 인성은 글러 먹은 것 같고. 성과 도둑이란 표현이 반복되는 걸 봐선 본인 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본인이 포상을 독차지한다?
이건 100% 정치질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어쩌면 UA는 버르장머리 없는 나를 크게 혼내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호되게 사회의 쓴맛을 보면서 데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체감하라는 게 아니고서야 UA가 내게 이럴 순 없었다.
“하…….”
한숨이 나왔다. 정말로 일하기가 싫었다.
* * *
불행히도 유한수는 며칠 지나지 않아 UA에 입성했다.
동시에 유한수가 맡게 될 우리와의 조촐한 대면식도 열렸다.
적당히 회의실에서 인사나 하면 될 것을. 화목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회사인 UA는 굳이 점심시간에 식당까지 예약해 가며 같이 밥 한번 먹자고 나섰다.
덕분에 우리는 솥밥집에서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각자의 소개가 끝나고 나자 유한수가 입을 열었다.
“최제호였나? 장준후 씨 뮤비 보고 기대 많이 했는데 실물도 나쁘지 않네. 대표님, 연습생 모으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보자마자 얼굴 평가를 해? 벌써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죽상을 할 순 없으니 한평산업 때처럼 열심히 눈만 웃고 있는데 유한수가 내 쪽을 쳐다봤다.
“네가 김이월이지?”
“네.”
나는 다시 한번 한평산업에서 단련한 사회적 미소를 장착했다.
그리고 저쪽도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X발, 진짜 X됐네.
“대표님이랑 기획 팀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 기획 쪽에 관심이 많다고?”
“부족하지만 그렇습니다.”
이런 얘기는 따로 하면 안 될까? 식당에서는 밥만 먹고 싶은데.
하지만 유한수는 일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더라. 다듬을 곳이 많긴 하지만. 열의가 있다는 건 좋은 거지.”
하나도 좋게 본 것 같지 않은 말투였지만,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유한수의 ‘패기 있는 연습생에 대한 평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도 당분간은 연습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아이돌 하기로 정한 지도 얼마 안 됐다면서?”
“네, 맞습니다.”
“의욕 넘치는 건 좋은데 이것저것 다 하려다 둘 다 망치는 애들 많거든. 내가 그런 애들 많이 봤어.”
유한수가 떠드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솥밥이 빨리 나오길 간절히 비는 것밖에 없었다.
저쪽에서 먼저 당분간은 닥치고 있으라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슬쩍 옆을 보니 다른 녀석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눈치가 빨라진 건 좋지만, 그간 그렇게 표정 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해 줬는데 아직도 학습이 덜 된 건 유감이다.
우리가 애들이라 나름 배려해 주려는 건지 대표가 말했다.
“한수 PD가 보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 그래도 이월이는 센스가 있으니까, 한수 PD가 이끌어 주면서 잘 키워 줘.”
유한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이 들리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날 기획에서 아예 떼어 놓진 말라 이거지. 끈 떨어진 연 되는 것보단 나은 처사였다.
유한수도 눈치가 없진 않은지 ‘그럼요.’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밥이나 먹고 해산했으면 좋겠다고 백 번 정도 생각하자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많이 먹으라는 대표의 말에 감사하다고 크게 인사도 하고, 대표와 유한수가 먼저 한술 뜨는 걸 확인까지 한 다음 솥밥의 뚜껑을 여는데 유한수가 말했다.
“대표님, 기획 얘기가 나온 김에 드리는 말씀인데요.”
“응, 뭔데?”
둘이서 떠들거나 말거나.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눈치껏 끼어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이처럼 밥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내 몫의 밥에 밤이 몇 개나 들었나 세고 있던 찰나, 유한수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얘들 데뷔 앨범이요. 그거 뮤비만이라도 좋으니까 기획을 엎고 다시 해야 할 것 같던데요?”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마치 나의 미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