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5화(64/193)
| 65화. 새해 소원 (1)
기획 팀 팀장이 민주경 님의 이름을 불렀다.
더 오가는 말은 없었다. 팀장은 그대로 내 보고서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추측하건대 대충 눈짓만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사소통한 모양이다.
나는 시선을 책상에 처박고 어떤 말이 나올지를 기다렸다.
그러자 민주경 님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내 두 손을 맞잡았다.
“이제 막 적응 끝나고 데뷔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너무 고생 많았어.”
“……네?”
예상치 못한 말이라 당황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대답할 타이밍도 놓쳤다.
“죄송합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제가…….”
“네가 왜 사과를 해?”
“저보다 훨씬 오래 일하신 분들께 실례되는 행동인 것 같아서요. 저 때문에 팀장님께서도 화나신 것 같고요.”
“그런 거 아니야, 이월아.”
민주경 님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팀장님이 나가신 건 이게 정말 큰 문제여서 그래. 빨리 위에 보고하려고 먼저 나가신 거야. 네 덕분에 회사가 손해를 보기 전에 빨리 알아낸 거니까 죄송하다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어! 알았어?”
“……네.”
“그리고, 너랑 유 PD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민주경 님이 맞잡았던 손을 뗐다.
나는 그것이 어떤 신호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신호.
‘그래서 어떡하라고. 인사 팀이 경영지원부 소속인데 부장님 부탁 몇 개 들어드리는 게 그렇게 어려워?’
‘김 대리 참 어리다. 생각이 어려. 상사가 그렇게 행동하는 덴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야지. 막말로 김 대리가 사회생활 얼마나 했는데?’
한평산업에서 들었던 말들이 하나둘씩 민주경 님의 목소리로 바뀌어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경 님은 여전히 내 예상과 다르게 행동했다.
“우리가 세심하게 챙기질 못했네. 관리 팀에서 그런 일조차 챙기지 못했다니 부끄러워. 미안하다.”
민주경 님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 번도 이런 식의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저 UA가 직원의 실수에 관용이 없는 회사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깍듯하게 사과하라고 강제하는 회사가 아니기만 바랄 뿐.
나는 그 낯선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이만 연습하러 가 보겠다며 황급히 회의실을 뛰쳐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 * *
연습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다섯 명의 고개가 일제히 내 쪽을 향했다.
정성빈이 노래를 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흥겨운 댄스 곡을 배경 음악 삼아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나는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다 꼰질렀다.”
“와악!”
이청현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배경 음악 때문인지 현장이 마치 축제 같았다.
“회사에선 뭐라세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강기연이 질문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들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당장 정해진 건 없어. 그래도 당분간 같이 일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돼? 데뷔 직전이라 큰 조치는 없을 것 같다며.”
“그럴까 봐 비리 건도 같이 찔렀어. 우리 쪽에 훈수 두기 전에 본인부터 교육 좀 다시 받게 되지 않을까?”
“비리요?!”
놈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구구절절 말할 만큼 좋은 일은 아니라 더 설명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하자. 성빈이랑 주우는 연습 끝나고 원만하게 화해할 거지?”
내 말에 정성빈이 슬쩍 웃으며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박주우도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동시에 정성빈의 얼굴 위에서 시스템 창이 빛났다.
+
[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50)
▷ 누적 경험치: 100
▷ 누적 포인트: 1
+
* * *
경험치 50은 유한수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수치였다.
그래도 힘겨운 산을 넘어선 덕분에 댄스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더불어 못 본 사이에 보컬 숙련도와 자기 PR, 조직 내 적응력이 하나씩 올라간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8(▲)/20
― 댄스 숙련도: 7(▲)/20
― 자기 PR: 13(▲)/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1(▲)/20
+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유한수의 미션을 끝으로 이력서 밑에 있던 ‘누적 경험치’ 항목이 사라진 것이다.
숙련도가 수동으로 올릴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했으니 자연스럽게 기능이 소멸한 듯하다.
유한수를 몰아낸 뒤로 연습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한수는 해고되진 않았다. 대신 징계를 먹었다.
추가로 UA의 아이돌 사업부 일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되었다.
UA에 있는 이상은 본인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꼈던 장준후 뮤직비디오만 평생 기획하게 되겠지.
제작 팀장은 직위 해제를 당했다. 부팀장으로 직급이 내려가고 팀장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모쪼록 빈자리가 빨리 채워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내게는 통쾌한 결말이었지만 다른 녀석들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지, 한동안 녀석들이 툴툴대는 소리가 꽤 자주 들렸다.
정성빈과 박주우는 한참 싸웠던 터라 나름대로 입조심을 하는 반면 이청현과 강기연은 거침이 없었다.
