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1화(61/193)
| 61화. 상사와의 마찰 해결법 (2)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쳤을 학창 시절.
창고에 운동장 라인기를 가져다 놓으려던 학생이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영문 모를 상자.
이걸 그냥 버려도 될지 고민하며 상자를 열면 누군지 모를 학생들이 넣어 놓은, 딱히 버려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어쩐지 버리면 안 될 듯한 소지품들이 나온다…….
“……가 이 앨범 패키지의 컨셉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나의 전위적인 발표는 끝이 났다.
‘스파크가 놓고 간 비밀 상자’ 컨셉 앨범을 두고 회의실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는 의견부터 미니 1집치고 너무 힘을 많이 실었다는 의견까지.
전부 예상한 의견이었다. 그래서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단가표와 레퍼런스, 컨셉이 있는 앨범에 대한 SNS와 바이럴 반응을 차례로 보여 드렸다.
너무 힘을 많이 싣는 게 아니냐는 의견은…….
“지금 안 실었다가 데뷔와 동시에 쓸려나가는 게 더 적자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로 반박했다.
정신 차려라, 인간들아. 여기서 물 먹으면 너희 스파크 데뷔 후 2년은 빛도 못 본다.
긍정적인 검토를 바라며 가만히 서 있었더니 대표가 나를 불렀다.
“이월아.”
“네.”
“아까 커뮤니티 반응 있던 페이지 좀 열어 봐.”
해당 페이지를 열어 주자 대표는 몇 분간 말없이 스크린만 응시했다. 캡쳐해 놓은 게시 글을 전부 읽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표가 입을 열었다.
“장 팀장.”
“네, 대표님.”
“기획 팀 다 같이 이월이 기획안 좀 디벨롭해서 올려 줘. 시간 맞으면 회의할 때 이월이도 앉혀 놓고.”
오케이 사인이었다. 가슴이 뻥 뚫렸다.
물론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님을 통해 유한수가 나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유한수가 나를 찾는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은 없었다.
기껏해야 자기 기획안이 쓸모없어진 것에 대한 분풀이나 하겠지,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인간이 개빡쳤다는 걸.
의자가 뒤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등받이를 젖히고 앉아 있던 유한수는 앉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보고 물었다.
“야.”
“네, PD님.”
“넌 내가 X나 우습지?”
스무 살은 어린 내게 드러냈다는 게 놀라울 만큼 날것의 감정이었다.
다행히 내겐 여기서 아니라고 할 정도의 사리 분별이 있었다.
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유한수는 믿지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XXX야. 내가 너 같은 새X 하루 이틀 보는 줄 알아?”
놀랍다. 일하면서 양아치 짓만 익힌 줄 알았는데 독심술도 배웠나 보지?
유한수는 자신이 화가 났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 정도로는 쫄지 않는 나, 29세 회사원 김 씨는 가만히 유한수가 내뱉을 다음 말을 기다려야 했다.
유한수는 과연 어떤 말로 나를 공격해 올까.
상사 우습게 만드니까 좋냐? 아니면 한번 칭찬받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냐?
뭐든 한 번은 한평산업에서 들어 봤을 것이기에 별로 걱정은 안 됐다.
때마침 유한수가 입을 열었다.
“너, 솔직히 말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낙하산이냐?”
와. 이건 또 처음 들어 보는 말이네.
직원들의 인적 사항을 알고 있는 인사 팀에선 들을 일이 없었을 신선한 가정이다. 창의력에 가산점을 드린다.
‘그보다 이 인간, 어지간히 구제불능이네.’
유한수는 내 기획이 통과된 걸 ‘어쩌다 한 번 운 좋게’ 수준으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빽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는 거지.
아무래도 유한수는 낙하산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낙하산은 질릴 만큼 봤고, 한 번도 낙하산의 삶을 산 적이 없는 나는 당당하게 반문할 수 있었다.
“네?”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조소와 함께.
내 실소를 본 유한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웃었냐, 지금?”
유한수가 물었다.
그래, 웃었다 이 새X야.
너 같으면 웃음이 안 나오겠냐?
살면서 처음으로 상사한테 개겨도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는데.
본인은 막말에 갑질을 일삼으면서 부하 직원 노릇 중인 연습생은 웃지도 못하게 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내가 그간 입에 달고 살았던 ‘죄송합니다.’조차 하지 않자 유한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너 이런 새끼일 줄 알았어. 너 기획 팀장이랑 짰지? 대표가 너 예뻐하는 것 같으니까 장 팀장한테 기획안 받아서 네가 한 것처럼 사기 친 거 아냐.”
자리에서 일어난 유한수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쏘아붙였다.
그런 유한수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런 짓 안 합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주먹 쥔 유한수의 손을 보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한수가 내 어깻죽지를 건드리던 손을 뒤로 뺐다.
그와 동시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그러나 점차 들려오는 소리가, 눈으로 앞을 보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유한수가 엄청나게 씩씩거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여전히 고개가 돌아간 채로 조심조심 왼쪽 볼에 손을 올렸다.
뒤늦게 천천히 통증이 찾아왔다.
이 새X가 지금 날 때린 게 맞나?
도대체 왜? 이 상황에서 폭력을 써서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단순히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남의 공 빨아먹으며 기생할 정도로는 대가리 굴릴 줄 아는 놈이?
머리를 얻어맞아서 그런지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나와 달리 유한수의 얼굴에는 화난 기색만 역력할 뿐,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때린 후 나올 수도 있는 당혹스러움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자 아직도 꽉 틀어쥔 유한수의 주먹이 보였다.
손바닥으로 사람을 쳐도 큰일 날 일인데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다니. 그것도 얼굴을.
