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52화(53/193)
| 52화. 인(간)재(앙)와 협업해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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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이번 사업 정도는 김 대리가 따낼 수 있지? 나 김 대리 믿고 안 들여다본다?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컨셉 지켜 내기
▷ 보상: 경험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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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도 날 지지하고 있었다.
유한수 아이디어, 얼마나 쓰레기 같은 거람.
주는 경험치는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내 기획안을 지켜 내야겠단 의지가 더욱 공고해졌다.
‘김 대리 정신 나갔어? 왜 함부로 송년회를 없애고 싶다는 얘기를 해? 그렇게 젊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만 할 거면 회사는 뭐 하러 다녀?’
‘김 대리는 다 좋은데 정이 없는 게 문제야. 현실성이 없다고 매번 칼같이 자르면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 낼 맛이 나겠어?’
‘그거 김 대리가 좀 해 봐. 김 대리 단축키 쓰는 거 좋아하잖아. 아니야?’
지난날엔 상사한테 대들었다가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죽거나 까무러치겠다는 정신으로라도 맞서야 했다.
‘그럼…… 어디부터 작업을 해야 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오랜만에 머리를 써야 할 시간이었다.
* * *
유한수의 새 기획안이 쉽게 통과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근거가 부족하고 참신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회사에서 유한수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도 있었을 테니,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안건이 통과되긴 어려웠다.
그러나 프로듀서 생활만 10년 넘게 해 왔다는 유한수에게 연습생이 짠 기획을 보완하는 작업에 들어가라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유한수는 내 기획안을 뜯어보며 꼬투리를 잡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이월아, 여기 레퍼런스 관련해서 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 안 해 봤어? 근거 자료 나한테 공유 좀 해 볼래?”
“이 부분이 왜 이렇게 연결되는 거야? 좀 더 풀어서 써 봐. 그냥 읽기만 해도 이해가 가게.”
……와 같은 식으로.
연습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하루에 세 번씩은 불러 젖히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한평산업 시절이었다면 그래도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 나름 보기 좋게 시트라도 편집해서 줬겠지만.
유한수 본인이 워낙 ‘너는 아직 미숙해서 잘못된 결과를 도출했을 수도 있으니 내가 원 데이터 보고 피드백 줄게.’라고 완고하게 굴길래 3,800행짜리 웹셀을 그대로 넘겼다. 어디 한번 눈 빠지게 통계 내 보시지.
그러나 자잘한 방식으로 유한수를 잠시 떨어트려 놓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내게는 유한수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여도 작고 소중한 컨셉을 지킬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필요했다.
덕분에 나는 새벽 5시까지 X같은 장준후 뮤비의 댓글을 모니터링하면서 역대 청춘 컨셉 아이돌의 흥망성쇠까지 정리하는 폐인 같은 삶을 살게 됐다.
“형 안 자요?”
“이따 잘 거야.”
“지금 해 뜨는데요……?”
해가 뜨는 게 문제니. 스파크가 데뷔하자마자 이 바닥에서 뜨게 생겼는데.
살면서 이렇게 간절히 스파크의 무운을 빌게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이 이렇게 무상하다.
어떨 때는 최제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기도 했다.
“너 다크서클 장난 아니다.”
“알겠어. 지방 재배치 잘하는 병원 알아볼게.”
“그냥 잠을 좀 자면 되는 거 아니냐?”
잔다고 한들 유한수가 메일로 ‘저번 달 음원 차트 TOP 100 가사 주제 요약해서 좀 보내 줄래?’ 이 난리를 치는 악몽이나 꿀 게 뻔한데 뭐 하러.
이럴 때면 내가 잠이 적은 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남들보다 조금만 자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 귀한 역량을 한평산업에 다 꼬라박은 건 좀 아깝지만.
‘……그래도 다크서클 관리는 해야 되려나?’
타자를 치던 손이 나도 모르게 눈 밑으로 향했다.
내 다크서클을 직접 볼 일이 없으니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다크서클이 짙어졌다는 말을 굉장히 자주 들었다.
