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0화(60/193)
| 60화. 상사와의 마찰 해결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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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스파크와 유한수 분리하기
▷ 보상: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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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시스템이 유한수를 쫓아내진 않으면서 거리만 두는 방식으로도 원활한 데뷔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해 준 꼴이니까.
사람 하나를 억지로 떼어 낸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UA에 소속된 이상, 고작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유한수가 해고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법적으로 기업이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기도 하고.
게다가 아직 유한수가 치명적인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쎄하고, 지나치게 헛소리를 많이 하며, 앞으로도 일을 잘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뿐.
하지만 유한수를 내보내야 할 정당한 이유로는 부족했다.
기획 팀을 제외하고는 유한수에 특별히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부서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저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디선가 문제가 있었을 건데.’
매니저님만 해도 유한수와 기획 팀의 분쟁 이슈를 전할 때 문제의 소지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아직 회사 내에서 별말이 없다?
아침에 퇴사 면담을 하면 점심 전에 소문이 다 나는 특수성을 가진 곳에서?
그럼 의심해 볼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유한수가 UA 내에서 연줄을 잡은 거야.’
한평산업에서도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남 부장이 데려온 제 조카나 이사의 동생 등등.
연줄이 있거나 권력자와 연결된 사람을 두고 왈가왈부하긴 어렵지 않은가.
내보낼 수 없는 인간과 크게 문제를 일으켜 봤자 좋을 게 없으니 더러워도 어느 정도는 분위기를 맞춰줘야 했던 거겠지.
‘인맥의 힘이 작용한 게 입사 전부터인지, 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여도 후자여도 골치 아플 일이었다.
김이월 커리어 레전드다. 직장 생활하다 보니 낙하산 색출해서 자르는 일도 하게 되네.
지금까지는 상사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으니 깔짝깔짝 거슬리는 짓만 해 대는 게 내 한계였다.
내가 하극상을 할 수 없는 소시민인 것도 한몫했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누군가 사고를 치는 게 명확한데 회사 내부에 그걸 옹호해 주는 측이 있다는, 유한수를 도려낼 명분이 생긴 것이다.
유한수가 제 발로 나가게 해야 하나. 그렇다고 정치질을 할 수는 없는데…… 따위로 점철되었던 지난날의 고민이 모두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해결 방법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PD님, 팀장님. 업무 대화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
“김이월, 너 내가 어른들 얘기하시는 데 끼어들지 말라고 안 했냐?”
“유 PD님 아까부터 왜 이렇게 공격적이실까? 이월이, 왜. 얘기해 봐.”
성과를 보여 주고 채택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답은 하나이지 않은가.
“부족하지만 저도 앨범 관련해 생각해 둔 아이템이 있는데요.”
“응?”
“회사에서 아직 논의 중이시라면…… 저도 한번 정리해서 건의드려 보고 싶습니다.”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승부 보자, 이거야.
* * *
아이돌 앨범은 그룹의 특색만큼이나 그 유형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데뷔하는 아이돌만 수십 그룹이니까.
그래도 앨범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묶는다면 아마도 화집형과 컨셉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화집형. 화집형은 아티스트의 사진을 여러 장 넣은 화보를 포함한다.
다음으로 컨셉형. 화보를 넣긴 하되 그 비중을 조금 줄이는 대신 소량의 굿즈나 이벤트성 요소를 넣는 방식이다.
팬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스파크의 팬들은 유독 전자를 싫어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 오타쿠들이 똑같은 사진 백만 장 다 예쁘다고 하니까 진짜 똑같은 사진만 백만 장 넣어 놨네
≫ 미공개 사진 100장 수록이면 뭐해 배경이 다 똑같은데
└ 저 아직 앨범 안 와서 그러는데 진짜 똑같나요……?
└ 네 다 같은 스튜디오에서 찍었어요
└ 헙…… 지금이라도 환불 안 되겠죠ㅠㅠㅠ
돈이 없는 UA가 가성비 촬영을 하는 바람에 퀄리티가 바닥을 기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USB 키트에 담아 공유하는 신세대 소속사가 나오는 마당에, UA는 혼자서 ‘지구야,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올 짓이나 했다.
비싼 돈 주고 사는데 보람은 없는 앨범 같은 거 누가 몇 개씩 사고 싶겠나. 그것도 팬싸컷이 높지도 않을 신인 앨범을 말이다.
그럼 어찌 되었든 퀄리티 승부로 가야 한다는 건데.
양질의 콘텐츠는 자본에서 나온다.
하지만 의상과 스튜디오 대여비도 절약했던 UA에게 그만한 자본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지옥의 리서치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 * *
‘김 대리, 웰컴 키트 레퍼런스 같은 것 좀 모아 봐.’
X소기업…… 아니 중소기업 대표들에겐 정기적으로 혁신기가 찾아온다.
이 혁신기가 찾아오면 대표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대단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홈페이지를 리뉴얼한다거나, 조직 개편을 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안 하던 짓을 해서 본인의 회사가 시류에 맞춰 가고 있다는 느낌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재작년 이맘때 한평산업의 사장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
기업명이 주는 고루한 인상이 싫었던 건지, 젊은 조직원이 연이어 퇴사해 평균 연령이 급격히 높아지는 게 싫었던 건지는 몰라도 사장은 젊고 감각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길 원했다.
사장이 짧은 생각으로 내뱉은 말은 아예 생각이 없는 임원진에게로 전달됐다.
