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57화(57/193)
| 57화. 추석 연휴 (4)
휴일의 늦잠이란 얼마나 달콤한가.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샤워를 하고, 정장을 갖춰 입은 뒤에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 하는 직장인에게 휴일의 아침은 말 그대로 ‘귀하게 낭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마 UA의 연습생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녀석들도 나름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해 대니까.
그러니 몇 년간 직장 생활을 해 온 것도 모자라, 그 이후엔 연습생까지 하게 된 김씨 아저씨는 모처럼의 늦잠을 좀 즐기고 싶었는데!
“너 왜 벌써 온 거야?”
신원 미상의 외부인이 숙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황급히 달려 나왔던 내가 물었다.
꼭두새벽부터 누가 도어 록을 치길래 술 먹은 사람인 줄 알았건만.
의심한 것이 무색하게,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이기지 못하고 밖에서 갖은 애를 쓰던 외부인이 외쳤다.
‘이월이 형! 주우 형! 문 열어 줘요!’
그렇게 이 집에 이월 씨와 주우 씨가 있다는 걸 동네방네 광고한 이른 아침의 불청객……이자, 이 숙소의 일원인 이청현은 현관문이 부서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올 사람이 없을 줄 알고 안전 고리를 걸어둔 게 화근이었다.
그러게 누가 연락도 없이 일찍 오래?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장난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 거짓말이었나 보다.
“일찍 왔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얼마나 바른 생활이냐고요.”
“전화라도 하고 오면 됐잖아.”
“형들 자고 있는데 깨울까 봐 그랬죠.”
“지금 상황만 보면 결국 네가 다 깨운 거 아니야?”
“아니, 설마 걸쇠까지 걸어 잠그고 잘 줄 알았겠냐고요!”
이청현이 연신 억울함을 피력했지만 듣진 않았다.
실랑이를 하면서도 이청현은 대형 마트 장바구니에서 쉼 없이 무언가를 꺼내 숙소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게 다 뭐야?”
“밤이요. 아, 수박 젤리도 있어요! 형들 전은 먹었다면서요?”
“그 얘긴 또 누구한테 들었어?”
“성빈이 형이요. 어젯밤에 형이랑 통화했거든요. 성빈이 형이 형한텐 전화 안 했어요?”
한강 다리에서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그 전화를 말하는 건가.
그 통화 이후 정성빈이 이청현에게도 연락을 한 모양이다.
숙소에 남은 멤버들이 사고라도 치진 않을까 싶어 감시차 전화한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멤버들에게 다 한 번씩은 전화를 돌린 모양이다. 지독하게 성실한 놈이다.
와중에 박주우는 잠이 덜 깬 채로 비척비척 걸어 나오더니 수박 젤리를 찬장에 옮겨 넣었다.
집안일 분담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아 이 삼촌은 뿌듯하다.
나는 이청현이 싸 온 음식을 냉장고에 같이 옮겨 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너 왜 이렇게 일찍 왔냐니까?”
“형들 심심할까 봐요.”
“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잖아요!”
이청현이 당당하게 외쳤다.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저렇게 당당히 한다는 거야말로 아이돌의 자질이 아닐까.
나는 이 녀석이 체감상 백만 년만일 휴가를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 건지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새 음식 정리를 끝내고 돌아온 박주우도 물었다.
“……가족들이랑 안 있어도 괜찮아?”
정작 이청현은 태평했다.
“같이 있어 봐야 뭐 해요, 잔소리만 듣지. 아, 그래도 이번엔 성적 잘 나와서 다들 별말씀 안 하시더라고요!”
“가족분들께서 공부 욕심이 좀 있으신가 보네.”
“좀이 아니라 완전. 솔직히 자식이 셋인데 셋 다 공부만 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청현이 강경하게 말했다.
하긴, 가족이 다섯인데 그중 한 명만 음악의 길을 걷고 있으면 다른 구성원과 어울리기 쉽지 않겠지.
그렇게 우리는 이청현이 챙겨 온 밤을 두 개씩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정성빈이 검은 봉투를 끌어안고 귀환했다.
“성빈이 형!”
정성빈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청현을 반기며 박주우에게 봉투를 건넸다.
박주우가 넘겨받은 봉투 안에는 약과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박주우는 봉투 안에 가득 들어찬 약과를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약과야. 형, 별일 없으셨어요? 청현이도 벌써 왔네?”