이걸로 정성빈이랑 이청현에게 더블 잔소리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관리에 조금만 더 소홀했다간 스파크 평균 외모 더 깎아 먹지 말고 나가라는 돌팔매질만 두 배로 받을 게 뻔했다. 그런 일은 사양이다.
나는 바싹 마른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9년 후에 마련될 나의 아늑한 침대가 보고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외모 문제로 더블 돌팔매질을 맞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전에 유한수에게 트리플 잔업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한수는 개인 연습 시간만 되면 귀신같이 나를 불러내 굴려 댔다. 명백하고도 단순한 괴롭힘이었다.
핸드폰을 회사에 넘겨 개인 연락을 못 받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 부장으로 선행 학습 하지 않았으면 약해 빠진 내 정신 상태로는 버티지 못했을 거다.
유한수의 빈정거림은 이제…….
“대표님도 참 사람 좋으셔. 넌 네가 소속사 잘 만난 거 알아? 다른 데 가면 이런 조잡한 서류는 들이밀지도 못해.”
……수준까지 왔다.
화술만 봤을 땐 남 부장이랑 비슷한 경지에 오른 듯했다.
유한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은 있다.
애초에 연습생의 기획물 따위를 관심 있게 봐 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 좋은 대표 덕을 보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지 않을까요?
당장 댁 같은 사람도 그 대표 밑에서 돈 벌어먹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환하게 웃으며 ‘네, 저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아이돌 연습생이 프로듀서랑 척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씁쓸한 현실이었다.
“PD님, 저 단체 연습 시간이 다 되어서 그러는데, 이만 돌아가 봐도 될까요?”
“뭐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유한수가 사무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잠시만 기다려 보라며 나를 세워 놓고 자리를 비웠다.
10분이 좀 넘어서 돌아온 유한수의 손엔 두꺼운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유한수는 방금 인쇄한 건지 아직 따끈한 종이들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내가 저번에 다 같이 밥 먹을 때 얘기했던 기획서 초안이거든?”
“아, 네.”
“이제 실제로 기획해 본다 생각하고 네가 기획서 썼던 것처럼 통계랑 레퍼런스 달아서 정리 좀 해 와 봐. 잘 만지면 내가 회의에도 올려 줄 테니까.”
“……네?”
그러니까 지금.
네가 발로 쓴 기획서 나보고 수습하라, 이거야?
그것도 이렇게 댁이 선심 쓰듯이 얘기하면서?
오랜만에 피가 후두부까지 솟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 골 때림……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뭐 해, 연습 안 가고? 이 업계에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여도 살아남는 업계가 있겠냐 이 XX야.
나는 해맑게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외친 뒤 사무실에서 나왔다.
사무실 문을 닫기 무섭게 실소가 터졌다.
음침한 놈이 혼자 복도에서 웃고 있으면 기분 나빠 보일까 봐 유한수에게 받은 서류로 얼굴은 잘 가리고 웃었다.
“아…… 이걸 어쩌지.”
세상에 회사는 많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상사는 그 회사에 몇 명씩이나 있다.
그러니 새삼 유한수 같은 인물 하나에 일희일비할 것도 없지만.
“성과 가로채려는 사람은 진짜 싫은데.”
이번 건은 유한수가 잘못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남 부장 같은 인간을 닮을 건 또 뭐람.
* * *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
이 말만큼 유한수를 설명하기 좋은 말도 없었다.
유한수에게 있어 조별 과제가, 단체로 나간 공모전이, 프로젝트가 잘되는 건 모두 그 자신 덕분이었다.
연출로 알아주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한수는 곧바로 현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학교 선배가 연결해 준 자리였다.
그처럼 걸출한 인재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지만 사회 경험을 처음 해 보기엔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동기들이 잡일을 나눠서 떠맡을 때 유한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인정받고 들어온 인재였고, 다른 동기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게, 시작부터 단추를 잘 꿰었어야지.’
유한수는 동기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정작 본인에겐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신 유한수에겐 동기의, 후배의, 그리고 때로는 방송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선배의 아이디어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로챌 뻔뻔함이 있었다.
이건 절대 아이템을 훔치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적합한 타이밍에, 그가 최선의 상태로 가공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한두 마디씩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엔 자신의 작업물을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외주 작업자 한 명만 잘 구하면 포트폴리오의 질은 금방 높일 수 있었다.