그리고 대가리가 텅텅 빈 남 부장을 거쳐 머리가 녹슬어 버린 나에게로 당도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임무가 바로 ‘젊은 사원들 영입하기 대작전’의 일환인 웰컴 키트 만들기였다.
나의 클라이언트는 남 부장의 주둥이를 포함해 약 스무 개의 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요구 사항 또한 대단히 많았다.
‘비용은 너무 많이 들면 안 되는데 싼티는 나지 말아야 해.’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것 좀 넣어 봐. 애들 그런 거 좋아하지 않나? 캐릭터?’
‘김 대리, 이사님께서 VR 그건 기기만 빌리면 되는 거냐고 하시네?’
구구절절 X같은 말뿐이었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나는 그들의 말대로 적당히 저렴하되 가성비가 떠오르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레트로한 면까지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냈다.
그게 뭐였더라. 분명…….
“허억!”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꿈에서 깼다.
눈앞엔 화면이 꺼진 노트북과 구겨진 노트가 있었다.
앨범 구성품을 검색하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대로 엎드려 잠든 건지 허리가 뻐근했다.
다른 멤버들이 밤중에 거실에 안 나온 게 천만다행이다.
녀석들이 식탁에 엎어져 있는 신원 불명의 남성 그림자를 목격했다간 오밤중에 고성이 오갔을 거다.
마우스를 건드리자 다시 노트북에 불이 들어왔다. 잠들기 전까지 작업하던 파일이 아직 켜져 있었다.
‘웰컴 키트라.’
당시 내가 골랐던 아이템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고했을 땐 이미 대표가 내실 경영에 꽂힌 뒤였기 때문이다.
내실 경영과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웰컴 키트 보고서를 이면지에 출력하지 않았다고 뒤지게 혼났던 건 똑똑히 기억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유한수를 아예 보내 버리기 위해서는 UA가 채택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을 가져와 사업화까지 가져가야 하니까.
준비해 둔 의견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끼어들기까지 했으니 그에 걸맞은 뭐라도 들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뻑뻑한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노트북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학생조가 일어나기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팔꿈치를 눌러 가며 스트레칭을 한번 하고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고대하지 않았을 PT날이 밝았다.
손 놓고 당하란 법은 없는지 기획 업무는 단순 작업 끝에 잘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뮤비 촬영 기간에 잠시 깨끗해졌던 내 눈 밑도 다시 새카매졌다.
내 꼴이 꽤 흉흉했는지 어젯밤에는 강기연이 말을 걸기도 했다.
‘오늘도 밤새우시게요?’
‘밤을 새우다니. 꼬박꼬박 2시간씩 자고 있어.’
‘생각해 둔 것도 있다면서요. 그런데도 그렇게 오래 걸려요?’
생각해 둔 게 있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어서 오래 걸리는 거란다.
유한수랑 기획 팀이 머리채 잡기 직전인 상황에서 ‘이제부터 준비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하니 뻥친 거지. 이래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그래도 고생한 덕분에 나름 괜찮은 구성안이 나왔다.
내게 3대 마요를 알려 줬던 후배가 봤다면 객관적인 평가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유감이다.
USB를 챙겨 입성한 회의실의 분위기는 내가 UA에 막 들어왔을 때와 너무나도 달랐다.
빌런 하나가 헛소리만 해 대고 있는데 어떻게 표정이 좋겠냐마는.
몇 달 새 조각칼로 새긴 듯 주름이 생긴 기획 팀장님의 미간이 애잔했다. ‘기업이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의 사례에 사진 자료로 넣어도 될 수준이다.
나는 인력을 충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진척이 없어 심기가 약간 불편해진 대표와 가까운 시일 내에 뭐라도 더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기획 팀,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는 유한수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겠지.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진입했다.
교내의 창고 한구석에 숨어 있다 스파클러에게 발견될, 케케묵은 상자 그림의 PPT와 함께.
* * *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구매 욕구’와 ‘팬심’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전자를 위한 답은 제법 명쾌하다.
대중적이거나 극도로 희소성이 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되니까.
모두가 좋아하는 맛있는 붕어빵을 팔거나, 굳이 찾아 먹는 사람은 없지만 한 번쯤은 가져 보고 싶게 만드는 대왕 잉어 엿 둘 중 하나를 만들면 된다는 의미다.
반면 팬심의 영역은 다르다.
내게 팬심이란 어떻게 보면 분명했지만 파면 팔수록 알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남 부장의 따님만 봐도 그랬다.
그분은 최제호가 뭘 해도 좋다고 했으면서 최제호가 사복으로 형광 오렌지 조끼를 입고 나온 사진을 첨부할 땐 ‘저 거지 같은 조끼 좀 지워 주세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따님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모든 스파크의 팬들은 모순적이었다.
1위 하고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다가도 막상 녀석들이 눈물이라도 글썽이면 ‘얘들아 울지 마!’라고 말하며 놈들보다 더 펑펑 우는, 긍정적인 의미로 모순적인 팬들도 많았지만.
돈 모아 뒀으니까 컴백만 해 달라고 하다가도 막상 컴백하면 ‘아…… 솔직히 이번에 좀 별로다.’라고 하는 팬도 적지 않았다.
그간 대리 덕질을 하며 내가 나름대로 번역해 본 팬들의 마음은 이렇다.
‘평타만 치면 다 품어 줄 테니까 제발 생각을 좀 하고 나와라!’
그래서 준비했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학창 시절에, 모두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컨셉을 한껏 버무린…….
이름하여, ‘스파클러가 어느 날 창고 구석에서 찾아낸 모 동아리의 작고 소중한 비밀 상자’ 앨범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