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58화(58/193)
| 58화. 기업 홍보 영상 촬영 (1)
일반적으로 팬덤명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아이돌은 스파크뿐이니까.
그래도 스파크의 팬덤명이 정해진 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팬클럽 1기를 모집하고 응원봉을 공개하는 라이브에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유한수는 스파크와 예명 그리고 팬덤이 하나 되는 관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그 모든 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팬클럽 이름을 ‘유일한’으로 짓자는 얘기였다.
“그룹 스파크를 지탱해 주는 단 하나의 존재이자 스파크를 단일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는…….”
그래, 그래. ‘유일한’ 좋지.
독특하고. 우리말 팬덤명이라니 예쁘고.
스파크랑 붙여 쓰면 ‘유일한 불꽃’이라고도 부를 수 있으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뭐 하나. 하도 컨셉에 집착한 나머지 이젠 그냥 잡아먹힌 느낌밖에 안 드는데.
팬덤명의 앞 글자를 굳이 본인의 성씨인 ‘유’와 맞춘 것도 불쾌했다.
자신의 족적을 어떻게든 남기려고 노력한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 있달까. 이게 그쪽 팬덤이냐고.
팬덤명이 공개되었을 때의 반응 또한 안 봐도 뻔했다.
≫ 작작 해라 진짜
뇌절도 적당히 해야지
≫ 하나 됨 세계관 주구장창 밀면서 포카는 이 악물고 12종으로 내는 거 추해요 개XX들아
└ 개추
≫ 버블팝 닉네임 유일한 ATM으로 수정하고 옴
└ 수정하자마자 열띤성원한테서 폼 옴
(유일한 ATM, 지금 많이 바빠요?)
돈 빌려 달라는 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신종 스미싱ㅋㅋㅋㅋ
└ 유료 메시지 유출 금지입니다. 글 내려 주세요
세계관이고 관계성이고 다 좋다.
하지만 적어도 팬덤명은 아이돌과의 유대 관계…… 그런 거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팬이 스파크의 행보에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을 어필하면 팬덤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렇게 일원화 세계관에 끼워 맞출 게 아니라.
유한수의 일장 연설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사업이 답 없는 방향으로 갈 때 풍기는 이 익숙한 분위기. 마음이 편해지는 듯하면서도 불편했다.
굳게 다물어진 입들과 별개로 기획 팀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여기서 어떻게든 팬덤명을 다른 걸로 결정하려고 필사적인 브레인스토밍 중인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 역시 머리를 굴리며 뭐라도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다.
‘스파클러’라는 기존의 팬덤명을 회사가 아닌 스파크 당사자들이 지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녀석들이 의견을 낼 거다, 이 말이지.
그룹명도 전과 같이 ‘스파크’가 되었으니 팬덤명도 별반 다르진 않을 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던 직원들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기획안을 들고 온 담당자(특: 직급 높음) 앞에서 그에 반하는 의견을 내라니 천인공노할 짓이지만 어쩌겠나. 아이돌 시장의 유일한 불꽃 되기 싫으면 적극적으로 발표해야지.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하며 녀석들의 동태를 살폈다. ‘스파클러’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며 박수칠 준비까지 끝낸 채로.
그렇게 ‘고민해라 이 녀석들아! 그리고 빨리 스파클러 얘기한 다음에 이 회의를 끝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녀석들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PD님. 팬덤명은 그룹과 함께 쭉 사용할 이름인 만큼,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는 것도…….”
아이돌 당사자들이 당황스러워하는 걸 느꼈는지 기획 팀장이 나섰다. 하지만 유한수는 완고했다.
“아뇨. 이런 것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는 건 오히려 자원 낭비라고 생각해요. 적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불필요한 작업은 제거해야 합니다.”
아이돌 사업 하겠다면서 팬덤명을 ‘이런 것’이라고 지칭해? 네가 생각이 있는 놈이냐?
그리고 애초에 불필요한 작업을 줄일 생각이었으면 이름을 좀 여러 개 지어 오든가.
하나 있는 예시가 탈락하면 다른 예시를 또 지어야 하고, 그걸 통과시킬지에 대한 회의를 또 해야 하지 않나. 가슴이 답답했다.
‘뭐, 애초에 본인 안건이 떨어질 거란 가정을 안 한 거겠지.’
저 당당한 표정과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인간, 자기 아이디어가 채택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러니까 저렇게 쉴 새 없이 주절거리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당당한 건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회사에 첩자라도 심어 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반면 이쪽은 여전히 침묵만 가득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데…….
‘뭐야. 왜 아무도 의견을 안 내?’
나는 순간, 고심 끝에 직접 ‘스파클러’라는 팬덤명을 지었다는 녀석들의 과거 인터뷰가 다 거짓말이었는지 의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 기존의 일정을 과도하게 변경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이 또한 시스템의 영향이라는 것을.
가령 스파크 놈들에게 팬덤명을 고민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 필요했다고 할 때.
내가 데뷔 일을 극단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유한수라는 인물이 갑자기 쳐들어오고, 그사이에 진행되어야 할 일들이 모두 앞당겨지면서 녀석들이 고민할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유한수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어 유한수의 추진력에 불을 붙이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잿더미로 만든 셈이었다.
