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5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59화(59/193)
| 59화. 기업 홍보 영상 촬영 (2)
“이월이한테 21호는 너무 어둡지 않을까요?”
“밝은 거 쓰면 이목구비 다 날아가서 안 돼.”
“음……. 세트장마다 메이크업을 다르게 가야 하나?”
세 분의 전문가는 나를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름만 들어 본 화장품들을 발라 주시는 경험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29세 직장인에겐 너무나도 버거운 관심이었다.
게다가 내 피부 톤에 문제라도 있는 것인지 세 분 모두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내 눈엔 17호부터 23호까지 다 똑같아 보이는데 스탭분들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환경 아닌가.
“그냥 밝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이월이는 약간 창백한 느낌도 있어서……. 이월아, 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네, 멀쩡해요.”
내 대답에 스태프분은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고는 스펀지 같은 걸로 엄청나게 내 얼굴을 두드렸다.
이 기분, 프로필 촬영 이후로 두 번째지만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데뷔까지 앞으로 몇 번의 메이크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러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환골탈태의 힘은 여러모로 엄청났다.
먼저 최제호.
이놈은 ‘거칠지만 제법 깜찍한 면이 있는’ 역할이라 우리 중 가장 날티 나는 스타일이 배정됐다.
넥타이는 어디다 팔아먹었으며 단추는 왜 두 개나 안 잠그는지 모를 차림새인 것도 모자라 머리도 화려하게 왁스로 세팅했다. 진회색으로 염색까지 해서.
요즘은 고등학생도 왁스 쓰나? 난 3년 내내 그냥 머리였기에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정성빈은 깔끔한 반장 느낌이다.
복도에서 마주치기 싫은 나머지 다섯 명과 달리, 정성빈은 조금이라도 얼굴에 온화한 기운이 있는 점을 고려해 머리를 짙은 갈색으로 염색했다.
밝은 갈색이면 ‘겉은 차갑지만 속은 미지근한’ 고등학생 컨셉엔 너무 부드러울까 봐 어두운 계열로 한 건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박주우에게는 특별히 하늘색 니트 조끼를 하사했다.
박주우의 탄생석이 저 색깔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런 사소한 차이 하나도 놓치지 않더라.
박주우의 니트 차림은 스파크가 뭘 입든 감흥이 없는 내 눈에도 괜찮았다.
예상하건대 뮤비가 공개되면 ‘박주우 니트 X나 잘 어울린다.’ 등의 거친 평가가 올라올 거다.
부스스한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머리를 드라이기로 날리기도 했는데 최종 결과물이 꽤 괜찮았다. 누가 봐도 자다 걸려서 교실 뒤로 쫓겨난 애 같다.
이청현은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살짝씩 범상치 않은 룩을 선보였다.
가령 학생인데 넥타이 끝이 포켓에 들어가 있다거나, 어두운 교복에 화려한 물감 무늬가 들어간 양말을 신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드라마 씬에선 소매에 잉크도 묻혀 줄 생각이다.
심지어 이놈은 아예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뮤비에서의 역할 때문에 아예 특이하다 못해 기가 막힌 과학자 룩을 연출했다.
자세히 보면 자유분방해 보이는 이청현과 다르게 강기연은 숨 막힐 듯 단정하게 입었다.
셔츠 단추는 목 끝까지 잠그고 넥타이도 꼭 맞게 맨 모습이 날 선 얼굴과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줬다. 안에는 검정색 목티까지 입혔다.
날라리 같은 얼굴에 그렇기까지 한 옷차림은 최제호가 하고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가 본 건데, 역시나 훌륭했다.
덤으로 이청현과 강기연에게는 이청현이 좋아해 마지않는 우정 아이템을 하나씩 넣어 줬다.
나는 사전에 기획 팀과 논의한 대로 이청현의 벨트 구멍과 강기연의 팔찌에 똑같은 모양의 스트랩을 달았다. 귀여운 인형 모양으로.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기획 팀에 넘겼더니 거머리같이 붙어 있던 ‘무대 퀄리티 향상을 위한 조언 3회’가 모두 충족됐다.
그렇게 여섯 명이 모두 메이크업을 마치고, 각각의 성격에 맞게 어레인지된 회색빛의 교복으로 환복까지 하고 나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안무야 연습실에서 신발 밑창이 닳을 정도로 맞췄고.
촬영장도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생한 덕분에 시스템에게 군말 없이 경험치를 받을 만큼 완벽한 곳으로 골랐다.
그러니 얼마 전의 녹음처럼, 이 뮤비 촬영 또한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리라.
……순진하게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잠깐 촬영 멈춰 봐.”
촬영 감독님의 말에 뮤비 촬영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세 번이나 연달아 춤을 추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촬영 스탭분들에 매니저님까지 모두가 모니터 앞에 모여 심각하게 영상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지?
무대 센터 잡는 법 연습이 덜 돼서 축이 한쪽으로 기울었나?
아니면 아직도 표정이 어두운 멤버가 있나?
그것도 아니면…….
‘역시 내가 끼니까 그림이 전과 다르게 이상해진 건가?’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매니저님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얘들아, 잠깐 이리 와 봐.”
