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4화(63/193)
| 64화. 상사와의 마찰 해결법: 상사를 치워 버린다 (2)
김이월이 기획안을 기획 팀에 제출한 뒤부터 그가 매니지먼트 본부를 찾아오는 빈도는 매우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매니지먼트 본부 소속인 민주경 역시 김이월을 볼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김이월이 연습생들의 매니저인 임찬영을 통해 면담을 신청하기 전까진 말이다.
사람 관리하는 팀과 하는 면담이라야 대체로 거기서 거기다.
기껏해야 매니저를 바꿔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가장 큰 이슈일 정도니까.
김이월이 지친 안색으로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도, 민주경은 최근 일이 많다거나 데뷔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졌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어린 연습생이 조심스럽게 들고 온 문제는 지금까지의 UA에선 없던 이슈였다.
“유 PD님이 널 때렸다고?”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주제에, 민주경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되물었다.
김이월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머뭇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던 김이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얼마 전입니다.”
사람과 대화할 땐 항상 눈을 마주치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던 애였는데. 오늘의 김이월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설마 본인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나?’
민주경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맞을 짓을 한다고 해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김이월은 사서 눈 밖에 날 짓을 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김이월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성실한지는 UA의 모두가 알고 있지 않던가.
민주경은 김이월이 더 긴장하지 않도록 최대한 담담히 물었다.
“PD님하고 무슨 일이 있었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김이월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 맹한 웃음이 민주경을 더욱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때 무언가가 민주경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전 기획 팀의 동기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대화였다.
‘주경,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 유 PD 진짜 낙하산 아니야?’
‘유 PD가 왜?’
‘그 새X 완전 개노답이야. 일도 못해 말도 X같이 해, 거기다 눈치까지 없어요. 대체 어떻게 업계에 소문이 안 났지?’
유한수 PD가 들어온 후로 기획 팀의 표정이 펴질 날이 없었다는 건 유명했다.
당장 민주경의 동기만 해도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불만이 늘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전부 유한수에게서 발생했다.
‘팀장님이 대놓고 얘기는 안 하는데 유한수 그 인간, 이월이한테 열등감도 느끼는 것 같아.’
‘열등감?’
‘어. 이월이가 뭐만 하면 시비를 그렇게 건다니까? 하도 거지 같은 거 들고 와서 히스토리 좀 물어보면 가관이야.’
‘에이, 이월이랑 유 PD 나이 차가 얼만데.’
‘진짜야. 이번 회의에서 유 PD 아이디어 다 까이고 이월이 거 채택됐거든? 그때 유 PD 표정을 주경 씨가 봤어야 해.’
유한수의 아이디어를 제치고 김이월의 의견이 채택됐다고, 동기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단 이야기는 이전에도 들었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모든 의견이 완전히 부정당한 소식은 전사의 여기저기까지 퍼질 정도로 큰 건이었다.
“이월아, PD님께서 너한테 손찌검을 한 게 언제쯤이야?”
민주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디 다 큰 어른이 추한 열등감으로 갓 스무 살짜리를 때린 것만은 아니길 바라며.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민주경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며칠 전입니다. 혹시 날짜가 중요할까요?”
“꼭 그렇진 않아. 그냥 기억나나 해서.”
“달력을 보면 날짜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기획 팀하고 회의한 지 3일쯤 뒤였는데, 회의 일정은 달력에 다 적어 뒀거든요.”
어떻게든 차분하게 얘기하려는 김이월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민주경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 김이월이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 혹시 못 믿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민주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김이월이 건넨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종이 뭉치를 펴자 자잘한 금속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주경은 이 시점에 김이월이 이것을 건넨 이유를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전자 기기들이 살짝 밟는다고 이렇게까지 부서지진 않는단 것도.
민주경이 침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건 제 선에서 면담하고 끝낼 문제가 아닌 게 확실했다.
* * *
민주경 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아티스트 관리 팀의 팀장을 데려왔다.
해맑은 표정으로 들어온 관리 팀 팀장의 표정도 3분 만에 흙빛으로 변했다.
회사 사람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 유한수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까지 겁을 먹었다며 난리라도 치려고 했는데.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일 따름이다.
덕분에 나는 세상만사 지쳐 버린 표정으로 유한수 밑에서 구른 나날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를 설명만 하면 되었다.
나야 한평산업에서도 못 해 봤던 한풀이를 하는 입장이라 즐거웠지만 직원들의 안색은 갈수록 나빠졌다.
유한수가 새벽 4시까지 전화를 해 댄 이야기를 했을 땐 관리 팀 팀장과 민주경 님의 얼굴이 파래지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관리 팀 팀장이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애들한테 별 더러운 꼴을 다 보게 하네.”
그건 염려 마세요. 저는 속이 시커먼 사회인이라 괜찮답니다.
그런 관리 팀 팀장 옆에서 민주경 님이 한숨을 크게 쉬고 물었다.