‘X발,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했다는 게 진짜였냐고!’
번뜩이는 재치로 3분 만에 지어내고 저렇게 말한 건 줄 알았는데. 놈들의 진솔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팬덤명이 스파클러든 유일한이든, 아니면 제3의 것이든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다.
관련 없는 일이지만…….
‘스파클러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있는 거 알죠?’
≫ 우리가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빛날 수 있는 거래
울 애기들 왤케 말도 예쁘게 함……
└ 나 그래서 스파클러 넘 맘에 듦ㅠㅠ 자부심 느껴져
≫ 이게 좋게 말해서 스파크-스파클러지
사실 불꽃이랑 폭죽 아님?
어디 화약 업체에서 나온 거 같음
강해 보이고 좋긴 함ㅇㅇ
└ 오히려 좋아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스파크 팬들의 반응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떠올랐다.
‘오른쪽 아래에는 ~언제나 너희를 빛내 줄 스파클러가~라고 적어 주세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심지어 남 부장의 따님이 보냈던 메일까지도.
나는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저, 얼마 전에 멤버들이랑 그룹명 얘기한 덕분에 생각났던 이름이 있는데요.”
온전히 내 공이 되지 않도록 멤버들까지 언급하면서.
“스파클러……는 어떨까요?”
얹혀 가는 입장이니 이것까지만 도와준다, 이놈들아.
이후의 회의는 만족스럽진 않아도 최선의 방향으로 끝났다.
예명은 홀드, 팬덤명은 ‘스파클러’를 쓰는 것으로.
유한수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함께 회의실을 나온 이청현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형.”
“왜?”
“그냥 형이 저희 활동 전담으로 기획해 주시면 안 돼요?”
“나 데뷔하지 말고 프로듀서로 전향하라고? 우리 청현이 지금 형한테 꼽 주는 거야?”
“그건 또 안 되는데……. 병행은 안 될까요?”
안 된다. 탈퇴한 멤버가 프로듀싱한다고 하면 팬들이 좋아하겠니?
비전문가가 프로듀싱 붙잡고 있어 봤자 이놈들에게 좋을 것 하나 없을 거고 말이다.
“우리 엄마가 사회는 능력주의랬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틀린 말 같아요.”
“능력주의긴 한데, 능력 위에 나이가 있어서 그래.”
“아하.”
이청현은 손쉽게 납득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녀석에게 벌써 사회의 쓴맛을 보여 준 것 같아 씁쓸했다.
나와 이청현의 대화를 들은 건지 뒤따라오던 정성빈이 말했다.
“그래도 다른 곳에선 도움을 주실 수 있을지 모르니까, 너무 부정적인 생각은 갖지 말자.”
항상 내가 강조했던, 어디서 누가 엿들어도 문제 없을 건전한 발화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극단적으로 굴 필요가 있다.
내가 봤을 땐 쫓아내야 돼, 그 인간.
세상엔 일을 늘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는 법. 그런 인력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PD님과는…… 많은 얘기를 해 볼게.”
내 말에 정성빈과 이청현이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들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시선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저건 날 측은하게 보는 눈빛이었다.
훗날 내가 돌연 탈퇴하더라도 너희들은 내 노력을 조금쯤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
* * *
회사와 유한수가 갑론을박 중인 작업이 있는 반면, 수월하게 진도가 나가는 작업도 있었다.
기획이 모두 결정된 녹음과 뮤비 촬영이 그랬다.
이 맛에 기획 팀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시나 보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중에서도 녹음은 일사천리였다.
한 번의 NG도 없이 모두가 기적적으로 원 테이크 녹음을 끝냈다……면 멋있고 좋았겠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다들 훌륭하게 제 몫을 해냈다.
심지어 정성빈이나 박주우는 한 번에 OK 사인을 얻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더 불러 보기까지 했다. 멋진 자세였다.
이 ‘다들’에 내가 포함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 혼자 녹음 부스에서 밤새 못 나오는 불상사를 겪지 않은 게 천운이다.
그렇게 음원이 완성된 이 시점에 다가온 것이다.
스파크의 첫 뮤비 촬영 일이!
컨디션도 최고였다.
다크서클 관리하라고 정성빈에게 집중 마크당해 요 며칠간 하루에 8시간씩 잔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엄격한 감시를 받았던 이청현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형, 저 이렇게 진한 화장 처음 해 봐요! 어때요? 너무 과한가?”
“어차피 조명 쐬면 다 날아가. 그리고 네 얼굴은 먹을 칠해도 괜찮을 테니까 안심해.”
“뭐야, 감동이에요!”
“그렇다고 진짜 먹칠하진 마라. 얼굴에 아무거나 갖다 대지 마.”
“그럼요.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한 피부 트러블은 아이돌의 7대 죄악이니까…….”
이청현이 급격히 공허해진 눈빛으로 자리를 떠났다. 역시 암기 하나는 잘하는 녀석이다.
그보다 지금은 이청현의 메이크업 상태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긴 하지만, 이청현 메이크업이야 스태프분들이 혼을 갈아서 해 주셨을 테니 별로 걱정은 안 되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내 얼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