매니저님의 호출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모니터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방금 찍은 영상을 재생했다.
낯부끄러운 얼굴이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 아니, 이게 아니라.
“……입 모양이 하나도 안 맞네요.”
“이월이 네가 봐도 그렇지?”
그랬다.
생전 립싱크를 연습해 본 적이 없는 스파크 전원이 ‘동선을 의식하고 춤추도록 해!’라는 감독님의 지시에 집중하느라 뻐끔뻐끔 입만 움직인 결과.
가사가 한창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입은 일찌감치 다물어 버린 놈들이 속출한 것이다.
분명 음원은 다 같이 후렴을 부르고 있는데 입 모양은 제각각이라니.
뮤비를 0.1초 단위로 캡쳐하고 느린 움짤까지 만들어 공유하는 세계에서 이런 자유분방한 입이 공개된다?
≫ 몸은 하나지만 주둥이는 여섯 개인 것이 무엇이냐?
└ 스파크요
└ 정답이다 상으로 올해의 립싱크 짤을 주마
└ 그게 상이 맞나요?
안 봐도 비디오다. ‘군무돌 괄호 열고 입만 빼고 괄호 닫고’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이나 붙을 거다.
이건 전부 과거 스파크의 데뷔 뮤비가 감성 발라드였던 걸 잊고 있었던 내 탓이다.
거기선 다들 앉아서 입만 뻐끔거렸으니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던 거겠지.
못하는 립싱크를 현장에서 바로 익힐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우리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현장감 넘치는 라이브와 함께 뮤비를 찍어야 했다.
영상 팀이 부디 이 모습을 잘 담아 주시길 바랄 뿐이다.
* * *
녹음 때보다 더 목을 혹사당한 듯한 뮤비 촬영이 끝난 뒤, UA에선 앨범 기획이 시작됐다.
물론 앨범 기획도 쉽진 않았다.
유한수가 독기를 잔뜩 품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뷔 앨범을 3종으로 내자고요?”
“네. 등교 전, 수업 중, 방과 후 세 컨셉을 통해 하루의 흐름을 보여 주는 거죠.”
이번엔 학원 청춘이라는 컨셉은 숙지하고 온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누가 이제 막 데뷔하면서 앨범을 3종으로 내냐? 그것도 X소에서.
댁 같으면 아직 얼굴이랑 이름도 못 외운 애들한테 입문하면서 앨범 세 개씩 사고 싶겠어?
와중에 아이디어를 세 개나 짜 왔다며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 별꼴이다.
아무래도 유한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일에 손대지 않는 게 남을 도와주는 거란 상식을 모르는 듯하다.
저 인간을 쫓아내야 한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유한수를 어떤 방식으로 떨어져 나가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유한수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유한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유한수와 직접적으로 일해야 하는 기획 팀은 이미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전해 듣기로는 기획 팀도 나름 유한수와 사투를 벌이는 모양이던데.
‘기획 팀장님이랑 유 PD님께서 말다툼을요?’
‘그렇대. 두 분 다 실무를 오래 하셔서 그런지 의견 차가 쉽게 안 좁혀지나 봐.’
그 뒤로 매니저님이 삼킨 말은 안 들어도 뻔했다.
‘의견 차라기보단 한쪽의 일방적인 억지를 다른 쪽이 막아 내고 있는 거지만…….’ 같은 거겠지.
저 인간이 실무의 뭘 알겠냔 말이다.
내가 기획 팀에 기획서를 들이밀고도 별일 없이 넘어갔던 건 첫째, 당시 회사에 마땅한 기획안이 나오기 전이었고.
둘째, 내 나이대와 연습생이라는 포지션이 내 행동을 ‘어린 연습생의 패기’로 포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젓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히스토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삼자가 들어와서 감 놓고 배 놓으라고 해 봐라.
그런 건 적극적임을 넘어 무모함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여태 일해 온 기획 팀 입장에선 유한수가 고까워 보일 수밖에.
기획 팀에 비하면 나는 유한수의 발언을 경청해 주는 쪽이었다. 고맙게 생각해라, 인간아.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유한수의 지시로 밤새워 정리해야 했던 PPT만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속절없이 넘어갔다. 가슴이 쓰렸다.
모두의 영혼 없는 태도를 눈치챈 건지 유한수가 발표를 멈추고 말했다.
“여러분, 지금 제 얘기 제대로 듣긴 하시는 거죠?”
싸가지로는 최제호랑 붙어도 지지 않을 말투였다.
그래도 일은 지지리 못하면서 발언권은 놓지 않는 모습 하나는 칭찬한다. 저런 뻔뻔함은 아무나 못 가진다.
“PD님, 지금 그건 무슨 의도로 하신 말씀일까요?”
기획 팀장님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유한수는 지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다들 너무 대놓고 의욕 없이 들으시길래요. 이러면 앞에서 PT하는 사람이 할 맛이 날까요?”
유한수와 기획 팀장님 사이에서 개싸움 3초 전의 기 싸움이 오갔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PPT를 넘기던 키보드 위로 내렸다.
곧이어 한껏 빈정거리는 기획 팀의 목소리와 이에 맞서는 유한수의 막말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그때였다. 키보드 위로 시스템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