남의 기획을 가져다 내고. 그러다 말이 나올 것 같을 때쯤엔 사람을 사서 새 기획을 내고. 그걸로 일감을 얻고. 다시 남의 아이디어로 협업을 하고…….
이런 굴레가 10년을 넘게 이어져 오자 유한수의 알고리즘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후에는 이렇게까지 변질되었다.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일하고 있잖아?’
유한수가 도둑질한 아이디어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소문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물론 유한수는 그러한 것들을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에게는 이미 잘 가꿔진 커리어가 있었으므로.
하지만 그도 이제는 약간의 번아웃을 느꼈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하는 일에 지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유한수는 선택했다.
아이돌 사업을 처음 해 봐서 엔터 기획 쪽엔 사리가 밝지 않고.
특별히 해고율이 높다고 소문이 난 기업도 아니면서.
아직 아이돌 관련 부서가 신설되지 않아 자기가 신사업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UA’에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기로 말이다.
그런 목표를 갖고 UA에 소속되어 있다는 연습생들의 사진을 봤을 때, 유한수는 영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을 어떻게 자신의 능력으로 빛나게 해 줄지!
어려운 일이었지만 유한수에겐 자신감이 있었다.
유한수는 어느 날 번뜩이며 찾아올 영감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소속사가 자신의 획기적인 발상에 지나치게 당황하지 않도록, 처음 구상했다는 기획도 절묘하게 녹여내면서 말이다.
데뷔 한번 안 해 본 연습생들을 처음 만나면 해 줄 덕담도 생각해 두었다. 그 나이대 애들에겐 현직자의 조언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UA에 입성한 유한수에게 가장 먼저 내밀어진 건 한 부의 기획서였다.
[스파크 미니 1집 컨셉 기획안]당황스러웠다. 그는 스파크라는 그룹의 A to Z를 기획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던가?
이어지는 대표의 말은 더욱 황당했다.
“기획부터 정리, PT까지는 우리 연습생이 했어요. 한수 PD가 이 친구랑 같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으면 해요. 연습생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기획 말고도 해야 할 게 많은 애거든.”
유한수는 자신이 취업 사기를 당한 줄 알았다.
집에 돌아간 그가 뒤늦게 오퍼 레터를 확인했지만 레터의 내용과 대표의 말엔 큰 차이가 없었다.
유한수가 회사의 이름과 신사업부가 생길 거란 부분만 확인한 탓이었다.
시작부터 언짢은 기분으로 유한수는 기획안의 첫 장을 읽었다.
한 장으로 전부 압축할 수 있는 내용이 구구절절 뒤에 적혀 있어 뒤는 읽지 않았다.
페이퍼를 읽고 난 뒤 유한수가 느낀 감상은 매우 심플했다.
‘진부해.’
청춘이라니. 청춘 컨셉 말고 다른 걸로 데뷔하는 아이돌이 몇 팀이나 되겠는가.
대표의 말도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
이 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아니고 ‘같이’라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랑 서로 도와 가며 일을 하란 뜻이냐 이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너른 마음으로 대표의 실책을 이해하고자 마음먹었다.
아이돌 사업을 처음 해 본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잘 모르면 누구나 실수라는 걸 할 수 있었다.
대표와 김이월이라는 그 연습생이 아이돌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은 유한수가 능력으로 체감시켜 주면 그만이었다.
유한수는 입사로부터 2주 후의 날짜에 전체 회의를 요청했다.
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자신은 아이데이션에 집중하고, 기타 필요한 자료는 김이월에게 맡겨 밤이고 새벽이고 곧바로 받아 체크했다.
그 연습생이 한 달을 걸려 만든 기획안과 자신이 2주 만에 만든 기획안으로 현직자의 격차를 보여 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의욕이 샘솟았다. 유한수는 학부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어, 잠시만. 유 PD, 저기 그래프 수치 맞는 거야?”
계획대로였다면 문제 하나 없었어야 할 그의 PT 중간에, 대표가 말을 잘라먹고 들어와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