“기획 팀에 얘기해서 유 PD님은 스파크랑 분리해야겠죠?”
“그건 당연하고. 유 PD 얘기도 들어 봐야겠지만, 이거 대표님께도 말씀은 드려야 돼.”
놀라운 일이었다. 무려 회사의 직원들이 나를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이날을 대비해 연기 연습을 열심히 하고 왔다지만 말단의 말을 이렇게 성의껏 들어 줄 줄이야. 심지어 내 말을 믿어 주기까지.
저 모습이 시늉이라고 한들 한평산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렇게나 나를 생각해 주다니. 정말…….
곤란하다. 아직 얘기해야 할 게 남았단 말이다!
“저, 그리고…….”
나는 가방에서 미리 출력해 온 인쇄물들을 꺼내 내밀었다. 마음은 X나 급하지만 겉으로는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게 애를 쓰며.
“이걸, 이렇게 보여드려도 될진 모르겠는데……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게 뭐야?”
구 인사 팀 직원, 현 연습생이 한 땀 한 땀 손수 작성한 유한수 비리 의혹 문서요.
* * *
내가 유한수를 깨 털듯 털게 된 과정을 설명하려면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야흐로 유한수가 내게 밤이고 낮이고 온갖 업무를 떠넘기던 그때.
내 업무에는 유한수가 연락해 보라던 업체들에게서 견적서를 받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했다.
‘금액이 이상한데?’
유한수의 횡령 시도 정황을 말이다.
스파크에 배정된 예산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한 절약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발품 빼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여기저기 견적을 문의하고, 같은 곳도 두세 번 두드려 가며 모든 견적서를 정리했다.
그러던 중 특이점을 발견했다.
처음 혼자서 견적을 물어보러 다녔을 때, UA의 허락을 받아 기업명을 대고 가격 협의를 했을 때, 유한수가 아는 업체라며 연결해 줬을 때까지 세 경우의 수가 겹친 기업의 단가가 지나치게 이상했던 것이다.
개인 문의가 가장 비싼 것이 정석이라고 알고 있었건만, 어째서인지 유한수의 이름은 대면 댈수록 가격이 올라갔다.
처음에는 유한수가 특정 업체의 블랙리스트에라도 오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몇 개의 업체들이 공통적인 모습을 보였으니까.
‘설마 아니겠지. 이직해서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유한수가 그 정도로 답 없는 인간은 아니길 바라며 업체에 물었다.
‘대금은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돌아온 대답은 유감스러웠다.
‘저번처럼 개인 계좌로 차액 넣어 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이건 뭐, 인성 이전의 문제더라고.
결과적으로 UA 내에서 횡령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업체가 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조건이 괜찮은 선에서 유한수의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을 찾느라 죽는 줄 알았다.
당장에라도 내부 고발을 하면 좋았겠지만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유한수 건으로 인해 기획 쪽이 시끄러워져 스파크 데뷔가 밀릴 것도 그렇고.
섣불리 설쳤다가 유한수 전에 나부터 모가지가 되는 것도 곤란했다.
이런저런 일을 고려하니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유한수가 돈 빼돌릴 구석을 못 찾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일련의 일을 기록은 해 뒀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혹은 내가 KPI를 달성하고 UA를 나간다면 그때는 당당하게 고발할 생각으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한수에게 처맞은 다음 날.
나는 유한수의 숨통을 끊을 요량으로 제작 팀을 찾았다.
유한수의 이름을 대고 받은 견적만 적은 단가표를 들고 가, 전문가들이 알고 있을 통상적인 수준의 금액대를 비교하고 교차 검증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유한수 PD님이 업체 정해 줬댔지? 그럼 우리가 볼 필요 없어. 다 얘기 끝난 거라.’
웬걸.
제작 팀에서, 수상한 냄새가 폴폴 풍기게 굴지 뭐야.
직원이 예산을 빼돌리기 위해 업체와 짜고 쳤다.
그런데 이를 관련 부서에서 모른 척한다?
이러면 한패라는 말밖에 더 되나.
그제야 그간의 의문점들이 풀렸다. 콩고물을 나눠 먹기로 한 대상이 있다면 그걸 번번이 방해하는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는가.
밀접하게 일을 같이하는 사이도 아니겠다, 표면적으로는 눈속임하기도 쉬웠겠지.
이참에 다들 징계나 받고 스파크 일엔 좀 닥쳤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눈에 핏발이 설 때까지 녹음본을 녹취록으로 옮기고 견적서를 첨부하며 날밤을 지새웠다.
유한수와 끈 닿은 인물이 제작 팀에만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일단은 힘줄부터 끊어 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치면 안 되니까.
그렇게 가슴으로 엉엉 울며 만든 보고서가 지금, UA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연 UA는 내부 고발자를 어떻게 대할까.
‘한평산업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죽일 놈이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의자 다리가 거칠게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