나는 불안함을 가득 안고 물었다.
“……너 설마 약과 좋아하니?”
이런 걸 좋아하면 곤란하다. 약과는 한 개에 무려 140kcal란 말이다.
“아뇨, 멤버들 좀 먹으라고 챙겨 온 거예요.”
다행히 정성빈은 내 불안을 순식간에 종결시켜 주었다.
정성빈이 가져온 건 약과만이 아니었다.
정성빈네 어머니께서 이번엔 밀폐 용기에 손수 빚으신 만두를 가득 채워 보내셨더라고. 무려 추석을 맞아 온 가족이 다 같이 빚었다고 한다.
“형, 여기 만두 터진 것도 있는데요?”
“아……. 그거 정성준이 빚은 걸 거야.”
정성빈이 제 동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무미건조한 어조와 한심하다는 표현이 숨어 있는 듯한 목소리 톤…….
우리 누나도 어디 가서 내 얘기 나오면 분명 저랬겠지. 모자란 동생이라 미안했어, 누나.
만나 본 적도 없는 정성준 씨에게 이유 모를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데 정성빈이 내게 말했다.
“만두는 냉동실에 넣어 놓고 쪄 먹으래요. 찌는 법 배워 왔으니까 이건 제가 할게요.”
“나도 그 정돈 알아. 그런데 너 이거 어떻게 다 들고 왔어?”
“아빠가 근처까지 태워다 줬어요.”
그랬구나. 오셔서 차라도 드시고 가라고 하지 그랬니……. 나중에 아버님 뵐 면목이 없구나…….
그 후로도 명절 음식들의 축복은 끊이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기연이 생강 한과를 한 박스 들고 왔지 뭔가.
“……형들 생강 좋아해요?”
그것도 굉장히 멋쩍은 표정으로.
본인은 생강을 안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생강차에 환장하는 나는 생강 한과를 열렬히 환대했다.
친구가 본가에서 간식거리를 박스채 들고 온 걸 본 이청현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이러다 제호 형도 뭐 들고 오는 거 아니에요?”
“설마. 제호 형은 멀리서 오잖아.”
이청현이 농담을 하자 눈을 빛내며 한과 박스를 열던 정성빈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KTX 타도 세 시간은 걸린다던데……?”
박주우도 그럴 리가 없다는 기색을 보였다.
정말로 최제호는 뭔가를 들고 오진 않았다.
대신 등짝에 메고 왔을 뿐.
“그러니까 지금, 너희 집에서 여기까지 매실 엑기스를 메고 왔다고?”
“어. 엄마가 가져가래서.”
최제호는 딱 봐도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겉으로 1.5L짜리 페트병 두 개의 실루엣이 보였다.
“먹기 싫으면 그냥 놔둬. 내가 알아서 치울 테니까.”
“무슨 소리예요, 형! 저 매실 짱 좋아하는데!”
최제호가 정말로 매실 엑기스를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이청현이 잽싸게 페트병 두 개를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차장급 이하로는 전부 명절 상여금 일반 사원이랑 똑같이 맞추라고요?’
‘어어. 위에서 그렇게 하라니까, 미리 알아두고 예산 짜.’
‘지난 설이랑 최대 40만 원까지 차이가 날 텐데……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뭐야.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
5년 넘게 일한 직원에게 주던 상여금조차 아까워서 몇 년을 주기로 깎아 가던 회사도 있는데.
“얘들아.”
나는 밤 접시와 약과 봉투, 한과 상자 그리고 냉장고에 들어 있을 페트병을 생각하며 말했다.
“다들 모여. 최제호네 집부터 감사 전화 돌리게.”
* * *
서로를 생각하며 갖은 음식을 챙겨 온 녀석들 덕분에 우리는 전원 500g씩 찔 뻔했다.
밤마다 여섯 명이 2열 종대로 열 맞춰 한강을 달리지 않았다면 가족분들의 정성은 그대로 우리의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돌의 본분을 지키고자 그 짧은 휴일에도 최선을 다했는데…….
“제가 다들 쉬고 있을 동안 좀 생각을 해 봤어요. 이 그룹이 유니크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요.”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왜 당신은 본분을 안 지키고 유한수 머리에 벼락을 내리지 않았냐고.