심지어 겨울바람 맞고 오느라 얼굴이 꽁꽁 얼었는데. 본인만 여태 따뜻한 회의실에 계셨으면 다인가?
이번에야 내가 맞았다 치자. 그럼 다음엔 다른 사람이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짜증에 그쳤던 감정이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다. 빈 물병을 던지던 장준후까지 떠올라 기분이 더욱 X같았다.
나는 눈앞의 유한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PD님, 사람 때리는 분이셨어요?”
“뭐 이 새X야?”
사람을 때리는 종자는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건 내 원칙이자 신념이었다.
“주먹을 습관적으로 뻗으시네요. 여차하면 몇 대 더 때리시겠어요.”
“야!”
“맞은 사람은 전데 왜 PD님께서 소리를 지르세요?”
내가 묻자 유한수가 멈칫했다.
X발.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너무 징글징글했다.
사람을 때려 놓고 적반하장 식으로 내게 쏘아붙이는 유한수도.
비슷한 상황에서 손만 안 댔지, 서류철을 쓰든 볼펜을 쓰든 갖은 방식으로 날 건드렸던 남 부장도.
내가 맞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게 될 때까지 나를 때렸던 부모도.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정체 모를 대상에게 확인 사인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유한수에게 대들 결심을 한 나도.
지금의 대화를 녹음할 기기가 없는 상황에서 유한수와 계속 떠드는 것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무언가 억눌려 있던 것이 터져 나가는 듯한 기분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사가 풀린 것처럼 입이 멈추질 않았다.
“PD님께서 이렇게 연습생들 폭행하고 다니는 거, 대표님도 아세요?”
“폭행? 일부러 어감 센 단어 붙여서 일 키우려고 하지 마. 내가 너 대가리 굴리는 거 모를 줄 알아?”
“제가 대가리를 어떻게 굴려요. 주먹으로 맞아서 그런가 돌아가지가 않는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한수가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때린 델 또 때리기까지. 청소차는 뭐하나, 이 쓰레기 안 태워 가고.
내가 속으로 욕을 하거나 말거나 내 볼은 화끈거리는 걸 넘어 따끔거렸다. 얼굴의 뼈가 욱신거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유한수가 내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새X, 내가 넌 무조건 업계에서 매장시킨다.”
“매장이요?”
“겨우 반년 연습생 했다고 아직 자존심이 덜 꺾였나 본데, 너 같은 놈 소리 소문 없이 묻는 건 일도 아니야. 알아?”
“알 필요가 있나요.”
나는 주머니에서 보컬 연습을 할 때나 쓰는, 되는 기능이라곤 넣어 둔 노래를 재생하는 것밖에 없는 MP3를 꺼냈다.
“이거 하나면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묻힐 텐데요, 뭘.”
노래 열 몇 곡 든 게 전부인 MP3를 들어 보이자 유한수가 달려들더니 내 손을 억지로 잡아 벌렸다.
그러고는 욕이 섞인 괴성을 지르며 MP3를 액정이 깨질 때까지 밟아 부쉈다.
그렇게 난리를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한수는 결국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유한수의 발소리가 온전히 멀어지고 나자 뒤늦게 온갖 감정이 담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후…….”
유한수를 열받게 한 건 속이 시원했지만, 졸지에 뺨을 두 대나 맞고 MP3를 잃은 연습생이 된 신세라니.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쓰레기를 두고 회의실을 비울 순 없으니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부서진 MP3 조각을 주워 담는 동안, 나는 머리를 식히며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아무리 봐도 필요 이상으로 개빡친 것 같았단 말이지.’
남 성과 빨아먹는 유형의 인간에겐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법이다. 그래야 말로 사람을 구슬리는 데 방해되는 게 없으니까.
가뜩이나 이제 막 새 회사에 온 유한수가 그걸 모를 리는 만무했다.
그런 유한수가 고작 나한테 몇 마디 들은 걸로 하이 카타르시스 하이 리턴을 감수할 것 같진 않았다.
심지어 때린 곳이 얼굴이다.
아까는 유한수를 자극하느라 일부러 남 패는 게 습관이냐고 물었지만 진짜 악질적인 놈들은 안 보이는 곳을 때리는 법. 그런 의미에서 유한수가 지능적으로 사람을 때리진 않은 듯했다.
‘분명 뭔가 있어.’
잘 관리를 해 오던 이미지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유한수가 주먹을 날리게 만든 뭔가가.
나는 내가 건드린 유한수의 역린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부품 조각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회의실에 있는 이면지로 파편들도 꼼꼼히 감쌌다.
그리고 MP3의 잔해가 담긴 종이 뭉치를 주머니에 넣은 뒤 연습실로 향했다.
그렇게까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정말 내가 녹음이라도 했을까 걱정한 유한수가 쓰레기통이라도 뒤졌다가 이 MP3에 녹음 기능이 없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자기가 속았다는 걸 알면 저 인간은 내 오른쪽 뺨과 왼쪽 뺨을 번갈아 칠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멤버들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얼굴, 상처라도 안 나게 지켜줘야지.
이 쓰레기는 숙소까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내가 없는 사이에도 녀석들이 멈추지 않고 연습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연습은 잘하고 있었어?”
“아니에…… 형?”
내가 들어오기 무섭게 공기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음악을 끈 정성빈이 급격히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형. 얼굴이 왜 그래요?”
얼굴? 내 얼굴이 뭐 어때서?
나는 정성빈의 시선이 향한 왼쪽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찌릿하고 전기가 흐르듯 안면이 따가운 게 느껴졌다.
다른 녀석들의 시선도 모두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맞다.
나 맞으면 바로 티 나는 피부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