이 둘은 숙소에만 들어오면 돌아가면서 유한수가 받은 처분이 지나치게 미약한 것 아닌지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아니, 사람 때렸으면 바로 잘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같이 일할 일 없는 게 어디야. 회사가 징계를 쉽게 주는 줄 알아?”
이렇게 기껏 이청현을 달래 주고 나면…….
“시말서 그거 하나 쓴다고 반성할 사람 같진 않던데요.”
곧바로 강기연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양쪽에서 쉬지를 않더라.
“겉으로 보이는 거야 시말서 정도겠지. 징계까지 받았으니까 그 양반, 아마 내년엔 연봉 동결이거나 삭감일 거다.”
“형, 레퍼런스 조사한다면서 그런 것만 찾아보는 거 아니죠?”
이청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한평산업에서 보고 배운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 그런다, 왜.
나는 이제 방으로 가서 놀라고 한마디 한 후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스파크의 데뷔가 임박한 지금, 언론사에 배포할 보도 자료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니겠다, 보도 자료 정도는 UA에서 쓰게 두려고 했지만…….
보도 자료에 멤버의 쓸데없는 수상 경력부터 아직 풀리지도 않은 뮤비까지 집어넣을 기세길래 그냥 내가 쓰겠다고 했다. 앓느니 죽어야지.
이런 류의 글을 쓰는 건 익숙하다. 경영진이 소송전에 휘말릴 때 기사 밀어 내기를 하느라 ‘한평산업,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 TOP 1,000 선정’ 따위의 보도 자료를 기계처럼 써 냈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한평산업 같은 개X소 회사를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이라고 한 건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한평산업보다 더 후진 기업이 7천만 개 정도 있는 걸지도. 전자든 후자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막 ‘UA, 신사업에 뛰어들다.’를 쓰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덥석 날 끌어안았다.
“형! 형 혹시 1월 1일에 약속 있어요?”
“깜짝이야……!”
백 허그의 범인은 어김없이 이청현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녀석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청현아. 나 작은 일에도 까무러치게 놀라는 사람인 거 알아, 몰라? 내가 잘못해서 팔로 너 치기라도 하면 어쩔 뻔했어?”
“그럴까 봐 제가 완전 세게 사랑의 허그 해 준 거잖아요. 구속력 장난 아니었죠?”
“내가 뒤통수로 네 턱을 쳤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철저히 주의하겠습니다.”
이청현이 손으로 제 턱을 가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신정이면 일정 없긴 해. 그런데 왜?”
“오, 그럼 저희 다 같이 일출 보러 가요!”
일출이라니.
이게 뭔 정초부터 워크숍 가자는 소리야?
* * *
등산.
전국의 부장님들이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하나의 산을 타게 만든, 상사들의 영혼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취미.
면접부터 입사 후 동호회까지 침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악마 같은 집단행동.
이 등산 바람은 한평산업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거기에 남 부장이라는 불이 붙어, 한평산업 임원들은 ‘건강/팀워크 회복 위원회’라는 괴상한 조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직장들과 강제로 한 몸이 된 나 역시 주말마다 1.5L 생수병 두 개를 메고 이 산 저 산 따라다녔다.
내가 마실 물도 아닌데 그걸 다 나에게 짊어지게 한 시점에서 그 위원회는 글러 먹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건강/팀워크 회복 위원회’는 얼른 망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달리 오래도록 이어졌다.
산만 넘을 줄 알았더니 나중에는 물 건너 제주도까지 가더라.
물론 제주도 배표도 내가 다 끊었다. 선 사비 후 예산처리로.
오죽하면 내가 한평산업에서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정한 목표가 ‘한평산업 산악회 없애기’일 정도였다.
그나마 그 과정에서 200대 명산 시리즈에 달성 도장을 찍은 것이 유일한 기쁨…….
“형? 왜 갑자기 말을 하다 멈춰요?”
이었는데.
이청현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할 만큼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 명산 도장.
개 같은 등산을 따라다니면서도 ‘그래도 도장 모으는 건 재밌으니까’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만든, 자유 없는 주말의 하나뿐인 원동력.
내 한평산업 생활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도장이 지금 떠올랐다.
시스템한테 물어봐야 하나? 내 도장 살아 있냐고?
그런 생각을 하자 바로 시스템이 나타났다.
고객 서비스 팀이 따로 있나 싶을 만큼 대단한 반응 속도였…….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책상에 있던 그 볼펜, 아끼는 거야? 내가 급해서 좀 썼는데 망가졌거든. 다음엔 좀 튼튼한 걸로 사.
[SYSTEM] ‘을’이 과거로 이동함에 따라, ‘을’이 기존에 달성한 업적은 모두 무효 처리됩니다.+
……다.
망할, 내 인증 도장 내놔!