나는 ‘스파크 예명(가안)’이라는 눈앞의 PPT를 찢든, 저걸 보고 있는 내 두 눈을 찌르든 둘 중 하나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아이돌 그룹에서 예명이 쓰이는 경우는 심심찮게 있다.
어떨 때는 예명을 쓰는 게 대세였고, 또 어떤 때는 본명을 쓰는 게 주된 시류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명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수단이 필요할 때 짓는 것이었다.
팀의 색채나 멤버의 개성을 고려해, 여러 논의를 거쳐서.
“이렇게, 여섯 명이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요소를 담은 예명을…….”
여섯 명 다 돌림자로 이름을 짓는 게 아니라.
나는 모두가 유한수를 보고 있는 틈을 타 슬쩍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보았다.
그러나 ‘유가네 육 형제’라는 글씨는 그대로였다.
이원, 제원, 성원, 주원, 청원, 기원이라는 이름도.
추석에 조상신은 뭐 했나. 유한수 안 잡아가고.
글자 수나 알파벳, 순우리말 등은 이미 선례가 있으니 간신히 쥐어짜 낸 의견이 저거였나 본데.
내가 창의력이 뛰어난 인간은 아니지만.
그리고 남이 한 일에 도와준 것도 없이 말만 얹는 게 얼마나 꼴값인지도 알지만…….
‘이건 너무 구리지 않나?’
나는 유한수가 트렌드 조사 자료라고 가져온 것들을 다시 한번 읽었다.
팬들은 가족 같은 그룹을 좋아한다? 맞지.
부모님, 첫째, 둘째, 삼촌, 막내 같은 포지션을 붙이는 일이 많은 것도 맞고.
그렇다고 그냥 자컨 몇 편도 아닌 세계관 자체를 왁자지껄 형제물로 가져갈 필요가 있나? 앨범 컨셉도 아니고 그룹 컨셉으로?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이젠 화를 넘어서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난처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냥 지금 자리를 뜨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앉아 있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랬다가 내 프로필 사진 밑에 ‘이원’이라고 적히면 어떡하냐고.
참고로 저 ‘원’은 ‘원 팀’이란 의미의 원이란다.
누가 봐도 데뷔 후 별명으로 ‘국민 청원’이 붙게 생긴 이청현의 안색이 오늘도 좋지 않았다.
그 옆에 앉은, 마찬가지로 ‘로또 기원’이라는 별명이 붙게 생긴 강기연도 애꿎은 입술만 괴롭혔다.
“저희 애들은 본명 다 괜찮지 않나요? 한두 명 정도 예명을 쓰는 건 괜찮지만, 전원 예명을 쓰는 건……. 이렇게 이름을 맞추는 건 더더욱 전례가 없어서요.”
기획 팀 직원 중 한 분이 말했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고 싶어지는 강직함이었다.
하지만 유한수의 의지는 굳건했다.
“남들 하는 것만 해서 성공할 수 있나요. UA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만큼 분명 대중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텐데, 그에 걸맞은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유한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청현이 두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유한수는 남들이 안 하는 덴 이유가 있단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회의실 사람들의 안색은 보이지도 않는 건지, 유한수는 계속해서 발표를 이어 갔다.
“이름에서부터 그걸 강조하자는 거죠. 이름은 사람을 대표하는 법이잖아요?”
왜, 아예 팀 구호도 ‘스파크는 언제나 하나!’ 이런 걸로 하지 그러냐.
데뷔 곡 제목은 Only One으로 하고, 음방은 앨범 하나당 한 번만 뛰면 되겠네.
애초에 팀워크는 아이돌의 기본 소양이다. 강조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갖추고 들어가야 하는 필수 역량이란 뜻이다.
‘성과는 남의 업무 가로채서 올리고, 그 와중에 자존심은 지키고 싶으니까 뭐라도 하나씩 시도하는 건가?’
이렇게 골치 아픈 타입은 오랜만이다.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한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썩어 들어가는 기획 팀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엔 내가 나설 것도 없을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획 팀장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알겠습니다. 그 외에 저희가 또 논의해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은근히 화제를 돌리는 화법이었다. 기획 팀장은 이 소모적인 회의를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아, 예명의 연장선인데요.”
유한수가 PPT의 페이지를 넘겼다.
화면엔 흰색 배경에 선명한 맑은 고딕체로 ‘스파크 팬덤명 설정’이 적혀 있었다.
아니.
팬덤명이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